1권-11, 영혼의 우선적인 과제는
모든 일 속에서 모든 면으로 자기 자신의 뜻을 죽이는 것
1. 하느님은 당신 자체로 지극히 완전하신 분이시므로 당신의 일을 하실 때에도 언제나 최상의 완성을 원하실 수 밖에 없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도 이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당연히 진보의 노력을 그칠 수 없을 것이다.
2. 하물며, 지성과 의지를 선물로 받은 인간이 자신의 완성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열망한다면 그 완성을 위한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들에 응답한다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최상의 완성을 참으로 성취할 수 있는 존재이다.
3. 그러니,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면서 당신 팔에 의지하기를 원하시고, 온갖 좋은 것을 내게 사용하시어 당신의 부성적인 팔에 몸을 던질 용기를 주시며,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그분에게서 얻기를 바라시는데도 이 은총들을 거부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나 어리석고 지각없는 인간이겠는가?
4.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나의 사랑하올 예수님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5. “너는 혼자 있으면 소경이나 진배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 빛이 이전보다 더 밝게 너를 이끌어 줄 것이고, 나 자신이 실제로 네 안에서 너와 함께 놀라운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6. 그러니 내가 행하는 모든 일 속에 나를 따라다녀라. 그러면 너도 보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거울처럼 네 앞에 있겠다. 그러니 나를 본받으려면 오직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내게서 절대로 눈을 떼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7. 네가 너 자신 안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너의 뜻이다.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탐하므로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내 앞에 너의 뜻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쳐야 너의 뜻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네게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반대를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나도 사람들도 네 뜻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8. 과연 예수님의 말씀은 내 뜻으로부터 그것이 제멋대로 하는 모든 행위를 앗아가는 반대를 불러일으켰는데, 흡사 바람이 꽃받침으로부터 꽃잎들을 휩쓸어가서 거기에서 자라고 있었던 작은 열매를 드러내 보이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내게는 그분을 본받는 실천적인 계기들이 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9.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즉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분은 내적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십자가 외에는 다른 침상이 없었는데, 너는 여기 편안하게 누워 있구나. 어서, 어서 일어나거라. 그렇게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
10. 또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가고 있으면 그분은 곧바로 나무라시면서, “나는 네 눈이 한 걸음 앞보다 더 멀리 보기를 원치 않는다. 헛디디지 않을 정도로만 보라는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1. 내가 시골에 가서 온갖 꽃과 풀과 나무들 따위에 둘러싸여 있었을 때에는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창조하였다. 그러니 너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이 즐거움을 희생하여라.”
12. 교회에 들어가서 거룩한 기물이나 제의나 다른 깨끗한 성물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도 그분은 즉시 꾸짖으시면서 오로지 그분 안에서만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13. 내가 의자에 편안히 앉아 일하고 있으면, “너는 너무 편안히 앉아 있다. 내 생애는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느냐?”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의자의 반쪽만 차지하며 즉각 고쳐 앉았다.
14. 그리고 내가 늑장부리며 하는 둥 마는 둥 일하고 있으면, 그분께서는 “서둘러라. 나와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해서 시간을 절약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5. 또 어떤 때는 일정한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정해 주셨고, 그러면 나는 그분께 기쁨을 드리려고 열심히 일했다. 이 경우 만일 시간에 맞추어 그 일을 다 끝낼 수 없을 것 같으면, 오셔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그분께 청하였고, 사실 여러 번 도와주셨는데, 그것은 내가 자유롭게 그분과 함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고, 그것도 함께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더 많이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16. 그러므로 그럴 때는, (예수님께서 친히 도와주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하루 종일 해야 다 할 수 있는 일을 그분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다.
17. 그러면 그분은 나를 기도 안으로 끌어당기셔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수많은 빛과 은총들에 대한 관상기도에 온전히 몰입하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매료되어 피로나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고, 오래도록 줄곧 기도 안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18. 게다가, 얼마나 배가 부른 느낌인지 기도가 내게 주는 음식만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의 원의에 반대하셨다. 식사시간이 되면 지체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19. “어서 서둘러라. 가족들을 기다리게 하지 말아라. 나에 대한 사랑으로 식사하기 바란다. 음식이 네 몸과 하나가 되듯이, 너의 사랑도 나의 사랑과 하나 되게 하여라. 그러면 내 성령이 내려와서 네 영혼과 결합하리니, 네가 행하는 모든 일을 내 사랑으로 거룩하게 해 주실 것이다.”
20. 가끔 식사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자꾸 집어먹고 있으면, 그 버릇을 당장 바로잡아 주시려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유일한 쾌락은 너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극기하는 것이었는데, 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건 그만 먹고 네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걸 먹어라.”
21.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아주 사소한 일 속에서도 나의 뜻을 죽이고자 하셨다. 그것이 언제나 오로지 그분 안에서만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음의 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주님께서는 순전히 당신께 대한 거룩한 사랑 속에서도 나의 뜻이 철저한 반대를 받도록 허락하셨다.
22. 그것은 성찬식에 참여하고 싶은 나의 갈망이 너무나 치열해서 그 전날과 밤새도록 눈 한 번 붙이지 못한 채 예수님을 더 잘 받아 모실 준비를 하려고 끊임없이 그분께 대한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었던 끝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주님, 서둘러 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모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부디 시간이 빨리 흘러 날이 밝게 해 주십시오. 영성체를 하고 싶은 갈망이 얼마나 큰지, 제 마음이 기절할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곤 하였다.
2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너 없이 홀로 고통받고 있다. 네가 한잠도 못 자고 있는 것은 마음 쓸 일이 아니다. 너에 대한 사랑으로 멀리에서부터 너를 지켜 주시는 네 정배요, 네 전부이신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 - 이는 희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4. 그러니 이리로 와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끊임없이 저지르는 모든 모욕을 함께 나누어 가지자. 거절하지 말고 사랑에 찬 너의 동반으로 나를 위로하여라. 사랑으로 고동치는 네 심장이 나의 심장 고동과 하나가 되면, 내가 밤낮으로 받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욕들을, 이로 인한 고통들을 덜어 줄 수 있다.
나는 그 보답으로, 네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을 때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언제나 함께 있어 주겠다.”
25.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아침 동이 틀 무렵, 나는 복된 성사 안의 예수님을 모시려는 크나큰 열망을 품고 성당으로 갔다. 하지만 고해사제에게 가자, 아직 입도 열지 않은 나에게, “오늘 아침엔 영성체하러 나가지 않기 바라오.”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니와, 그럴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눈물 범벅이 되면서도 고해사제에게 조차 감히 그 쓰라린 고통을 드러낼 수 없었다.
26. 예수님께서 내 고통을 내비치지 못하게 하셨고, 내가 그렇게 하면 꾸짖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의 가장 큰 선이신 그분께만 온전한 신뢰를 두기를 원하셨기에, 나는 마음을 열어 이렇게 말씀드리곤 하였다.
27. “제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이것이 당신과 제가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얻어낸 결실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리며 열망한 끝에도 당신을 모시지 못하고 지내야 하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물론 모든 일 속에서 항상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예수님, 말씀 좀 해 주십시오.
28. 제가 당신 없이 지낼 수 있습니까? 누가 그 힘을 주겠습니까? 제 가장 큰 선이신 당신을 모시지 않고 집에 와야 하다니, 그런 상태로 성당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제가 대체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제 예수님, 당신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수 있습니다.”
29. 그러나 이 말씀을 드리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옆에 야릇한 불길이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사랑의 불꽃이 내 안에서 타오르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내적 음성이 들렸다.
“진정해라. 진정하라니까. 나는 이미 네 마음 안에 있다. 이제 무엇이 걱정이냐? 더 이상 속끓이지 말아라. 내가 손수 눈물을 닦아 주마. 가엾은 것, 나 없이는 못 산다는 네 말이 과연 맞는 말이구나?”
30. 예수님의 이 말씀과 동작 때문에 나는 마음 속으로 적잖이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 존재의 허무를 매우 깊이 느꼈다. 그래서 그분께, “제가 그토록 못되지 않고 착했더라면, 당신께서 고해사제에게 그렇게 제 뜻에 반대되는 말을 할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반대만은 받게 하지 마시기를 청하였다. 주님 없이는 그것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1권-12, 수난 중이신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환시
1. 마침내 어느 날 영성체 후에, 나는 그분께서 내 안에 터질 듯한 사랑과 애정을 부어 주시는 것을 느끼며 놀라움에 잠겨 이렇게 말씀드렸다.
“예수님, 저는 악하고 당신 사랑에 잘 응답하지도 못하는데, 어찌하여 이리도 큰 친절을 보여 주십니까? 제가 착하다면… 당신께 잘 응답한다면… 그렇질 못하기 때문에 당신께서 저를 떠나시면 어쩌나 하는 중인데, 당신은 오히려 더할 수 없도록 다정하게, 어느 때보다도 더 당신 가까이로 끌어당겨 주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애정이 가득 서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2. “사랑하는 얘야, 내가 지금까지 네 안에서 행해 온 일은 작은 준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 수난의 무한한 바다 속에 너를 잠금으로써 네 마음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내 수난의 고통을,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하려는 갈망으로 나를 삼키던 사랑을, 그리고 너를 위하여 그 모든 고통을 겪은 내가 누구이며 네가 누구인지를 - 극히 비참한 피조물인 너를 - 네가 일단 분명히 깨닫고 나면, 그때에는 나에 대한 사랑으로 겪게 될 수난 고통과 타격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3. 또한, 얼마 동안 네가 짊어지도록 내가 마련한 십자가를 사랑으로 불타는 영혼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너의 스승인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를 생각만 해도 네 고통은 한낱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고통이 네게는 오히려 감미로운 것이 되어 고통 없이는 지낼 수도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4.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어느 때보다도 더 고통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그럼에도, 장차 겪게 될 고통에 대해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떨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통을 미처 사랑하기도 전에 그것을 겪고 싶은 힘과 용기를 내게 주신 예수님께, 그분께서 내가 겪도록 부르시는 고통을 사랑하게 해 주셔서 이 고통이라는 선물을 악용하여 이를 주시는 그분을 모욕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더없이 상냥하고 감미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5. “얘야, 물론 그렇고말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한 매력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한다면 제대로 잘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설사 그 일을 완료했다 하더라도 마지못하여 한 일이라면 나는 아무 상급도 주지 않는다.
6. 그러니 알아두어라. 네가 나의 수난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너를 위해서 겪은 모든 것을 고요히 숙고하며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나의 생각과 똑같이 될 것이다. 참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을 위해서라면 남김없이 모든 일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7.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그분의 수난에 대한 묵상에 전념하였다. 이것이 내 영혼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확실히 이 은총과 사랑의 원천에서 모든 선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수난은 내 마음과 정신 속에서 계속되었고 그분과 함께 영적으로 열렬히 고난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묵상 덕분에 온 몸도 자극을 받아 그분 수난의 고통스러운 영향을 입게 되었다….
8. 그것은 마치 거대한 빛의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고, 그 불타는 빛살이 나를 위하여 그토록 엄청난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온 존재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끝없는 빛살의 비추임을 받아, 예수님께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나 큰 인내와 겸손과 순종과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견디셨는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9. 그리고 내가 그분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면서 나 자신을 온통 허무로 여기게 되었다. 내게 쏟아지는 그 빛살들이 내게는 모두 말없는 비난의 화살이 되는 것 같았다.
10. “하느님께서 그처럼 인내하셨다. 그런데 너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원수들에게마저 겸손과 순종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너는? 완전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너를 위해 수많은 고통을 겪고 계신다. 그런데 너는? 그분께 대한 사랑으로 얼마큼 고통을 겪고 있느냐?”
11. 또 다른 때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나에 대한 사랑으로 겪으신 극심한 고통과 비탄에 대해 말씀해 주셨기에 나는 깊이 감동되어 흐느껴 울었다…
어느 날, 일을 하면서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가슴이 짓눌리는지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나는 정신을 딴 데로 돌려보려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무엇을 보았겠는가?
12. 엄청난 군중이 발코니 아래의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일부는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진 온유하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측은한 모습이신지, 돌덩이마저 동정심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 순간, 그분은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셨다.
13. 그때 내가 느낀 비통을 대관절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토록 가슴이 미어지는 광경이 내 안에 일으킨 감정을…? 나는 즉시 방으로 들어왔지만 사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고통으로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아서 눈물을 쏟으며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14. “오 좋으신 예수님, 당신은 너무도 큰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 저 미쳐 날뛰는 이리들 손에서 풀어 드릴 수 있다면, 아니면, 적어도 제가 그 고통을 - 그 비통과 학대를 대신 겪음으로써 이 모든 것에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지신 예수님, 제게 고통을 주십시오. 죄인인 저는 당신을 위해 아무 고통도 겪고 있지 않은데, 저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은 이처럼 큰 고통을 받고 계신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15.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내게 고통, 곧 감미로운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붙여 주셨으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 편이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이 고통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그 순간 이후부터는 절대로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영성체할 때면 나는 오직 한 가지만 열심히 청할 따름이었으니, 그것은 이 감미로운 고통을 통하여 나를 그분과 똑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16. 때때로 그분은 나의 그 열망을 채워 주시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그분의 가시관에서 가시 하나를 뽑아 내 심장에 박아 주셨고, 다른 때는 또 하나의 가시를 내 머리에 박아 주셨으며, 가끔은 그분을 박은 못을 내 손과 발에 박아 더없이 심한 아픔을 느끼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분께서 겪으신 고통들과 결코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17. 또 어떤 때는 예수님께서 양손으로 내 심장을 얼마나 세게 쥐어짜시는지, 그 아픔 때문에 기절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챌까 봐, “예수님, 제가 고통을 받게 해 주시되, 아무도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얼마 동안 내 청을 들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난 후, 내 잘못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도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채기 시작하였다.
1권-13, 예수님께서 모든 감각적인 위로와 은총 및 가시적인 도움을 거두시다
1. 이따금 예수님께서는 영성체를 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2. “네가 나의 현존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는 내가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 나의 고통과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잠시 너를 혼자 있도록 하겠다. 내 도움의 손길을 거두고 네가 무엇을 하든지 바로잡아 주지도 않을 터인즉, 너는 전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3. 지금까지는 나를 본받으면서 그저 따라오기만 했지만, 이제부터는 종전과 달리 내 모습을 보거나 내 현존을 실감하지 않고서도 내가 항상 너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기꺼이 모든 것을 행하며 겪어야 한다. 네가 내게 충실하면 돌아와서 상을 주겠고 불충실하면 벌을 주겠다.”
4.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분께 하소연하였다.
5. “주님, 주님께서는 제 모든 것이며 제 생명이십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좋으신 예수님. 제가 당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해야 할 바를 할 수 있는 힘을 누가 주겠습니까? 당신만이 제 힘이요, 버팀목이셨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6. 당신께서는 저로 하여금 외부 세계와 제 주위의 모든 것을 떠나게 하셨기에 - 그래서 사실상 (당신 외에는)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살게 되었는데 - 이제 당신께서 당신 현존을 거두시며 저 자신을 제 처분대로 맡기고 떠나시고자 하시다니, 그럴 수 있는 일이십니까? 저는 너무나 악한 인간이어서 당신 없이는 아무런 선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즐겁고 온화하신 표정으로, “내가 잠시 너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너에게 더 큰 선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려는 것이니, 나 없이 혼자 있을 때에 너는 어떤 사람인가를 철저히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네 마음을 준비시켜서 내가 쏟아 부어 주려고 하는 새로운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한다.
8. 지금까지는 내 모습을 보여 주면서 너를 도와주었지만, 너의 허무를 정말 깊이 인식하도록 이제부터는 내 모습을 감춘 채 도와 주겠다는 것이다. 너를 더없이 깊은 겸손 속에 가라앉게 하고, 나의 은총으로 더없이 높이 일으켜서 그런 너 위에 가장 높은 성벽을 너와 함께 세우기 위함이다.
9. 그러니 너는 슬퍼하는 대신, 나와 더불어 오히려 기뻐하며 내게 감사해야 한다. 너로 하여금 이 폭풍이 이는 바다를 빨리 건너가게 할수록 그만큼 빨리 네가 구원의 항구에 도착할 터이니 말이다. 내가 너에게 치르게 하는 시련이 클수록 더욱 큰 은총을 주겠다. 그러니, 힘내어라. 곧 돌아와서 고통 중에 있는 너를 위로해 주마.”
10.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고 강복하신 후 내 눈앞에서 사라지셨다. 그렇게 강복하시며 멀리로 떠나가시는 것을 보고 있었을 때에 내가 느낀 슬픔과 내 마음에 남겨진 공허감과 내 영혼을 뒤덮는 쓰라린 고통과 쏟아지던 눈물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나 자신을 맡기고, 강복과 더불어 사라져 가시는 그분의 손에 멀리서나마 수없이 입맞추면서 눈물을 삼키고 이렇게 말하였다.
11. “거룩하신 정배여,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제게 곧 나타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언제나 저를 도와주시며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온전히 당신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12. 그러고 나자,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온전히 혼자만 남은 듯 하였다. 예수님의 나의 전부이셨는데 그분께서 가버리셨으니 달리 어떤 위로가 있을 턱이 없었고, 주위의 일체가 지독한 쓰라림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물들마저 빈정대며 나를 괴롭히면서 그들의 소리 없는 말로, “보아라. 우리는 네가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예수님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13. 물을 보건 불을 보건 꽃을 보건 심지어 내 방의 벽돌과 뭔지 모를 다른 것들을 보건 그 모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아라, 이 모든 것이 네 정배의 작품들이다. 너는 그분의 작품들은 보면서 정작 그들의 창조주를 뵙는 기쁨만은 못 누리고 있구나.”
14. 그래서 나는 말하였다. “내 주님의 작품들아, 말 좀 해 다오. 주님께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내가 어디로 가면 그분을 뵐 수 있겠느냐? 그분께서는 곧 돌아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 중에 누가 내게 말해 줄 수 있느냐? 언제, 언제가 되어야 내가 그분을 다시 뵙게 되겠는지를?”
15. 이런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날이면 날마다 낮은 영원과도 같았고, 잠 못 이루는 밤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 그 쓰라린 비탄으로 말미암아 맥도 뛰지 않고 숨도 끊어지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때때로 온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임종 경련 같은 것이 일기도 하여, 가족들은 내가 병이 들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16. 그때 내가 겪은 모든 것이 가족들에게는 단지 육체적인 병증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들 말하면서 바로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진찰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7. 그 동안 나는 좋으신 예수님께서 내 마음속에서 들려 주셨던 말씀과 행하셨던 모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였고,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곰곰이 살펴보았다. 그것은 그분의 은총들과 정답고 감미로우신 그분의 말씀들, 그분께 대한 사랑을 의무로 여기도록 나를 부르시기 위한 아버지다우신 충고와 바로잡으심과 꾸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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