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6-10권

천상의책 (7권-61-70)예수님수난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의 효과/교인들의 죄와 속인들의 죄의 차이/온유와 평화

Skyblue fiat 2014. 10. 19. 01:57

 

7권-61,  영혼 안에 은총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

1906년 10월 31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 동안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들르시어 다만 이 말씀만 주셨다.

 

2. “딸아, 영혼이 겪는 고통은 각각 자기 지배의 자치적 영토를 하나씩 더 얻게 한다. 사실 고통 중의 인내가 자기 통치의 체제이기에, 자기를 다스리면서 고통을 많이 받을수록 그만큼 더 많은 영토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막대한 재산을 획득하면서 오로지 자기의 하늘 나라를 확장하며 키울 따름이다.

 

3. 그러니 하나의 고통을 더 받을 때마다 네 영혼 안에 하나의 나라를 더 얻게 되는 이라고 생각하여라. 그것은 덕행과 영광의 나라에 상응하는 은총의 나라이다.”

 

 

 

7권-62,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믿음과 희망

1906년 11월 6일

 

1. 늘 하는 방식에 따라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이 방식이란 내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주님과 함께 그분 자신의 지향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나도 모르게, 저토록 숱한 불신앙을 보속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얻도록 또 이 믿음을 모든 이에게 선물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 순간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움직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그건 옳지 않은 말이다. 나는 믿음도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질 수도 없었다. 내가 바로 하느님이었으니까. 나는 오직 사랑이었을 뿐이다.”

 

3.  이 '사랑'이라는 낱말을 듣자 나도 오직 사랑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나머지 아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저의 주님, 저도 당신처럼 온전히 다만 사랑이고 싶습니다.” 하고, 안 해도 될 소리를 불쑥 내질렀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셨다.

 

4. “그것이 나의 목적이다. 그래서 완전한 자기 포기에 대하여 너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나의 뜻 안에서 삶으로써 지극히 용감한 사랑을 얻게 되고, 바로 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혼은 온전히 사랑이 되고, 온전히 사랑이 되기에 끊임없이 나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내 안에, 나를 위하여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

 

5. 나의 뜻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행할 마음을 먹거나 원하지 않는데, 그것은 나의 뜻 안에 영원하신 분의 모든 사랑이 들어있고, 그 자신도 이 뜻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6, 이와 같이 살아가면 믿음과 희망이 거의 녹아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영혼이 하느님의 뜻으로 살게 됨에 따라 더 이상 믿음과 희망과의 접촉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가기에 이미 이를 찾아내어 양식으로 삼고 있는 터에 무엇을 아직 믿어야 하겠느냐? 이미 하느님의 바깥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터에 무엇을 아직 희망해야 하겠느냐?

 

7. 따라서 참되고 완전한 자기 포기 (복된) 운명이 확실히 예정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요, 영혼이 이미 하느님을 확실히 소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알아듣겠느냐?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8. 나는 넋이 홀린 듯한 기분으로 있다가 “실제로 인간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고 중얼거렸고, 아무래도 믿기지 않아서 “어쩌면 그분께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려고 나를 시험하고자 하시는 건지도 모른다. 되지 않는 소리를 더 많이 할 영역을 제공하시면서 나의 자만이 어디까지 가는지 내게 보여 주시려고 말이다.” 하였다.

 

9. “그렇지만 그런 소리를 하는 것도 영 나쁘진 않다. 적어도 그분으로 하여금 어떤 말씀을 하시게 하고, 그리하여 죽음에서 생명에로 다시 일으키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은혜를 받게 되니 말이지.”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어떤 소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분께서 다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내가 너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시험하려고 드는구나. 더욱이 내 진리에 대하여 의심까지 하다니, 썩 그만둬라!”

 

11. 그리고 그분은 침묵을 지키셨다. 나는 무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이는 (그 성격상) 워낙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7권-63,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의 효과

1906년 11월 9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3.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4.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5.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7권-64,  영혼은 현세에서 예수님께 거처를 제공하고,

예수님은 영원 속에서 그에게 거처를 주신다

1906년 11월 12일

 

1. 평상시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당신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나의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

 

2. “나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러니까 떠나는 법 없이 계속 네 안에서 거처하고 있는 거다.”

 

3. 그래서 내가 “은혜롭게도 제 안에 늘 거처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 안에 거처할 수 있다면 더욱 만족할 것이고 더욱 안전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아, 내 딸아, 너는 현세에서 나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나는 영원 속에서 너에게 그것을 주겠다. 그런즉 십분 만족해하며 확신하여라. 네 안에서 거처하고 있는 이는 너의 거처를 견고하게 하여 아무런 위험도 타지 않게 유지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7권-65,  하늘 나라의 경계를 확장하는 십자가

1906년 11월 14일

 

1. 오, 그분께서 오시지 않아서 얼마나 발버둥치며 괴로워했는지!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야 그분은 아주 잠깐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완전한 자기 포기 (복된) 운명이 예정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확실하고 틀림없는 표지이지만,

십자가는 하늘 나라의 경계를 확장한다.”

 

3. 그리고 그분은 섬광이 번쩍 하듯 사라지셨다.

 

 

 

 

7권-66,  교인들의 죄와 속인들의 죄의 차이

1906년 11월 16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 사제들과 일반 신자들이 범하는 허다한 죄들을 보았고, 그들로 말미암아 복되신 예수님께서 심히 비통해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거의 놀라다시피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저의 감미로운 생명이시여, 과연 교인들이 당신께 죄를 짓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속인들은 더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렇건만 당신께서는 속인들보다 교인들 때문에 더 많이 속을 썩이십니다. 어쩌면 교인들의 일거일동은 샅샅이 지켜보시고 속인들의 행실은 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3.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딸아, 너는 교인들의 죄와 속인들의 죄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네가 의아해하는 것이다. 교인들은 자기네가 나의 소유이고 나를 사랑하며 섬기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내 은총의 보화들을 맡겼고, 그들 중 특히 사제들에게는 내 성사들의 보화를 맡겼다.

 

4 그런데 겉으로는 내게 속한 사람들인 체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며 섬기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과시하지만, 나를 모욕하면서 스스로의 격정을 떠받들기 위하여 거룩한 것을 악용한다. 내가 샅샅이 주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니, 그것은 그들이 나의 선물과 은총들을 훼손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5. 하지만 나의 그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관상 나의 영광을 찬양하는 체하면서 그 거룩한 것을 크게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한 중죄인지 네가 알 수 있다면 애통하다 못해 죽고 말 것이다.

 

6. 그 반면에 속인들은 내게 속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안다고 섬기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 나를 가장 불쾌하게 하는 위선적인 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로서는 그렇게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그들에게 내 선물들을 맡길 수 없었다. 비록 은총은 그들을 자극하면서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말이다. (한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은총을 원하지 않는 이상 은총이 스스로를 내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7. 이는 어떤 왕이 다른 왕들의 압제를 받으며 종살이를 하고 있는 백성들을 해방시키려고 싸움을 벌여 피의 힘으로 용케 그 백성들 중의 일부를 구해 낸 것에 비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왕은 이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모든 것을 제공하며, 필요한 경우 그들로 하여금 왕 자신의 궁궐에서 살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왕을 모욕한다면, 왕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왕이 구해 내고자 했거나 자기 궁궐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왕을 더 불쾌하게 하겠느냐?”

 

 

 

7권-67,  내적 정신과 올바른 지향이 없는 활동의 해악

​1906년 11월 18일

 

1. 평상시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으면서 복되신 예수님을 아주 잠깐밖에 못 뵈었는데 다만 이 말씀만 주셨다.

 

2. “딸아, 실질적인 양분을 제거한 음식이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이 음식을 먹는다면 그에게 유익을 주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위장만 부풀릴 것이다. 내적 정신과 올바른 지향이 없는 활동도 그와 같다.

 

3. 신적인 실질이 비어 있기 때문에 유익하지 않고 다만 그 인간(의 자만심)을 부풀리는 역할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유익보다 해악을 입게 된다.”

 

7권-68,  신적인 힘을 주는 순명

1906년 11월 20일

 

1. 거의 계속적인 부재를 겪는 데서 오는 고통과 평화 역시 가득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중이다. 그분께서는 휙 지나가는 순간적인 빛과 같이 모습을보여 주시며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순명은 흔들림 없는 성벽이어서 영혼을 그와 같이 견실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흔들림이 없도록 하려면 영혼 편에서도 강건하고 건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순명이 그에게 신적인 힘을 준다.

 

3. 영혼이 소유한 이 신적인 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순명은 무엇이든지 움직일 수 있는 반면, 순명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4. 그리고 그분은 사라지셨다.

 

 

 

 7권-69,  예수님과 함께하는 행위가 가져오는 선익

1906년 11월 28일

 

1. 앞서 말한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을 뵈었는데 그 즉시 그분께서 완전히 내 안에 포함된 모습으로 바뀌신 것 같았다. 예컨대, 내가 숨을 쉬면 내 숨 안에 그분의 숨이 느껴지고, 한쪽 팔을 움직이면 내 팔 안에서 움직이는 그분의 팔이 느껴지는 식이었다. 이는 내가 무엇을 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시면서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사랑하는 딸아, 내가 얼마나 긴밀한 일치를 이루며 너와 함께 있는지 이제 알겠느냐? 이와 같이 너도 나와 긴밀히 일치하기 바란다. 하지만, 오직 기도할 때나 고통을 받을 때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3. 네가 움직이고 숨쉬고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것 - 이 모든 것을 나의 인성 안에서 하는 것처럼 하고 다 내게서 오는 것처럼 행함으로써 너는 다만 조가비같이 되어야 한다. 너의 행위라는 이 조가비를 쪼개면 신적인 행위의 결실인 속살이 나타나 보이도록 말이다.

 

4. 너는 온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내 인성이 현존하듯이 그렇게 하여라. 마치 내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네가 나에게서 생명을 받겠다는 지향으로 극히 하찮고 사소한 행위까지 모든 것을 행하면, 그 모든 행위가 내 인성의 공로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5. 나는 사람이었지만 또 하느님이었기에 나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내 숨 안에 모든 사람의 숨을 담고 있었고, 나의 동작 안에 모든 사람의 동작을, 나의 생각 안에 모든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성화하며 신화(神化)하였고 그들의 죄를 보상하였다.

 

6. 그러니 네가 내게서 너의 행위 전부를 받으면서 모든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너 역시 네 안에 모든 사람을 수용하게 되고, 너의 행위가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두루 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더라도 너에게서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다.”

 

7. 그러나 저러나 내가 또 덜떨어진 소리를 많이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는 아주 내밀한 것이어서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대로 쓰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뭐랄까, 한 가닥의 빛을 붙들고 있는 사이 백 가닥의 빛이 빠져나가는 듯하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빈다.

 

7권-70,  온유와 평화

 1906년 12월 3일

 

1.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아서 대단히 괴로웠다. 이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뭔가 거치적거리는 것이 있어서 안절부절 못하기도 하였다.

 

2. - 오 하느님, 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이에 비하면 다른 모든 고통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한 무엇일 뿐입니다. 오직 당신을 못 뵙는 이 고통에만 고통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심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자 그분께서 서둘러 내 안에서 나오시더니

“어찌 된 일이냐? 그만 진정해라. 내가 여기 있다. 너와 함께 있을 뿐더러 네 안에도 있다.” 하셨다.

 

4. “이렇듯 불안해하는 마음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온유하고 평화로워서, 나에 대해서 말해지는 것이 너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젖과 꿀만이 내 안에서 흘러나온다는 말인데, 여기에서 젖은 평화를 상징하고 꿀은 온유를 상징한다. 이 젖과 꿀이 나를 가득채워 푹 젖게 할 정도이기에, 그것이 내 눈에서, 내 입에서, 그리고 나의 모든 행적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5. 너도 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내가 너로 해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완전히 평화롭고 온유한 존재인 내가 네 안에서 거처하고 있는데도 네가 좀이라도 한이 맺혀 있거나 불안해하는 마음을 보인다면 나를 존경하지 않는 셈이 되니 말이다.

 

6. 나는 온유와 평화를 너무나 좋아하므로, 비록 나의 영예와 영광에 관련된 위대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분개하며 격렬하고 사나운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은 원치 않을 뿐더러 절대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온유하고 평화로운 방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7. 사실, 온유함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슬처럼 묶어 풀리지 않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그들에게 들러붙은 끈적끈적한 송진과 같아서 아무래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어진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이 영혼 안에는 하느님의 손가락이 있다. 우리가 달리 행동할 수 없으니 말이지.’

게다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기 마련이다.

 

8. 만일 어떤 주제에 대해서 말하거나 다루는 사람이, 설령 하느님에 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온유하고 평화로운 태도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의 격정들을 정돈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다. 또한, 그렇게 질서가 잡혀 있지 않은 사람은 남들을 정돈해 줄 수도 없다. 그런즉, 네가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면 온유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