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2권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생애
아그레다의 예수의 마리아 수녀 / 박규희 옮김 / 아베마리아출판사
-아그레다 예수의 마리아 수녀가 환시로 받아씀.
( 교회인가 : 스페인어판 1979년 교황 베네딕토 13세로부터 사도좌의 인가 받음)
21장.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의 탄생 그리고 거룩한 이름
온 세상을 기쁨과 은총으로 가득 채운 그날이 드디어 밝았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심 받은 복된 이가 드디어 태어났습니다. 그날은 우리 여주인이며 여왕이신 분의 영혼이 창조된지 9개월이 지난 9월 8일이었습니다. 안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해산의 날이 가까웠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안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은혜와 도움을 간절히 청했는데, 주님께서 섭리하신 대로 그때에 복된 아기 마리아도 신비로운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마리아는 그 황홀경 중에 육신의 감각능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 그때 이미 지성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줄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맑고 순수하고 아주 귀여운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죄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다른 여느 아기들처럼 똑같은 아기로 태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탄생은 실로 창조의 기적이었고 영원한 창조주의 영광을 드높이는 지극히 경이로운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보배로운 샛별은 밤 열두 시경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샛별이 떠오르자 옛 율법의 밤은 물러가고 은총의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안나가 마리아를 기저귀와 천으로 감싸 주는 동안에도 마리아의 영은 여전히 하느님 안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지혜에서 모든 인간과 천사를 뛰어넘는 마리아도 다른 아기들처럼 보살핌과 간호가 필요했습니다. 안나는 해산 직후에 아기를 자신이 직접 돌보며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았는데, 여느 어머니들과는 달리 안나는 해산 후의 피로가 전혀 없어 몸과 정신이 평상시처럼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나는 자기 딸을 품에 안고 생각했습니다. ‘이토록 자그마한 피조물이 하늘과 땅 위에 있는 것들 중 가장 귀한 보물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 조그만 아기가 하느님보다는 못하지만 다른 모든 피조물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고 거룩한 존재였습니다. 안나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지존하신 하느님께 마리아를 봉헌하였습니다.
안나는 마음속으로 말하였습니다.
“저의 주님! 가장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신 분, 만물의 창조주시여! 저는 당신께 감사드리며 이 딸아이를 당신께 바칩니다. 이 아이는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자비 덕분에 받은 것이니 당신께 도로 드립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저에게 당신은 이토록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 딸과 어미에게서 이루십시오! 당신의 엄위와 어좌에서 불쌍한 저희를 굽어보소서. 하느님, 당신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당신이 지극히 아끼시는 이 작은 아기 하나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영원히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이 작은 아기 안에 영원한 말씀이 거할 거룩한 감실(지혜9,8)을 마련하신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주님, 저는 오늘 당신이 세상에 주신 이 구원에 대한 확증으로써 저희의 거룩한 선조들과 예언자들에게 마침내 복이 있기를,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복이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제가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저는 이 아이의 시녀가 될 자격조차 없습니다. 이 아이는 당신의 참된 계약의 궤이니 제가 어찌 감히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주님, 당신의 거룩한 뜻을 알 수 있는 빛을 제게 내려 주십시오. 당신의 뜻에 따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이 딸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거룩한 어머니에게 조용히 일러주셨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을 아기에게 절대로 내색해서는 안되며 그저 평범한 어머니로서 딸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동시에 주님께서는 안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마리아를 공경해야 한다고,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참된 어머니로서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사랑과 정성으로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안나는 자신이 거룩하신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매우 기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겉으로는 여느 엄마들이 하듯이 딸을 대했으며, 혼자 마음으로만 아기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하였습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에게 감추어져 있는 위대한 신비를 떠올리곤 하였습니다.
귀여운 마리아의 수호천사와 수많은 다른 천사들이 안나의 품에 안겨 있는 마리아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천사들은 아기 마리아에게 한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안나도 그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위해 특별히 임명된 천 명의 천사들이 마리아의 곁으로 다가와 여왕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마리아가 이 천사들의 무리를 감각적이고 육적인 형상으로 보고 또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상징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천사들이 몸에 지니고 있던 상징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기 마리아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자고 천사들에게 청했습니다.
마리아가 탄생한 이때에 하느님께서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저승에 보내시어 저승에 있는 거룩한 신앙의 선조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저승에 내려간 대천사는 자신의 빛으로 거기 있는 성인들을 밝게 비추면서, 주 하느님께서 신앙의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인류 구원의 날 아침이 마침내 밝아 왔노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의 어머니가 탄생하셨으며 이제 머지않아 자신들도 지존하신 분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는 희망을 저승의 거룩한 이들 모두가 약속받았습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은혜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시작하신 경이로운 일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승의 성인들은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오랜 기다림이 주님의 거룩한 신비의 시작으로 끝나게 되었음을 말입니다. 거기 있는 성인들과 예언자들과 의인들 모두는 천사가 전해준 복된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다 같이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는 따스한 햇살을 처음 느끼고 나서야 감각을 감지할 수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창조물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상에서의 삶에 내딛은 마리아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이어서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엄청난 기적을 전능하신 분께서 마리아에게 일으키십니다. 먼저, 영원한 말씀의 어머니로 간택된 이의 육신과 영혼을 수많은 천사들을 시켜 하늘로 들어 올리게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들은 즉시 어머니의 품에서 아기 마리아를 받아 하늘로 모시고 올라갔습니다. 천사들은 새 계약의 방주를 가운데에 두고 기쁨과 환희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성대한 행렬을 이루어 하늘로 향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 계약의 궤가 잠시라도 오벳 에돔의 집에 머무르는 일 없이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 왕들의 왕이신 주님, 모든 천사들의 하느님이신 분의 성전에 영원히 쉴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 었습니다. 땅으로부터 하늘로 들려 올려지는 이 놀라운 기적은 마리아의 생의 두 번째 순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 누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하신 이 경이로운 기적을 합당한 찬미 노래로 기릴 수 있겠습니까? 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을 때 하늘의 영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고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들은 자신들의 여주인을 알아보았고 새로운 찬미 노래를 지어 부르며 하늘 여왕에게, 천사들의 왕의 어머니가 되신 분께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천상의 모후가 받은 모든 은총과 영광의 원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의 공로와 업적이 마리아 안에서 이미 영원으로부터 선취된 것으로 하여 그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셨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이 작고 귀여운 마리아 안에 감추어진 심오한 신비를 알아보고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과연 어느 누가 이때 마리아가 체험한 것이 정말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신비에 대한 설명을 우리 교회의 믿음에, 그리고 주님께서 이 신비를 일깨워 주시려고 특별히 택하신 이들에게 맡깁니다. 아니면 우리는 이 신비를 어쩌면 훗날 우리가 전능하신 분의 자비로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는 그날에 가서야만 알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사들의 품에 안겨 하늘로 올라간 마리아는 하느님의 옥좌 앞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좌에 앉은 자기 아들 솔로몬 앞에 나와 경배하는 밧세바의 모습으로 예고되었던 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맞으며 절하고 어머니를 위해서 왕좌 오른쪽에 자리를 마련해 드렸는데(1열왕 2,19)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도 당신 친히 어머니로 뽑으신 마리아에게 똑같이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경우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성대하게 당신 어머니를 대하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왕좌 오른편에 마리아를 앉히시고 하느님의 어머니와 온 우주의 여왕이라는 지위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와 만물의 여왕이라는 지위와 함께 마리아가 가진 모든 은총과 신비의 최종 목적이 알려지지 않고 전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전능으로 이러한 은혜를 받고 이미 그 존재로부터 준비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리아는 또 다른 새로운 은총을 받았는데, 이 은총은 마리아의 영혼의 능력과 다른 내적인 능력들을 완전하게 만들어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영혼은 이때에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을 처음으로 지복 안에서 완전하게 뵈었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봄으로 아기 마리아가 느꼈던 행복과 그때 마리아에게 계시된 신비, 그리고 마리아가 얻은 영혼의 유익에 대해서는 전대미문의 기적을 행하시는 주 하느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다만 천사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을 뵈었을 때 어떤 신비를 계시 받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천사들을 경탄에 빠트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미래의 아들인 성자의 오른편에 앉아 그분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보며 밧세바가 그랬던 것처럼 임금님께 청을 드렸습니다.(1열왕 2,21) 마리아는 수넴 여자 아비삭을, 곧 감히 손을 댈 수 없는 하느님의 신성을 당신 본성의 단짝이며 자매인 인성에게 내려 주십사고 간청하였습니다. 즉, 우리 선조들과 예언자를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약속하셨던 바를 이제 이루시라고, 땅으로 내려오시고 인간이 되시어 어서 영원한 말씀의 혼례를 올리시라고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죄가 크고 영혼들이 점점 하느님을 멀리하고 있으니 수백 년 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인류의 구원을 이제는 서두르셔야 한다고 임금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간청을 기쁘게 받아들이셨고, 선조들과 예언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곧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삼위일체 세 위격의 하느님께서는 이제 어여쁘고 지극히 사랑스러운 하늘의 여왕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불변하는 하느님의 본성에 그 뿌리를 두는 이름, 만물에 정의와 자비로 질서를 세우시고 지혜로 모든 것을 세고 달고 재시는 하느님 안에 자리 잡는 이름만이 완전한 이름인 까닭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이 여왕에게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름을 지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세 위격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어머니에게 각각 예수와 마리아라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영원으로부터 결정하였노라고 천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당신은 아들과 어머니를 위해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아들과 어머니를 섬기도록 정해 두신 까닭에, 아들과 어머니는 저 옛날 세상이 창조될 때에 당신과 함께 있었다고, 이 두 이름에서 당신은 영원한 기쁨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의 이름에 얽힌 신비와 다른 신비들을 인식했을 때 하느님의 어좌에서 영원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씀하시는 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간택한 이의 거룩한 이름은 '마리아'라고 하여라! 겸허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모두 차고 넘치는 은총을 받으리라. 그녀를 공경하고 그녀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이는 모두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 이름은 힘없는 이를 일으켜 세우는 이름, 가난한 이를 부요하게 하는 보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빛이다. 이 이름은 지옥을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이 이름은 뱀의 머리를 쳐부수고 어둠의 군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결정된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지극히 복된 이름을 안나에게 전해 주라고 천사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은총의 딸은 하느님 어좌 앞에 무릎 꿇고 경배를 드리며 깊은 감사를 드리고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신의 이름 마리아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마리아가 받은 은총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두꺼운 책 한 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모든 천사들은 장차 말씀의 어머니가 되실 분이며 하늘 여왕으로 간택받은 복된 동정녀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음성으로 마리아의 이름이 울려 퍼졌을 때 천사들은 마리아 안에 담긴 경이롭고 놀라운 신비를 기리며 주님께 찬양과 흠숭을 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이루신 기적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큰 경이를 느끼고, 그래서 하느님을 누구보다도 더 크게 두려워한 이들은 다름 아닌 마리아의 이름의 표징을 가슴에 지니고 있던 천사들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고결한 지위는 마리아에게 드러나지 않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날까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이 있고 나서 천사들은 아기를 다시 안나의 품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안나는 이러한 일이 언제 있었으며 딸아이가 잠시 동안 이 세상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늘에 있는 동안 한 천사가 껍데기일 뿐인 마리아의 육신을 안나의 품에 대신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안나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품위에 관한 신비를 보여 주는 환시를 보고 있었기에 그동안 자기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안나는 자신이 환시 중에 본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는 그에 합당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고 위엄있는 한 무리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천사들은 마리아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그 이름에서 빛이 발산 되었습니다. 천사들은 안나에게 나타나, “딸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이름이니 안나와 요야킴은 주님의 뜻을 따라 아이를 마리아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안나는 즉시 요야킴을 불러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었고 요야킴도 이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거룩한 부부는 사제 한 명과 친척들을 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안나와 요야킴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열어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운데 아이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알렸습니다. 천사들도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기뻐하였는데 천사들의 노랫소리는 오직 어머니 안나와 아기 마리아 만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되신 동정녀에게 하늘에서는 그녀가 태어난 날에 이름이 주어졌고, 땅에서는 태어난지 여드렛날에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다음 율법이 정한 대로 아이의 이름을 등록하기 위해 안나는 아기 마리아를 안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세상이 지금껏 보지 못했고 어떤 위대한 성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탄생이었습니다.
마리아의 탄생은 순수한 인간의 본성에 있을 수 있는 가장 복된 탄생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할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세라핌 천사들보다도 높고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 아기가 잘 생기고 사랑스러웠기에(탈출 2,2)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외적인 매력이요 시들어 버리는 아름다움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작고 여리지만 천사보다도 더 큰 존재인, 하늘의 여왕인 아기 마리아는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티 없이 맑고 순수하여 내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모든 은총을 한몸에 받아 지극히 아름다웠고,(아가 4,7)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마리아가 가지지 않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의 집안에는 기쁨과 웃음이 가득했습니다.(창세 21,6) 하지만 이사악의 탄생에 담긴 비밀은 사실 마리아의 탄생을, 이사악의 탄생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은 마리아 탄생의 기쁨과 행복을 예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악의 탄생은 아브라함에게 기적이었지만 이는 마리아 탄생의 예형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태어났을 때는 하늘과 땅도 기뻐 뛰놀았습니다.
이 귀여운 아기는 악한 천사들이 한때 하늘에서 앉았던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 아기는 병든 세상을 치유할 것입니다. 아들 노아의 탄생으로 아버지 라멕은 비로소 위로를 받았습니다.(창세5,29) 사실 그의 아들은 죄악으로 잃어버린 축복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려고, 그리고 방주로써 인류를 존속시키는 대가로 하느님께 저당 잡힌 담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탄생도 인간이 누릴 지복의 권리를 되찾아 줄 분이신 예수의 탄생에 대한 또 하나의 예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야말로 참되고 지극히 신비로운 구원의 방주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두 번째의 노아, 하늘에서 내려온 노아, 즉 본래의 참된 노아입니다. 이 새로운 노아는 자신이 타고 있는 신비로운 방주로 온 땅의 주민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해 줄 것입니다.
오, 지극히 영화로운 탄생이여,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아기여, 너는 지나간 모든 세대를 통틀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홀로 한몸에 받고 있단다. 너로 인해 천사들이 기뻐 용약하고 악인들은 두려워 떨며 의인들은 환호한다. 저승의 성인들이 너로 인해 마침 내 위로를 받게 되었단다.
너는 세상이라는 거친 껍데기로 둘러싸인 가장 값진 진주, 너는 이제 태양 아래로 나오게 되었구나. 너 거룩한 아기여, 하늘에 계신 저 왕 중의 왕이신 분이 홀로 네 아름다움을 알고 계시니, 너의 존귀함은 인간의 눈에는 가려져 있단다. 아기여, 너보다 뛰어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 너는 천사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피조물 위에 가장 빼어난 존재란다. 모든 민족과 모든 세대가 이제 천상 모후를 알게 되리니, 그들은 여왕의 은혜와 은총을 찬미하고 기릴 것이다. 너의 탄생으로 이 땅을 뒤덮고 있던 어둠은 사라졌고 빛이 찾아왔구나. 인간의 첫 번째 죄로 인해 더러워진 세상을 다시 정화하실 구세주의 어머니가 태어나셨으니 온 인류는 이제 크게 기뻐하리라.
- 어머니, 아무데도 쓸모없는 이 못난 여종에게 이토록 크나큰 자애를 베풀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저의 여왕이시여, 이제 제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탄생 순간에 보여 주신 신비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 현존으로 제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어머니, 거룩한 교회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아드님께서 삶과 수난과 죽음으로 하늘의 문을 여실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는데, 어머니는 어찌하여 아직 그리스도가 태어나기도 전에 천사들의 품에 안겨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들려 올려져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었던 것입니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바로 하늘에 올라간 가장 첫 번째 인간이 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늘에 오르셔서 죄로 인해 닫힌 천국의 문을 열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천상 여왕이신 성모님의 가르침
“내 딸아, 네 말이 옳다. 인간의 첫 번째 죄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는 하늘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봉인된 천국의 문을 여실수 있는 분은 오직 내 아들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으로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가 치러져야만 하늘의 문은 다시 열리게 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당신의 수난 공로로 구원한 인간을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신 인류의 구세주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아담의 모든 자손들 가운데에서 첫째로 하늘에 들어가시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누가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니, 첫 인간의 범죄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최초의 범죄 이후에야 지금과 같은 질서를 세우신 것이다. 시편 24 장은 이 신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께서 들어가신다!'(시편 24, 7. 9.)
다윗은 천사들에게 성문을 열라고 외치는데(이 시편 구절은 인용된 라틴어 성경과 본문에서는 천사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천사들아, 성문을 열어라!"), 그동안 하늘의 문은 천사들에게만 열려 있었고 인간에게는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물론 사람이 되신 말씀은 죄의 사슬과 빗장을 떼어내고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신 후 저승에 갇힌 성인들을 이끌고 하늘에 오르실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놀라운 기적이기에 천사들은 '이 영광의 임금님은 대체 누구이신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편 24, 8. 10.) 그리스도는 분명 참사람이 되셨기에, 다시 말해 성자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권리와 지복을 모든 세대로 하여금 영원히 잃어버리게 한 인간 본성을 가진 자가 되셨기에 천사들은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영광의 임금님은 바로 주님,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시편 24, 8.) 하늘의 문을 여신 이분이 사람이기도 하지만 참하느님이시기도 한 까닭에 죄의 법에 매여 있지 않음을 천사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무장한 아주 힘센 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참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분이 그자와 싸워 이기신 다음 그의 무기와 그가 가졌던 모든 재산을 빼앗으셨다. (루카 11, 22.)
천사들은 그분을 ‘만군의 주님', 즉 모든 ‘완덕의 주님Dominus virtutuum'(시편 24,10)이라 부른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기 때문에 행하시는 데에 아무런 막힘도 거침도 없었다. 그분은 모든 덕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할 수 있었기에 참으로 모든 덕의 주인이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영광의 임금님이며 모든 완덕의 주님으로서 승리를 거두시고 위풍당당하게 개선하시며 하늘 나라에 들어가셔서, 당신이 구원하신 이들에게 권능과 영광을 나누어 주실 수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말씀이신 분께서 바로 그들을 위하여 몸소 사람이 되시어 수난하시고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의 빗장을 부수어 버리신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구원하신 이들에게 하느님을 뵈옵는 영원한 행복을 내려 주셨다.
사랑하는 딸아, 모든 덕과 은총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원죄 없는 잉태의 은총을 내려 주셨고 당신이 소유하신 것과 같은 성덕으로 나를 입혀 주셨다. 인류의 첫 번째 죄의 어둠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나는 하늘의 영원한 문으로 들어가는 데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더욱이 내 아들 그리스도께서도 나에게 천상 은총의 여왕으로서의 모든 영예를 가져다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어머니로 간택하셨을 때에 이미 나를 티 없이 맑고 모든 선과 은총으로 충만한 존재로, 당신을 꼭 닮은 모습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계셨다.
나는 죄의 종살이를 하는 여느 인간의 방식으로 성덕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실천하지도 않았다. 나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성덕의 여왕이었던 까닭에 내 안에 완덕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으며 덕을 행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내 존재의 모상母像은 아담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며 내 아들이기도 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천사들은 자신들에게만 열려 있던 하늘의 영원한 문을 나에게도 열었던 것이다. 천사들은 하느님께서 나를 자신들보다 더 복되고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으며 모든 피조물의 여왕과 여주인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법을 제정하신 분은 준법을 면제해 줄 권한도 갖고 있단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에스테르 왕비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지존하신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당신 자애의 왕홀을 내미셨고,(에스 5,2. 또는 4,11) 나는 만물의 질서와 법을 제정하신 분의 어머니이자 은총의 샘이 되어 죄의 법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나는 한낱 피조물인 까닭에 그러한 무한한 은총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능하신 분은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나에게 당신의 선과 자비와 자유의지로 큰일을 행하셨던 것이다. 내 영혼이 어찌 이토록 큰 기적을 행하신 하느님을 영원히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 내 사랑하는 아이야, 그처럼 너도 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 한단다.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을 마음에 잘 새겨라. 아무 보잘것없는 너를 내가 나의 자애로 일으켜 세우고 내 제자가 되게 하였으니, 너는 온 힘을 다하여 내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수련했던 방식으로 영혼을 단련하여 나를 따라야 한다. 세상의 어떠한 걱정이나 괴로움으로 인해 영신수련이 중단되는 일이 잠시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즉시 지존하신 하느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그분의 불변하는 본성과 무한한 완전성, 무에서부터 나를 지어내신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경배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시며 홀로 높으신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찬송하였다. 이어서 내 영혼을 하느님의 두 손에 온전히 맡겨 드렸고, 나 자신을 제물로 완전히 봉헌하였다. 내가 태어난 그날로부터 앞으로의 내 생의 모든 날에 하느님께서 내게서 오직 당신 뜻만을 이루시라고, 내가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드는 것만을 하도록 가르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이것은 내가 살면서 외적인 활동을 할 적마다 자주 드렸던 기도이다. 그리고 나는 내적 활동과 영혼의 수련 중에는 항상 하느님의 도움과 축복을 청하였다.
너는 나의 아름다운 이름을 공경하며 묵상해야 한다.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뵈었을 때에 그분께서 나의 이름에 어떠한 은총과 영광을 담아 주셨는지를 전부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하여 내가 어찌 이토록 엄청난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자문했다. 나의 이름에 담긴 신비를 생각할 적마다 내 안에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뜨겁게 솟아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에 나는 더더욱 내 이름에 부어 주신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감사함이 너무나도 컸기에, 내게 이 이름을 지어 주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열정과 용기가 생기곤 하였다.
마리아, 나의 귀여운 딸아, 너도 나와 같은 이름을 받았지 않느냐? 네 이름에서도 너 자신에게 맞는 힘과 은총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오늘 이날부터 너는 내 삶의 본보기를 따라 영혼의 수련을 다시 시작하여라. 나를 따르는 영신수련을 너는 어떠한 이유로도 중단할 수 없고 미루어서도 안 된다. 네 연약함으로 인해 영신수련을 한 번 궐하게 되면, 그 즉시 너는 하느님과 내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뉘우쳐야 한다. 네 영혼의 수련에 정성을 들이고 자주 반복하면 할수록 영혼의 허물을 벗어버릴 수 있단다. 바로 그렇게 완덕의 산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간다면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어찌 기뻐하지 않으시겠느냐.
빛이신 하느님만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과 내가 네게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항상 마음에 새겨라. 그러면 그분의 은총이 언제나 너와 함께할 것이다. 하느님과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신랑이며 주님이신 분께 온전히 순종하며 완전히 그분의 소유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네가 불타는 열정과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성덕과 거룩함과 정결을 얻어내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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