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3)
(2010. 9. 17. 사제 피정)
30. 질의응답 (3)
1. 질문 :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하느님 뜻 영성 피정에 관한 문제로, 지금 5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이범주 신부님이 지도하는 피정에 지금까지 봉사자로서 계속 참석했습니다. 이범주 신부님의 피정 내용이 뭔가 하면 19권까지 그 좋은 내용을 다 뽑아가지고 그것을 강의식으로 했습니다. 강의 시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로 굉장히 길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너무 좋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가서 어떻게 실천해야 될지 문제도 있는데 여기 봉사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번 11월 10일에 봉사자 신부님들인 서 신부님, 채 신부님, 문 신부님과 제가 앞으로 주제를 뭐로 하자, 어떻게 피정을 이끌어가자, 이범주 신부님이 혼자서 기획해서 만들어 오신 전체 프로그램을 어떻게 바꾸느냐? 그것을 연구해서 여기 와가지고 발표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직자, 수도자들이니까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집에 돌아가면 혼자 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범주 신부님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답 : 이번에 제가 이 며칠간 함께 나눈 것을 다소간 따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피정에서 하느님 뜻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있었으므로, 이 피정의 전체 일정을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하나 실질적인 것은 여기에서 가르쳐준 모임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하는 모임은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아주 확실한 것이므로 만일 사람들이 이 방법에 대해서 충실하면 아주 유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매주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뿐이니까, 이제 남은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 책의 많은 장(章)에서 나오는 세 가지, 즉 ‘For Him (예수님을 위해서), With Him (예수님과 함께), In Him (예수님 안에서)’ 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루이사의 글 중 초기 열권까지를 보면, 열 개의 장(章)에서 예수님께서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어떻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장(章)들에서 우리가 기도할 때, 먹을 때, 걸을 때, 형제자매들과 같이 살아 갈 때,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사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아주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 열권까지에는 이것과 관련된 많은 장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이것을 계속하면 다른 많은 장들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의 11권부터 19권까지는 어떻게 주님 안에서, 그분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지가 또 많이 나옵니다.
일상생활에서 신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이 교회와 성사에 충실하고 미사 참례를 통해서 가톨릭 신자로서의 삶과 가톨릭 정신의 삶에 대한 앎이 계속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식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내용도 많이 나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피정에서나 여자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 여자들은 전부 자기 교구의 무슨 단체, 무슨 신심단체 같은 데에 들어가 있는 여자들입니다. 그렇게 여자들은 자기 집에서는 하느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여자들 이야기만 하는 것은 남자들은 피정에 안 오니까 남자들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각자가 사는 실질적인 매일의 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 이것이 이런 모든 것의 기본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식별할 수 있도록 그런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공상, 정신적인 환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 피정 중에 그룹 대화가 꼭 필요한지요?
답 : 아니요. 피정 동안에는 말씀을 듣고 말하는 것이니까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만약 피정 안에 강의를 듣고 그 강의 내용에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프로그램 안에 준비되어 있다면 그것은 가능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주제를 주고 그룹 토론을 한 후 결론을 종합하는 것으로 피정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면 그것은 좋겠습니다만, 그룹 대화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범주 신부님이 피정에서 한 개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주제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피정 안에서 자신들의 질문이나 의견을 피정 참가자들이 직접 적어 내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사람들 마음 안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작은 조사를 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제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내용을 알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많은 경우의 피정에서 하느님 뜻에 대해서 이런 대단한 좋은 이야기를 알려 드리는데도, 사람들은 교회의 교리에 대한 어떤 아주 작은 것에서 멈추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교리에 대한 어떤 점에서 의문이 생겨서 그들은 우리를 따라올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작은 문제에서 그들의 마음이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고, 더 많은 문제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피정에 온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하느님 뜻에 대한 설명은 중지하고, 그들의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의문점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해당되는 것이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하느님 뜻에 대한 것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느님 뜻에 대한 배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질문 : 최봉도 신부님은 치료도 필요하고 구마도 필요한 사람들의 내적 치유를 35년 동안 해오셨습니다.
답 : 가능하다면 피정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하고, 가족 문제나 죄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신부님과 대화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문제점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 죄에 대한 문제, 가족 안의 어려움과 같은 수준의 것인데, 이런 것들이 모든 것을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피정 지도 신부님과 대화를 하든지 혹은 피정에 오신 다른 신부님들과 대화를 통해서도 의견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피정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질문 : 저는 이렇게 합니다. 내적 치유에 대한 작은 책을 모두에게 줍니다. 그 책으로 먼저 문제 해결을 다 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구마할 분이 많습니다. 교만의 악령, 음란의 악령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체가 함께 구마기도를 한 번 하고, 그래도 안 풀린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나한테 다 오라고 합니다.
답 :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방법은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영혼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을 살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분들을 돕는 것은 다른 수준으로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그분들을 도와주어서 그런 문제들이 먼저 완전히 해결이 된 다음에 하느님 뜻 이야기를 하는 그런 단계로 넘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다른 수준으로 하는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피정에는 하느님 뜻을 공부하는 피정이 있고 또 지금 말한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피정이 있겠는데, 가능하다면 우선 그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피정에 참가하면 그 사람들이 하느님 뜻 피정에 참가할 준비가 훨씬 더 잘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 : 예, 잘 이해했습니다.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예수님과 성모님이 우리의 잘못 때문에 고통을 당하신다고 책에서 봤습니다. 예컨대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의 전 인류가 1조(兆)명이라고 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죄를 범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는 1조(兆)분의 1에 대한 고통을 당하신 건가요?
답 :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통받으시는 것은 모두 인류,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이 고통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루이사의 글을 통해서 여러 번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말씀으로서 살아가신 일생의 매 순간 매 사건마다 인간의 모든 신비를 껴안으시고 또 그 모든 신비들을 예수님께서 사셨습니다. 신부님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또 각자를 위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님이 고통받으신 것, 사신 것 모두가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또 신부님을 위한 것입니다. 또 여기에 있는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온 우주 안에서 신부님 한 사람만이 구원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신부님 한 사람을 위해서 당신이 당하신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을 것입니다.
고통은 피조물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 죄의 결과입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본질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을 다 합쳐도 그것은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그분의 사랑의 신비 안에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껴안으신 모든 고통과 십자가의 신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신비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물론 분명히 예수님께서 신부님의 개인적인 죄를 위해서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신부님의 죄, 내 죄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각각 다른 고통과 죽음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포함한 하나로 다 합쳐집니다. 모든 것이 합쳐진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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