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카를로스신부님-피정

제 28 강의 : 질의응답 (2010. 9. 10)

Skyblue fiat 2015. 2. 6. 18:33

질의응답 (1)

(2010. 9. 10. 사제 피정)

 

 28. 질의응답 (1)

 

 

 1. 질문 : 다른 메시지에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런 새로운 시대가 오기 전에, 셋째 피앗의 시대가 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대부분이 죽는다고 되어 있는데 진짜 그럴 것인지요? 다른 메시지에는 삼일 동안의 암흑이라는 그 재앙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답 : 우선 셋째 피앗의 시대는 루이사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째 피앗의 시대는 루이사가 하느님 뜻 선물을 받았을 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이 하느님 뜻 선물의 121주년을 축하했습니다. 루이사가 그것을 받고 나서 즉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또 지난 세기에는 다른 많은 전쟁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에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지난 세기까지의 모든 역사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뭔가 일어날 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이 큰 선물에 맞게 준비시키기 위해서 세 번째 대쇄신, 대정화가 일어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이사는 제2차 세계대전만 본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나는 무언가 또 다른 것을 봤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 나라의 준비를 위한 세 번째 정화의 대쇄신 속에 이미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예언과 또 우리 성모님의 예언을 통해서 보면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뭔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짜는 모릅니다. 루이사의 글에서 정확한 시기나 날짜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는 여러 가지 표징 속에서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루이사의 글에서 삼일 동안의 암흑에 대해서 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비오 신부님이 말한 것입니다. 루이사가 말한 것은 아닙니다.

 

 

 2. 질문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새 시대가 되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지요?

 

 답 : 아닙니다. 루이사의 글 36권 전체를 봐도 어느 장에도 모든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시작 때에는 작은 그룹이 있고, 그 다음에 온 세상 여러 곳에 작은 그룹들이 있고, 온 세상에 작은 왕국들이 흩어져 있는 거와 같은 현상이다. 그 다음에 끝에 가서는 아주 큰 왕국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도 ‘모든 이가 전부 다’ 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반대로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있습니다.

 “하느님 뜻 안에 살도록 모든 사람이 초대를 받았지만 진짜 하느님 뜻 안에 살며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이다. 그런데 이 소수의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얼굴을 새롭게 할 것이다.”

 

제가 또 보태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은 시간의 중간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생하시고, 사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시간의 중간에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또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또 루이사의 글에 보면 시간의 첫 절반은 4000년입니다. 딱 중간인데,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000년이 걸렸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숫자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세말까지는 또 다른 4000년이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지가 2000년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2000년이 더 있습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은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을 주셨기 때문에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하느님 나라의 발전과 성장에는 2000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루이사의 모든 기도에서 배워서, 특히 영적 순례를 할 때에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도 오게 하소서.” 라고 항상 반복해서 청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부터 세말까지 계속 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짜에 이미 왔다는 것이 아니고 항상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왕국은 하느님의 삶이고 우리의 행동 안에 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세말에 살게 될 그 사람은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 안에 왕국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맨 나중 사람은 하느님 나라가 오시기를 계속해서 청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승리, 예수님의 승리, 티 없으신 성모성심의 승리는 2023년에 일어난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느 특정한 해에 일어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승리는 맨 마지막 인간의 맨 마지막 행동까지 계속해서 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의 죄가 다 없어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그래서 깨끗해진 아주 대단한 것들을 온 세상에서 확실하게 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그것이 마지막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므로 세말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은 세말이 되어야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단 완성이 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 되시도록 모든 것을 성부님께 드릴 것입니다.

 

 3. 질문 : 죄가 없는 시대가 된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질문이 중단됨.)

 

 답 :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의 완성은 우리의 영혼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작용할 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의 완성, 그것은 소수에게만 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느님 은총 안에 있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온 세상을 채워주시기 때문에 이 세상은 낙원과 같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같이 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부 다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좀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4. 질문 :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이전의 낙원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거든요. 미래에 우리가 질병이라든지 죽음이라든지, 결혼... (질문이 중단됨.)

 

 답 : 루이사의 글에 이런 장들이 있습니다. “나의 뜻이 땅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겪는 질병이나 비참함이나 그런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적으로 완전히 다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서 사는 그 정도에 따라서 그 질병이나 나쁜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모두가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신비 안에서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고 성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부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고 또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 부부의 아이들은 원죄를 가지지 않고 태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다시 세례 받고 하는 그런 모든 과정을 다 그대로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왕국, 이 선물은, 부부들이 이것으로 살고, 사제들이 이것으로 살고, 또 축성된 영혼들 (통역자: 수도자 같아요.)이 이것으로 살고, 온갖 종류들의 사람들이 다 이것으로 삽니다. 더 이상은 결혼이 없다든지, 성사가 필요없게 된다는 그런 말씀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삶과 새로운 완성으로 그대로 계속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5. 질문 : 사제는 있어야 되겠지요? 사제가 없어도 된다는 말이 있던데, 죄가 없는데.

 

 답 : 물론입니다. 사제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게 있는데, 만일 창조가 아주 훌륭한, 경이로운 것이었고, 창조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너무너무 멋있게 드러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구속이 창조보다 더 위대합니다. 우리의 첫 번째 부모인 아담과 하와는 원죄를 짓기 전에는 모든 창조물의 최고 꼭대기였습니다. 그런데 새 아담과 새 하와는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원죄를 짓기 전의 원조 아담과 하와를 초월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옛날 파라다이스(낙원)로 돌아가라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창조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라는 얘기입니다. 그 첫 낙원은 하느님이 원래 계획했던 것의 일부분이고, 그림자이고 표징입니다.

 

원죄 이후의 하느님의 계획은 예수님과 우리 성모님 안에 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이걸 읽으면서, 사람들이 그 처음의 낙원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그 낙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낙원입니다. 그분의 인성이 새로운 낙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 안에서 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이라는 말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통과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믿는 성모님의 몽소승천과 조금 비슷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교의 같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의 일각에서는 성모님께서는 죽지 않으시고 승천하신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예수님과의 일치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죽으신 후에 승천하신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은 루이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루이사는 이런 모든 보배의 금고입니다. 우리와 앞으로 오는 인간의 모든 세대가 누릴 모든 보배를 저장하는 금고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사는 교회의 딸로서 살았고, 또 교회의 신부님이 계속 돌봐주는 가운데 살았고, 성체 성사로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생애의 끝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루이사가 살았던 것과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루이사의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렇게는 못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루이사에게 일어난 것과는 다른 무엇을 더 원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장식품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죽느냐? 안 죽느냐? 병이 있을 거냐? 없을 거냐? 그런 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들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영원한 행위가 나의 작은 행위 안에 매순간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신앙의 섭리 안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대면해서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은 내세에서의 일입니다. 그것은 지금이 아니고 세말 이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세말까지는 믿음으로 살아야지 뭐를 직접 보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도 하느님을 직접 대면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직접 대면해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원죄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느님 뜻을 소유하는 과정에 대한 구별을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뜻 안에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아주 잦아지면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이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덕행의 실천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겸손한 행위를 합니다. 오늘은 겸손한 행위 하나를 하고, 내일은 겸손한 행위 두 개나 세 개를 하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가면 우리는 겸손의 덕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루이사한테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는 내 뜻의 삶을 너에게 주는 일에 참 관심이 많다. 그리고 처음에 네가 오늘 한 가지 행위를 하고 내일은 다른 행위를 하고 하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나의 삶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은 내가 완성시켜 주겠다. 처음에 너는 하나의 행위를 하겠지만, 삶은 그런 행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너에게 한 번 하느님 뜻의 선물을 주면, 그분의 뜻의 삶이 네 안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너의 행동으로 너는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네가 하느님 뜻에 도달하게 하기 위해서 네가 부족한 것을 그분께서 완성시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는지 살고 있지 않은지,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는지 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우리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상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로 의문이 있습니다. 대 데레사의 경우에도 제7궁방까지 있으니까, 내가 지금 어느 궁방에 있는가 하는 것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루이사의 글에서 이런 식으로 대답하십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마귀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이 다 내 뜻 안에서 산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다 나한테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나라에는 자리가 많다. 다른 방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감옥도 있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감옥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내 나라 안에 살고 있고 나한테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여러 사람들이 나와의 관계의 친밀도에서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 중에는 내 뜻에 반항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내 뜻 안에 사는 사람도 있고, 또 나를 조금은 존경하는 사람도 있고, 또 내 사람들에게 속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또 매년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또 내 군대의 군인인 다른 사람들도 있고, 내 나라 안의 여러 선교지역에서 선교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다음에 내 나라 안에는 왕궁도 있다. 내 왕궁에서 나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나와 아주 가깝고, 그 다음에 이 왕국의 여왕도 있고, 내 무릎 위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내 나라 안에서, 내 뜻 안에서 산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들 사이에도 친밀도의 정도의 차이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알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그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내 뜻의 비밀을 보여준 사람들은 내 왕궁 안에서 나와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창조주라는 것만을 아는 사람들은 내 왕궁 밖에 산다. 나는 굉장히 관대하기 때문에 궁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먹을 것과 모든 것을 다 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내 비밀은 모른다.”

 

 이제 이 책에 있는 예수님을 알려 주는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그분 왕궁의 가장 깊은 곳으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분의 무릎 위에서 살고 성장하도록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혹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입니다. 여기 나오는 계시를 알고, 이것을 실천하다보면 조금씩 이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을 소유하게 되는 겁니다. 이 왕국 안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내 자리가 여기라고, 저기라고 말할 수는 없고, 또 딴 사람에게 네 자리는 하느님 뜻 안에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자리와 저 자리에 대한 지식과 사랑 속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냐 하는 이 문제는 단순히 하느님이 가진 하느님의 문제일 따름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지, 왼편에 앉는지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생각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마르 13,4), 또 베드로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어보았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3)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6. 질문 : 하느님 뜻의 나라가 지금 시작이 된 것이지요? 그렇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질문 : 시작이 됐는데 세말에 이 하느님 뜻의 나라가 완성이 되나요?

 

 답 : 세상이 끝날 때에 마지막 피조물이 하는 마지막 자유행동으로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한 하나의 행동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인류가 한 모든 행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여자인지 마지막 남자인지 하여튼 마지막 인간의 마지막 행동이 모든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보다 그만큼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그 마지막 행위 안에 마지막 인간 자신과 그 외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7. 질문 : 이미 예수님과 삼위 안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일부를 나누어 받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 사람의 행위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거기의 일부를 가져 오는 것입니까?

 

 답 :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몸의 지체와 같습니다. 몸의 각 지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나는 내가 모든 영혼을 사랑하는 그만큼 하나의 영혼도 사랑한다. 하느님 뜻 안에서 얼마나 많은 행동들이 완성되어야 되는지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마지막 인간의 마지막 행위가 완성될 때까지는 하느님의 사업은 완성이 안 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저기 케이크 안에 있는 체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체리가 없으면 그 케이크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도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의 마지막 붓질을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남겨두면 그 그림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남겨두면 화가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붓질도 다른 붓질과 행위는 똑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붓질을 한 다음에야 그림이 완성되고 화가는 쉴 수가 있습니다.

 

 8. 질문 :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말하는 하느님 나라가 하느님 뜻의 나라와 같은 것입니까?

 

 답 : 같습니다. 그런데 과정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간의 역사를 완전히 회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점차적으로 인간에게 당신 빛을 주시고, 용서를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은총을 주시고, 삶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인성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탕자가 하느님의 왕궁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입니다. 모든 과정이 다 하늘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완전한 하느님 나라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간과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다음이 되어서야 왕궁으로 들어가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와 교회가 다시 왕궁으로 들어가면, 그게 지금 우리와 루이사에게 일어나고 있는 건데, 그러면 이제 왕궁에서 축제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축제가 끝이 아닙니다. 왕궁 안에서 우리가 받게 될 모든 것에 대한 가르침은 인간에게 전혀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직 배운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첫 번째 천국에 대해서 처음으로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을 때에 우리는 그 천국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제 이 세상이 끝날 것이다.” 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이제 이 세상이 시작된다. 이 인류의 진정한 역사는 내 집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집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는 아직 써지지도 않았다. 인간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가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정말로 시작 중에 있는 것입니다.

 

 9. 질문 : 1972년도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악령이 함께 있었고 악령이 작용했다. 그런데 묵시록에 모든 악령들이 쫓겨나고 이 세상 끝 날에 가서 악령이 다시 나온다는데, 그래서 악령은 그때까지는 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 : 지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미래는 그럴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악령이 거기 있습니다. 어둠의 군주의 나라는 주로 인간의 마음속에, 인간의 뜻 속에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거슬러서 무엇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뜻의 나라가 우리의 왕국이 되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이 될 때에 악령이 세상에서부터 쫓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악령의 왕국의 진정한 파괴입니다. 하느님 뜻이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악령의 왕국의 진정한 파괴입니다. 악령이 있을 더 이상의 장소가 없게 됩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면 어떤 한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죄가 존재할 수 없고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뜻이 이 지상을 다스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건 신비입니다. 끝에 가서 그렇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말에 가서 주님께서 마귀가 다시 인간을 유혹할 것을 허용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시기에 악마가 온 인간을 혼란에 빠트리려고 최후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그것을 중지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이 세말입니다.

 

 질문 신부님 : 그러니까 죄가 없는 세상이 앞으로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