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제154장. 사랑의 길 (아기 예수의 데레사)

Skyblue fiat 2014. 7. 25. 17:33

 

 

154. 사랑의 길

 

 

  형제여, 나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랍니다.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요.

형제는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를 암시했고, 하느님께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 즉 사랑의 길을 발견한 공로를 내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 길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 것입니다. 사실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가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그 길이 내게는 가장 힘든 길이라기보다는 특히 가장 기묘한 길로 여겨졌습니다.

사랑이신 분과 사랑의 경쟁을 하는 길이니까요.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는 이 확언을 말 그대로가 아니라 더 넓은 의미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의지의 현동<現動>이니) 형제가 온전히 신실한 뜻을 기울인다면 형제와 형제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분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일을 그래도 좀 표현해 보려니, 쉽지가 않군요. 사랑이 형제의 마음에서 그분의 성심을 향해 올라가면 - 형제가 분명히 그렇게 하고 있듯이 - 그분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데, 이 사랑은 형제의 마음을 감싸며 이 마음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형제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로우신 성심 안으로 들어가서 사라집니다. 그분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이 서로 섞여 오직 하나의 큰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성냥불을 용광로의 큰 길에 던져 넣으면 오직 하나의 큰 불이 되는 것과 흡사합니다.

 

 

인간의 지상 여정은 하나의 시련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형제가 인간의 지상 여정은 아무도 모면할 수 없는 하나의 시련이라는 생각과 누구든지 그릇된 길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이 시련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장하고 또 널리 퍼뜨리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이 시련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의 시련이지만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믿음의 시련입니다. (이 지상 여정은) 믿음을 시험 받는 시험대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계시된 진리와 신비를 믿는 것이고, 그것도 굳건히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뭇 민족의 '스승'이요 '지도자'요 '빛'으로 세우신 교회를 '구원의 성사'로 믿고, 계시된 하느님의 권위를 믿으며, 스스로 그르치실 수도 없고 우리를 속이실 수도 없는 '하느님 말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고, 불변적이고 절대로 바뀔 수 없는 하느님의 영원한 '법'을 믿어야 합니다. 이 법을 손상시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분노를 끌어당기니까요.

 

  둘째 시련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만물과 만인의 지고한 주님이며 주재자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 따라서 그분의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시련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니, 바로 사랑에 대한 시련입니다.

 

 

  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의 생각에는 이 시련 안에 위의 두 시련이 포함됩니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사랑이신 분의 사랑에 가장 일치하는 사랑을 증거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증거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렇게 이해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세례 때에 우리는 사랑이신 분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앞의 두 시련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니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때에 성화 은총을 받습니다. 이 은총은 서로 불가분적인 덕행인 믿음바람사랑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 장난이 아니라 빛나는 현실입니다. 세례 때에 우리는 사랑이신 분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 섬기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사랑의 길이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깝고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옷타비오 형제여, 사랑이신 그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세상의 위선과 허영과 유혹과 계략의 암시에 걸려 들지 마십시오! 나는 어릴 적에도 인생은 밤 동안 피었다가 한낮에 시들어 떨어지는 꽃과 같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습니다.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십시오!  현재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지금,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어느날 가장 완전하고 더할 나위 없는 기쁨 속에서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이신 분을 그대에게 모셔 오듯이 그대를 그분께로 데려갑니다. 그러한 만남에서 그대와 그대들과 영혼들을 위해 기묘하고 찬란한 결과들이 솟아납니다. 그분께서 그대를 위해 당신 자신을 소진 시키신 것과 같이 형제도 그분을 위해 형제 자신을 온전히 태울 때까지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인가 우리의 진정하고 기묘한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에 의하여,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이신 그분 안에 하나 되어 있읍시다.

 

하느님께서 이제와 영원히 형제에게 강복하시고, 형제와 함께 형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1978년 6월 1일)

 

 

http://cafe.daum.net/DivineVolition/9Lt9/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