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제 2장 그리스도의 부르심

Skyblue fiat 2016. 12. 5. 20:23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제 2 장

그리스도의 부르심

 

 

 

1870년대는 루이사 피카레타의 영성 생활에 새봄이 찾아온 시기였다. 적어도 일 년 동안 코라토의 대성당에서 교리 수업을 받으며 첫영성체 준비를 했는데, 여덟 살 때 교리 문답 성적이 우수해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자 본당 사제인 필립포 푸리 오 신부는 견진 성사도 함께 받도록 권하였다. 루이사는 아홉 번째 생일이며 세례 기념일이기도 한 1874년 ‘사백(卸白) 주일’ (곧 부활 제12주일)에, 거룩한 영성체로 예수님을 받아 모셨고, 또한 트라니-나자렛 대교구 대주교가 집전한 견진 성사로 성령의 인장을 받았다.

 

이 견진 성사와 성체 성사의 은총이 루이사의 영성 생활에 새로운 장(章)을 연 것이다. 여전히 무섬증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기도하며 묵상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서너 살 무렵부터 성모님의 칠고(七苦)를 기억하며 날마다 일곱 번씩 ‘성모송’ 을 바쳤고, 몇 번이나 꿈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셔서 악마를 쫓아 버리셨다고 한다. 한번은 이 고통의 어머니께서 “울어라, 얘야, 내 아들이 죽었단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체험에 깊은 감동을 받은 루이사는 ‘마리아의 딸 회’ 에 가입하였고, 칠 년 이상이나 괴롭힘을 당했던 그 무섬증을 극복하는 은총을 받았다. 그녀는 그 무렵의 일을 고해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열한 살 때 성모님의 딸이 된 후, 하루는 기도하며 묵상하려고 했다가 무섬증에 사로잡혀 가족에게 달려가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도로 붙들어 앉히는 힘을 내적으로 느꼈고, 영혼 깊은 데서 한 음성이 “왜 무서워하느냐? 네 천사가 곁에 있고, 예수님이 네 마음 안에 계시고, 네 천상 엄마가 망토로 너를 감싸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왜 무서워하는 거냐? 네 수호천사와 네 예수님과 네 천상 엄마, 아니면 지옥 원수 중, 어느 쪽이 더 힘 이 세겠느냐? 달아나지 말고 여기 머물러 기도하여라. 무서워하지 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심에서 울려온 이 음성이 매우 큰 힘과 용기와 굳셈을 주었으므로 무섬증이 사라졌고, 또 그것에 사로잡힐 때마다 다시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천사와 여왕님과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이끌고 계신 느낌이었으니, 이분들 가운데 있어서 기세가 등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섬증을 이기는 방법을 루이사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또한 그녀의 영성 생활을 지도하기 시작하셨다. 낮 동안 자주 말씀을 들려주셨고, 특히 영성체 후에 그렇게 하였으며, 그분과 하나 되어 모든 본분을 행하는 법도 가르치셨다. 그럴수록 루이사는 점점 더 복된 성사를 생활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고, 때로는 영성체 후 몇 시간 동안 기도에 잠기곤 하였다. 해마다 여름철 몇 달은 온 가족이 코라토에서 무르지아에 있는 농장으로 옮겨 가서 지내야 했으므로 이때 루이사는 무척 괴로워하였다.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없었던 때인 만치, 농장에서 보내는 기간 동안에는 평일뿐만 아니라 주일에도 가족 전체가 성사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성체를 영하고 싶은 열망에 겨워 루이사는 눈물을 홀렸고, 때때로 이로 인해 앓아 눕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녀를 계속 지도하고 가르치시면서 나자렛 집에서 숨은 생활을 하신 당신을 모범으로 삼도록 도움을 주셨다.

 

“딸아, 너의 삶은 나자렛 성가정의 우리와 함께 숨어 있어야 한다. 일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걸어 다니거나, 한쪽 손은 내 손을 잡고 한쪽 손은 내 엄마의 손을 잡고 눈길은 성 요셉을 향하여라.

너의 행위들이 우리들의 행위와 일치하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 네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질 것이다. ‘나는 우선 예수님과 천상 엄마와 양부 요셉께서 행하시는 바를 모범으로 삼고 그다음에 그대로 따라하겠다’ 네가 본받아 감에 따라 나의 숨은 생활이 너에 의해 반복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나는 네 안에서 내 엄마의 일과 내 사랑하는 성 요셉의 일과 나 자신의 일을 보기를 원한다.”

 

「유년 시절 회상기」에서 루이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던 일을 기억에 떠올렸다.

 

"내가 당황하면서 ‘사랑하올 예수님, 저는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모릅니다.’하자 그분께서는 ‘딸아,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청하여라. 내가 금방 가르쳐 주마. 우리들의 행동과 지향들과 우리 세 사람 사이의 지속적인 사랑에 대하여 말해 주겠고, 바다와 같은 나와 작은 강들과 같은 그들이 항상 서로에게 넘쳐흘러,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을 정도로 사랑 안에 얼마나 온전히 잠겨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말해 주겠다. 이 점에 있어서 네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보이느냐? 우리를 따라 잡으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는 네가 뒤처져 있지 않고 우리 가운데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 침묵하면서 주의를 기울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루이사는 서서히 예수님께 지속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습관을 길러 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예수님께 물었고 그분도 그녀로 하여금 내적 담화를 듣게 해 주셨다. 루이사는 예수님과의 이 친교를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바느질감이나 집안의 다른 일거리를 들고 위충에 올라가 혼자 일하곤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의 지도 아래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탈하는 고된 과정을 시작했으니, 그것은 주님과 하나 되어 살기 위함이었다.

 

“너를 에워싸고 있는 이 작은 세계 곧 피조물에 대한 생각과 애착과 망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네가 벗어나지 않으면, 나는 온전히 네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없고, 따라서 네 마음을 영원히 차지할 수도 없다. 네 정신이 그런 것들과 상관하며 계속 종알거린다면 내 음성을 더 분명히 들을 수가 없으며 나로 하여금 은총을 네 안에 쏟아 붓지도 못하게 한다. 이 은총은 아주 질투심 많은 네 정배인 나만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온전히 내 것이 되겠다고 약속하여라. 그러면 내가 일을 시작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너와 더불어 하겠다.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네 말은 맞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너는 그저 네 뜻을 내게 주기만 하면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루이사는 예수님께 주의를 집중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가족들과의 대화나 쓸데없는 이야기로 마음이 흐트러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의 그분께서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싫다. 네 정신을 나와 관계없는 일로 가득 채우고 해로운 먼지로 뒤덮어, 네게 풍성히 쏟아 준 내 은총의 효과를 잃게 하거나 약화하며 그 생기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나자렛 집에서 살던 시절의 나를 본받아라. 그때 내 정신은 아버지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거룩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를 거슬러 저질러지는 죄들을 보상하도록 힘써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런 후 사람들의 마음이 통회로 부서지고 은총으로 부드러워지는 것이 보이면, 그 마음에 불을 붙여 내 사랑에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내가 내 어머니와 양부와 더불어 나누었던 영적 담화는 어떤 것이었겠느냐?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나눈 모든 담화는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고, 모든 행위도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께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지 못하느냐? "

 

예수님께서는 루이사가 그분과 더욱 깊은 친교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이따금 그녀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셨다. 묵주기도를 하러 가곤 했던 토레 디스페라토 농장의 한 야산 꼭대기에서는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주님 수난의 효과를 영육으로 체험 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이따금 루이사를 찾아다닌 마리아 도리아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루이사가 넋 나간 듯 무아경에 빠져 있곤 했기 때문에 찾아다니는 것이 싫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다. 이 마리아의 말에 의하면, 남자 형제가 없는 루이사가 어떤 어린 소년과 놀고 있는 것을 몇 번 보았다고, 아무래도 그 소년은 예수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루이사는 자기가 받은 영적 선물들을 애써 숨기고자 했으나 가족들에게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한번은 아버지만 토레 디스페라토 농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가족은 아직 코라토에 남아 있었을 때에 루이사가 어머니에게 “아빠 침상을 준비해 두셔요. 아빠가 곧 돌아오실 거예요.”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곧 돌아오다니 도대체 그럴 이유가 없는 계제였지만, 웬 걸 어깨뼈가 부러진 아버지가 집에 곧 실려 온 것이었다.

 

이 열렬한 영적 성장의 시기에 루이사는 수도 생활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게 되어 예수님께 수녀가 될 은총을 주시기를 빌었다. 그분께서 그 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자, 그녀는 양친에게 ‘원죄 없으신 잉태 수도회’에 입회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양친은 그런 생각을 접게 하려고 했지만 루이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열네 살이 된 해에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낸 루이사는 순진한 확신을 가지고 그 수녀들에게 가서 원장수녀님과의 면담을 청하였다. 그러자 수녀들은 원장 수녀님이 매우 바빠 만나 줄 수 없다고 하면서 그녀를 돌려보냈다. 

이 거절에 영적으로 짓눌린 루이사는 복된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께 그 심정을 토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피조물의 변덕스러운 사랑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녀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지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래도 수도 소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루이사는 코라토에 있는 봉쇄 수도원 ‘클라라 회’ 에 들어갈 마음을 굳혔는데, 여기서도 다시 실망과 마주쳤다. 루이사의 어머니가 그 수녀들에게 그녀의 허약한 건강에 대해 알려 주었으므로 그들 역시 루이사의 청원에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이 거듭된 거절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습니다. 꼭 수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저를 놀리셨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당신 말씀의 진실성을 천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를 뿐더러 누구를 놀릴 줄도 모른다. 너에 대한 나의 부름이 특별한 것이었을 뿐이다. 수녀가 되어 더할 수 없이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할지라도 (지금의 너처럼) 걷지도 못하고 바람도 못 쐬며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자주 축소판 세상을 안으로 끌어들여 이를 신나게 즐기는 수도원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으냐? 나는 뒷전으로 밀려난 듯 홀로 남아 있고… 아, 딸아, 내가 어떤 신분으로 사람을 부를 때는 이 소명을 완전히 이루는 방법도 알고 있기 마련이다. 마땅히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수도 생활의 본질이 있으므로, 누가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해도 수도원이라는 장소 자체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수도원의 관습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달한다. 너는 정녕 내 마음의 작은 수녀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열네 살이었던 그 당시의 루이사는 자신의 소명이 어떻게 실현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를 가르친 수녀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수녀로 살고 싶은 열망의 불을 붙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실망이 거듭되자 그 애정도 뿌리째 없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대하여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겪은 무질서한 애정으로 기억 된다. 그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본성적인 애정은, 비록 무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하찮은 마음을 지배하는 사나운 폭군이다. 특별한 애착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마음의 참된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또한 그분에게서 결코 떨어지는 일 없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어떤 선행을 베풀면 그것을 마땅히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알아보고 - 왜냐하면 하느님이 바로 그 선행의 원동력이며 창조주시니까 - 그 분께서 사람을 써서 내게 그렇게 해 주셨다고 여겼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악행을 저지르면 이 역시 하느님께서 오로지 나의 영적이고 육체적인 행복을 더 키워 주시려고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모든 사람을 하느님 안에서 보고 그 각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봄으로써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잃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나를 조롱할 때도 내 영혼으로 하여금 새로운 공로를 얻게 해 주는 것으로 여기면서 하느님 안에서 그들을 더욱 사랑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반대로 사람들이 내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면 그것을 경멸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하였다. 피조물의 변하기 쉬운 성질로 볼 때, 오늘의 이 찬사는 내일의 증오가 될지도 몰라.’

요컨대, 그 순간 이후부터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무질서한 애정” 으로부터 루이사를 정화하신 뒤 영성 수련의 강도를 높이셨다.

 

“그러니 이제는 피조물에 대한 애착을 없애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에 대한 집착을 없애야 한다. 곧 네가 오로지 내 안에서만 살고자 한다면 너 자신에 대해서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나 자신의 생명을 네 안에 넣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네가 지금껏 해 왔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굳건해져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너 혼자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너는 나와 함께, 나는 너와 함께, 곧 우리는 함께 모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자신의 뜻을 버리는 훈련을 시키셨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할 때마다 내적으로 훈화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내가 시골에 가서 온갖 꽃과 풀과 나무들 따위에 둘러싸여 (즐기고) 있었을 때에는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창조하였다. 그러니 너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이 즐거움을 희생하여라.’ 교회에 들어가서 거룩한 기물이나 제대포나 다른 깨끗한 성물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에도 그분은 즉시 꾸짖으시면서 ‘나 말고 무엇이 너를 기쁘게 할 수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의자에 편안히 앉아 일하고 있으면, ‘너는 너무 편안히 앉아 있다. 내 생애는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느냐?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의자의 반쪽만 차지하며 즉각 고쳐 앉았다. 그리고 내가 늑장부리며 하는 둥 마는 둥 일하고 있으면, 그분께서는 ‘서둘러라. 나와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해서 시간을 절약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어떤 때는 일정한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정해 주셨고, 그러면 나는 그분께 기쁨을 드리려고 열심히 일했다. 이 경우 만일 시간에 맞추어 그 일을 다 끝낼 수 없을 것 같으면, 오셔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그분께 청하였고, 사실 여러 번 도와주셨는데, 그것은 내가 자유롭게 그분과 함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고, 그것도 함께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더 많이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는 내가 하루 종일 해야 다할 수 있는 일을 그분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그러면 그분은 나를 기도 안으로 끌어당기셔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수많은 빛과 은총들에 대한 관상기도에 온전히 몰입하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이 매료되어 피로나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고, 오래도록 줄곧 기도 안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게다가 얼마나 배가 부른 느낌인지 기도가 내게 주는 음식만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의 원의에 반대하셨다. 식사시간이 되면 지체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서 서둘러라. 가족들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 나에 대한 사랑으로 식사하기 바란다.’ … 가끔 식사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자꾸 집어먹고 있으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유일한 쾌락은 너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극기하는 것이었는데, 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건 그만 먹고 네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걸 먹어라.’

 

예수님은 이처럼 아주 사소한 일 속에서도 나의 뜻을 죽이고자 하셨다. 그것은 오로지 그분 안에서만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루이사를 이끄시어 피조물과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갈바리아산의 정상에까지 꾸준히 올라가게 하셨다. 하루는 그녀가 영성체를 하고 나자 그분께서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사랑하는 얘야, 내가 지금까지 네 안에서 행해 온 일은 작은 준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 수난의 무한한 바다 속에 너를 잠금으로써… 네가 내 수난의 고통을,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하려는 갈망으로 나를 삼키던 사랑을... 분명히 깨닫고 나면 그때에는... 너의 스승인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를 생각만 해도 네 고통은 한날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고통이 네게는 오히려 감미로운 것이 되어 고통 없이는 지낼 수도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루이사는 예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그분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예수님의 고난을 곰곰이 생각했는데, 하루는 코라토의 집 위층에서 일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태 안에서 겪으신 죽음의 고통을 생각하다가 어찌나 가슴이 짓눌리는지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정신을 딴 데로 돌려 보려고)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나는 보았다. 엄청난 군중이 발코니 아래의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일부는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진 온유하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측은한 모습이신지, 돌덩이마저 동정심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 순간, 그분은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셨다.

그때 내가 느낀 비통을 대관절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는 즉시 방으로 들어왔지만 사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고통으로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아서 눈물을 쏟으며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오 좋으신 예수님, 당신은 너무도 큰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 저 미쳐 날뛰는 이리들 손에서 풀어 드릴 수 있다면,아니면, 적어도 제가 그 고통을 - 그 비통과 학대를 대신 겪음으로써 이 모든 것에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지신 예수님, 제게 고통을 주십시오,

 

죄인인 저는 당신을 위해 아무 고통도 겪고 있지 않은데, 저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은 이처럼 큰 고통을 받고 계신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내게 고통, 곧 감미로운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붙여 주셨으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 편이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이 고통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그 순간 이후부터는 절대로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영성체할 때면 나는 오직 한 가지만 열심히 청할 따름이었으니, 그것은 이 감미로운 고통을 통하여 나를 그분과 똑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분은 나의 그 열망을 채워 주시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그분의 가시관에서 가시 하나를 뽑아 내 심장에 박아 주셨고, 다른 때는 또 하나의 가시를 내 머리에 박아 주셨으며, 가끔은 그분을 박은 못을 내 손과 발에 박아 더 없이 심한 아픔을 느끼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분께서 겪으신 고통들과 결코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때는 예수님께서 양손으로 내 심장을 얼마나 세게 쥐어짜시는지, 그 아픔 때문에 기절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챌까 봐 ‘예수님, 제가 고통을 받게 해 주시되, 아무도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얼마 동안 내 청을 들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난 후, 내 잘못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도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 채기 시작하였다.”

 

거룩한 영성체에 대한 열망이나 주님의 수난에 대한 묵상으로 말미암아 이따금씩 앓아눕는 경우를 제외하고, 루이사의 건강은 이때까지 양호한 상태였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본 이후 얼마 동안은 그녀의 신비적 고통이 외양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갈바리아산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위해 새롭고도 더욱 큰 고통을 마련해 두셨다.

 

“네가 나의 현존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는 내가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 나의 고통과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잠시 너를 혼자 있도록 하겠다. 내 도움의 손길을 거두고 네가 무엇을 하든지 바로잡아 주지도 않을 터 인즉, 너는 전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를 본받으면서 그저 따라오기만 했지만, 이제부터는 종전과 달리 내 모습을 보거나 내 현존을 실감하지 않고서도 내가 항상 너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기꺼이 모든 것을 행하며 겪어야 한다. 네가 내게 충실하면 돌아와서 상을 주겠고 불충실하면 벌을 주겠다...”

내가 잠시 너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나 없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사람인가를 철저히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네 마음을 준비시켜서 내가 쏟아 부어 주려고 하는 새로운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를 도와주었지만, 너의 허무를 정말 깊이 인식하도록 이제부터는 내 모습을 감춘 채 도와 주겠다는 것이다. 너를 더없이 깊은 겸손 속에 가라앉게 하고, 나의 은총으로 더없이 높이 일으켜서 그런 너 위에 가장 높은 성벽을 너와 함께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니 너는 슬퍼하는 대신, 나와 더불어 오히려 기뻐하며 내게 감사해야 한다. 너로 하여금 이 폭풍이 이는 바다를 빨리 건너가게 할수록 그만큼 빨리 네가 구원의 항구에 도착할 터 이니 말이다. 내가 너에게 치르게 하는 시련이 클수록 더욱 큰 은총을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고 강복하신 후 내 눈앞에서 사라 지셨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온전히 혼자만 남은 듯하였다. 예수님의 나의 전부이셨는데 그분께서 가버리셨으니... 주위의 일체가 지독한 쓰라림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물들마저 빈정대며 나를 괴롭히면서 그들의 소리 없는 말로 ‘우리는 네가 사랑하는 분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을 보건 불을 보건 꽃을 보건 심지어 내 방의 벽돌과 뭔지 모를 다른 것들을 보건 그 모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아라, 이 모든 것이 네 정배의 작품들이다. 너는 그분의 작품들은 보면서 정작 그들의 창조주를 뵙는 기쁨만은 못 누리고 있구나.,그래서 나는 말하였다. ‘내 주님의 작품들아, 말 좀 해 다오… 내가 어디로 가면 그분을 뵐 수 있겠느냐?…

이런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날이면 날마다 낮은 영원과도 같았고 잠 못 이루는 밤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 쓰라린 비탄으로 말미암아 맥도 뛰지 않고 숨도 끊어지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때때로 온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임종 경련 같은 것이 일기도 하여, 가족들은 내가 병이 들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때 내가 겪은 모든 것이 가족들에게는 단지 육체적인 병증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진찰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분 부재의 이 상태에서 나는 온종일 거의 완전한 쓰라림 속에서 지내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영적 고통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루이사가 고해 사제의 명령으로 1899년부터 쓰기 시작한 영적 수기에 의하면, 이 시련이 열세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에 예수님께서 치르게 하신 내적 정화의 셋째 단계를 이룬다. 이 단계에서 예수님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루이사에게서 숨어 계신 끝에  그녀와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셨다. 훌륭한 스승과 같이, 그녀가 쓰라린 시련으로부터 가르침을 얻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그러자 그분의 부재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을 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주님. 저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묵상들은 너무 형편없는 것이어서 당신께 봉헌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고, 영성체 후에도 당신 사랑에 대해서 이렇다 할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도 안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당신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니 언제나 공허감과 그 부재의 슬픔에 시달렸고 급기야는 임종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혼자 있다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제 본성은 기도를 빨리 끝내도록 재촉하였고, 한편으로는 오래도록 기도하는 것이 시간 낭비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하기로 되어 있는 그 일들을 계속 한 것은, 당신께서 돌아오셔서 저의 불충실에 대해 벌주실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의 내적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선이신 예수님 당신께서 끊임없이 모욕을 받고 계시는데도, 저는 당신께서 시키신 보속 행위든지 복된 성사 안에 계신 당신을 찾아뵙는 일이든지 그 어느 것도 잘할 수가 없다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지 않았기에,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에, 저로서는 그 일들을 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와 계시니, 제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했었는지에 대해서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네가 그토록 당황한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평화의 영이라 것을 몰랐느냐? 그래서 너에게 무엇보다 먼저, 절대로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집중이 안 된다고 해서 왜 그런지를 자꾸 생각할 일이 아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 상태로 고요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자신이 되레 분심을 초래하게 되니 말이다. 차라리 너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하찮은 인간임을 자인하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면서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여라.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어린양이 저를 쳐 죽이는 사람의 손을 핥는 것과 같이, 너도 마구 두들겨 맞고 때려눕혀진 채 혼자 있을 때에도 너 자신을 나의 처분에 맡기고, 오히려 그 모든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마음을 다하여 내게 감사하여라. 그리고 나를 거슬러 저질러지는 죄들을 보속하기 위하여, 너의 그 모든 괴로움과 피로와 고뇌를 찬미와 보상의 제물로 내게 봉헌하여라. 이와 같이 하면 너의 기도는 문향처럼 내 옥좌로 올라와서 내 가슴에 사무치므로, 새로운 은총과 선물들을 너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게 된다...

끝으로 성체 안의 나를 방문하는 것과 보속 행위에 대해서 말하겠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정한 사랑의 성사 곧 성체성사 안에서 나는 삼십 삼년 동안 지상에서 살면서 행했던 모든 일과 겪었던 모든 고통을 계속 행하며 겪고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태어나기를 열망하기에, 하늘에서 나를 부르시어 제대에서 스스로를 희생 제물로 바치도록 하신 분께 순명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부르고 가르치고 빛을 비추어 주면서 나의 겸손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이를 지켜보면서 보호해 달라고 청하는 이들은 보호해 주고,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청하는 이들은 거룩하게 해 준다. 함께 있어 달라고 하는 이들과는 함께 있으며, 조심성이 없고 경박한 사람들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께 지속적인 흠숭을 드림으로써 우주의 조화를 회복하고 지고한 신적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이 계획은 완전한 공경을 통하여 완전한 영광을 아버지께 드리는 데에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복된 성사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공경을 다 드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인류를 무한히 사랑하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너는 매일 서른세 번 나를 방문하기 바란다. 이 방문은 내 인성이 너희 모두를 위하여 너희 가운데서 생활했던 햇수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이 서른 세 번의 방문을 날마다 항상 충실히 실행하면, 나는 네가 내 성체 대전에서 조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때부터 루이사는 예수님 부재의 고통을 체험으로 알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재와 현존을 갈마들게 하시면서 그녀가 이제껏 겪었던 것보다 더 무서운 시련에 대비하게 하셨다. 하루는 그분께서 마귀들이 그녀와 싸움을 벌이도록 허락할 작정이라고 말씀하셨다.

 

“네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여 내 사랑을 방해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결점까지도 없애 주겠다.… 내가 너를 시험에 붙일 터이니 그 시험은 매우 격렬한 투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 내가 너의 팔이 되고 힘이 되어 주겠다. 너와 함께, 너를 위하여 내가 싸울 터인즉, 너는 아무 손상도 입지 않을 것이다… 네 원수들이 어두운 곳에 숨어서 더할 수 없 이 흉포한 싸움을 벌이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갖가지 방식으로 너를 공격하고 괴롭히며 유혹할 자유를 주겠다. 그리하여… 네가 그 싸움에서 해방되면... 전투에 이긴 왕과도 같이 승리의 왕관과 훈장과 공훈으로 장식 된 채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돌아올 것이다.

마귀들은 밤낮으로 네게 휴식을 주지 않을 터이니, 내가 너를 아주 괴로운 시험에 붙여 피 비린내 나는 맹렬한 전투에 임하게 하고 있음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너는 그 싸움 전체에 걸쳐서 항상 나의 이 당부를 명심하여라. 즉, 내 이름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또한 이 이름으로 네 가장 힘든 시련의 끝막음을 해야 한다. 이는 너를 나와 완전히 닮게 하려는 내 ‘뜻’ 안에서, 네가 승리를 확신하며 시작하여 계속 싸우다가 끝마쳐야 할 시련이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는 나를 닮을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지만, 이 어려움을 치르고 나면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과 더불어 예수님은 격분한 악마가 일으키는 불 폭풍 속으로 루이사를 던져 넣으셨다. 루이사는 유아기에 벌써 악령들의 등쌀에 시달렸거니와, 열대여섯 살이 되었던 그 무렵에는 지옥의 세력들과 맞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사랑하올 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좀 전까지만 해도 아주 강렬하게 느껴지던 그 사랑이, 이글거리는 증오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이는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켰다. 참으로 다정하게 나를 대해 주셨던 주님을 이제 와서 마치 더없이 잔혹한 원수이기나 한 듯 증오하며 모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영혼이 갈기갈기 미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의 모습마저 증오심이 북받쳐 올라 볼 수가 없었고, 거룩한 묵주를 손에 들거나 입을 맞출 수도 없었다.…

때때로 악마는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들을 내 사상이 만들어낸 것으로 눈앞에 펼쳐 보였고, 그러니 더 안락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라고 부추겼다. 또 어떤 때는 그 은총들을 참된 것으로 제시하면서 나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 너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이느냐? 그러나 이제, 네가 그분의 은총들에 응답한 보답으로 어떻게 하셨는지도 보아라. 네가 보다시피, 그분은 너를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다. 지금 너는 우리의 것이다. 완전히 우리의 소유이다. 너는 끝장이 났다는 말이다. 우리의 노리개와 같이 되고 말았으니, 그분께서 너를 다시 사랑하시리라는 희망은 조금도 없다.’

사탄의 이 흉측한 말을 듣고 나는 주님께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구원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극도의 절망감에 짓눌렸다. 이 상태가 때로는 너무 악화되어 손에 들고 있었던 상본을 갈가리 찢어버릴 정도로 드센 격분과 절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고 거의 동시에 그 찢어진 상본 조각들을 주워 몇 번이나 거듭 거듭 입 맞추곤 하였다....마귀들은 내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 날뛰며 나를 비웃는 것이었다. 귀가 멍멍하게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면서 ‘네가 얼마나 우리 것이 되었는지 보이겠지? 이제 남은 일은 너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뿐이다. 몸이든 영혼이든 몽땅 말이지. 그것도 당장 해치우고 말겠다!’하는 것이었다.”

악령들은 나날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괴롭혔다. 마구 두들겨 패는가 하면, 무엇인지 모를 것으로 팔다리를 쿡쿡 찔러대고, 숨이 막히도록 목을 조이기도 하였다. 잠이라도 자려고 하면 침대 덮개건 베개건 마구 잡아당기고, 기도하고 있으면 옷을 잡아 당기거나 기대고 있는 의자를 홱 밀쳐 버리고, 우물 가까이에 있으면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는 동안 줄곧 하느님의 자비를 거스르는 끔찍한 죄를 짓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녀를 절망의 벼랑 끝까지 몰아대곤 하였다.

 

주님께서 악령들과의 투쟁을 겪게 하시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련들을, 곧 불행히도 내가 겪어 온 시련들을 틀림없이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말을 믿고 그 시련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성체 안에 계신 주 예수님을 받아 모신 어느 날, 그분께서는 내게 악령들을 퇴치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악령들을 하찮은 벌레이기나 한 듯 무시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지 전연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유혹할 의욕조차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특히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상처 속에 나 자신을 집어넣고 그분의 정신에 나의 정신을 일치시키면서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 안에 집중하는 것이다... ”

실제로,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실천하기 시작하자, 며칠 만에 모든 공포가 사라졌을 만큼 내 안에 큰 힘과 용기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악령들이 시끄럽게 난동을 부리면 나는 그들을 멸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좋으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분께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사랑 받으시게 하는 것만이 내 관심사일 따름이다… 천국이나 지옥은 그분의 손에 맡길 뿐이다. 지극히 선하신 주님께서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셔서 언제나 더욱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들이 공세를 취할 때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고통을… 세상 사람들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모든 죄에 대한 보상과 사랑의 행위로 봉헌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고…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다시 맹렬한 공격을 개시할 목적으로 긴 휴전기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