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생애와 사명 제 1 장

Skyblue fiat 2016. 12. 5. 19:41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생애와 사명

Luisa Piccarreta

 

 

 

 

 

제 1 장

경건한 유년 시절

 

 

1865년 4월 23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 지방의 소도시 코라토에,루이사 피카레타라는 이름의 여자 아기가 “거꾸로” 세상에 태어났다. 이는 나중에 그녀가 언급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반대로” 살게 될 것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징이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부모인 비토 니콜라 피카레타와 로사 타란티니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루이사가 고해 사제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명령으로1926년에 쓴 「유년 시절 회상기」에 나와 있다. 두 사람 다 농장 일을 하는 비교적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타란티니가와 피카레타가는 근친 관계에 있었으므로 결혼하기 위해 교회의 관면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슬하에 딸 다섯을 두었는데, 마리아, 라켈레, 필로메나, 루이사, 그리고 안젤라였다.

 

루이사의 기록에 의하면 양친은 신앙심이 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하고 가난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부유한 마스트로릴리 집안을 위하여 일했다. 이 집안은 코라토의 무르제 가(街)에 위치한 집의 소유주였고, 코라토에서 서쪽으로 약20마일 떨어진 곳에 토레 디스페라토라는 이름의 농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농업 지역의 집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무르제 가의 집에도 아래층에는 마구간이 있었다. 위층에 주인 집 가족이 살았고, 맨 위층에 피카레타 가족이 살았으며 여기에서 루이사가 태어난 것이다. 루이사네 가족은 농작물이 자라는 철이 돌아오면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몇 달 내리 코라토를 떠나 있어야 했다. 루이사의 양친이 믿음이 두터운 사람들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단초(端初)는 루이사가 쓴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루이사가 태어난 바로 그날 세례를 받게 했고, 날마다 묵주기도를 했으며, 할 수 있는 한 자주 코라토의 ‘성 도미니코 성당’ 에서 미사 참례를 한 것이다. 또한, 집에 있을 때나 농장에 있을 때나 언행이 품위 있고 정직한 사람들이어서 루이사 자신이나 다른 어느 자매도 양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에 대해 루이사는 「유년 시절 회상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아빠와 엄마는 순결과 겸손의 천사들이셨다.… 우리 집에는 거짓이나 눈속임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분들은 우리(딸)들을 철저히 보호하셨으므로 남에게 맡기는 법 없이 언제나 함께 지내셨다.”

 

루이사는 ‘원죄 없으신 잉태 수도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 년 동안 교육을 받은 것 외에는 온 유년기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냈다. 부모 자매들과 가까운 친족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악몽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었다.

 

“기억하건대 서너 살 때부터 열 살 무렵까지 나는 몹시 겁이 많은 아이였다. 무서워서 혼자 있지를 못했고,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질 못했으니, 그것은 세 살 때부터 밤마다 늘 무서운 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꿈에 악마가 나타나 얼마나 겁을 주는지 덜덜 떨기 일쑤였으니, 악마가 나를 움켜잡고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날은 온 종일 그 악몽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악마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무서움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루이사는 그 무서움을 이겨 내려고 기도에 의지하였다. 성모님과 이름을 아는 모든 성인들에게 기도했는데, 여자 성인이면 ‘성모송’을, 남자 성인이면 ‘주님의 기도’ 를 바쳤다. 자매들이나 놀이 동무들과 어울리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이 기도를 줄줄이 바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 그 어린 나이에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허락하셨느냐고 예수님께 묻자 그분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딸아, 원수가 내 섭리의 계획에 대하여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네가 내게 큰 영광을 주리라는 것과 너로 인해 그가 일찍이 당한 적 없을 만큼 심하게 짓밟히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제아무리 애써도 어떤 순결하지 못한 생각이나 애정을 네 안에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문들을 닫아걸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면서 화가 치민 나머지 무섭고 섬뜩한 꿈으로 너를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려고 기를 썼다. 너를 해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너에 대한 내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이 공포감과 악몽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수줍음을 타는 기질 때문에, 루이사는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자신의 직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어떤 친척들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위층으로 달려 올라가거나 침대 뒤에 숨어 기도했으며, 그들이 떠날 때까지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반대로 어머니가 한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해 데려가려고 하면 루이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 안젤라와 함께 집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으니, 안젤라는 어릴 때부터 이 언니에 대한 보호 성향이 농후한 편 이었다. 루이사는 그 수줍은 기질 탓에 가족끼리 모여 즐기는 무해한 놀이에도 함께 어울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수줍음과 공포심에도 불구하고, 루이사는 삶과 자연과 집 밖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깡충깡충 뛰거나 냅다 달리거나 위태로운 묘기 놀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루이사가 대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의 한 일화를 보면 - 앞서 말한 코라토의 마스트로릴리네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 수줍은 성격 아래 강한 의지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는 무르제 가에 위치한 이 집 아래층 마구간에서 켁키나라는 이름의 말이 중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루이사의 아버지 니콜라 피카레타는 몹시 놀라 그 지역의 의사를 불렀다. 루이사는 말이 걱정되어 자기도 마구간에 가게 해 달라고 졸랐다. 니콜라는 딸 애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알고 허락하지 않았지만, 루이사는 조르고 조른 끝에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내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의사가 마구간에 도착해 보니, 루이사가 건강해진 켁키나를 쓰다듬으며 생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루이사는 자신의 명랑하고 의지가 강한 성정이 심한 수줍음으로 가려지게 된 까닭을 알고 싶었다. 예수님께 서 왜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셨을까?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딸아, 어린 나이의 너를 에워싸고 있었던 그 수줍음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이 얼마나 질투하는 사랑인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표징이었다. 나는 세상이건 사람이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네 안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네가 그 무엇에도 참여하지 않고, 아무것도 즐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니, 그 전부터 내가 네 안에 지고한 ‘피앗의 나라’ 를 세우려고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잔치와 기쁨에 참여해야 하기에, 네가 지상적인 즐거움과 오락 거리 없이 지내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어때, 기쁘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