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사랑한다면 -주님승천대축일(2015-05-17) 이요한 신부님

Skyblue fiat 2015. 7. 26. 01:40

 

 

 

 

 

 

[주님 승천 대축일] 2015년 5월 17일

덕신성당 주임, 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강론

 

 

주님 승천대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승천은 부활이 보여준 것,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당신 나라를 받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한분이신 주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잘 보여주시는 거죠.

 

부활시기가 그리스도교 우리 가톨릭 신자에게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셨던 모든 것들이 더욱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셨을 때 분명히 목적이 있으셨죠.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전능하신 분이지만 그런 분에게 유일한 기쁨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자유로운 존재를 만들어서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겁니다.

 

이것 이외에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이 없죠. 그치만 이게 하느님께 필요해서 그렇게 한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살아계신 분이고,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드리는 것이 하느님께 단지 기쁨이 된다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말씀하셨던 것이 "참 좋다"라고 말씀하신 거죠.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됐는데 문제는 하느님께서 기쁘시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하느님께 사랑과 기쁨과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그것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인간은 결국 하지 않는 것을 선택을 했습니다.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됐죠. 결국 인간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따라서 악마의 소유가 됐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죽음이죠.

 

하느님께서 네가 이렇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을거다라고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인간은 그 약속을 깼습니다. 그래서 이제 죽게 된 거죠. 악마는 우리 인간들에게 얘기합니다. “너희가 내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었으니까 이제부터 너는 내꺼다. 너는 나의 노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악마의 노예가 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마의 노예가 된 우리를 악마의 손에서 빼오셔야 되는데, 물론 힘으로 빼오시면 돼죠. 그런데 힘으로 빼오시려면 당신께서 세우셨던 원칙인 자유를 존중하는게 이미 무너져요. 그럼 의미가 없는거죠. 그래서 하느님께서 계획을 세우십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악마의 손에서 빼낼 수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시죠. 인간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하느님께서 원래 인간으로부터 받아야 되었던 찬미와 흠숭과 영광과 사랑을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대신 하십니다. 그것을 다 하시는데 30년 걸린거죠. 그러고 나서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느님께서 참으로 원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죠.

 

그렇게 제자들을 다 가르치고나서 이제 인간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서 스스로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다 십자가에 지시고 죽으시는 거죠.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겁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너는 죄를 지었으니까 죽어야 된다.’ 인간이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를 안지었죠. 그런데 죽었죠. 왜? 사랑때문에 인간을 대신해서 죽은 겁니다. 그래서 죽고나니까 하느님께서 악마에게 말하는 거죠.

 

“자, 내 아들 예수는 죄가 없는데도 죽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애준 권리, 대속, 그 보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인간을 네 손에서 빼앗아서 내 아들 예수에게 준다. ”왜? 대신 죽었으니까. 죄 없는 상태로. 그러니까 이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위에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악마의 손에서부터 모든 인간을 데리고 빠져 나오는 거죠. 왜, 자기꺼니깐. 이제 더이상 악마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왜? 자기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죄 때문이었는데 예수님이 그 죄를 없애버렸다는 거죠. 그러니까 더이상 악마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것이 된 인간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는 거죠.

 

자, 그러면 승천이라는 것은 뭔가? 이미 부활을 하셔서 천국과 자기자신이 원하는 곳에 바로 가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굳이 이렇게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실 필요가 있었겠느냐. 결국 이것은 사도들을 위해서고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시대가 예수님의 모든 사업이 구원사업이 끝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없다면 계속 사람들이 “예수님이 언제 나타날까? 오늘 미사할 때는 안나타나나? 언제 나타나지? 내 기도할 때 나타날까?” 이렇게 계속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겠죠.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계획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계획은 ‘이제 어느곳에든지 어느 장소든지 어떤 시간에든 너와 내가 함께 있다.’ 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되는 거죠. ‘성령 즉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 어느 누구에게나.’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나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라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아, 이제 예수님의 시대가 끝이 나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는구나.’ 알게 되는 거죠.

 

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오른편에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모든 죄를 하느님께 중재를 해주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보속하는 것은 지금도 끝난게 아니죠.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디서? 미사를 통해서.

 

우리가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들어올리죠? 똑같이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죄를 씻기 위해서 계속 수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씻고 계시는 겁니다. 다 합쳐 있는 겁니다. 하나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신비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미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안으로 합쳐져서 그것이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 바치는게 되는 거죠. 

 

따라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승천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내가 왜 악마의 소유였다가 이제 벗어나서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는가? 이것이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사랑에 의해서 예수님의 소유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되는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보여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널 사랑해. 단, 네가 이렇게 했을 때. 내 기도를 들어주고, 내가 돈 많이 벌게 해주고, 로또 당첨되게 해주고, 내가 시험 만점받게 해주고, 내가 병안걸리고 평생 건강하게 살면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조건이 가능합니까? 사랑에... 안되죠?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조건이 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절대 조건을 붙일 수 없습니다. 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 조건을 안붙였거든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데 너희가 이렇게 해야지 내가 너희를 사랑하겠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죠. 그럼 똑같이 우리도 지금 가지고 있는 이대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거죠. 어떤 것도 하느님께 더이상 요구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합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기쁜 것이, 그러니까 사랑받는 분 하느님께서 기쁘셔야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거죠. 따라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신앙인이죠. 그래서 그것을 고민해야 되고 그것을 연구해야 되고 그것을 더욱더 배워야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일을 찾습니다. 아, 내가 저사람을 사랑하는데 이렇게 하면 정말 좋아하겠지? 이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죠. 똑같습니다. 하느님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행동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기도, 기도는 말그대로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게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모든 악마의 소유에서부터 빼내셨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예, 주님,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럼 내가 어떤 사랑을 하느님께 드릴 때 가장 최고의 사랑이 될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을 하느님께 드려야 하느님께서 흡족할만큼의 사랑이 되는 거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어떤 겁니까?

첫번째, 우주를 만들어 주셨죠? 우리가 하느님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랑을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우주를 만들어 하느님께 드려야 됩니다. 능력 되십니까? 우주 만드실 수 있으세요? 능력 안되죠? 실제로 우리가 하느님께 흡족한 사랑을 드린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만족하실만한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 안되요. 우리가 하느님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 이외에는 하느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하느님의 마음이란 뭐냐. 우리가 그것을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서 보시면 됩니다. 내가 자녀에게 이만큼 해줬는데 자녀에게 그것을 다 갚으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거의. 그러나 부모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줬을때 기쁘죠.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을 드린다는 것은 정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그 고민자체가 하느님께서는 굉장히 기쁘신 거죠.  “저 능력안되는 쟤가 정말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저렇게 고민을 하는구나, 아이고 귀엽다. 아이고 예쁘다."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하느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을까?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성령께서 계시는 거죠.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겠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기다립니다.

 

사실 실제 주님승천대축일은 이미 지났죠. 목요일이었습니다. 목요일이 40일째였죠. 그런데 모든 신자들이 성당에 나오시는 의무축일로 만들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기 때문에 3일 뒤로 미뤄서 주일날 저희 한국은 기념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을 생각한다는게 내 편한 쪽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거죠. 그게 아니라, 정말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우리가 주님께 어떻게 사랑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것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