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7권
2장
어머니와 아드님의 첫 입맞춤 — 사랑의 첫 발로.
사람에게 주기 위한 하느님의 은사들로 가득한 만물.
‘피앗’ 안에서 사는 사람 안에 계속되는 하느님 뜻의 창조 활동.
그의 행위들을 보고 흐뭇해하시는 하느님.
1929년 9월 28일
1 내 작은 정신이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 안을 순례하다가, 사랑스러운 작은 ‘아기’께서 모태에서 막 나오시어 천상 엄마의 팔에 냅다 안기시는 순간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아기’께서는 사랑의 첫 표현을 할 필요를 느끼셨기 때문에 그 작은 팔로 엄마의 목을 감싸며 입맞춤을 하시는 것이었다.
2 ‘거룩하신 여왕’께서도 ‘거룩하신 아기’에 대하여 같은 필요를 느끼셨으므로 엄마다운 입맞춤으로 답례하셨는데, 그것은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북받치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와 아드님께서 드러내신 사랑의 첫 발로이기도 하였다.
3 나는 마음속으로, ‘그분들께서 이 사랑의 발로 안에 좋은 것을 얼마나 많이 넣어 두셨는지 누가 알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엄마에게 입 맞추는 조그만 아기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나는 내 엄마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극히 높은 존재’인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발로였으니 말이다.
5 내가 ‘동정이신 여왕’ 안에, 우리가 창조 사업 속에서 행한 모든 사랑의 발로를 집중시킨 것은 이 때문이었으니, 이 여왕은 내 거룩한 뜻을 소유하고 있어서 내 입맞춤과 함께 너무나 큰 우리 사랑의 모든 발로를 받아들이며 보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6 사실,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만이 모든 피조물의 계속적인 행위를 자기 안에 집중시킬 수 있고 또 그 모든 행위를 하느님 안에 다시 쏟아 넣을 수도 있다.
7 나는 내 거룩한 뜻을 소유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그 사람도 내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의 발로로 창조물을 내놓은 것은 사람에게 주기 위해서였으니, 그들은 계속 존속할 것이고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8 그러므로 내 거룩한 뜻 안에 사는 이는 마치 우리 집에 있는 것처럼 모든 창조물의 지속적인 행위와 우리 사랑의 이 계속적인 발로를 받는다. 우리는 실상 우리가 창조한 조물들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서 마치 현재 창조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9 “우리 사랑의 발로로 이토록 많은 것을 창조한 우리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나는 너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언제나 사랑할 것이다.’이다.
10 그러면 우리 ‘거룩한 의지’의 지배를 받기로 한 영혼은 우리 사랑의 그 계속적인 발로를 그대로 다 품고 있을 수 없어서 우리와 같은 말을 후렴처럼 서둘러 쏟아내면서 ‘당신의 뜻 안에서 저는 당신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언제나 —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
11 사실 우리의 ‘피앗’이 첫 행위자로서 사람에게 증언한 사랑의 발로가 바로 창조된 만물이 아니겠느냐? (이를테면) 푸른 하늘이 곧 사랑의 발로이다. 하늘이 항상 널리 펼쳐진 채 빛깔이 바래거나 변하는 법 없이 별들이 점점이 박힌 모습으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계속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2 또 태양이 사랑의 발로이니, 빛으로 온 땅을 가득 채우면서 우리의 계속적인 사랑을 쏟아내고, 셀 수 없이 많은 효과를 내면서 계속적인 사랑을 거듭거듭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사람에게 증언하기도 한다.
13 바다 역시 사랑의 발로이다. 때로는 잔잔한 물소리를 내고 때로는 거대한 파도가 거듭거듭 세찬 폭풍 소리를 내거니와, 이 바다가 수많은 물고기들을 내놓으니,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랑의 계속적인 발로이다. 또한 땅도 우리 사랑의 발로이다. 땅이 열려 꽃과 물과 나무와 열매들을 내놓듯이, 우리의 사랑도 계속 뜨겁게 나타나니 말이다.
14 요컨대 우리가 창조한 것치고 우리 사랑의 계속적인 발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15 그런데 우리 사랑의 그 수많은 발로를 누가 알겠느냐? 누가 우리의 창조적인 힘이 자기를 덮어 싸고 있음을 느끼겠느냐? 누가 우리의 꺼질 줄 모르는 (사랑의) 불꽃을 감촉하고 보답할 필요를 느끼며 자기 창조주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겠느냐?
16 바로 우리의 ‘거룩한 피앗’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창조적인 힘의 능력이, 그가 느끼듯이,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그로 하여금 자기 창조주께서 그에 대한 사랑으로 어떻게 끊임없이 창조하시는지를 직접 감촉하게 하고, 그의 보답을 받기 위하여 그분 사랑의 이 발로는 결코 중단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17 그러니 그 피조물이 우리의 ‘거룩한 피앗’을 소유한 덕에 우리 사랑의 이 발로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 또 우리 지극한 사랑의 거룩한 발로를 다 받아 넣을 수 없어진 그가 바로 우리의 그 발로 안에 창조주께 대한 그 자신의 사랑도 흘러들게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흐뭇해하는지를 (나 말고) 누가 너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느냐?
18 그때 우리는 우리가 만물 안에서 행한 모든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거의 광적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그를 느낀다. “흠숭하올 임금님, 제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저 역시 임금님을 위해 하늘과 태양과 바다 및 임금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19 제가 당신과 같은 사랑과 같은 활동으로 — 왜냐하면 활동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의지’가 창조하신 만물을 저에게 주셨으니, 저는 그들을 당신께 돌려드리면서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20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을 통해 정하신 대로, 조화로움, 선물의 교환, 질서 및 창조주와 피조물의 상호 보답이 이루어질 것이다.
21 이제 너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질서와 조화를 잃었고, 만물을 선물로 받을 권리도 잃었다. 내 거룩한 뜻은 자신이 그 안에서 다스리는 사람에게만 그럴 권리를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만물의 창조자인 동시에 소유자이기도 한 내 뜻은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만 자기 소유인 그것을 주는 것이다.
22 내 뜻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내 뜻의 작품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든 침입자라고 할 수 있으니, 소유자처럼 행동할 수 없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하느님께 바칠 수도 없고, 만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의 발로를 느낄 수도 없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 줄 우리의 거룩한 뜻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23 사람은 우리의 거룩한 의지가 없으면 창조주의 아주 작고도 무지한 일개 피조물, 선생이 없는 어린 학동과 같다. 오! 우리의 ‘피앗’이 없는 자는 보기만 해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반면에 우리의 조물들은 우리의 대변자요, 우리 사랑의 입맞춤과 다정한 포옹을 소통시키는 자가 아니냐!
24 오!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내 인성이 그 모든 것을 얼마나 깊이 실감했는지 모른다! 밖으로 나가면 태양이 내게 입맞춤을 주곤 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의 뜻이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그 빛 안에 미리 넣어둔 입맞춤이었다. 또 바람은 내 거룩한 뜻이 맡긴 어루만짐과 포옹을 품고 있다가 그것을 내게 주곤 하였다.
25 만물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하느님의 은사(恩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인성은 그 모든 것을 받고 또 보답해 주었으니, 오랜 세기에 걸쳐 억눌려 있었던 수많은 입맞춤과 거부된 포옹과 인정받지 못한 사랑에 배출구를 주기 위해서였다.
26 사실 사람은 내 거룩한 뜻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 뜻이 친히 만물 안에 비치(備置)한 선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뜻을 소유한 내 인성이 바로 그 뜻에 첫 배출구를 주었으니, 나의 이 뜻이 만물 안에 비치한 모든 것을 받고 또 그 모든 것에 보답을 주기도 하였다.
27 이런 이유로 내가 밖으로 나가면 창조된 만물이 경쟁하듯 앞 다투어 제각기 가진 것을 내게 주곤 했던 것이다.
28 너는 그러니 주의를 집중하고, 오로지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것만을 염두에 두어라.
네 예수가 내 ‘지극히 높은 피앗’에 대해 말하는 것을 생생하게 감지하기를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