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1-15권

천상의책 (13권-16-20) 하느님 뜻 안의 행위를 거듭할수록 지혜와 성덕 등이 점점 더 자라난다.

Skyblue fiat 2015. 5. 9. 08:46

 

13권-16,  예수님의 뜻이 당신 인성 안에서 행하신 일.

이를 알려 주시는 것은 새로운 세대를 당신 뜻의 상속자로,

당신 뜻이 지닌 효과와 가치의 상속자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1921년 9월 6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 온 존재로 녹아들면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의 사랑이시여, 제가 당신 뜻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당신 정신의 모든 생각과 피조물의 모든 생각들을 봅니다.

 

2. 저는 제 생각과 제 모든 형제들의 생각으로 당신 생각을 에워싼 다음 모두를 연결하여 하나로 만듭니다. 바로 당신 지성의 공경과 흠숭과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당신께 드리려는 것입니다.

 

3. 내가 그러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더니 우뚝 서신 채,

“내 뜻의 떨어질 수 없는 딸아, 내 인성이 내 뜻 안에서 행했던 바를 거듭하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기쁘구나! 내 생각으로 너의 생각들에 입 맞추고, 내 말로 너의 말에, 내 심장 박동으로 너의 심장 박동에 입 맞춰 주마.” 하시고는 입맞춤으로 나를 온통 덮으셨다.

 

4. 그때 나는, “제 생명이시여, 당신께서는 당신 뜻이 효과를 하나 더 드러내실 때마다 아주 즐거워하시며 축제 기분에 젖곤 하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5. “내가 내 뜻에 대한 진리를 너에게 하나 더 드러낼 때마다 이것이 너와 나 사이에 맺는 또 하나의 유대요, 온 인류 가족과의 유대라는 사실을 알아 두어라. 그것은 더욱 큰 일이요, 더욱 긴밀한 결합의 끈이며, 내 유산의 공유이다.

 

6. 나는 그 진리들을 드러내면서 증여 문서를 작성하는 셈이니, 내 자녀들이 이 유산을 나누어 가지며 더욱 부요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며 축제 기분에 젖는 것이다.

 

7. 자녀들 모르게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한 아버지가 있다고 하자. 그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 자녀들은 그토록 부유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이러이러한 농지가 자기 것이라고 나날이 일러 주곤 한다.

 

8. 자녀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더 돈독한 애정의 유대로 아버지와 밀착된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그들을 위해 또 더 큰 선물을 미리 마련해 두고 말한다. ‘저러저러한 지역이 내 것이란다.....’그런 다음 다시, ‘아무아무 왕토가 내 것이란다.....’ 한다.

 

9. 자녀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단지 기뻐할 뿐만 아니라 이런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기네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기 재산의 소재를 자녀들에게 알려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상속자로 지정하기도 한다.

 

10. 그와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 지금까지 나는 내 인성이 행한 일과 그 덕행과 고통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인류 가족을 내 인성이 지닌 재산의 상속자로 지정하기 위함이었다.

 

11.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 뜻이 내 인성 안에서 행한 일을 알려 주려고 한다.

새로운 세대를 내 뜻의 상속자로, 내 뜻이 지닌 효과와 가치의 상속자로 지정하기 위함이다.

 

12. 그러므로 너는 유의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 내 뜻의 효과와 가치 중 하나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이 재산들에 대한 충실한 보고자가 될 수 있고, 내 뜻과의 결합에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나 첫째 고리가 될 수 있다.”

 

 

 

13권-17,  하느님 뜻 안의 행위를 거듭할수록 지혜와 성덕 등이 점점 더 자라난다.

1921년 9월 14일

 

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동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영혼은 내 뜻 안에서의 행위를 할 때마다 내 눈앞에서 점점 더 지혜와 선성과 능력과 아름다움이 자란다. 내 뜻 안에서의 행위를 거듭함에 따라 지혜와 선성 따위를 한 입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혼은 자기가 먹는 이 음식으로 자라는 것이다.

 

3. 거룩한 복음서에 내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지혜가 자랐다.’(루카 2,52)고 적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이니 자라거나 줄어들 수 없는 존재이다. 나의 자람은 다만 내 인성을 두고 하는 말이니, 이 인성이 나이가 듦에 따라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 안에서의 행위를 더욱 많이 하게 되었고, 하나의 행위를 더할 때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지혜가 더 자랐던 것이다.

 

4. 나의 이 자람은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엄연한 사실이었으니, 나의 각 행위가 하느님 뜻의 무변광대한 바다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활동하면서 이 천상 양식을 먹었던 것이다.

 

5. 하지만 나의 인성이 하나의 행위를 더할 때마다 섭취한 지혜와 선성과 아름다움과 능력의 바다들에 대해 너에게 다 말하자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6. 그와 같은 일이 영혼에게도 일어난다. 딸아, 내 뜻 안에서는 성덕이 순간마다 자란다. 여기에서는 그 자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없고, 영혼이 내 뜻의 무변광대한 바다 속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7. 극히 범상한 것도, 이를테면 잠이며 음식이며 작업 따위도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내 뜻의 대행자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가 내 뜻 안에 들어올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 하지만 제(諸) 덕행들은 그렇지 않다. 덕행을 닦고자 해도 흔히 그 기회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혼이 순명이라는 덕을 닦으려고 하면 그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몇 날 몇 주가 지나도 그가 복종하도록 새 명령을 주는 사람이 없을 수 있고, 그러면 순명하고 싶은 선의를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순명이 하릴없이 빈둥빈둥 놀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9. 인내와 겸손 및 다른 모든 덕행들도 그렇다. 이들은 다 이 아래 세상의 덕행들이니 수덕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10. 반면에 나의 뜻은 천상적 덕행이다. 그러니 영혼이 매순간 지속적인 수덕 상태에 있도록 하는 일은 나 혼자만으로도 너끈하다. 내 뜻 안에서 덕을 닦게 하려고 밤낮으로 그를 저 위 높은 곳에 있게 하는 것 -  이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3권-18,  헤로데의 조롱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영혼이 당신 뜻 안에 녹아들기를 기다리시는 까닭

1921년 9월 16일

 

1. ‘수난의 시간들’ 중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관저에서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는 ‘시간’을 묵상하고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모습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조롱과 야유도받았는데, 사람들은 지금도 내게 이 고통들을 주고 있다. 심지어 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조롱에 둘러싸여 있기도 한다.

 

3. 어떤 사람이 고해성사를 받고 내게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뒤엎어 버린다면 나를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신앙 고백과 설교와 성사 집전을 하는 사제가 자기가 하는 말과 집전하는 성사들의 품위에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의 말이나 성사 집전의 횟수와 같은 수만큼 나를 놀리는 것이다.

 

4. 나는 성사들을 통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건만 그들은 내게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다.

성사들을 모독함으로써 미친 사람처럼 내게 입힐 옷을 마련하는 것이다.

 

5. 장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손아래 사람들에게는 희생과 덕행과 기도와 무사 무욕을 명하면서도 자기들은 안락과 악습과 이해타산에 젖은 생활을 한다면, 그만큼 많은 수로 나를 놀리는 것이다.

 

6. 일반 지도자건 교회 지도자건 법의 준수를 요구하면서도 그들 자신이 첫째가는 위반자가 된다면 나를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7. 오! 내가 얼마나 숱한 우롱을 당하고 있는지! 어찌나 많은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특히 선의 탈을 쓰고 저질러지는 악의 독을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들은 내가 마치 심심풀이 노리개나 되는 듯 수도 없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8. 그러나 조만간 정의가 그들을 호되게 벌하며 놀릴 것이다. 너는 기도하면서 이 조롱들을 보속하여라. 이것이 너무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알리지도 못하게 하니 말이다.”

 

9. 나중에 내가 하느님 뜻 안에 온전히 녹아들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내 뜻의 더없이 소중한 딸아, 나는 네가 내 뜻 안에 녹아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내 뜻 안에서 생각했던 것과 같이 너의 생각들도 내 뜻의 거푸집에 부어 만들어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을 네가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나의 활동과 같이 너의 활동도 내 뜻 안에 넣어 주조(鑄造)했으며, 다른 모든 것도 그렇게 했다는 것을.

 

11. 그런데 그것은 무엇이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 안에서 너를 기다린다. 네가 와서 내 인성이 너를 위해 마련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고, 나의 행위를 따라 너도 네 행위를 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몸소 행한 바를 네가 행하는 것을 볼 때, 그때라야 비로소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완전한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13권-19, 하느님은 어떤이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가?

‘가톨릭’임을 표방하면서 교회의 원수가 될 정당.

죄악의 어둠을 구원의 영원한 빛으로 바꾼 고통의 신비.

1921년 9월 21일 

  

1. 평소와 같이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게 하는지 모른다!

나는 자녀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아주 부유한 아버지와 같다. 한데 자녀들은 얼마나 은혜를 모르는지!

 

2. 아버지는 옷을 입혀 주려고 하건만 그들은 아버지의 옷을 팽개치고 벌거숭이로 지낸다. 아버지가 먹을 것을 주어도 그들은 먹기를 거부하고, 뭐라도 먹을라치면 더럽고 고약한 것을 먹는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재산을 주고 곁에 데리고 있고 싶어서 그 자신의 저택을 주기도 하지만, 자녀들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집도 없이 가난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에 만족한다.

 

3. 이 딱한 아버지는 얼마나 슬프겠느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겠느냐? 차라리 줄 것이 하나도 없다면 덜 불행하련마는,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쓰지를 못하는 한편 자식들이 죽어가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슬픔을 능가하는 슬픔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4. 내가 그렇다. 주고 싶은데 받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사람들로 인해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슬퍼하는 것이다.

 

5. 하지만, 너는 아느냐, 누가 나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지를?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랑과 자녀다운 신뢰로 내 부를 가지는 사람, 나의 식탁에서 먹고 내 옷을 입는 사람이다.

 

6. 나는 그런 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준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이요, 내 품에 안겨 쉬게 하는 이들이다.

 

7.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밖에 나가 있었으므로 여러 정당들 사이에 새로운 변혁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보다 큰 분쟁의 원인이 될 터이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8. “딸아, 정당들이 결성되지 않으면 실제적인 변혁 사건들, 특히 대적하는 사건들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당이란 것이 없으면 싸울 거리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9. 하지만 이 정당 - 표면적으로는 ‘가톨릭’임을 표방하는 정당 - 에 속한 상당수의 사람은 사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어서 교회에  많은 고통을 끼칠 것이다. 이 정당 덕분에 천주교 신앙이 수호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겠지만 속사정은 정반대일 터, 원수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이 종교를 더 심하게 매도할 것이다.”

 

10.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와 보니 마침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감옥에서 나오셔서 카야파 앞으로 재차 끌려가시는 ‘시간’이었다. 나는 애써 이 (고통의) 신비를 예수님과 함께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내가 카야파에게 끌여갔을 때는 날이 완전히 밝은 아침나절이었다. 인간에 대한 내 사랑이 하도 컸기에 내 생애의 마지막 날 온통 상처투성이인 흉한 얼굴로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그 대사제 앞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선고는 내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르게 했는지!

 

12. 나는 이 고통들을 영원히 밝은 낮으로 바꾸어 각 인간을 에워싸게 하였다. 그들에게서 어둠을 몰아냄으로써 각자가 구원에 필요한 빛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고, 또한 나의 사형 선고도 십분 활용하여 거기에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겪은 각각의 고통과 행한 선 하나하나가 제각기 내가 인간에게 준 또 하나의 낮이곤 하였다.

 

13. 그러나 피조물이 행하는 선 역시 언제나 그들이 이루는 낮이다. 악이 언제나 밤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이 빛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 근처에 있는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도 비추임을 받는다. 빛이 다른 사람들 것이 아니고 한 사람 것인데도 그 모두가 빛을 누리기에, 일을 하거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빛을 누리는 이들은 이를 소유한 사람에게 어떤 해(害)도 끼치지 않는다.

 

14. 선행도 그렇다. 이는 한 영혼에게 밝은 낮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영혼으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낮의 빛이 될 수 있다. 선한 것은 항상 전파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사랑은 나만을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그들이 행하는 선행만큼 많은 낮을 그들의 형제들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은총을 주었던 것이다.”

 

 

13권-20,  예수님은 빛이시다. 만물의 생명이 되는 빛이시다.

바다에서 사는 사람과 땅에서 사는 사람의 비유.

1921년 9월 28일

 

1. 보통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곁에 나타나셨다. 그런데 그분의 심장이 온통 불꽃처럼 타고 있었고, 고동칠 때마다 거기에서 한 줄기 빛이 솟아나곤 하였다. 이 빛살들이 나를 완전히 휩싼 채 모든 조물위로 퍼져 가고 있었다. 놀라움에 잠긴 나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영원한 빛이다. 내게서 나오는 모든 것도 빛이다. 그러므로 나의 심장 박동만 빛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숨과 말과 걸음 하나하나가, 또 내 피가 방울방울마다 빛을 뿜어낸다.

 

3. 이 빛이 모든 사람 가운데로 퍼져 가면서 그들 각자의 생명이 된다. 나 자신의 빛으로부터 받는 그들의 작은 빛을 돌려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죄가 그들의 행위를 어둠으로 바꾼다.

 

4. 딸아, 나는 인간을 매우 사랑하기에 내 숨 안에 잉태하여 내 무릎 위에 낳는다. 내 품에서 쉬게 하여 안전하게 지켜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은 내게서 달아난다. 내 숨과 무릎은 그 안에 인간이 없어진 것을 느끼고 지치도록 기다리며 또 사방으로 찾아다닌다. 다시금 나와 함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아! 인간이 나를 얼마나 깊은 사랑과 고통의 질곡에 빠지게 하는지!”

 

5. 그 후 어떤 사람이 겸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에게는 이 덕행이 없을 뿐더러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걱정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6. “딸아,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너를 바다에서 길렀다. 바다에 사는 사람은 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물고기에게 땅이 어떻게 생겼으며 땅의 열매나 식물이나 꽃은 어떠한지를 묻는다면, 그리고 이 물고기에게 이성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7. ‘우리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삽니다. 물이 우리를 먹여 살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 빠지면 죽기 십상이지만 우리는 앞뒤로 날렵하게 움직이며 물에서 생명을 받습니다.

 

8. 이 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혈관 속의 피를 얼어붙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온기를 줍니다. 바다가 우리의 전부입니다. 우리의 방이 되기도 하고 침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닙니다. 양식을 구하는 일로 지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우리만이 행운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요.

 

9.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땅이 아니라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뿐입니다. 물에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10. 그러나 만약 새들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식물을 압니다. 큰 나무들의 높이와 꽃과 열매들을 압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먹고살 열매를 얻기 위해서 또 냉해나 비 피해를 입지 않게 보존할 은닉처를 찾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11. 바다의 비유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땅의 비유는 수덕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따라서 네가 내 뜻 안에서 산다면 무슨 일에서나 내 뜻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12. 물이 물고기에게 양식과 온기와 방과 침상 및 다른 모든 것 노릇을 하며 여러 모로 소용된다면, 하물며 내 뜻이어야 더욱 많이, 더욱 경탄할 모양으로 그렇게 해 주지 않겠느냐?

 

13. 더욱이 내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더할 수 없이 영웅적이고 신적인 단계에 이른다. 내 뜻이 일체를 빨아들여 그 자신 안에 녹이기에, 영혼이 내 뜻 안에 흡수된 상태로 내 뜻을 먹고살며 내 뜻 안에서 걸어 다닌다. 그는 오직 내 뜻만을 알 따름이다. 무슨 일에서나 그에게는 내 뜻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14.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영혼만이 빵을 빌러 다닐 필요가 없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빌러 다닐 필요가 없다. 내 뜻의 물이 그의 좌우상하에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힘을 원하면 얻고, 자고 싶으면 몸을 누일 포근포근한 침상이 있고.....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