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156~p166
170. 산상 설교. 진복팔단(the beatitudes)(제1부)
1945. 5. 24.
예수께서는 사도들 각자에게 담당구역을 배정하여 그들이 군중을 인도하고 보살피게 하시기 위하여 말씀하신다. 군중은 아침 일찍부터 올라오는데, 병자를 안거나 들것에 실어서 데려오기도 하고, 어떤 병자들은 목발을 짚고 어렵게 올라오기도 한다. 그들 중에 스테파노와 헤르마도 있다.
공기는 맑고 다소 쌀쌀하다. 그러나 햇볕이 맑은 산 공기를 금방 온화하게 만드는데, 산 공기가 깨끗하고 서늘하지만 너무 춥지는 않을 정도여서 태양의 열기를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오히려 쾌적하게 된다.
사람들은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작은 골짜기에 널려 있는 돌들 위에 앉고, 어떤 사람들은 맨바닥에 앉으려고 이슬에 젖은 풀이 햇볕에 마르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팔레스티나의 전역에서 온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중이다.
사도들은 군중 속에 섞여 있는데, 풀밭과 벌통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벌들처럼 그분께 보고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며, 선생님이 가까이에서 그들을 보아주시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가끔씩 그분 가까이로 돌아온다.
예수께서는 작은 골짜기 바닥에 있는 풀밭보다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암벽에 기댄 채 말씀을 시작하신다.
“내가 일 년 동안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늘이 무엇인지, 나라(Kingdom)가 무엇인지, 하느님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왜냐하면 저희의 생각들은 모호하니까요. 저희는 느님과 천사들이 있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인들에게 하늘이 닫혀 있으니까요.’
그들은 나에게 나라가 무엇이고, 하느님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라가 무엇이고,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에게 설명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내 생각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나라에 관해서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일어난 많은 생각들과 충돌하는 진리를 여러분에게 받아들이게 하기가 어렵고, 하느님에 관해서는 그분의 본성의 숭고함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애써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도 했습니다. ‘좋습니다. 그것이 나라이고, 그분께서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떻게 그것들을 얻습니까?’ 여기서 나는 다시 시나이 산의 율법의 참다운 영을 여러분에게 참을성 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영으로 사는 사람이 하늘을 소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시나이 산의 율법을 설명하려면, 복종하는 신자들에게는 축복을 약속하지만,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벌과 저주로 위협하는 입법자(the Lawgiver)와 그분의 예언자의 천둥소리를 여러분에게 듣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나이 산의 공현(the Epiphany of Sinai)은 무서운 것이었고, 그 공포는 율법 전체에 반영되어 있으며, 모든 시대와 모든 영혼들에게 반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입법자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기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무한히 선하신 아버지십니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여러분의 영혼은 올라가 하느님의 완전들 특히 그분의 선하심(Goodness)을 관조할 만한 위치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선(goodness)과 사랑은 사람들에게 가장 희귀한 성덕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영혼들이 원죄로 인하여, 격정들로 인하여, 여러분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여러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여러분의 영혼을 닫고, 본죄는 영혼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착함! 증오도 질투도 교만도 없는 착함은 얼마나 달콤한지! 사랑하기 위해서만 바라보는 눈, 사랑의 몸짓을 하기 위해서만 내미는 손, 사랑의 말만을 하는 입술을 가진다는 것, 특히 사랑만이 가득 차 있어 눈과 손과 입술로 하여금 사랑의 행위를 하도록 종용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여러분 중에서 가장 유식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아담 자신과 그의 후손들을 위하여 그에게 어떤 선물들을 주어 그를 부유하게 해주셨는지를 압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 중 가장 무식한 사람들도 우리 안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불쌍한 이교도들만이 이 왕이신 손님(royal guest), 우리 육체를 거룩하게 하고 우리 육체에게 생명을 주는 이 생명의 숨결, 하늘의 빛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유식한 사람들은 어떤 선물들이 사람과 사람의 영혼에게 주어졌는지를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약간의 진흙과 그분의 입김으로 만들어내신 인간의 살과 피에게보다 영혼에게 덜 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름다움과 진실성(integrity), 지성과 의지력(will power),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과 같은 자연적인 선물을 주셨던 것처럼 정신적인 선물들(moral gifts)을 주셨으며, 감각들(senses)이 이성에게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관능과 격정의 악한 속박은 아담 자신과, 하느님께서 그에게 선물로 주신 의지의 자유와 통제력에 스며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탄이 이빨로 물어 퍼뜨린 독이 흘러넘쳐 여러분을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에서 끌어내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감각의 열병이 부글거리는 점액질의 땅과 퇴폐적인 습지로 이끌어가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여러분을 노예들로 만들지 않고, 사랑하고, 바라고, 정의 안에서 즐기는 데 있어 자유로웠습니다. 여러분은 생각의 욕망도 관능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초자연적인 선물인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 천상적인 운명, 하느님을 뵙는 은총(the vision of God)을 받았습니다.
성화은총. 그것은 영혼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령한 영혼 안에 들어 있는 가장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을 만드는 은총인데, 그것이 우리를 죄의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은 사람은 아버지의 집, 천국, 내 나라, 하늘에서 ‘살게’ 됩니다.
거룩하게 하고, 생명과 하늘나라를 주는 이 은총은 무엇입니까? 오!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은총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은총은 하느님입니다. 그분께서 완전하게 창조하신 인간 안에서 그분 자신에 대하여 감탄하시며 그분 자신을 사랑하시고, 그분 자신을 관조하시고(contemplate), 그분 자신을 갈망하시며, 그분의 것을 그분 자신에게 주어 그것을 늘리시고, 그 증식을 기뻐하시며, 또 다른 그분 자신이신 많은 사람들 안에 계시는 그분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오! 내 자녀들이여! 하느님에게서 그분의 이 권리를 빼앗지 마시오! 하느님의 것을 그분에게서 빼앗지 마시오! 하느님의 갈망을 실망시키지 마시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인하여 행동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여러분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무한한 분이실 것이고, 그분의 능력도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비록 그분의 무한한 측량할 수 없는 척도 안에서 완전하시지만, 그분을 위해서나 그분 안에서 무언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그분께서는 이미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그분의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늘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피조세계 안의 모든 이성적 존재들을 위하여 그분의 사랑을 늘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분의 은총 즉 사랑을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자신 안에 그 사랑을 품고, 성인들의 완전에 이르러, 하느님께서 그분의 은총과 함께 여러분에게 주신 보물로부터 취하여 여러분의 성인다운 영웅적인 삶의 모든 행위들로 인하여 증가된 이 보물을 그분께서 계시는 무한한 대양 즉 하늘에 쏟아 붓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성한 사랑의 저수지(divine reservoirs of Love)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에는 죽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영원하시듯이 여러분도 하느님처럼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존재할 것이고, 여러분의 존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들의 공로로 부유하게 되어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와 여러분에게 많은 자양분을 주는 거룩한 영혼들처럼 여러분은 죽지 않기(immortal)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살고 영적인 자양분을 섭취하며(nourish), 살고 부유해지며(enrich), 살아 계시고 지극히 완전하신 영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어머니 젖을 먹는 갓난아이에 이르기까지의 영들의 친교(the Communion of spirits)라는 가장 거룩한 것을 형성합니다.
유식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비난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지 마시오. ‘저 사람은 미쳤고, 거짓말쟁이다! 저 사람은 죄가 우리에게서 은총을 없애버렸는데, 우리 안에 은총이 있다고 어리석게 말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우리가 이미 하느님과 일치해 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예, 죄도 있고, 분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주의 능력 앞에서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잔인한 분리인 죄는 새 삼손에 의하여 흔들렸던 벽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 벽을 붙잡아 흔들고 있는데, 그 벽은 지금 무너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내 능력을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에게서 수많은 먹이들이 빠져나가는 알고 있고, 사람을 죄로 끌어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분노와 무력감으로 몸을 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통하여 여러분을 내 아버지께로 데려가게 될 때 여러분은 내 피와 고통으로 깨끗하고 강하게 될 것이고, 은총이 활기차고 강력하게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이고, 여러분이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생각이나 여러분의 성화를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여러분에게 돌려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사탄의 제국에게 빼앗긴 자유를 여러분에게 되돌려주십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지옥의 멍에를 지거나 천사의 날개를 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형제로서 여러분을 인도하고, 불멸의 양식으로 여러분을 먹이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시나이 산의 엄격한 길보다 더 쉬운 다른 길로 가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위협의 관점이 아닌 사랑의 관점에서 봅시다. 죄짓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죄짓지 않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며 ‘만일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 하고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합시다. ‘만일 내가 이것을 한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리고 초자연적인 기쁨의 충동으로 행복에 가득 차 마치 가시덤불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듯이 율법의 준수에서 오는 이 진복들을 향하여 기쁘게 전진합시다.
‘만일 내가 영 안에서 가난하다면(if I am poor in spirit),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하늘나라가 내 것일 터이니!
만일 내가 온유하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나는 상속재산으로 이 땅을 소유할 터이니!
만일 내가 거역하지 않고 울 수 있다면(if I mourn without rebelling),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나는 위로받을 터이니!
만일 내가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빵과 포도주보다 정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정의(Justice)가 나를 만족시킬 터이니!
만일 내가 자비롭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터이니!
만일 내가 마음이 깨끗하다면(if I am pure in heart),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깨끗한 내 마음을 굽어보실 것이고, 나는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므로!
만일 내가 영 안에서 평화롭다면(if I am peaceful in spirit),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사랑은 평화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같은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를 그분의 아들이라고 부르실 터이니!
만일 내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다면(if I am persecuted in the cause of right),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내가 받은 이 세상의 박해를 보상해주시기 위하여 하느님 내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를 나에게 주실 터이니!
하느님, 만일 제가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모욕당하고 거짓으로 비난당한다면, 저는 지극히 행복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것은 똑같은 이유로 박해받았던 당신의 가장 훌륭한 종들인 예언자들과 저를 같게 만들 것이고, 저도 그들과 함께 제 것이기도 한 하늘에서 똑같은 크고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제가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인들의 기쁨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바라봅시다.
‘만일 내가 영 안에서 가난하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How happy I will be, if I am poor in spirit.).’
오! 재물에 대한 악마적 갈증이여, 너는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모두를 어떤 광란으로 몰아가느냐! 자기들의 황폐한 영혼의 악명 높은 우상인 황금을 위하여 사는 부자들. 부자들의 황금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살인하지 않더라도 부자들이 갖가지 불행을 당하기를 바라며 그들을 저주합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악을 행하기를 바라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불행과 죽음을 당하기를 바라며 저주하는 사람은 실제로 죽이는 사람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는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그러한 소원은 마치 잉태되고 형성되었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와 같습니다. 악한 갈망은 사람을 부패시키고 황폐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난폭한 행동보다 오래 가고 행동 그 자체보다 뿌리 깊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자가 영혼 안에서 가난하다면, 그는 자기의 황금으로 인하여 죄짓지 않고, 자기의 황금을 성화(sanctification)로 바꿉니다. 왜냐하면 그는 재물을 사랑으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고 축복받는 그는 사막에서 여행자를 구해주는 샘물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을 기뻐하며 아낌없이 자기를 줍니다. 만일 그가 가난하다면, 그는 자기 가난 안에서 기뻐하고 황금에 대한 갈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기쁨으로 맛있게 된 자기의 빵을 먹으며, 악몽을 모르고 자고, 자기의 평온한 일을 위하여 잘 쉬고 잠에서 깨어나며, 탐욕이나 부러움 없이 일하므로 일이 항상 가볍습니다.
사람을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황금이고,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애정들입니다. 황금이라는 말은 돈만이 아니라, 집, 밭, 보석, 가구, 양떼, 요컨대 삶을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하는 것을 포괄합니다. 애정들은 혈연이나 결혼 유대, 우정, 지적 건전성, 공직 따위를 포괄합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첫 번째 종류의 재산에 대하여 가난한 사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오! 나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처지에 만족한다.’
가난한 사람은 둘째 종류의 재산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합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도 영혼 안에서 죄 많게 부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죄짓습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를 미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왜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여러분은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이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범위 안에서, 즉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전존재로 사랑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가령 우리를 젖을 먹여 기른 어머니나 우리 품에 안겨 자면서 우리에게 자녀들을 낳아주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우리 전체를 기울여, 즉 사람에게 있는 사랑하는 능력 전부를 기울여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로서의 사랑, 남편으로서의 사랑, 친구로서의 사랑―분개하지 마시오―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익들을 위하여 한 아버지가 자기의 자녀들에게 가지는 것과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재산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것을 불리며, 그들의 육체적 성장과 지적인 교육 그리고 세상에서의 그들의 성공을 위하여 돌보고 염려합니다.
사랑은 악이 아니고, 악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들도 악이 아니며, 악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은총들은 사랑으로 인하여 주어진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애정들과 세속적인 재물이라는 부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물로 우상을 만들지 않고, 성덕으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것을 쓰는 사람만이 그 재물들에 대한 죄스러운 집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거룩한 최고의 재산(the Holy Supreme Wealth)이신 하느님을 더 자유롭게 얻기 위하여 영혼으로부터 모든 것을 버리는 영혼 안에서의 거룩한 가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온유하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현실과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정과 도시와 나라에서 유명하고 성공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승리가 진짜 승리입니까? 아닙니다.
폭군에게 압제당하는 사람들을 외관상의 굴종상태에 있게 하는 것은 공포지만, 사실 그것은 그 폭군에 대하여 끓어오르는 반란을 가리고 있는 베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마르고 고압적인 사람들은 자기 가족의 마음도, 동향인들의 마음도, 자기 신민들의 마음도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지성과 영혼은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것이 옳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는 선생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선생들은 자기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지혜나 지식의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는 독학자들을 만들 뿐인데, 그 지혜나 지식은 실상 그들에게 강요되는 지식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참을성 있고, 겸손하고, 애정 어린 친절함을 가지고 영혼들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제들은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혼들을 다루는 데 있어 엄격하고 성급하기 때문에 마치 공격을 개시하는 무장한 전사들과 같습니다…
오! 불쌍한 영혼들이여! 오, 사제들이여, 만일 그 영혼들이 거룩하다면, 그들이 빛(the Light)을 찾아가는 데 있어 당신들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 안에 빛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오, 재판관들이여, 만일 그들이 의롭다면 그들이 정의의 제한을 받는 데 있어 당신들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 안에 정의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만일 그들이 건강하다면, 그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온유하시오. 사람들을 달아나게 하지 마시오. 사랑으로 그들을 끌어당기시오. 영 안의 가난이 사랑이듯이 공손함(lowliness)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공손하다면, 여러분은 땅(the Earth)을 여러분의 상속재산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므로, 사탄의 소유였던 땅을 하느님께 가져다드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일 뿐 아니라 겸손이기도 한 여러분의 공손함은 영혼들 안에서 증오와 교만이라는 비열한 왕을 죽임으로써 증오와 교만을 이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찬미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고 만유의 주인이신 피조세계의 절대적인 주재자로 인정하는 의인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거역하지 않고 울 수 있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How happy I will be, if I mourn without rebelling).’
땅 위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은 사람들에게서 눈물을 자아냅니다. 처음에는 고통이 없었지만 사람이 땅에 고통을 가져왔고, 사람의 타락한 지성으로 인하여 사람은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고통을 크게 하려고 애씁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질병들과 벼락과 폭풍우와 눈사태와 지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불행들 외에도 고통당하고 무엇보다 타인들을 괴롭히기 위하여―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하여 연구한 수단의 결과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만 미치기를 바라니까요―점점 더 무서운 살인무기와 점점 더 교묘한 정신적 고문을 고안해냅니다.
사람이 자기의 은밀한 왕인 사탄의 교사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까! 그런데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 눈물은 사람의 손상이 아니라 사람의 완전함입니다.
사람은 눈물이 어른, 사려 깊고 지적인 사람을 만들어줄 때까지 얼빠진 어린이이고, 생각 없는 피상적인 아이이며, 저능아입니다.
지금 울고 있거나 전에 울었던 사람만이 사랑하고 이해할 줄 압니다. 그들은 우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고통 중에 있는 그들을 이해하며, 혼자 우는 것이 얼마나 쓰라린 것이지를 온전히 아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줄 줄 압니다. 그들은 또한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했고, 하느님의 가슴에 안겨서 울면 고통이 덜어지고, 믿음을 잃지 않게 하고 기도를 메마르지 않게 하며 반항하기를 싫어하는 체념한 눈물은 그 성질이 변하여 고통 대신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서 우는 사람들은 위로받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정의(justice)에 주리고 목말라한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사람은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간절히 음식을 갈망합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자기의 엄마의 젖을 물려고 입을 벌리고, 임종의 고통 속에서도 기운을 회복시켜줄 것을 삼키려고 입을 벌립니다. 그는 먹기 위하여 일하고, 만족시켜주지 못할 죽을 것을 빨기 위하여 세상의 거대한 젖꼭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동물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몇 년 또는 여러 해 동안 귀양살이를 하지만, 자기가 사는 곳을 바꿀 때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견과류 안에 씨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명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껍질이 견과류가 아니고, 껍질 속에 있는 씨가 그 견과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껍질을 심는다면 아무것도 돋아나지 않지만, 씨가 들어 있는 껍질을 심는다면 큰 나무가 자라날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죽지 않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입니다. 영혼을 불멸로 이끌어가려면 영혼에 자양분을 주어야 하는데, 영혼은 사랑으로 인하여 복된 부활 시에 육체도 불멸로 이끌 것입니다.
지혜(Wisdom)와 정의(Justice)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지혜와 정의는 음식과 음료처럼 흡수되어 영혼을 강건하게 해주고, 사람이 이것들을 취하면 취할수록 지혜를 소유하고 정의를 알고자 하는 거룩한 열심이 커집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영혼의 거룩한 배고픔이 충족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자녀에게 그분 자신을 주실 것이고, 젖을 먹여주실 것이며, 천국에 간 자녀는 하느님 자신이신 경탄할 만한 어머니의 품에서 만족할 것이고, 다시는 결코 주리지 않고, 하느님의 품에서 행복하게 안식할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지식도 이 신성한 지식과 동등하지 않습니다. 정신의 호기심은 만족될 수 있겠지만, 영혼의 필요는 충족될 수 없습니다. 아니 영혼은 다른 맛에 혐오감을 느끼고, 쓴 젖꼭지를 뱉어내고,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굶주리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느님에 목마르거나 굶주리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충실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에 의하여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자비롭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는 자비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옛 율법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으나 새 율법에서는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자비를 얻을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사람의 생각이 둔하기 때문에 주어진 외적인 상징에 불과한 판에 박은 형식들(formulae)이나 의식(rite)의 형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비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의 내적인 의식(internal rite of love)을 통하여 얻어집니다. 염소나 어린양의 희생제물과 동전 몇 푼의 봉헌이 규정된 이유는 모든 악이 탐욕과 교만이라는 두 가지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제물을 사기 위한 비용지출을 통하여 벌 받고, 교만은 ‘저는 죄지었기 때문에 이 제물을 바칩니다’라는 의식에서의 공개적인 고백으로 벌 받습니다. 그것은 또한 시대와 시대의 상징들을 예표하기 위하여 행해졌는데, 희생제물의 피는 사람들의 죄를 취소하기(cancel) 위하여 흘릴 피(the Blood)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굶주리고, 헐벗고, 집이 없는 사람들, 나쁜 기질을 가진 사람 자신과 그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불행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사람들은 복됩니다. 자비로우시오. 용서하고, 사람들을 견디고, 그들을 도와주고, 가르치고, 지원해주시오.
여러분은 수정 탑에 들어앉아 ‘나는 깨끗하다. 나는 죄인들에게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부유하고 행복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대하여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부와 건강, 여러분 가족의 재산이 강풍에 흩어지는 연기보다 더 빨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여러분이 군중 가운데 섞여 있었으면 눈에 띄지 않았을 터인데, 여러분 혼자 외따로 떨어져 수정 탑에 들어앉아 있다면 그 수정이 렌즈로 작용하여 사방에서 들여다보여서 숨어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지속적이고, 은밀하고, 거룩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려면, 그리하여 자비를 얻으려면, 자비가 필요합니다.
‘만일 내가 마음이 깨끗하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하느님은 깨끗함이십니다. 천국은 깨끗함의 나라입니다. 부정한 어떤 것도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부정하다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기쁨을 미리 주십니까! 깨끗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미리 하늘나라를 소유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깨끗한 영혼을 굽어보시기 때문에 그가 이 땅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의 사랑의 맛을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황홀경에 이를 정도까지 맛보게 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을 소유하고 있고, 당신을 제 영혼의 가장 다정하신 정배(淨配)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를 거룩하게 해주고, 지혜롭게 해주고, 힘 있게 해주는, 그 자신도 모르는 실질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말씀이 그의 입술을 아름답게 해주고, 그의 행위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 힘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사람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지복(beatitude)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역겨운 불결함을 위하여 그런 선물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만일 내가 영혼 안에서 평화롭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평화는 하느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평화 안에서만 발견되십니다. 평화는 사랑인 반면, 전쟁은 증오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증오이고, 하느님은 평화이십니다. 항상 폭풍우를 불러올 준비가 되어 있는 성마른 영혼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고, 하느님께서도 그런 사람을 아들이라고 부르실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일으킨 폭풍우를 자기의 큰 평화로 가라앉히는 데 이바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평화로운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평화를 퍼뜨립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고 하느님도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고 내가 감히 말하는 그는 등불이 빛을 밝히듯이, 향로가 향기를 발산하듯이, 가죽부대가 포도주를 담고 있듯이 하느님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자녀들로부터 나오는 평화의 영인 이 향기로운 기름은 악감정의 뿌연 음울함에 빛을 비추고 악의의 독기를 제거하여 공기를 정화시키고, 다툼의 성난 파도를 가라앉힙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이 여러분을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시오.
‘만일 내가 정의를 위하여 박해받는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사람은 참으로 악마적이어서(devillish) 모든 선한 것을 증오하고, 착한 사람을 미워하며, 심지어 착한 사람이 침묵해도 그를 저주하고 비난합니다. 사실 한 사람의 착함은 악인의 악을 더 두드러져보이게 합니다. 사실 참된 신자의 믿음은 거짓 신자의 위선을 더 분명히 드러나게 하고, 자기의 생활태도로 끊임없이 정의를 증언하는 사람은 불의한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이것은 전쟁들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람은 사랑을 위한 거룩한 기술보다 박해를 위한 악마적인 기술에 있어 더 진보합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생명을 가진 것만을 박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 안의 영원한 것은 덫을 피하고, 오히려 박해 자체에서 더 활기찬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피 흘리는 상처를 통해서나 박해당하는 사람을 소진시키는 궁핍으로 인하여 생명이 빠져나가기는 합니다만, 피는 미래의 왕의 주홍빛 옷을 만들고, 궁핍은 아버지께서 당신 순교자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옥좌로 올라가는 하나하나의 계단이 됩니다. 하늘나라에는 순교자들을 위한 옥좌(royal seats)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비난받고 중상당한다면, 나는 지극히 행복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책들에 적히도록 노력하시오. 그 책에는 찬양받을 자격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찬양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의 거짓에 따라 이름이 적히지 않고, 정의와 사랑에 따라 착한 사람들의 행동이 적혀서 그것이 복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예언자들이 과거에는 중상과 모욕을 당했습니다만, 하늘의 문들이 열리면 그들은 위풍당당한 왕들처럼 하느님의 도성에 들어갈 것이고, 천사들은 기쁨에 겨워 노래하며 절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거짓 중상을 당하는 여러분도 하늘나라에 개선할 것이고, 시간이 종언을 고하고 하늘나라(Paradise)가 가득 차게 되면, 그때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여러분에게 소중하게 느껴질 터인데, 여러분은 그 눈물을 통하여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약속하는 그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시오. 나는 내일 다시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병자들만 남아 있으시오. 나는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주겠습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구원에 대한 묵상이 사랑을 통하여 여러분을 하늘나라로 이어지는 길로 이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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