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7권
12장
창조된 만물의 중심이신 예수님.
영혼의 발로인 말. — 그 가치.
1929년 11월 6일
1 계속 ‘피앗’ 안에 잠겨 있노라니, 이 피앗 안에 있는 모든 창조물과 모든 업적이 다 친애하는 내 자매들같이 보인다. 이들과 내가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뜻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 동안 행하신 모든 것이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어서, 내가 마치 예수님 및 그분의 모든 업적들과 한 덩어리로 반죽된 느낌인 것이다.
3 그렇게 모든 것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꼈을 무렵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말없이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계신 것이 보였다. 그토록 많은 작품들 한복판에 계셨지만 그들 모두가 말없이 잠잠했으니,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그분에게는 벙어리들인 것이었다. 그렇게 말 한마디 건넬 사람이 없자, 그분은 나를 가까이로 끌어당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나는 만물의 중심이지만 고립된 중심이다. 모든 것이 나를 에워싸고 내게 의존하고 있어도 창조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나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내게 영광과 영예를 주지만, 내 고독을 깨뜨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5 하늘은 말을 할 줄 모른다. 태양도 벙어리다. 바다는 거센 파도를 이루며 요란한 소리를 내거나 물결이 잔잔해지곤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6 고독을 깨뜨리는 것은 말이다. 두 존재가 말로 생각과 애정과 하고자 하는 바를 서로 주고받는다. — 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즐거움, 가장 순수한 기쁨, 가장 달콤한 사귐이다. 또 마음속 비밀을 드러내며 말로 표현하면 그들 사이에 극히 소중한 일치가 이루어진다.
7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정감과 애정이 일치를 이루고, 이쪽과 저쪽이 서로 안에 내재하는 자기의 의지를 보는 것 — 이는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 안에 있는 자기의 생명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8 말은 그러므로 위대한 선물이다. 그것은 영혼의 토로이고, 사랑의 토로이며, 소통의 문이고, 기쁨과 슬픔의 교환이다. 말이 모든 업적의 완성을 이루는 화관이다.
9 사실 누가 창조 사업을 이루며 완성하였느냐? 우리의 ‘피앗!’이라는 말이 아니었느냐? 그것이 발해지자 우리 사업의 기적적인 작품들이 점점 더 아름답게 연이어 나왔던 것이다.
10 말은 구원 사업을 위해서도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승리의) 화관을 형성하였다. 오!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복음’이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니, 교회는 백성에게 가르칠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말이라는 위대한 선물은 온 세상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11 그런데, 내 ‘거룩한 의지의 딸’아, 너는 알고 싶으냐? 누가 나의 수많은 작품들 한가운데에서 내가 느끼는 그 고독을 깨뜨릴 수 있는지를? 그것은 바로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12 그는 이 중심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내게 말을 한다. 나의 업적들에 대해서 말하고, (내가 그에게 준) 각 조물에 대하여 그의 ‘사랑합니다.’로 보답하고, 내게 그의 마음을 열고 그 속에 깊이 간직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내 ‘거룩한 피앗’에 대하여, 이 피앗이 다스리는 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느끼는 비통에 대하여 말한다.
13 그러면 내 마음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 안에 울리는 내 ‘피앗’의 사랑과 비통을 느끼고, 피앗은 그 자신이 재현되는 것을 느낀다. 그가 말을 함에 따라 내 ‘거룩한 마음’이 사랑과 기쁨으로 북받쳐 오르고, 이를 억누를 수 없어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일단 입을 열면) 한참 동안 상세하게 말한다.
14 내 마음을 열고 가장 깊은 비밀을 그의 마음속에 쏟아 붓는다. 즉, 우리 모든 사업의 유일한 목적인 내 거룩한 뜻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동안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의 존재를) 느낀다. 벙어리가 아니라 말을 하는 동반자, 나를 이해하는 동반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동반자, 따라서 내가 그 안에 나 자신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동반자를!
15 그러니 내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해 너에게 드러낸 모든 것은 사랑의 발로, 우리가 서로 안에 부어 넣은 생명이었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동안, 그 사랑과 생명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감미로우면서도 아주 유쾌한 친교를 이루게 하지 않았느냐?
16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 나의 전부다. 그는 말을 못하는 내 업적들을 대신하여 내게 말을 함으로써 그들의 그 결함을 보완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말하며 나를 기쁘게 하기에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17 게다가 나는 위대한 선물인 내 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 더 이상 말없는 예수로 남아 있지 않다. 나의 ‘피앗’이 없는 곳에서는 내가 말을 해도 알아듣는 이가 없기 때문에 말 한마디 건넬 대상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말없는 예수로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말하는 예수, (절친한) 동반자가 있는 예수인 것이다.”
18 그 뒤에도 내 가난하고 작은 정신은 계속 ‘거룩하신 피앗’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딸아, 내 거룩한 뜻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내 뜻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 중 상당수를 그에게서 비우고, 인간적인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일련의 복합적인 단순성만 남겨 둔다.
19 이를테면 눈길의 단순성, 말의, 태도의, 발걸음의 단순성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 안에서 마치 거울을 통해 보듯 신적 단순성의 표징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 그러기에 내 거룩한 뜻이 땅에서도 다스리게 되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허위 내지 거짓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면 모든 참된 선의 근원인 단순성은 하느님의 뜻이 여기에서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진정한 표징이 될 것이다.
21 그리고 자원해서 우리 ‘거룩한 피앗’의 지배를 받기로 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매우 크기에 —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 그가 행하기를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먼저 하느님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다음에 그에게로 넘어간다.
22 그런데 그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하나인 까닭에 그는 그 업적을 그 자신의 것으로 삼고, 우리가 원할 때마다 되풀이한다. 우리의 ‘거룩한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은 따라서 우리의 업적들을 전하는 자요, 계속 모방하며 반복하는 자다.
23 그는 우리의 의지에게서 받아 가진 빛의 눈으로 자기 창조주가 하고 있는 일을 응시한다. 그것을 자신 안에 흡수하면서, ‘저도 흠숭하올 임금이신 당신께서 하시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려는 것이다.
24 우리는 그래서 갑절로 행복하다. 그 피조물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 행복이 우리에게는 본성과도 같으니까 — 그가 행복한 것을 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그가 우리의 뜻 덕분에 우리와 더욱 닮은 모상이 되고,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업적으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니 말이다.
25 우리는 그래서 우리 ‘피앗’의 창조력이 우리를 다시 활기차게 하고, 그 사람 안에 우리의 생명과 업적을 형성하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