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강론 (2)
(2010. 9. 15. 사제 피정)
26. 미사강론 (2)
지금 부속가 스타바 마텔의 한 부분을 반복하면서 강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부속가는 성모님에 대한 사랑의 신비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부속가에 그 사랑이 아주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 영혼들이 성모님께,
사랑의 샘이신 성모님께 청합니다.
위에서부터 내 영혼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성모님,
내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닮아지게 해주십시오.
당신이 느꼈던 대로 나도 그렇게 느끼게 해 주십시오.
내 영혼이 빛나고 녹게 해주십시오.
내 주님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영혼이 빛나고 녹게 해주십시오.
부속가 끝에 영혼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성모님,
내가 불꽃 속에서 타서 죽게 해주십시오.
그분의 무서운 심판의 날에,
그래서 그리스도 당신께서 나를 부르실 때
당신의 어머니가 나의 보호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십자가가 나의 승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지난 번 강의 중에 묵상했던 것과 구조가 같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영혼이 성모님을 모방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영혼 안에 가져와서 그 고통에 영원히 못 박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예수님께 자기 생명을 드리고 예수님의 영혼을 자기가 받아와서 자기 삶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동정 마리아 책의 제27일, 통고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사랑하올 통고의 어머니, 저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할 필요를, 억누를 길 없는 필요를 느낍니다.”
지금 우리도 성모님께 우리가 그분께 아주 가까이 있고 싶다는 똑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성모님께 속하는 예수님의 고통은 모든 시대의 고통들입니다. 역사상의 2000년 전의 모든 고통을 예수님이 당하셨고 또 성모님이 그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느님 뜻이 모든 인류의 죽음, 죄악, 고통의 신비를 예수님과 성모님 안에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항상 현실로 있게 만드셨습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당하는 이 고통도 예수님과 성모님 안에 현존으로 현재하고 있었습니다. 신비스럽게도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삶과 성모님의 삶 안에 이 모든 고통과 죽음이 현존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지금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모든 시대의 모든 고통이 그분들의 지상 삶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고통들에 아주 가까이 있고 싶은 우리의 사랑과 바람이 그분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면 그분들은 위안을 느끼시고, 진정한 우리의 보속으로 받아주십니다.
오늘날 예수님과 성모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우리의 사랑이 예수님의 수난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이런 우리의 사랑으로 위안을 받으셨습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하며 하느님 뜻 안에서 살면, 성모님과 예수님께는 그 고통이 아주 작아지고 아주 큰 위안이 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인간적인 동정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이 예수님과 성모님께 위로를 주고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 계실 때,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어머니가 계셔서 내가 견딜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 뜻의 삶이 내 어머니 안에 완전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너희들, 내 뜻 안에서 살려고 하는 너희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느님 뜻 안에서 살려는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하고, 하느님 뜻 안에서 성모님과 우리가 일치하려는 뜻을 가지고 이렇게 할 때 우리 주님 예수님께는 정말 위로가 되고 고통이 작아집니다.
27일 끝부분에 영혼에 속하는 부분의 앞에서 성모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극심한 통고 중에 있는 내 말에 귀 기울여라. 네 인간적인 뜻의 혼란에 대하여 내 아들의 고난을 가지고 너에게 말하고자 한다. 내 팔을 무직히 누르며 안겨 계신 그분을 보아라. 얼마나 흉하게 망가지신 모습이냐! 이 모습은 바로 인간의 뜻이란 것이 가련한 인간에게 입히는 악들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은 온갖 비참의 구렁으로 떨어진 인간의 뜻을 끌어올리려고 자원해서 그 참혹한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고통과 나의 모든 비통이 인간적인 뜻을 하느님의 뜻 안으로 올라오게 한다.
우리의 사랑은 무한히 크기 때문에 이 인간적인 뜻을 우리의 고통으로 넘치도록 채워 잠기게 하고, 내 사랑하는 아들과 내 고통의 한없는 바다로 에워싸서 안전하게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뜻을 하느님 뜻의 나라로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 받고 성모님께서 그렇게 고통받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들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 안에서 하느님 뜻이 승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네 통고의 어머니에게는 온통 너를 위한 비탄의 날인 오늘, 너는 그 보답으로 네 뜻을 내 손에 맡겨, 예수님의 피 흐르는 상처 속에 잠그게 하여라. 그래야 이것이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가장 훌륭한 승리가 되고 또 나의 가장 쓰라린 비통의 승리가 될 수 있다.”
성모님께 순명하면서, 이 미사 중에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를 다시 성모님께 바쳐 드립시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를 예수님의 상처 속에 넣어주시도록 청합시다. 그분의 슬픔의 바다 속에 넣으시도록 해 드립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 성모님의 도움으로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 완전하게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하느님 뜻의 모든 가르침 속에서 언제나 우리는 이것을 이 세상의 모든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기를 원합시다. 예수님 수난의 한없는 공로로 이 선물을,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온 인류 가족에게 주시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청합시다.
아멘.
'강의 > 카를로스신부님-피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8 강의 : 질의응답 (2010. 9. 10) (0) | 2015.02.06 |
---|---|
제 27 강의 : 미사강론 (2010. 9. 16)루이사의 글에 대한 해석은 교회의 정통성과 권위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0) | 2015.02.06 |
제 25 강의: 미사 강론 (2010. 9. 10) “예수 성심의 심장은 하느님의 뜻이다.” (0) | 2015.02.06 |
제 24 강의 : 하느님 뜻 사제 형제회 (0) | 2015.02.06 |
제 23 강의 : Morning offering 아침 봉헌 (0) | 2015.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