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개종실화

5. 교파전전 이십여 년 - 김재천

Skyblue fiat 2023. 11. 20. 17:39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5. 교파전전 이십여 년

 

김재천

1902년 4월 17일 출생, 1933년 의사시험 합격

 

내가 열교에서 가톨릭으로 귀정하기까지는 이십여 년을 장로교에서 조선기독교회로, 조선기독교에서 오순절교회로, 오순절교회에서 성결교회로 이렇게 여러 교회로 전전하면서 긴 세월을, 믿는다기보다 고민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그뿐인가! 때로는 감리교회, 일본 감리교회에도 나가 보고, 일본의 유명한 가가와 우찌무라 등의 저서를 밤을 새워 읽은 일도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중심 사상이 없는 사람, 변덕스러운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하였을 것이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 기독청년회장 등의 직책을 맡고 교인들의 총망을 받으며, 권함을 이기지 못하여 때로는 강단에 나서서 설교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항상 불만과 실망을 느꼈던 것이다.

 

도대체 천주도 하나이시고, 진리도 하나, 교회도 하나라야 할 터인데 세계적으로 열교가 삼백 교라, 한국만 해도 이십여 교라, 장로교 한 교파 내에서도 복구파니 재건파니 또 무슨 파니 하여 네 당파로 갈라져 있고 장차도 갈라지려고 함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은 교리상으로 통일이 없다.

한편 과학을 배웠다는 자가 신신학을 주장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비주의를 부르짖는다. 교파가 다르면 물론이고 같은 교파 내에서도 사람에 따라 성경 해석이 각각 다르다. 즉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에서 교회 경영의 병원과 대학이 있는가 하면, 어떤 교역자는 신앙제일주의라고 하여 현대 의학을 부인하고 백 가지 병을 기도로 고치려 든다. 벙어리, 앉은뱅이도 고친다고 떠든다. 농촌에 가면 부인들이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병 고치려고 교회에 나가는 이가 많다.

 

장로, 집사 간의 알력, 목사와 신도 간의 반목, 목사와 전도사 간의 암투, 교인끼리 당파 싸움이 없는 데가 없었다. 교리 다툼, 지위 다툼, 경제적인 문제, 남녀 문제 등등 실로 골치가 아팠다. 어느 교회를 찾아가면 진리를 얻어 볼까? 좀 더 신성한 교회는 없을까? 하여 여러 교파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열교 각 파는 대동소이하고 모두 성령이 계시지 않다고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고민한 나머지 결국은 기성교회를 부인하고 집에 들어앉아 혼자 믿어야 한다는 소위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이도 있다. 나 역시 교회 출석을 단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무교회주의는 무정부주의와 같아서 위험한 사상이다. 한번 마음 속에 싹튼 신앙심! 불타는 구도심!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은 나를 쉽사리 세속에로 돌아서게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열교에서 실망한 나는 1949년 여름 어느 날 황해도 사리원 천주교회로 박우철 신부님을 찾게 되었다. 마음 속에 크나큰 기대와 포부를 가지고 가기는 하였으나 ‘천주교를 믿겠습니다.’ 하고 솔직히 고백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실패를 거듭하기 싫어서 이번이야말로 여러 가지 각도에서 가톨릭을 검토하고 교리를 철저히 연구한 후에 입교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박 신부님은 항상 정중하시고 자애로우신 태도로,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열교 목사처럼 그저 나오라는 것이 아니고 은근히 인도하시는데 사교적인 수차 방문으로 나의 마음은 온전히 천주교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한 북한 땅이라 사모하는 박 신부님을 자주 찾아뵐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마음을 조이던 중 뜻하지 않은 6.25사변으로 남한에 피난을 가게 되었다.

 

민주주의 남한! 신앙자유의 남한! 나는 실로 살 것 같았다. 나는 1951년 7월 어느날 천안 성당으로 신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균식 신부님은 반가이 맞아 주시고 「교리문답」과 「소일과절요」(小日課切要 : 옛 기도서의 하나로 하루 일과에 필요한 기도문들이 수록되어 있는 책) 각 한 권을 주시면서 잘 연구해 보라고 권하셨다.

돌아와서 내용을 읽어 보니 열교에서 듣지도 못하던 7성사, 연옥 및 보속의 교리가 내 마음을 끌었다. 재독, 삼독 읽으면 읽을수록 가톨릭 교리가 내 마음에 들었다. 매일 참례한 미사성제는 열교의 예배와는 달리 신부님이나 교우들의 정성된 그 태도! 과연 속세를 초월한 듯 감사와 은혜가 차고 넘쳤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세속적인 결혼 생활을 않고 동정의 몸 그대로 천주께 바쳐 일생을 구속사업에 보내시는 것, 양떼를 먹이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나가시는 그 충성!

이번 6.25 사변 때 북한에 계시던 성직자들이 피난을 하려면 할 여지가 있었으련만 죽음을 무서워 않으시고 성당을 지키시다가 70여 위 신부님들이 다 고스란히 치명을 당하신 사실을 생각할 때 누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뿐인가! 전 세계 수억의 교우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로마 교황청을 향하여 한결같이 경의를 표하며,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같은 교리, 같은 경문, 같은 절차로 미사를 올리는 것, 이와 같이 가톨릭이 근 2천 년을 내려오면서 한데 뭉쳐 결속되고 통일된 것은 다른 교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통하여 예수 친히 세우신 거룩하고 가장 완전한 참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는 성체에 대한 교리였다. 면병, 포도주가 이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교리, 그러나 이것은 다른 7성사와 같이 성경에 역력히 쓰여 있으니 일점의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알았다. 예수께서 수난 전날 친히 세우신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는 예수를 우리 몸에 친히 모실 수 있는 고마운 교리이다.

열교에서 매년 중요한 의식으로 집행하면서도 변화의 교리를 모르고 하니 우스운 일이었다. 이리하여 5개월간 천안 본당 신 신부님의 지도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교리를 공부하여 그해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5인 가족이 다 같이 영세를 하였고, 다음해 5월에는 원 주교님께 견진까지 하였다.

 

이십여 년을 고민과 두통으로 지내다가 신앙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침의 조과(아침기도), 저녁의 만과(저녁기도), 하루 세 번 삼종기도를 바치는 고마운 생활, 천주의 홍은(鴻恩 : 넓고 큰 은혜)과 주 성모의 도우심에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그리고 특히 열교 여러 형제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천주교 교리를 연구해 보라는 것이다.

아무런 연구도 없이 무식한 사람들의 중상하는 말을 곧이듣고 있는 것이 딱하다. 예를 들면 천주교회는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주 강생 이전에 있던 교회라고, 또 열교는 16세기에 가톨릭에서 사람의 의사로 갈라진 것을 모르고 자기네 교회는 예수께서 세웠다는 등,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교라는 등 웃지 못 할 망설을 하고 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은 사교나 수양을 위해서가 아니고, 병 고치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진실로 자기 영혼 구원이 목적일진대 백지로 돌아가 겸손한 태도로, 빈 마음으로 가톨릭을 연구하기 바란다.

 

1953년 2월 17일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