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31, 예수님 생명이 불어나게 하는 것이 하느님 뜻 안에 사는 것의 의미다.
“너는 행복하다. 모든 세대가 너를 행복하다 하리라.”는 말씀을 듣다.
1921년 11월 8일
1.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내 내면에서 빛을 거두어 가시려고 하셨다. 나는 엉겁결에, “예수님, 어찌 이러십니까? 저를 어둠 속에 버려두실 작정이십니까?”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분은 사뭇 정겨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너의 작은 빛을 가져가고 나의 빛을 남길 테니 말이다. 너의 이 작은 빛은 내 뜻 앞에 있는 너의 뜻에 나의 뜻이 반사된 것이다. 그래서 빛이 되었다. 내가 이것을 가져가려고 하는 것은 사방으로 널리 퍼져 가게 하기 위함이다.
3. 이 지극히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창조주의 뜻이 반영된 사람의 뜻이니, 먼저 이를 하늘에 가져가려고 한다. 성삼위 사이에도 이 빛이 두루퍼지게 하여, 성삼위 자신의 반영에서 나오는 공경과 흠숭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만이 성삼위께 합당한 공경과 흠숭인 까닭이다.
4. 다음에는 내가 이를 모든 성인들에게 보여 주겠다. 그들고 사람의 뜻 안에 반영된 하느님 뜻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이윽고 내가 이를 온 땅에 흘러들게 하겠다. 이리도 큰 선에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하기 위함이다.”
5. 나는 그 말씀 끝에 곧바로, “제 사랑이시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였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어둠 속에 버려두시려는 줄 알고 어찌 이러십니까?’하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저의 뜻에 대한 것이라면, 주님께서 마음대로 가져가셔서 무엇을 하셔도 좋습니다.”
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작은 빛을 꺼내 손에 드셨는데,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다. 표현할 말이 없는 것이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앞에 이 작은 빛을 놓으시자 이 빛에 그분의 모습 전체가 반사되었고, 그러자 빛이 또 한 분의 예수님이 되더라는 것뿐이다.
7. 그리고 내 뜻이 그 자신의 행위를 거듭할 때마다 같은 수의 예수님들이 불어나는 것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알겠느냐?”하셨다.
“그건 말이다, 사람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을 불어나게 하는 것이고, 내 생명이 지닌 모든 선을 거듭하는 것이다.”
8. 나중에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 생명이시여, 제가 주님 뜻 안으로 들어가서, 모든 사람과 모든 것 속에 저 자신을 펼치려고 합니다.
9. 사람의 첫 생각에서 마지막 생각까지, 첫말에서 끝말까지, 첫 행동과 발걸음에서 마지막 행동과 발걸음까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언행에 주님의 뜻을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10. 그러면 주님께서 그 모든 것으로부터 주님의 거룩함과 사랑과 능력의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인간적인 모든 것은 주님의 뜻에 의해 덮이고 감추이며 주님의 뜻의 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것 속에서는 주님께서 신적인 영광을 받으실 수 없으니, 그런 모든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기를 저는 기원합니다.”
11. 그런데, 내가 그런저런 말씀을 드리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수없이 많은 복된 이들을 대동하시고 기쁨이 넘쳐흐르는 얼굴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모든 피조물이 나에게, ‘저의 영광이시여! 저의 영광이시여!’ 하고 말하는구나.”
12. 그러자 모든 성인들이, “보소서, 오, 주님, 저희는 모든 것을 대신하여 주님께 신적인 영광을 드립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대신하여 주님께 사랑과 영광을 드립니다!” 하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방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13.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행복하다. 모든 세대가 너를 행복하다 하리라. 나의 팔이 네 안에서 능력을 떨치며 일하리니, 너는 하느님의 반영이 되리라. 그리하여 온 땅을 채우면서 나로 하여금 모든 세대로부터 그들이 내게 주지 않는 영광을 받게 하리라.”
14. 이 말씀에 압도된 나는 당황한 나머지 글로 옮길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예수님은 그런 나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안 된다. 안 된다. 너는 써야 한다. 내가 원하니 말이다. 내가 말한 것은 내 뜻의 영예를 위해 쓰일 것이다. 내 뜻의 거룩함에 어울리는 정당한 경의를 나도 표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것은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
13권-32, 하느님 뜻 안의 성덕은 가장 탁월한 성덕이며
다른 모든 성덕의 생명이 될, 영원한 기적이다.
1921년 11월 12일
1. 오직 순명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그러지 않고서는 한 자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쓰지 않으면 다정하신 예수님을 슬프게 해 드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내게 원기와 힘을 주는 셈이랄까.
2.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신다. 조금 전에도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 안의 성덕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이미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게 되니 말이다.
3. 모든 성덕들은 창조된 세계 안의 어떤 사물로 상징되곤 한다. 산으로 상징되는 성덕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풀, 작은 꽃, 별로 상징되는 것들도 있고, 또는 다른 여러 비유로 표상되는 것들도 있다. 이 모든 성덕들은 각자에게 한정된 개별적인 선을 지니고 있으므로 시작과 끝이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을 포괄할 수도 모든 이에게 선을 베풀 수도 없다. 나무 한 그루나 꽃 한 송이가 그렇게 할 수 없듯이 말이다.
4. 내 뜻 안의 성덕은 태양으로 상징될 것이다. 태양은 내 영원한 빛에서 비롯된 빛으로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기에 그 시작이 있었지만,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어서 시작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5. 태양은 또 만인에게 혜택을 베푼다. 그 빛으로 모든 이에게 뻗어가며 단 한 사람도 제외하지 않는다. 장엄한 지배력으로 모든 사람을 다스리고, 더없이 작은 꽃에 이르기까지 만물에게 생명을 준다. 그러나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하게, 거의 주의를 끌지 않고 그렇게 한다.
6. 만일 한 식물이 태양의 작용 중 근소한 일부를 행하여 다른 식물에게 열을 준다면, ‘기적이다!’ 하고 외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모두 그 광경을 보고 싶어하고 놀라워하며 그 이야기들을 해댈 것이다.
7. 그렇다면 만물에게 생명과 열을 주는 태양은 끊임없이 기적을 행하는 셈이 아니냐?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거나 놀라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인간이 위로 눈을 들어 천상적인 것을 보기는커녕, 언제나 시선을 내리깔고 지상적인 것을 보기 때문이다.
8. 한데 태양으로 상징되는 내 뜻 안의 성덕은 바로 내 성덕의 중심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시작이 없는 내 성덕이 발할 빛살이기에, 그러한 영혼들은 내 성덕 안에서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고 또 존재할 것이다.
9. 그들은 내가 행한 선에 나와 함께 했고, 내가 그들은 빛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결코 내 뜻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과 함께 즐거워했고 여전히 즐거워하고 있다. 그들과 나의 결합은 영구적인 것이다.
10. 나는 그들이 만물 위에 높이 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지주가 없다.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높은 데서 살며 그 빛으로 만물을 자신 안에 싸안는 태양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처럼 그들도 높은 데서 살지만, 그 빛이 더없이 깊은 심연 밑바닥까지 내려가는가 하면 모든 사람에게 널리 미치기도 한다.
11. 내가 그런 이들을 각별히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또 그들로 하여금 내가 하는 일을 함께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그들을 속이는 기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란 선은 죄다 그들에게서 내려오는 것이다.
12. 나는 이 성덕 안에서 내 그림자들이, 내 모상들이 온 땅 위 공중에,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성덕이 메아리가 되어 땅에서 울려오고 내 광선들이 빛을 뿜어내면서 내게 완전한 영광을 주기를, 다른 피조물이 내게 주지 않은 사랑과 영예를 돌려주기를 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3. 하지만 그런 이들은 태양과 꼭 같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도 소란스럽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누가 그들을 주목하려고 들면 내 질투의 강렬한 빛에 소경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눈을 내리깔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 시력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14. 이제 내 뜻 안의 성덕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알겠느냐? 이 성덕은 너의 창조주와 가장 밀접한 성덕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탁월한 성덕이 될 것이고, 다른 모든 성덕들을 자신 안에 포함하면서 그 모두의 생명이 될 것이다.
15. 네가 그것을 아는 것은 여간 큰 은총이 아니다! 태양 광선처럼 내 성덕의 중심에서 분리되지 않고 맨 먼저 솟아나는 광선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너에게 이보다 더 큰 은총을 줄 수 있겠느냐? 이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네 안에 일으킬 수 있겠느냐?
16. 그러니, 내 딸아, 내 광선아, 주의를 기울여라.
왜냐하면 네가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활동할 때마다 태양이 유리판을 칠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수많은 태양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네가 내 생명을 거듭거듭 재현하며 증가시키고, 내 사랑에 새 생명을 주는 것이다.
17. 나중에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거룩하신 뜻 안에서는, 사람들이 몹시도 갈망하며 세상 반 바퀴를 돌아서라도 찾아 얻고 싶어하는 기적이나 놀라운 일들은 볼 수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영혼과 하느님 사이를 오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은혜를 입어도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정말이지 이건 태양과 같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건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말이다.’
18.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위엄 있는 어조로 말씀을 이으셨다.
“기적? 무슨 기적? 내 뜻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 아니냐? 내 뜻이 영원하니, 이 기적도 영원하다.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지속적인 친교를 맺는 매순간의 기적이다.
19. 죽은 사람을 되살리거나 소경을 보게 하는 것 따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사라질 것들이다. 내 뜻 안에서 사는 기적에 비하면 기적의 그림자요, 덧없는 기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그런 기적들에 관심을 두지 마라. 그것이 언제 적절하고 필요한지는 내가 알고 있다.”
13권-33, 죄는 인간을 묶는 사슬이다.
이 사슬을 끊으시려고 예수님은 수난 동안 자원해서 사슬에 묶여 계셨다.
1921년 11월 16일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손발이며 온몸이 꽁꽁 묶이신 상태로 나타나셨다. 이중의 사슬이 목부터 칭칭 감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분의 거룩하신 몸이 그토록 단단하게 묶여 옴짝도 하실 수 없었으니, 그 가혹한 모습에 돌덩이처럼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2. 그때 내 지고한 선이신 그분께서 입을 여셨다. “딸아, 내 수난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모든 고통들은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도 이것이 저것으로 교체되곤 하였다. 흡사 보초들처럼 내게 가장 고약하게 굴고 또 누구보다도 더 잘한 것에 대해 우쭐거리려고 교대로 동정을 살피는 식이었다.
3. 하지만 밧줄은 내게서 치워진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붙잡힌 순간부터 갈바리아산을 오를 때까지 줄곧 나를 묶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밧줄과 쇠사슬을 점점 더 보태기도 하였다. 내가 달아날까 두려워서, 또 나를 더 많이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 사슬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곤혹과 치욕을 겪게 하며 얼마나 자주 넘어지게 하던지!
4. 그러나 이 사슬들 안에 큰 신비가, 위대한 속죄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라. 사람이 죄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자신의 죄라는 줄에 묶이게 된다. 대죄일 경우에는 쇠사슬에, 소죄이면 밧줄에 묶이는 것이다.
5. 그러므로 선 안에서 걸으려고 하면 사슬이 거치적거리는 느낌이 들고 발걸음이 거북해진다. 이 거북함 때문에 그는 지치고 쇠약해져서 다시 죄로 이끌리고 만다. 일을 하려고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는 통에 마치 선을 행할 손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속박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격정들이 반색을 하며 ‘승리는 이제 우리 것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왕의 신분에서 끌어내려 그 사나운 격정들의 노예로 만든다.
6. 죄 중에 있는 인간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나는 그 사슬들을 끊어 주려고 자원해서 묶였고, 언제라도 끊을 태세로 있으려고 계속 묶여 있었다. 그러므로 얻어맞고 떼밀려 넘어질 때마다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치곤 했으니, 사슬을 끊어 다시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7.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가엽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수님께 당신 사슬을 그들의 사슬에 갖다 대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분의 사슬에 닿는 순간, 피조물의 모든 사슬들이 산산조각이 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13권-34, 겟세마니의 예수님 - 그 고뇌와 두 사람의 지주.
진리를 아는 데 필요한 내적 자세.
진리의 단순성.
1921년 11월 19일
1. 겟세마니에서 고뇌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면서 그분을 가슴에 붙안고 그 치명적인 식은땀을 애서 닦아내고 있었는데, 고통에 잠기신 그분께서 숨을 거두시려는 듯 쇠잔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이 정원에서 겪은 고뇌는 여간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십자가 위에서의 임종 고통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십자가 고통은 모든 것은 이루고 이긴 것인 반면, 여기 정원에서는 고통이 시작되고 있었고, 고통은 원래 그 끝 무렵보다 시작될 때 더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3. 그 가운데서도 가장 뼈아픈 고통의 순간은 모든 죄들이 차례차례 내 앞으로 오고 있을 때였다. 내 인성이 그 모든 죄의 극단적인 흉악성을 사무치도록 절감하고 있었으니, 각각의 죄가 ‘하느님에게 죽음을!’ 이라는 각인을 지니고 있었고 저마다 칼로 무장한 채 나를 죽이려고 드는 것이었다.
4. 하느님의 신성 앞에 있는 죄는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운 것이기에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끔찍하게 보였던 것이다. 죄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렇게 절감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실제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5. 아버지께 울부짖었지만 그분은 내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내가 죽지 않도록 도와줄 사람도 거기에는 없었다. 큰 소리로 모든 피조물을 부르며 나를 측은히 여겨 달라고 외쳤으나 허탕이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은 기력이 쇠하여 막 마지막 치명타를 받아들일 판이었다.
6. 그러나 누가 그 처형을 막아 내 인성을 죽음에서 지켜 주었는지 알겠느냐? 우선은 내 엄마,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엄마가 계셨다.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곁으로 날아오셔서 나를 지탱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그분께 내 오른팔을 기댔다. 거의 죽어가면서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 안에 내 뜻의 무한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있었고, 나의 뜻과 그분의 뜻 사이에는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었다.
7. 내 뜻은 생명이다. 아버지의 뜻이 확고부동해서 죽음이 피조물로부터 내게 닥쳐오고 있었지만, 내 뜻의 생명을 지닌 또 다른 피조물이 나에게 생명을 주었던 것이다. 이 피조물이 내 엄마이시니, 내 뜻의 놀라운 기적으로 나를 잉태하여 시간 속에 낳아 주신 그분께서 여기서도 내게 두 번째로 생명을 주시어 구원 사업을 완수하게 하신 것이다.
8. 그런 다음 나는 내 왼쪽에 있는 ‘내 뜻의 작은 딸’을 보았다. 너를 선두로 내 뜻의 다른 딸들이 뒤를 잇고 있었다.
9. 내가 바란 것은 내 엄마를 나와 함께 자비의 첫 고리가 되시게 하여 이를 통해 우리가 모든 피조물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이엇고, 그래서 내 오른팔을 그분께 기대고자 하였다. 그리고 너를 내 정의의 첫 고리로 삼아 모든 피조물이 받아 마땅한 징벌을 만류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왼팔을 너에게 기대고자 하였다. 네가 나와 함께 정의의 팔을 떠받치고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10. 이 두 지주로 하여 나는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던 것처럼 꿋꿋한 걸음으로 내 원수들을 만나러 갔다. 수난의 전 과정 동안 내게 죽음을 줄 수 있는 고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 두 사람은 그들이 지닌 나 자신의 뜻으로 나를 지탱했으니, 마치 생명의 물을 모금모금 자주 마시게 하는 것 같았다.
11. 오, 내 뜻의 경이로운 일들이여! 누가 이들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이것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내가 무척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 사람 안에서 나의 모상을, 내 고귀한 얼굴을 보고, 나 자신의 숨결과 목소리를 느끼는 것이다.
12. 내가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격이 될 것이다. 또한 후손도 궁정 조신들의 행렬도 자녀들이라는 왕관도 없는 아버지와 같을 것이다. 이처럼 후손도 궁정도 왕관도 없다면,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왕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13. 내 나라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나라에서 어머니와 여왕과 자녀들과 조신들과 군대 및 백성을 선정한다. 내가 그들의 모든 것이 되고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14. 그 후 예수님의 말씀을 생가하면서, ‘한데 이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하셨다.
15. “딸아, 진리를 알려면 그것을 알고자 하는 원의와 열망이 있어야 한다. 덧문이 닫힌 방을 생각해 보아라. 밖에 햇빛이 아무리 쨍쨍해도 방 안은 내내 어둡다. 그러니 덧문을 여는 것은 빛을 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빛을 활용하여 방을 다시 정돈하고 먼지를 털어내며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받은 빛을 허비하고, 따라서 입은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셈이 된다.
16. 이와 같이 사람도 진리를 알고자 하는 원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일 진리의 빛이 그를 비출 때 자기의 결점이라는 먼지를 털어내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게 된 그 빛에 따라 자신을 다시 정돈하고 그 빛과 함께 일하면서 이를 자신의 본질로 삼으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흡수한 진리의 빛이 그의 입과 손과 행동거지에서 발산될 수 없다.
17. 그러면 진리를 헛되이 소모하는 격이요,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음으로써 온통 뒤죽박죽인 상태를 환한 빛 앞에 노출시키는 격이 될 것이다. 빛이 가득하건만 물건들이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방에 있는 사람이 정돈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그 방이 얼마나 을씨년스럽게 보이겠느냐? 진리를 알면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도 그와 같다.
18. 하지만 너는, 모든 진리들 속에 들어오는 첫 음식은 단순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가 단순하지 않으면 빛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정신 안으로 뚫고 들어와 그것을 조명할 수 없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사물이 식별되지 않는다.
19. 단순성은 빛일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숨 쉬는 공기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숨쉬게 하는 것이다. 만약 공기가 없다면 이 땅도 사람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그런즉 단순성이라는 특질이 비어 있는 미덕이나 진리는 빛도 공기도 없기 마련이다.”
13권-35,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해진 행위는 빛이 된다.
수난 중이신 예수님을 가장 괴롭힌 고통.
1921년 11월 22일
1. 평소와 같이 지내던 중 지난밤은 거의 뜬눈으로 새었다. 감옥에 갇히신 예수님께로 생각이 자꾸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모습을 드러내셨지만 워낙 칠흑 같은 어둠 속이어서, 그 가뿐 숨소리와 내 손의 감촉으로 거기 계심을 느꼈을 뿐 눈으로 뵐 수는 없었다.
2.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에 녹아들어, 늘 하는 대로 애써 연민을 표하며 보속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해보다 더 밝은 빛 한 줄기가 나의 내면에서 솟아 나오더니 예수님의 얼굴에 반사되었다. 그분의 거룩하신 얼굴이 그 빛으로 환하게 빛났고, 날이 샐 녘처럼 어둠이 싹 걷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분의 무릎께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3.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수행된 행위는 내게 광명이 된다. 죄 중에 있는 사람은 나를 암흑으로 둘러싸지만, 햇살보다 더 밝은 이 행위들은 나를 암흑에서 지켜 주고, 빛으로 에워싸며, 내 손의 도움으로 피조물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린다.
4. 그런 이유로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그가 내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지기에, 다른 모든 사람에게 줄 좋은 것들을 전부 그 안에 넣어 준다.
5. 태양에게 이성이 있고 초목들에게도 이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아라. 모든 초목이 그들 자신의 의지로 태양의 빛과 열을 거부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것도 열매를 맺는 것도 싫어하는데, 오직 하나의 식물만은 애정을 가지고 태양 빛을 받으며 자라나, 다른 초목들이 맺으려고 들지 않는 결실을 내어 그 전부를 태양에게 주고 싶어 한다고 하자.
6. 태양이 다른 초목들에게 줄 빛을 거두어, 바로 그 식물에게 자신의 빛과 열을 전부 쏟아 붓는 것이 공정한 처사가 아니겠느냐?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이 없는 태양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이 영혼과 나 사이에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7. 그 말씀 끝에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으나, 다시 오셔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8. “딸아, 수난 중의 나를 가장 심하게 꿰찌른 고통은 바리사이들의 겉꾸민 태도였다. 그들은 의로운 체했지만 가장 불의한 자들이었고, 거룩하고 규정을 잘 지키며 질서정연한 체했지만, 더없이 삿되고 규정을 어기며 무질서하고 짝이 없는 자들이었다. 또한 하느님을 공경하는 체할 때에도 자기 자신과 사욕과 제 안락을 떠받드는 자들이었다.
9. 그러므로 빛이 그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의 겉꾸민 태도가 빛에로 나 있는 문을 닫아걸고 있었고, 그 허위가 이중 잠금장치로 그들을 죽음 속에 가두며 몇 가닥 희미한 빛살마저 철저히 차단하는 자물쇠였던 것이다. 우상 숭배자인 빌라도가 바리사이들보다 더 많은 빛을 보았을 지경이니, 빌라도의 모든 언행은 위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공포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0. 나는 거짓으로 착한 이들보다는 더없이 타락한 죄인이라도 거짓은 없는 이들에게 마음이 더 끌림을 느낀다. 오, 겉으로는 선행을 하며 착한 체하고 기도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악과 사욕을 키우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진저리가 나는지!
11. 그런 자는 입술로 기도하면서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선행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욕을 채울지 궁리한다. 이처럼 거짓된 겉치레로 선을 행하고 말하는 사람은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걸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줄 수 없다.
12. 그런 사람은, 선의 탈을 쓰고 번번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악령들의 화신이 되어 활동한다. 사람들은 그 선을 보고 혹하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순간 더 큰 죄에 떨어지고 만다. 오, 그러니 선의 탈을 쓴 것보다는 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유혹이 얼마나 더 안전한지 모른다!
13. 마찬가지로, 거짓으로 착한 사람들보다는 타락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 위선자들은 너무나 많은 독을 숨기고 있으니, 너무나 많은 영혼들을 독살하지 않겠느냐? 겉꾸민 위선이 없고 모든 이가 있는 그대로 알려진다면, 땅의 표면에서 악의 뿌리가 제거되고 모두가 그릇된 망상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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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책 (13권-36-40) 하느님 뜻의 내재는 성체 기적을 능가하는 기적/하느님의 뜻 사업은 신적 거룩함을 입게 하는 성화 사업 (0) | 2015.05.17 |
천상의책 (13권-26-30)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이를 읽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0) | 2015.05.13 |
천상의책 (13권-21-25) 만인에게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내주시며 또 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0) | 2015.05.09 |
천상의책 (13권-16-20) 하느님 뜻 안의 행위를 거듭할수록 지혜와 성덕 등이 점점 더 자라난다. (0) | 2015.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