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8,4-15)
6권-94, 겸손은 가시가 없는 꽃이다
1905년 2월 24일
1. 아침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내 딸아, 겸손은 가시가 없는 꽃이다. 가시가 없기 때문에, 찔려서 아프면 어쩔까 하는 걱정 없이 손에 들거나 꽉 잡을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아무 데나 놓을 수 있다. 겸손한 영혼도 그와 같다. 그에게는 상처를 내는 가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가시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그 자신도 당연히 남을 찌르거나 아프게 하지 않는다. 가시가 있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시가 없는데 어떻게 가시에 찔린 상처를 낼 수 있겠느냐?
3. 뿐만 아니라, 겸손은 시력을 강화하며 밝혀 주는 꽃이기도 하다.
밝은 눈으로 가시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법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천상의 책 14권-9, 1922년 3월 3일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하늘의 농부
1. 여느 때와 같이 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오셨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없이 극도로 괴로워하시는 모습이었다. 나는 “예수님, 말씀이 없으시니 어인 까닭이십니까?”하고 여쭈었다.
2. “주님께서 저의 생명이라면 주님의 말씀은 저의 음식입니다.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음식입니다. 저는 매우 약합니다. 이 음식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느낍니다. 먹어야 자라날 수 있고 저 자신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은 그지없이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도 음식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 말을 너에게 먹여 준 뒤, 이 말이 너에 의해 저작(咀嚼)되고 피로 바뀌면서 나를 위한 음식을 생성하게 한다. 내가 너에게 준 음식의 보답으로 바라는 것이니, 그런 다음 너를 먹이기 위해 다시 오는 것이다. 아, 배고프다. 어서 이 허기를 채워 다오.”
4. 나는 당황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그분께 무엇을 드릴지 알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심장 박동과 숨과 생각과 애정과 갈망을 숱하게 많은 작은 공 모양의 빛으로 바꾸시더니 두 손으로 이들을 모아 잡수시면서, “이것이 내 말의 열매다. 다 내 것이니까 내가 먹는 게 옳겠지?” 하셨다.
5. 그러고 나서 그분은 잠시 쉬시는 것 같았고, 좀 뒤에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지금이 본격적으로 일을 착수하기에 알맞은 시기다. 네 영혼의 땅을 갈아 네 양식이 될 내 말의 씨를 뿌리는 일이다.
6. 나는 자기 밭에 씨를 뿌리려고 하는 농부처럼 행동한다. 그는 땅을 파서 작은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낸 다음 여기에 씨를 뿌린다. 그리고 이 두둑과 씨를 넣은 고랑을 다시 흙으로 덮는다. 씨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싹을 낼 시간을 주기 위함이요, 나중에 백 배로 수확하여 자신의 양식으로 쓰기 위함이다.
7. 그러나 농부는 흙을 너무 많이 덮지 않도록 조심한다. 너무 많이 덮으면 씨가 흙의 무게에 눌려 숨이 막힐 수 있고, 그러면 자기도 배를 곯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8. 나도 그렇게 한다. 영혼에 내 신성한 말을 뿌릴 수 있도록 그 지적 능력을 키우면서 작은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내어, 나와 영혼 자신을 위한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두둑과 고랑을 흙으로 덮는데, 이 흙은 곧 영혼의 비천함과 허무성과 무기력, 그리고 어떤 작은 결점이나 비참한 점이다.
9. 이런 흙은 나에게 없기 때문에 영혼에게서 받아 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덮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수확을 기다린다.
10. 한데, 어떨 때가 씨 위에 너무 많은 흙을 덮는 경우인지, 알고 싶지 않으냐? 그것은 영혼이 자기의 비참과 나약과 무가치를 통감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때다.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그러다 보면 원수가 이를 이용하여 영혼을 심란함과 실망과 의기소침 속으로 던져 넣는다.
11. 그 모든 것이 씨 위에다 지나치게 많은 흙을 덮는 것이다. 오, 그러니 죽어가는 것을 느끼는 내 씨가, 그럼에도 싹을 틔우려고 얼마나 고투를 벌이는지! 그런 영혼들은 걸핏하면 천상 농부를 지치게 하기 때문에 농부는 결국 물러가고 만다. 그런데 그런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
12. “제 사랑이시여, 저도 그들 중 하나입니까?”하고 내가 묻자 그분은 “아니다, 아니다.” 하셨다.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은 내 씨를 질식시키는 흙을 형성할 줄 모른다. 그에게는 비천함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다만 자신의 무가치에 대한 의식이 보일 뿐인데 이것이 약간의 흙을 만들어 내기에, 내가 내 씨 위에 한 켜만 살짝 덮을 수 있다.
13. 그러면 내 뜻의 태양이 재빨리 씨의 영양 상태를 좋게 한다. 그리하여 싹이 트고, 나는 풍성한 수확을 보게 한다. 그리고 즉시 돌아와서 다시 씨를 뿌린다. 너는 이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네 영혼 속에 새로운 진리의 씨를 뿌리려고 자주 돌아오곤 하는 것을 보아 오지 않았느냐?”
1권-43, 예수님께서 향주삼덕에 대해 말씀하시다
13. 그런데, 신앙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의 씨앗, 씨앗의 좋은 품질 및 씨앗의 발육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14. 씨앗은 신앙의 대상에 관한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우리 안에 뿌려진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서 먼저 좀이라도 알고 있지 않으면 그것을 생각할 수 없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15. 이를 뿌리는 사람은 우수한 신앙의 씨앗이 그 내부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가 신앙에 손색이 없는 사람이라면 뿌리는 씨앗도 참 신앙의 씨앗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누군가에 의하여 왜곡된 것이라면 그 근본마저 부실한 거짓 씨앗일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 대상에 대한 잘못된 정보, 즉 부정확한 정보에 관한 불신이 우리 안에 일어나게 된다면, 마땅히 수상쩍은 신앙 대상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16. 일단 신앙의 씨앗과 이 씨앗의 품질이 우량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싹트고 자라서 성공적인 성숙에 이르도록 가꿀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17. 이와 같이, 우량한 씨앗임을 믿고 성숙할 때까지 점점 더 잘 발육하도록 부지런히 돌보는 행위를 통하여, 우리 안에 신앙의 자매인 거룩한 희망이 생기는 것이니, 이는 이미 획득한 신앙의 대상 안에 신앙과 희망의 목적 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덕행이다.
18.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에 대한 (기쁜) 소식이 내 안에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씨앗이 잘 경작되면 거기에서 빛이 생겨 자라나며 더욱더 성장하고, 그 빛이 나의 지고한 선이신 하느님의 특성들을 내게 주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선성(善性)과 나를 그분께로 불러 그분 안에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매혹적인 사랑을 환히 밝혀 주고, 더욱이, 그분께서 내게 주실 모든 은혜를 미리 볼 수 있도록 드러내 주기도 하는 것이다.
19. 따라서,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 주는 소식이 내게 신앙의 씨앗을 뿌렸고, 내 안에서 성장하는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지고하신 분과 끊임없이 더욱 가까워졌다. 게다가 이 신앙은 당신 자신 안에 내재하시며 또한 그 바깥에도 외재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속성들 각각에 대한 지식을 부분적으로나마 내게 주었고, 그분께서 내게 주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도 하였다. 이 사실이 내 안에 거룩한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20. 그런데, 이 씨앗이 잘 경작되면 바라는 바를 이미 소유하게 된다. 굳건히 믿고 바라며 일하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활기찬 믿음과 바람은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께 대한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인다운 사랑의 씨앗이 우리 안에 태어나게 하신다. 이 사랑에 의해서 우리의 영혼도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활기에 넘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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