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노래
온 즈믄 은혜를 뿌리면서
이 숲들을 지나 총총히 가시었소
이들을 보고 가실 적에
그는 그의 얼굴 하나로
아름답게 이들을 꾸며 주시었소
해 설
1. 이 노래 가운데 피조물은 영혼에게 대답한다. 이 대답이란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말했듯이 생각하면서 질문하는 영혼에게 하느님의 위대하심이나 탁월성에 관하여 피조물 스스로가 주는 증명이다. 이 노래 안에 포함된 것을 요약하면 하느님은 매우 쉽게 또 삽시간에 만드시고 그것들 가운데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희미한 반영으로 남겨 놓으셨다. 하느님은 피조물을 다만 무에서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과 장점으로 꾸미시고 그것을 서로 놀라운 질서와 없어서는 안될 상호 의존하게 정하시어 미화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죄다 당신의 예지의 업적이고, 예지란 곧 만물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으신 그분이 외아들, 말씀이시다. 그래서 말한다.
온 즈믄 은혜를 뿌리면서
2. 여기서 ‘뿌리면서 간다’는 무수한 (온 즈믄) 아름다움 (우리 번역: “은혜”)이란 수많은 피조물을 뜻하고 그 수가 엄청남을 알리기 위해 무수하다는 최상급을 썼고 아름답다함은 피조물에게 주어진 숱한 아름다움 때문이며 뿌리면서라 함은 이런 것이 온 세상 어디든지 있게 하셨다는 뜻이다.
이 숲들을 지나 총총히 가시었소
3. “숲들을 지나 총총히 가시었다”함은 여러 요소(흙, 물, 불, 공기)를 창조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는 이 여러 요소를 일컬어 숲이라 한다. 그리고 무수한 아름다움을 뿌리면서 총총히 가셨다 함은 우아한 피조물로 그것들을 꾸미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에게 온갖 피조물의 증식과 보존에 협력할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나갔다.” 함은 피조물은 하느님의 발자국과 같으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위대하심, 능력, 예지 그 외 신적 완덕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총총 가셨다” 함은 피조물은 하느님의 작은 작품이고 잠깐 지나가면서 만드신 것과 같은 것이기에 하느님이 친히 더욱 잘 나타내시고 한층 조심스럽게 이룩하신 업적은 말씀의 육화나 그 외 그리스도교의 신앙상의 신비이다. 그런 것에 견주어 보면 다른 모든 것은 지나가시는 길에 서둘러 급히 행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들을 보고 가실 적에
그는 그의 얼굴 하나로
아름답게 이들을 꾸며 주시었소
4. 성 바오로는 이를 표현하기를 “이 아들은 그분 영광의 광채요, 그분 본체의 표상이다.”(히브 1, 3) 그런데 하느님은 오직 그 아들의 얼굴로서만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셨다. 곧 하느님은 이로써 그들에게 자연적 있음(有)과 많은 자연적 아름다움의 은혜를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완전한 것으로 만드셨다. 창세기에서 “이렇게 만드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1, 31)하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이것들을 참 좋게 보셨다함은 그의 성자 말씀을 통해서 참 좋은 것으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음 같이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에게 자연적 있음과 아름다움을 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성자의 얼굴을 돌려주시는 것(向하다) 만으로도 그들에게 아름다움을 입혀주시고 뒤에 남기시고 가셨다.
즉 말씀이 육화하실 때 그들은 초자연적 있음을 주셨던 것이다. 이 때 하느님은 인간을 신적 아름다움까지 드높여 주시고 또한 인간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을 높여 주셨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의 자연성을 일치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아들은 친히 “내가 땅에서부터 들어올려지게 되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릴 것입니다.”(요한 12, 32)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자의 육화와 그 육신의 부활의 숭고한 신비를 통해 성부께선 피조물에게 부분적인 아름다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남김없이 완전히 아름다움과 존엄을 그들에게 입히셨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