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26-27권

천상의 책 27권 13장. 작은 사람들만이 하느님 뜻 안에 들어가서 산다.작은 소년의 예. 만물 창조와 인간 창조의 차이.

Skyblue fiat 2023. 10. 15. 09:44

천상의 책 27권 
13장 

작은 사람들만이 하느님 뜻 안에 들어가서 산다.
작은 소년의 예. 만물 창조와 인간 창조의 차이.

1929년 11월 10일


1 ‘거룩하신 피앗’이 그 자신의 빛 안에 나를 완전히 빨아들이신다. 그리고 내게 그 자신의 원초적인 생명을 주시려고 이 빛이 내 심장 안에서 고동친다. 그리하여 ‘피앗’ 자신의 빛의 박동과 그 거룩함과 아름다움의 박동을, 그 창조 능력의 박동을 느끼게 한다. 내 작은 영혼이 이 거룩한 박동들 속에 스펀지처럼 온통 스며든 느낌인 것이다.


2 내 영혼은 그러나 작기 때문에 그 빛을 다 수용할 수 없다. ‘거룩하신 피앗’의 태양이 내뿜는 빛살들에 태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경련이 일어난 듯 속으로 이렇게 되풀이할 뿐이다. ‘피앗! 피앗이여! 저의 작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당신의 빛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3 이는 아무래도 제가 완전히 받아들여 제 작은 영혼 안에 다 담도록 주어진 빛은 아닌 듯 합니다. 부디 당신께서 친히 공간을 만드시며 저를 더 넓히시어,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이 빛에 질식된 상태로 있지 않을 것입니다.’


4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과연 너는 너무나 작은 사람이다. 하지만 — 이것을 알아야 한다. — 내 ‘거룩한 피앗’ 안에는 작은 사람들만이 그것의 빛 속에 들어와서 산다.


5 이 작은 사람들이 내 거룩한 뜻 안에서 활동하면 그 하나하나의 행위가 그들 자신을 질식시키면서 그들의 뜻에 달콤한 죽음을 안겨 준다. 나의 뜻 안에는 인간의 뜻이 활동하게 할 빈틈도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6 인간의 의지는 거룩한 이성과 정의이기도 하신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그 가치를 잃기에 이성도 정의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 사이에는 (많은 지식과 기술이 있는) 사람과 작은 소년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7 작은 소년은 제가 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있어 보이고 또 그렇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온갖 과학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 옆에 있으면 자신의 가치를 잃은 듯 말문을 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상태로 그 과학자의 훌륭한 말과 멋진 솜씨에 매료된다.

 

8 딸아, 그 작은 아이는 그 큰 사람이 없을 때에는 자기를 그처럼 상당한 인물로 느낀다. 그렇지만 그 큰 사람 앞에서는 자기를 실제보다 더 작은 자로 느낀다. 하물며 내 거룩한 뜻의 무한한 높이 앞에서야 한층 더 그렇게 느끼지 않겠느냐?

 

9 이제 너는 알아야 한다. 영혼이 내 거룩한 뜻 안에서 활동하면, 그때마다 매번 그 자신의 뜻을 비우고 내 뜻이 들어갈 문을 — 그 횟수와 같은 수의 문을 만든다는 것을. 그것은 내부에 태양 하나를 가진 집에 비길 수 있으니, 문이 많을수록 각 문을 통해 그만큼 많은 빛살이 나올 수 있다.

 

10 그것은 또한 구멍이 많이 뚫린 금속 조각이 태양 앞에 놓인 것에 비길 수도 있다. 구멍이 많을수록 그 작은 구멍들이 그만큼 더 많은 빛과 빛살들로 가득해지니 말이다. 영혼도 그렇다. 내 거룩한 뜻 안에서 활동하면 할수록 내 뜻에 그만큼 더 많은 수의 입구를 제공하는데, 내 ‘거룩한 피앗’의 빛이 모두를 환하게 비출 때까지 그렇게 한다.”

 

11 나중에 나는 창조된 만물 안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지극히 높으신 피앗’이 그들 안에 남기신 업적들을 따라다녔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셨다. “딸아, 우주 만물의 창조와 사람의 창조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12 만물의 창조에는 우리의 창조력과 보존 능력이 우선적으로 작용했지만, 그다음에는 만물이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었기에, 우리는 다른 아무것도 새로이 보태지 않았다. 그 반면 사람의 창조에는 창조 활동과 보존 활동 외에도 항상 현행 중인 활동을 — 현행 중이지만 언제나 새로운 활동을 더 보태 넣었다.

 

13 그렇게 한 것은 사람이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높으신 분’이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을 하시기에 사람도 자기 창조주의 새로운 활동을 제 것으로 삼게 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그분과 닮게 하려는 것이었다.

 

14 그러므로 우리의 그 현행 중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행위가 사람의 안팎에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해 사람이 생각과 말과 활동 속에 우리의 이 행위를 언제나 새롭게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는 것이다.

 

15 인류에게서 새로운 것이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사람이 그 새로운 활동을 계속해서 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그가 내 거룩한 뜻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6 사람의 창조는 실로 아름다운 일이었으니, 우리의 창조적이고 보존적이며 항시 현행적인 활동이 함께한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사람 안에 — 사람의 영혼 안에 우리의 거룩한 뜻을 생명으로 불어넣었고, 우리의 사랑을 그 영혼의 피가 되게 해 주었다.

 

17 우리가 사람을 이리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은, 다른 모든 피조물처럼 사람이 우리의 작품인데다 우리 생명의 일부분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8 우리가 사람 안에서 우리 사랑의 생명을 볼 수 있으니,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자기 자신의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본성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19 그러니 우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엄청 놀라운 것들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은 우리의 아기요, 우리 자신에게서 태어난 우리의 분신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 그런데 사람이 우리와 사랑을 교환하지 않는다면, 또 우리의 뜻을 차지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창조주와 그 자신에게 더할 수 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한 짓을 하는 것이 된다. 자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음으로써 그 자신의 안팎에 비참과 나약의 미궁(迷宮)을 만들고, 참된 행복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21 또한 우리의 거룩한 뜻을 배척함으로써 사람은 자기 창조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고, 자신이 창조된 원리를 파괴하면서 그 영혼 안에 넣어 준 우리의 사랑의 피를 다 허비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자기의 인간적인 뜻이라는 독이 그 안으로 흘러들게 한다.

 

22 따라서 우리의 뜻이 피조물 가운데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우리 ‘뜻의 나라’를 세우기 전에는 사람이 언제나 무질서한 존재로, 자기 창조주의 모상이 없는 존재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