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제 8 장
십자가에 달리시다
수장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간 곳과 같은 산 정상에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드님이 도착했습니다. 이사악의 경우는 희생이 되는 것을 면했지만 가장 죄가 없는 아드님은 희생이 되셨습니다. 이 골고타산은 더렵혀지고 멸시당하고 있습니다. 범인들이 여기서 처형되어 송장은 방치되고 악취를 풍깁니다.
우리의 최고의 사랑이신 예수님이 산 정상에 도착한 때는 처참하고 상처투성이로 찢기고 부어올라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신비가 완성되는 것을 감지한 성모님은 영원하신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나의 주님이신 영원하신 하느님이시여, 당신은 독생자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드님은 영원으로부터 태어나고 참 하느님인 당신 자신으로 계십니다. 나의 태안에서 인간이 되시어 그 인성(人性) 때문에 지금 고난을 당하십니다.
저는 아드님에게 젖을 물리고 키우고 어미로서 사랑합니다만 지금 어미로서 권리를 당신께 돌려드리고 아드님을 인간 구원을 위해 희생으로서 바칩니다. 이것은 제가 희생이 되는 것보다도 더욱 귀한 것입니다. 제가 아드님 대신이 되는 것을 허락하시어 아드님의 거룩한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저의 참 소망입니다.” 우리의 선조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사악을 희생으로 바치지 않고 끝났습니다만 성모님은 아드님을 잃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사악이 희생되는 것을 몰랐습니다만 성모님은 아드님을 희생하는 것으로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때는 6시 지금의 시간으로 정오 집행관들은 아드님으로부터 혼솔 없이 통으로 짠 옷을 벗겨냈습니다. 상의를 얼굴 위쪽으로 끌어당기어 가시관도 함께 끌어 올려 집니다. 난폭하게 잡아당기므로 가시관은 망가지고 몇 개의 가시는 빠지고 다른 가시는 박힌 채가 되었습니다. 옷을 몸에서 벗겨낼 때 옷에 딱 달라붙어 있던 상처들이 열리고 커다란 아픔을 일으킵니다.
옷을 입고 벗는 것을 네 번이나 했습니다. 첫 번째는 기둥에서 채찍질 당할 때, 두 번째는 자색의 옷이 입혀질 때, 세 번째는 그것을 상하 바꿔 입힐 때, 네 번째는 주님을 발가벗길 때입니다. 골고타산 꼭대기는 찬바람이 불기 때문에 열린 상처를 통해 추위가 파고듭니다.
주님은 기도하십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시여, 나의 주님이신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무한한 선과 정의에 대해서 저의 모든 인성(人性)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룬 모든 것을 바칩니다.
저와 함께 제가 가장 사랑하는 성모님도 바칩니다. 성모님의 사랑, 완덕, 슬픔, 괴로움, 저에 대한 봉사, 저를 본받아 저의 죽음까지 따르는 성모님을 바칩니다. 저의 천사들, 거룩한 교회와 신자 전체를 당신께 바칩니다. 아담의 자손 모두를 바칩니다.
저의 희망하는 것은 제가 모든 인류를 위해 고통 받고 죽는 것입니다. 모두가 저를 따라 저의 구원을 얻는 조건이 채워지는 것을 희망합니다. 사람들이 악마의 노예가 되지 않게 되고 당신의 자녀들, 저의 형제자매가 되고 저의 공덕에 의해 획득한 은총을 상속 가능하도록.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세상에서 미움 받는 자와 정의로운 사람들이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에 의해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당신의 심판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모두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저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저의 죽음에 대한 진리를 당신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당신의 이름이 경배 받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성모님도 아드님에게 마음을 합치고 같은 말로 기도했습니다.
아드님의 환시 때의 말씀인 “어머니, 저처럼 되어 주십시오.”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집행관들은 주님에게 십자가의 가로나무 위에 양팔을 뻗도록 난폭하게 명령합니다. 손바닥이 닿는 부분에 표시를 합니다만 실제는 그것보다도 조금 바깥쪽에 표시하고 못 구멍을 내기로 합니다. 구멍을 내기 전에 주님은 상반신을 일으킵니다. 거기에 성모님이 오셔서 한 손을 잡고 공손하게 그 손에 입맞춤을 합니다.
집행관들은 슬퍼하는 모친을 만나게 하여 주님을 더욱 슬프게 하고자 생각했습니다만 반대로 주님은 자신의 닮은 모습이고 수난과 죽음의 결실인 성모님을 보시고 행복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십자가 위에 바로 누우시니 한 사람의 집행관은 손바닥에 못을 박습니다. 정맥 혈관과 힘줄은 파열되고 손등의 뼈들은 못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또 다른 사람의 집행관은 다른 쪽의 손에 못을 박으려고 합니다만 원래 일부러 손에 닺는 부분보다도 바깥쪽으로 못 구멍을 냈기 때문에 손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바깥쪽으로 끌어당기니 아드님의 팔뚝 뼈의 상부가 어깨 관절에서 빠집니다.
거기다 손에 못이 박힙니다. 다음에 집행관들은 양발을 겹쳐놓고 같은 못을 발목에 박고 잡아당기면서 양발에 커다랗고 긴 못을 박습니다. 주님은 몸이 종횡으로 늘려진 채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집행관들은 십자가 하단을 땅에 판 구멍에 끌어다 옳깁니다.
두세 사람이 십자가 상부의 밑에 들어가 몸으로 십자가를 들어 올립니다. 다른 자들은 창으로 십자가 상부를 밀어 올립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과 함께 일으켜 세웁니다. 주님이 십자가와 함께 들어 올려질 때 어떤 자들은 옆구리를 찌르고 십자가 중앙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보고 있는 군중은 탄성을 올립니다.
유다인들은 신성모독의 말을 뱉으며 친절한 자들은 한탄하고 이방인들은 놀라 질문하거나 두려움과 불쌍함으로 머리를 흔들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위험을 느끼거나 또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의인이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은 성모님의 마음을 화살처럼 찌릅니다. 아드님 몸의 못의 상처는 몸무게 때문에 크게 벌어지고 피가 넘쳐흐릅니다(이사 12,3).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피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우리 죄의 더러움을 씻고 깨끗하게 합니다.
집행관들은 두 사람의 도독을 십자가에 매달고 주님의 양옆에 세웁니다. 바리사이파인들과 사제들은 머리를 흔드는 척하며 조소하고 돌과 흙을 구세주에게 던지며 말합니다. “이봐,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믿고말고(마태 27,42).”
두 사람의 도둑들도 말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너 자신과 우리들을 구해봐라.” 이 두 악인이 임종 때에 정당한 벌을 받아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주님은 슬퍼졌습니다.
십자가 나무는 아드님의 옥좌입니다. 이 옥좌의 위에서 주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확인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카 23,34).” 적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고 자신들의 하느님을 박해하고 신성모독을 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변명을 하고 계십니다.
아아, 이해를 넘는 사랑! 생각도 미치지 못하는 인내, 천사들은 찬양하고 악마들은 두려워한다! 두 사람의 도둑 중에 한 사람인 디스마스라고 하는 도둑은 주님의 신비를 알기 시작합니다. 성모님의 중재도 더해져서 주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최초의 말씀의 의미를 하느님으로부터 가르침 받아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후회하고 자신의 동료를 향해 말합니다.
“벌을 받아도 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우리는 우리가 범한 것에 정당한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로 얼굴을 돌리고 부탁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도둑 중에 가장 행복한 디스마스와 백부장 그 외 십자가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앙 고백을 한 자들 사이에 구원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제일 행복한 자는 디스마스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대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다음에 십자가 옆에 서계셨던 성모님과 요한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여인’이라는 말은 모든 여자 중에서 축복받은 여자, 아담의 딸들 중에서 가장 사려 깊은 딸, 주님에 대해 봉사를 빠뜨리지 않고 주님에 대한 사랑에 있어 가장 충실한 여자를 가리킵니다. “내가 아버지 계신 곳으로 돌아갈 때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제자의 돌봄을 받고 사랑하는 제자는 당신의 아들이 됩니다.” 라고 주님은 의미하시고 성모님은 그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요한도 깨닫고 주님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분을 돌보아 드리게 되며 성모님은 새로운 아들을 양자로 삼습니다.
때는 제 9시 가까이 되고 천지는 어두워지고 광란의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고 시작하므로 엘리아를 부르고 있는 건가하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슬픔은 모든 인류를 구하고 싶은데 허물 있는 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의 성심의 고통은 몸의 고통이 됩니다. “목마르다(요한 19,28).” 아담의 자손들이 주님의 공덕에 의해 가져온 용서와 자유를 받을 수 있도록 갈망하고 계십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소홀이 여기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에게 마음을 일치시켜 가난한 자, 곤궁한 자, 비천한 자, 미움 받는 자들 모두가 구세주께로 모여 주님의 목마름을 조금이라도 낫게 해드리고자 부릅니다. 그러나 불신(不信)하는 유다인들과 집행관들은 완고합니다. 쓸개를 식초에 담근 것에 해면을 적셔 갈대 나뭇가지 끝에 그 해면을 꽂아 조소하면서 주님의 입에 가져갑니다. “나의 목마름을 위해 식초를 마시게 하려고 있다(요한 19,29, 시편 69,22)”고한 다윗의 예언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여섯 번째 말씀인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주님의 탄생과 수난과 죽음이라는 구속 사업의 완성을 나타냅니다. 구약의 예언의 실현과 주님의 인성(人性)이 이 세상에서의 결말입니다. 교리와 성사와 죄의 용서도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교회의 기초가 싸움하는 중인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님 최후의 말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라고 말씀하신 후에 죽음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의 생명 안에 들어가십니다. 이 말씀이 크게 울렸을 때 루치펠과 수하들은 지옥의 제일 깊은 구멍에 던져져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과 함께 하신 성모님은 주님의 죽음의 고통도 체험했습니다. 성모님이 죽으시지 않은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성모님이 체험하신 죽음의 고통은 모든 순교자와 처형된 자들 모두의 고통을 다 모은 것보다 더욱 잔혹합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내가 가르친 신비를 한 순간도 잊지 말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생활을 하고 이 세상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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