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26, 예수님의 모든 업적은 인류를 위해 끊임없이 지속되는 행위다.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영혼 주위에는 영원히 바퀴처럼 회전한다.
1921년 10월 21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영혼이 내 수난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것을 기억하거나 나를 측은히 여길 때마다, 내 고통이 그 영혼에게 새로이 적용된다. 내 피가 솟아나서 그를 잠그고, 내 상처들이 그를 치유하거나 단장한다. 그가 상처를 입고 있으면 치유해 주고 건강하면 아름답게 단장해 주는 것이니, 내 모든 공로가 그를 부유하게 한다.
3. 그러니까 영혼은 매우 놀라운 장사를 하는 셈이다. 내가 행했고 겪었던 모든 것을 판매대에 놓아 이윤을 갑절로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과 열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 있다. 나의 업적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의 열매를 받는다. 그러므로 내 수난을 스무 번, 백 번, 천 번 기억하면, 그만큼 더 많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4. 그러나 이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내 수난의 모든 선익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영혼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름발이들을 - 민망스럽도록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수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5. 내 고통과 상처와 피는 허약함을 없애는 힘이요, 소경에게 시력을 주는 빛이며, 혀를 풀고 청각을 열어 주는 귀이고, 절름발이를 똑바로 걷게 하는 수단이며,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생명이다. 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제가 내 생애와 수난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약을 무시하고 이 치료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구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치의 폐병에 걸리거나 한 듯 죽어가는 인간의 처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6.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하는 것은, 교의나 신학 이론이나 역사 따위의 탐구에 매진하는 교인들이 정작 내 수난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수난은 번번이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제들의 입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사제들의 말에 빛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니,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보다 더 굶주린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7. 그 후 나는 태양 앞에 서 있었다. 그 모든 광선이 내게 쏟아지면서 내부까지 파고들었다. 그렇게 빛에 뒤덮여 있으니 태양의 먹이로 사로잡힌 느낌이었다. 그것도 맹렬히 진동하는 빛이어서 태양을 볼 수 없었지만 보려고 할 때마다 더 큰 기쁨과 행복감에 잠기게 되는 것이었다.
8. 그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그 태양 안에서 나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의지의 딸아, 내 뜻이 햇빛처럼 너에게 넘쳐흐르고 있다. 너야말로 내 의지의 밥이요 낙이며 만족이다. 네가 내 의지 안에 잠김에 따라 내 뜻이 너에게 내 거룩함과 능력과 지혜와 선성 등등의 향기를 빛살처럼 쏟아 붓는다.
9. 또한 내 뜻은 영원하기에, 네가 이 뜻 안에 있고자 힘쓰며 이를 너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삼을수록, 너의 내면에 나의 불면성과 초월성이 그만큼 더 많이 흡수된다. 영원이 네 주위에서 바퀴처럼 회전하면서 너로 하여금 모든 것에 참여하게 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네게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는 내 뜻이 영예와 완전한 영광을 누리며 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다.
10. 나는 내 뜻의 맏딸이 그 무엇에도 부족을 느끼지 않게 할 작정이다. 내게 속한 하나의 특성도 모자라지 않게 하겠다. 이 특성이 너를 내 뜻 안에서의 삶 성덕을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온 하늘 앞에 뚜렷이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11.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내 뜻 밖으로 나가지 마라. 내 신성의 향기를 전부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나오게 하여 다 나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고, 내 뜻이 생명의 중심으로 네 안에 머물 수 있게 된다.
13권-27, 하느님 뜻의 바다가 마음속에 흘러들게 하는 물길.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이를 읽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1921년 10월 23일
1. 하느님의 의지 안에 완전히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을 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내 뜻의 딸아,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내 뜻의 끝없는 바다가 얼마나 고요하게 흘러들고 있느냐! 그러나 네가 나에게서 내 뜻에 대한 말을 자주 듣게 된 얼마 안 되는 기간에 걸쳐 이 바다가 네 안에 흘러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3. 그렇게 짧은 기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오래 전부터 흘러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행동부터 먼저 하고 말을 그 다음에 하는 것이 나의 통상적인 방식인 까닭이다.
4. 사실 너의 시작은 내 수난의 바다였다. 내 인성이라는 항만(港灣)을 통과하지 않는 성덕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인성의 항만에 머물러 있는 성인들이 있는 반면, 여기를 지나 더 멀리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때 나는 재빨리 내 뜻의 바다를 이입(移入)시킨다.
5. 그러므로 네가 기꺼이 너의 뜻을 내게 맡길 마음이 되어 있음을 보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그 바다가 끊임없이 흘러들며 커지고 있었다. 네가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행위를 더할 때마다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6. 내가 이 점에 대해서는 너에게 별로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뜻은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통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의 마음속을 알 수 있었다.
7. 그러니 나는 네 안에서 성인들이 내게 주는 기쁨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천상적 기쁨을 느끼며 즐거워하였다. 내가 성인들의 행복이 되는 한편 성인들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데, 그들은 내 의지 안에 잠겨 있기에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하지만 나의 행복은 완전하지 않았다. 더 많은 내 자녀들이 이토록 큰 선을 공유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뜻에 관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네게 이야기한 그 많은 진리와 효과와 가치들의 수만큼 많은 물길을 바다로부터 열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이 되게 함으로써, 이 물길들이 온 땅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게 하려는 것이다.
9. 나의 이 활동은 끊임없이 전달되고 언제나 현행적이다. 그렇지만 이 물길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흙탕물이 되기 십상이다. 어떤 이들은 돌덩이들을 던져 넣어 물의 순조로운 흐름을 방해한다. 그런즉 바다가 물의 흐름을 막거나 물이 너무 탁해서 곳곳에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크나큰 선을 거슬러 맞서고 있는 것이다.
10.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진리들을 읽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내 진리들의 빛에 당황하며 눈이 부신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11.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고 목마름을 풀어 주는 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물길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크나큰 선과 그들 안으로 흘러드는 새 생명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12. 너 역시 네 형제들의 선익을 위하여 내 진리에 대한 극히 사소한 점도 빠뜨리지 않고 (다 쓰는 것으로) 이 물길들을 열게 되면 행복한 마음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점이라고 하더라도 너의 한 형제가 물을 끌어들이는 데에 소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13.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이 물길들을 열고, 너를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 온 네 예수를 만족시켜 다오.”
13권-28, 하느님 뜻과 사람의 관계는 영혼과 육신의 관계와 같다.
1921년 10월 27일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 “주님께서 저를 주님 안에 있게 하신지 오래 되었습니다.”하였다.
“제가 그래서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거처를 잡고 있는 것같이 더 안전함을 느꼈고, 주님의 신성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2. 주님의 의지가 저를 쫓아내셨을 때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곤 했는지 모릅니다! 땅의 공기가 느껴지기만 해도 참을 수 없도록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 이기시곤 했으니, 저는 이마를 숙인 채 몸을 맡기곤 했습니다.
3. 이제는 주님께서 늘 제 안에 계심을 느낍니다. 그래도 뵙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면, 주님은 제 안에서 그저 기동하시거나 한쪽 팔을 내미시는 것만으로도 그런 저를 진정시키시며 생명을 주십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전 생애에 걸쳐 너를 내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니, 너도 평생토록 나를 네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내가 너를 내 안에 있게 했던 것은, 네 영혼을 향기롭게 하면서 네 내면에 새 하늘을 펼쳐, 나에게 합당한 거처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5. 과연 너는 더 안전함을 느꼈으니 기쁨이 네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땅은 즐거운 곳이 아니다. 땅의 유산은 고통이고, 십자가는 강한 자들의 빵이다.
6. 더군다나 나는 네 안에 내 뜻의 중심부를 세워야 했으므로 내 뜻이 네 안에 살면서 영혼이 육신에게 하듯이 너에게 봉사할 필요가 있었다. 영혼이 고유의 특전을 받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내 뜻이 그 안에 독특하고 예외적인 방식으로 내려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7. 이는 내 엄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 점이다. 만약 내 엄마께서 고유의 특전을 받아 가지지 않으셨다면, 즉, 하느님께서 새 창조 사업을 하시듯 내 엄마 안에 숨을 불어넣으시어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는 놀라운 존재가 되게 하시지 않았다면, 영원한 말씀인 내가 그분 안으로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8. 너도 그렇다. 먼저 나의 인성이 네 안에 항구적인 거처를 잡기를 원했으니 이는 너를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영혼이 육신에게 하듯이 내 인성이 내 뜻의 생명을 너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9. 네가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은, 내 뜻이, 육신에게 작용하는 영혼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아라. 우리 성삼위 안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사랑은 위대하고 무한하며 영원한 것이지만, 우리가 사랑에 생명을 주어 활기 있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사랑은 생명도 움직임도 없을 것이다.
10. 또 우리의 지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을 주고, 우리의 능력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분쇄했다가 다음 순간에 재건할 수 있다. 그러나 탁월한 지혜로 모든 것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고 그 능력으로 만물을 변동할 수 없는 법에 묶어 놓은 창조 사업에서와 같이, 우리가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 지혜와 능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 우리의 다른 모든 속성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말할 수 있다.
11. 그와 같이 나는 내 뜻이 육신에 생명을 주는 영혼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영혼 없는 육신은 생명이 없다. 모든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 수도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을 터이니, 거의 쓸모없는 물건과 같고, 아니면 참고 보기조차 힘든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신에 생기가 있으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12. 하지만,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뜻의 생명을 받지 않은 탓에 지지리도 쓸모없고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마는지! 마치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기 설비와 같고, 녹과 먼지에 뒤덮여 맥없이 널브러진 채 거의 작동되지 않는 기계와 같다. 아, 그러니 얼마나 딱한 사람들이냐!
13. 내 뜻의 생기가 없는 것에는 거룩함의 생명이 없다. 이런 이유로 내가 네 안에서 육신에 생명을 주는 영혼과 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내 뜻이 새로운 창조라는 놀라운 일을 이룩할 것이니, 내 사랑에 새 생명을 주고 새로운 일을 할 것이며, 내 지혜의 탁월성을 드러내고 새로이 내 능력을 작동시킬 것이다.
14. 너는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활동하도록 맡겨 다오. 피조물로 하여금 내 뜻의 생명을 받게 하려는 큰 계획을 내가 완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13권-29, 세 시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셨던 예수님 - 그 의미와 효과
1921년 10월 29일
1. 지난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결박되신 채 감옥에 갇히신 예수님께로 내 생각이 자꾸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수들에 의해 고통스럽고 잔혹한 자세로 묶인 채 후들거리는 그분의 무릎을 얼싸안고 있고 싶었고, 그들이 뱉은 침으로 더럽혀진 얼굴을 닦아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2. 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신 그분께서 짙은 어둠 속에 나타나신 것 같았다. 너무 캄캄해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흐느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원수들이 끔찍하도록 잔인하게 나를 묶어대더니 이 캄캄한 감옥 속에 홀로 내버려두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먹물처럼 캄캄한 어둠이었다. 오, 그 어둠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4. 내 옷은 개울의 더러운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감옥의 악취와 저들이 뱉은 침의 악취가 물씬 풍겨 왔다. 내 머리칼은 흐트러져 눈과 입을 가리고 있었으나 이를 가다듬어 주는 자비로운 손길은 하나도 없었고, 내 손은 사슬에 묶여 있었다.
5. 어찌나 캄캄한지, 아아, 너무도 괴롭고 치욕스러운 나의 처지를 볼 수조차 없었다. 오, 이리도 고통스러운 감옥 안이 내 처지가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6. 나는 세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것으로 세상의 세 가지 시대를 본연의 상태로 회복시키고자 했으니, 그것은 자연법의 시대와 성문법의 시대, 그리고 은총의 시대이다. 그 모든 것을 해방하고 다시 함께 통합하여 사람들에게 내 자녀로서의 자유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7. 감옥에 세 시간 동안 있음으로써 나는 또 사람의 세 시기, 곧 유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나쁜 격정으로 죄를 짓는 시기,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시기, 마음의 완고함으로 죄를 짓는 시기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오, 내 주위의 그 어둠이 죄가 인간 안에 일으키는 짙은 암흑을 얼마나 절감하게 하던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8. ‘오, 사람아! 너희의 죄가 나를 이토록 짙은 어둠 속에 던져 넣었으니, 내가 너희에게 빛을 주기 위해 이를 겪고 있다. 나를 이처럼 더럽힌 것도 너희의 악행이니, 그 어둠이 너무 짙어 내가 그것들을 볼 수조차 없구나. 나를 보아라. 지금의 내가 너희 죄악의 모습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으면 이 나에게서 보아라.'
9. 그러나 내가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은 동틀 무렵이었다. 벽의 터진 틈으로 희미한 빛살 몇 줄기가 흘러들고 있었다. 그나마 내 고통스러운 처지를 볼 수 있게 되자 얼마나 숨이 터지는 느낌이던지!
10. 이는 죄의 어둔 밤 속을 뒹굴다 지친 인간이 은총을 받아들일 때를 나타낸다. 은총이 여명처럼 그를 에워싸고 희미한 빛을 보내면서 돌아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1. 그리고 이 여명 속에서, 내 사랑이 나와 같은 처지에 묶어둘 작정이었던 너를 - 내 사랑하는 수감자인 너를 보기도 하였다. 너만은 나를 감옥의 어둠 속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리니, 내 발치에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를 따라 탄식할 것이고, 인간의 밤을 두고 나와 함께 울 것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위안을 얻었기에, 나를 따를 은총을 베풀려고 너에게 나의 그 수감 현장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12. 하지만 이 감옥과 어둠은 또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감실이라는 감옥에 오래도록 홀로 머무르는 것을 뜻한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내가 말을 걸거나 사랑의 눈길을 보낼 사람 하나 없이 고독 속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13. 또는 내가 성체 안에서, 썩어 진창 냄새를 풍기는 부당한 손이 나를 만지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랑 어린 순결한 손의 접촉으로 향긋함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14. 인간의 배은망덕이 얼마나 자주 희미한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나를 내버려두곤 하는지! 그러므로 나의 수감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5. 그러니 우리는 둘 다 수감자다. 너는 오직 나에 대한 사랑으로 침상에 갇혀 있고, 나는 너를 위하여, 나를 묶은 사슬로 모든 피조물을 묶고자 하는 내 사랑으로 갇혀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의 동반자가 되리니, 너는 나를 도와 이 사슬을 길게 늘여야 한다. 모든 마음들을 내 사랑에 묶기 위해서 말이다.”
16. 그 후 나는 혼자 속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처럼 많은 일을 하셨건만, 그분에 대해 알려진 것은 얼마나 적은지! 그분께서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이가 별로 없었으니 어찌 된 일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사람들은 누구든지 나에게 인색하다. 착한 사람들도 그렇다. 얼마나 인색하게 굴며 얼마나 많은 제한을 두는지!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과 그들이 나에 대해 이해한 것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지!
18. 너도 여러 번 내게 인색하게 굴지 않았더냐?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쓰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을 때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나에 대한 지식을 하나씩 더 얻을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서 영광과 사랑을 하나씩 더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의해서 나를 더 후하게 대하여라. 그러면 나도 너를 더 후하게 대해 주겠다.”
13권-30,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때 ‘피앗’을 발하신 이유
하느님 의지의 반영이 되도록 창조된 인간의 의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하느님 뜻
1921년 11월 4일
1. 다정하신 예수님과 온통 동화된 느낌이 들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오시자 나 자신을 내 중심이신 그분께 완전히 맡기면서 그분의 팔 안에 뛰어들었다. 그분의 팔 안에 머물러 있으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이것이 창조주의 품속을 찾는 피조물의 모습이다. 창조주의 팔 안에서 쉬려는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네 창조주의 팔 안으로 와서 네가 태어난 그 가슴 안에서 쉬어야 하는 것이다.
3. 사실 -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의사 소통과 일치를 위한 수많은 전선이 놓여 있다. 피조물은 따라서 내 뜻을 물리치지 않는 한 내게서 떨어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내 뜻을 물리친다는 것은 통신 전선을 절단하며 일치를 파괴하는 것이니 말이다.
4. 창조주의 생명은 전류 이상으로 피조물 안에 흘러들고 피조물도 내 안에 흘러든다. 나의 생명이 피조물 안에 퍼져 있다.
5. 나는 사람을 창조하면서 나의 지혜를 사람의 지성에 결부시켰다. 사람의 지성이 내 지혜의 반영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그의 지식으로 놀라운 일을 이룰 정도가 되는 것은 내 지혜가 그의 지식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또 사람의 눈이 빛의 자극으로 생기를 띠는 것은 나의 영원한 빛이 그의 눈에 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6. 우리 성삼위 사이에는 의사소통을 위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천지창조에서 나는 말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피앗'을 발했고, 그러자 사물이 만들어졌다. 이 '피앗'에다 피조물끼리 의견 소통이 이루어지게 할 말을 가질 능력을 묶어서 주었으므로, 인간의 목소리도 전선에 의해서인 것처럼 내 첫 말에 결부되었고, 여기에서 다른 모든 말이 나오게 되었다.
7.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면서 내 입김으로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지만, 이 생명 안에 나의 전 생명도 불어넣었다. 사람의 능력이 포함할 수 있는 정도만큼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사람 안에 모든 것을 넣어 주었으니, 나의 것치고 내가 사람과 공유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8. 보아라, 사람의 숨도 내가 끊임없는 생명을 그에게 주는 내 숨의 영이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숨이 내 숨 안에 반영되기에 내가 그것을 끊임없이 느끼기도 한다.
9. 그런즉, 보아라, 나 자신과 피조물 사이에 얼마나 많은 관계가 있는지를! 내가 피조물을 끔찍이 사랑하는 까닭이니, 그들을 나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오로지 나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10. 게다가 내가 또 사람의 의지를 얼마나 고상하게 만들었느냐? 그것을 나의 의지와 결부시켜 내 모든 특성을 부여했고, 내 의지와 똑같이 자유롭게 만들지 않았느냐? 사람의 몸에는 영원한 빛에서 출발한 작은 빛을, 즉, 그 둘레에 선을 그어 한정한 두 개의 작은 빛만 있었지만, 사람의 의지는 온통 눈이 되게 만들었으니, 이 의지는 스스로 이루는 행위의 수와 같은 수의 눈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의지는 따라서 전후좌우를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11. 한데 사람의 생명은 내 의지의 생명을 받지 않으면 아무런 선도 행하지 못한다. 사람의 의지를 창조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너는 땅에서 내 자매가 되어라. 내 뜻이 하늘에서 너의 뜻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반영이 되자. 그러면 무엇이든지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본성상 그러할 것이고, 너는 나의 끊임없는 반영이 되는 은총으로 그러할 것이다. 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12. 내가 피조물을 창조한 유일한 목적은 피조물이 모든 일 속에서 내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나 자신의 새로운 탄생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도 나의 바람이었다. 피조물을 내게 합당한 놀라운 존재로,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한 존재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아 슬프게도, 사람의 의지가 제일 먼저 나에게 대항하려고 들었다!
13. 한 번 둘러보아라. 모든 것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너는 눈을 가지고 있지만, 너를 비추는 영원한 빛이 없다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손을 가지고 있지만,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없다면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다. 나머지 모든 것도 이와 같다.
14. 그러므로 나는 사람 안에, 사람과 나 사이에, 곧 우리 양자 사이에 거룩함이 있기를 바란다. 그 방식은 이러하다.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채, 나는 사람에게 그의 충실한 동반자로 나 자신의 생명을 주며 내 거룩함을 소통시키고, 사람은 나의 충실하고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로서 그것을 받는 것이다.
15. 이와 같이 사람은 사물을 보는 눈이 되고 나는 그에게 빛을 주는 태양이 된다. 사람은 입이 되고 나는 말이 되며, 사람은 손이 되고 나는 사람이 일할 수 있게 조처하는 관리자가 되며, 사람은 발이 되고 나는 걸음이 되며, 사람은 심장이 되고 나는 심장박동이 되는 것이다.
16. 한데 너는, 누가 이 거룩함을 이루는지 알겠느냐?
홀로 나의 뜻만이 창조 목적을 순조롭게 유지한다. 내 뜻의 거룩함이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피조물이 내게서 나온 참된 모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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