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

2016년 9월 2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Skyblue fiat 2016. 9. 3. 16:24

 

 

2016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2 금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금육
① 1코린 4,1-5
㉥ 루카 5,33-39.

 

2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주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말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은 단식하지 않는다고 하시고,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으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7(36),3-4.5-6.27-28ㄱㄴ.39-40(◎ 39ㄱ)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8,1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하고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그들은 실컷 먹고 배불렀네. 주님이 그들의 바람을 채워 주셨네. 그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진미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참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충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묵은 포도주”에 비유하십니다. 하느님의 옛 약속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주인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혼인 잔치의 기쁨으로 비유하십니다. 율법의 규정은 예수님으로 완성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웅덩이에 갇힌 물과 같이 썩어 신선한 향기를 간직하지 못하였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질책으로 들렸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쌓아 놓은 신앙의 기득권이 없어질까 봐 걱정하여 죽음이 깃든 물을 마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열린 영혼은 언제나 새로운 생명수를 마시게 됩니다.
형식적인 관습에 매달려 주님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도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헌 가죽 부대는 영적인 무관심과 게으름, 죄의 습관을 뜻합니다.

새 포도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뜻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새로운 열정, 구원을 향한 새로운 걸음을 말합니다.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이웃을 섬기는 모습’, ‘반복되는 일상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맞는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같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도 새로움과 영감을 느낄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루카5,33-39) -임언기 신부님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36~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새 시대에는 옛 전통을 따라 단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두 개의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히 하신다.

 

두 비유에서 새 옷에서 찢은 조각 새 포도주예수님께서 오신 새 시대, 복음의 시대

상징하며, 헌 옷 헌 가죽 부대는 일중일에 두번(월요일과 목요일) 정기적으로 단식하는 것과 같은

유다인들의 고루한 전통 및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여기서 '어울리지도'로 번역된 '쉼포네세이'(symphonesei; agree; match)의 원형 '쉼포네오'

(symphoneo)'함께'(with)라는 뜻의 접두어 '쉰'(syn)'소리를 내다'는 뜻의 동사 '포네오'

(phoneo)의 합성어로서 '함께 소리를 내다', '화음을 이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향곡'을 의미하는 영어 'symphony'의 어원이다.

여기 본문에서는 '일치하다', '조화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을 헌 옷을 기우는 데 사용하면, 세탁시 물을 흡수한 조각이

급격히 수축되어 기운 부분이 뜯어져 그 헌 옷이 망가지게 된다.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과 헌 옷은 서로 불협화음만 이룰 뿐,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새 시대 새 복음과 유다인의 고루한 전통은 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고, 오히려 서로 피해를 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당시 유다인의 생활상 가운데 친숙한 포도주와 가죽 부대

예로 들어 가르침을 전개하신다.

 

포도주를 새로 만들면, 그때부터 며칠 혹은 수 개월 동안 숙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효된다.

 

헌 가죽 부대는 새 부대와 달리 신축성이 없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새 포도주를 만들어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계속 발효되는 포도주에서 가스가 생겨나 신축성이 없는 헌 가죽 부대가

터져 버려, 결국 포도주와 헌 가죽 부대 둘 다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신축성이 뛰어난 새 가죽 부대에 담았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루카 복음 5장 36절에서 설명한데로, 예수님의 복음은 유다인의

율법주의적 전통과 조화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율법을 왜곡해서 만든 과거의 고루한 전통과 규칙으로, 하느님의

율법의 정신을 참되게 제시하는 복음과 예수님의 행위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8)

 

'새 부대에'로 번역된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eis askus kainus; into new wineskins;

into new bottles)에서 '새'로 번역된 단어 '카이누스'(kainus)'써 보지 않은', '처음 부르는'

노래로서 '새'노래(묵시14,3), '낯설고 놀라운',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마르1,27; 요한13,34;

사도17,19), 혹은 '낡지 않은', '새로운' 피조물, '새' 것(2코린5,17; 2베드3,13) 등등의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율법, 규칙, 전통이라는 것에 얽매여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가르침이나 행위는 전에는 본 적이 없어서 낯설기도 하고,

목격자들을 놀라게도 만드는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헌 종교 형식을 보존하려는 어리석음과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묵은 것이 좋다' (39)

 

이 구절은 공관복음서의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9장 17절마르코 복음 2장 22절에는 없는

루카 복음서의 고유한 내용이다.

 

여기서 '좋다'로 번역된 '크레스토스'(chrestos; better)사용하기에 적합하여 유용하다는

(useful)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항상 묵은 포도주만을 마시던 사람은 그것이 자기 입맛에 익숙하고 몸에 좋다면서,

그것만을 선호하고 고집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종교적 전통과 규칙과 가치관만을 귀하게 여기며 지켜오던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빗대어 지적한 말이다.

 

그들이 만약 계속해서 묵은 포도주만을 권하는 사람들처럼 옛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시한 복음의 진수를 결코 깨달을 수 없으니, 그들의 아집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경고하며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코린4,1-5) -임언기 신부님

 

현존하는 바오로 그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2)

 

 

코린토 1서 1장 10절 ~ 6장 20절에는 사도 바오로가 클로에 집안 사람들을 통하여 파악한

코린토 교회의 현안 문제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책망과 권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서 전반부 코린토1서 1장 10절~4장 21절은 코린토 교회 내에

있었던 고질적인 분열 문제를 다룬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 중에 코린토 1서 4장 1~5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내에 분열이 야기된 원인 중 하나가 복음 전파자들에 대한

인간적 판단에 있음을 직시하고, 복음 전파자에 대한 판단을

금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 서두인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선 복음 전파자가 그리스도의 시종이요,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므로 인간적 판단의 대상이 아님을 밝힌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3장 23절의 내용, 즉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라는 말씀의 맥락에서 복음 전파자들 또한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느님의 것이라는 보다 진전된 내용을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코린토1서 4장 1~5절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복음 전파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교훈하는 것이다.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명시적으로 밝히는 바와 같이 교회의 봉사자들,

특히 복음 전파자들 그리스도의 시종이요,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다.

 

여기서 '시종'(일꾼)으로 번역된 '휘페레타스'(hyperetas)의 원형

'휘페레테스'(hyperetes)'~아래에'란 뜻을 가진 전치사 '휘포'(hypo)

'노를 젓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렛소'(eresso)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배의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의미한다.

 

당시 로마 시대에는 이 일은 중죄인이나 가장 비천한 노예가 감당했던 일이며,

한번 노젓는 노예로 전락하면 일반적으로 죽기 이전까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점차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관리들과 행정 장관들의 수행원들과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마태5,25).

 

이런 점에서 여기 언급된 '휘페레타스'(hyperetas)

코린토 1서 3장 5절에 이미 언급된 바 있는 '디아코노이'(diakonoi)

그 표현은 다를지라도 의미상 차이는 없다.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마치 종이 하는 일이 종 자신의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이듯이 복음 전파자들의 활동 또한,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결코 복음 전파자들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사도 바오로가 복음 전파자들'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신비'로 번역된 '미스테리온'(mysterion)은 원래 '입문자'를 뜻하는

'뮈스테스'(myst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희랍의 비밀스런 의식을 하는 종교에서

종교의 입문자에게만 공개하는 신성시되는 의식 혹은 비밀스런 교리를 의미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 단어를 차용하여 그리스도의 '성찬례'를 가리키는데 사용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은 '성찬례의 집전자'

뜻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는 문맥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문맥을 통해 볼 때 본문에 언급된 '신비''복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목적에 관한 은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비는 전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 시대에 드러난

공개된 비밀이다(1코린13,2; 14,2; 15,51).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신비는 그리스의 신비 종교 집단에서처럼

종교 입문자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아니라

관심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공개된 비밀, 즉 계시된 비밀이다.

 

한편, 여기서 '맡은 관리인'으로 번역된 '오이코노무스'(oikonomus)

'집'을 뜻하는 명사 '오이코스'(oikos)'관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네모'(nemo)의 합성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집안이나 어떤 공동체의 행정관리

재정 담당하고 관리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종'(일꾼)이라는 표현이 일차적으로 노예 신분을 연상시킨다면,

'맡은 관리인'이라는 표현은 위엄과 권위의 신분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단순히 교회의 일꾼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권위를 가진 관리인(청지기, 집사)으로서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코리토 교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전파자들에 대하여

그 직분에 합당하게 올바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복음 전파자'들은 '시종'인 동시에 '맡은 관리인'이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자들의 이러한 양면적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에,

한편으로는 그들을 업신여겨 무시할 우려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자체를 과도하게 떠받들어 추앙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둘 다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2)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맡은 관리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충성)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본절에서 '요구되는'으로 번역된 '제테이타이'(zeteitai)'찾다',

'구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테오'(zeteo) 현재 수동태이다.

 

여기서 수동태가 사용된 것은 자신의 판단과 상관없이 성실(충성)이

요구되는 것이 사명을 맡은 관리인에게는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희랍어에서 현재형은 불변의 사실을 보여주므로, 맡은 관리인에게

하느님께 대한 성실(충성)이 요구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이것은 곧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직 성실(충성)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을 맡은 관리인주인의 명령에 순종함을 따라야 하며

맡은 바 자기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여기서 '성실'(충성)이라 번역된 '피스토스'(pistos)'믿을만한',

'신실한'이라는 뜻을 지닌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관리인은

오직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편,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의 지혜나, 언변이나 학식, 그리고

가문과 같이 인간적 판단에 있어서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맡겨진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인 복음에 대한 신실함, 즉 성실(충성)이다.

 

코린토 교회에 전반적으로 풍성했던 영적 은사를 감안할 때,

코린토 교인들 중 일부는 아마 코린토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은사가

부족함을 꼬투리잡아 그들을 비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리인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풍성한 은사를 포함한

그 어떤 가시적 능력이 아니라, 사도 바오로를 판단하며 사도로서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코린토 교인들에게 사도 바오로 자신은 충성을 다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자신의 사도성의 정당함을 변호하고 있다.

 

동시에 코린토1서 4장 3~5절에 나오는대로, 관리인의 충성의 대상이며

절대 무류이신 절대자 하느님만이 최종 심판관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