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제 6 장
빌라도 앞에 끌려가 매 맞고 가시관 쓰다
복음사가들이 기록한 것처럼(마태 27,1. 마르 15,1. 루카 22,66. 요한 18,28) 금요일 새벽 장로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처형을 결정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정의로 보이기 위해 가야파의 관저에서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주님은 지하 감옥에서 회의장으로 끌려나왔습니다. 그들은 다시 주님이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 받은 분인지 어떤지 질문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고발을 날조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아닙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자라고 내가 말해도 너희들은 믿지 않을 것이고 내가 너희들에게 아첨하며 부탁하여도 너희들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석방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말한다. 사람의 아들은 이제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루카 22,69).”
사제들이 “그대가 하느님의 아들이란 말인가?” 라고 묻자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이 그것을 말하였다.” 이 대답에 의해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너희들은 완전히 정확한 생각에 도달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다. 나의 사업, 나의 교리, 너희들 자신의 성서 또 너희들이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이며 율법에 의해 약속된 분인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악인들의 회의는 자신들의 결론을 진리에 대한 동의와 신앙이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신성모독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재확인을 한 그들은 외쳤습니다.
“이 이상의 증언이 필요할까? 자신이 신성모독의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전원 일치로 주님을 사형수로서 로마황제로부터 임명 받은 유다 지방의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이미 태양은 떠오르고 멀리에서 이것을 보시고 계신 성모님은 빌라도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요한이 돌아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군중을 두려워하여 도망쳤으며 안나 관저에서도 베드로의 배신 후에 자신도 남의 눈을 피하여 있던 것을 성모님께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 후에 주님의 비참한 모습을 알립니다.
“아아, 성모님이시여, 우리들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이 무슨 고통 속에 계시는 겁니까?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얼굴은 손으로 맞고 구타당하고 침 뱉고 비정상적으로 굽어지고 더러워지셨기 때문에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성모님은 얼굴에는 나타내지 않습니다만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옆에 있던 거룩한 여인들도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드님에게 급히 갑시다. 인류에 대한 사랑인 나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어디까지 내몰았는지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당신들은 확실히 보겠죠.” 성모님을 최후까지 따른 것은 요한, 세 명의 성 마리아들과 다른 신심 깊은 여인들입니다. 수호천사들은 군중으로 북적거리는 속을 성모님의 일행을 위해 길을 엽니다.
성모님이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나자렛의 예수가 가엾다고 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입니다. 주님의 적들이 주님을 십자가형에 처할 것이라는 사람들과 주님이 지금 어디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어떤 나쁜 일을 했는가 하고 묻기도 하는가 하면 또 거짓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외치기도 합니다.
몰려드는 군중 속을 천사들이 성모님 일행을 통과시키고 어떤 모퉁이를 돌아서자 성모님은 아드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드님을 보고 서로 무언으로 부드럽고 슬픈 마음이 서로 통하여 일치되십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뒤를 따릅니다.
주님이 빌라도의 관저에 도착합니다. 졸졸 따라온 회의소 의원들과 군중은 유다인이기 때문에 과월전 전에 이방인 집에 들어가면 몸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이교자인 빌라도 총독은 유다인들의 종교 습관에 경의를 표하고자 나와서 질문합니다. “이 남자에 대해 무엇을 고발하는가?” 유다인들은 대답합니다. “이 남자가 범죄인이 아니라면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질문합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 그들은 대답합니다. “이 남자는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자신을 왕이라고 말하며 로마황제에 납세하는 것을 금했습니다(루카 23,2).”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자칭하고 새로운 가르침을 갈릴레아에서 유다 전지역 예루살렘에까지 퍼뜨렸습니다.”
빌라도는 말합니다. “너희들의 문제다. 너희 맘대로 심판하는 것이 좋겠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사형선고 하는 것도 처형하는 것도 우리들에겐 권한이 없습니다.”
천사들 덕택으로 성모님과 요한과 여인들은 이 심문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심장이 슬픔에 의해 관통된 성모님은 영원하신 아버지께 주님을 최후까지 지켜보며 주님과 같은 고통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들어주셨습니다.
갈릴레아에서 주님이 소동을 피웠다고 들은 빌라도는 주님이 갈릴레아 사람인 것을 확인한 후 갈릴레아를 통치하는 왕 헤로데에게 주님의 재판을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주님이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질투와 악의에 의해 범죄인으로 꾸며진 것이 확실하므로 헤로데가 자기 대신으로 주님을 용서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헤로데는 주님의 탄생 후 많은 아기들을 학살한 헤로데의 아들입니다. 살인자 헤로데는 유다인의 여성과 결혼하여 유다교로 개종했습니다. 아들인 현 국왕 헤로데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과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와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인 세례자 요한의 친구인 주님이 설교한 것을 전부터 듣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들어오시니 헤로데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마법사나 예언자로서 취급하여 뭔가 기적을 일으키기를 바랐습니다. 유다의 고관들과 사제들이 전과 같이 고발하는 동안 주님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헤로데는 완전히 재미있어하며 주님을 조롱한 후 병사 전원과 함께 빌라도에게 다시 되돌려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무죄인 주님과 대면하고 어떻게든 하여 유다인들을 달래보려고 했습니다. 우선 대사제들의 관리들과 면담하고 악인 바라바 대신으로 주님을 방면하도록 설득했습니다. 헤로데에게 보내기 전에도 같은 설득을 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두 번째가 됩니다.
세 번째는 앞마당에 있는 빌라도와 군중의 대결입니다. 군중은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라바를 석방시켜라!” 이때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는 상황을 전해 듣고 빌라도에게 전했습니다. “당신은 이 남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겁니까? 이 남자에 대해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클라우디아의 경고는 주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루치펠과 그의 부하들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악마들은 혼란과 격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클라우디아의 꿈속에 나타나 이 남자가 무죄이고 남편 빌라도가 사형을 선언하면 빌라도는 총독의 지위에서 내쫓기고 부인들과 함께 매우 괴로운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용서하고 바라바를 처형하는 편이 좋다고 권했습니다.
아내의 메시지를 들을 것도 없이 빌라도가 악마들로부터 같은 경고를 느꼈기 때문에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그래도 빌라도는 현세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 번째의 설득에 크게 반대한 유다인 군중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 것을 외쳤습니다. 할 수 없이 군중 앞에서 손을 씻고 선언했습니다.
“이 올바른 남자는 나와 관계가 없다. 나는 나의 손을 씻고 이 무죄한 남자의 피에 물들지 않는다.” 이 손 씻는 의식에 의해 책임을 유다인들에게 전가시켰다고 빌라도는 생각했습니다. 분노에 의해 맹목적이 되어버린 유다인들은 책임을 모두 자신들과 자손이 지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마태 27,25).”
천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성모님은 유다인들의 악의(惡意)에 찬 말로 인해 양날의 검처럼 슬픔이 마음으로 관통됩니다. 성모님의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슬픔은 자식들을 잃은 아름다운 라헬의 통곡하는 목소리보다도 더욱 소중한 희생입니다.
악마의 수하들은 주님을 빌라도 관저 안마당으로 데리고 갑니다.
이 마당 주위에는 기둥이 줄지어 있고 몇 개의 기둥 위에는 지붕이 걸려있습니다. 주님의 흰옷을 벗기고 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기둥에 주님을 꽉 묶어 놓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합니다. 주님이 마술사여서 조망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명의 집행관이 서 있습니다.
두 사람씩 동시에 비인간적으로 잔혹하게 채찍질을 합니다. 루치펠이 옮겨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두 사람은 단단하고 큰 매듭이 많이 있는 밧줄을 사용합니다. 이 두 사람은 주님의 온몸에 크게 긁혀 붉게 된 상처가 생기고 검푸르게 부어오를 만치 때렸습니다.
피부의 출혈 때문에 온몸이 변형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구타가 끝나자 다음 두 사람이 채찍질로 경쟁합니다. 단단하게 된 가죽 채찍이 변색하여 부어 오른 피부를 찢어 놓아 피가 튑니다. 피는 집행관의 옷을 빨갛게 물들이고 돌맹이 위에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마지막 두 사람이 교대로 버드나무 껍질처럼 단단한 생가죽으로 주님을 때립니다. 온몸에 상처가 났기 때
문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채찍질로 몸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돌맹이 위로 튀어갑니다. 어깨뼈가 대부분 드러났고 출혈 때문에 빨갛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도 손바닥만 한 정도의 뼈가 보입니다.
얼굴, 손과 발도 때립니다. 얼굴은 부어오르고 눈은 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이 집행관들의 채찍질은 5,155회에 미칩니다. 주님은 인간의 약함을 체험하고 슬픈 사람이 되고 인간 중에서도 몰락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군중은 빌라도 관저의 안마당과 밖의 길을 메우고 일의 진행을 기다리며 서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란스러움 중에 성모님은 요한과 마리아들과 함께 안마당의 한쪽 구석에 계셨습니다. 성모님께 아드님의 극형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성모님의 고통과 슬픔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사후 세계에서나 확실하게 밝혀지겠지요.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성모님은 아드님의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똑같이 느끼게 되었으므로 성모님의 온몸이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성모님의 깊은 슬픔은 엄마로서의 사랑과 아드님을 하느님으로서의 사랑뿐만 아니라 주님의 무죄를 누구보다도 숙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불신(不信)하는 유다인들과 아담의 자손들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고자 하시는데 주님을 모독의 한계에 이를 만큼 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에게 거짓 왕으로서 찢어진 더러운 자색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이 관은 가시가 있는 가지를 동그랗게 만든 것으로 딱딱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두개골, 귀와 눈에도 박혔습니다.
지팡이 대신으로 갈대 줄기 다발을 양손에 들게 하여 주님을 거짓 왕으로서 놀려댑니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인들의 면전에서 병사들은 신성을 모독하는 모욕의 말들을 퍼붓습니다. 몇 명의 병사들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유다의 왕인 당신을 구하시도록.” 어떤 자는 주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다른 자는 갈대 줄기 다발을 빼앗아 얼굴을 때립니다.
침을 뱉는 자도 있습니다. 병사들은 분노하고 있는 악마들에게 사주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처참한 모습이 된 주님을 군중들에게 보이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고자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발코니에 주님을 세우고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거짓 왕의 망토를 입힌 주님을 모두에게 보이며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을(요한 19,5).” 충분히 벌을 주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친애하는 딸이여, 당신의 구세주이신 배우자가 고문을 받고 가시관을 쓰고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육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당신도 박해받고 십자가를 지고 모욕을 받고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내가 관여한 것처럼 당신도 관여하십시오. 보이는 것이 위대하고 이 세상의 부가 행복하다고 잘못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http://cafe.daum.net/DivineVolition/9QX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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