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 끝) 제6장/ 5. “너희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Skyblue fiat 2021. 5. 23. 12:09

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6 장 증거자들

 

5. “너희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나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어떻게 그들이 전세계로 흩어져 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돌아다니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다른 제자들보다 약간 앞서서 베드로와 함께 걸으셨는데, 여러 방향을 가리키시며, 베드로와 말씀을 나누셨다. 그분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치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그분은 장래에 사도들의 파견에 관해 말씀해 주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지금 사도들이 그 말씀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영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사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았다. 나는 열두 명의 사도가 많은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여행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베드로는 모두에게 이야기했으며, 요한과 작은 야고보와 함께 그들이 가야 할 지역을 분담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베드로는 각 사도들에게 몸을 돌리며 말을 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신 것들을 그들에게 알려 주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사도들은 한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였다. 그들은 헤어지기 전에 서로 포옹했으며, 각기 다른 사도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였다. 축복하는 사람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갔다. 나는 그곳에서 여인들은 한 명도 본 기억이 없다. 그들이 헤어졌을 때는 날이 샐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그들이 파견되어 간 여러 지역들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들은 각기 바다를 건너갔다.

 

나는 안드레아순교로 최후를 마칠 때 재판관이 에게아스라는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가 못박혔던 십자가는 X 모양으로 된 것이었다. 이 같은 십자가 모양이었는데도 그의 두 팔은 떨어져 있지 않고 기둥 중간 위쪽에 묶인 채 매달려 있었다. 이 같은 십자가 형태는 세 개의 기둥으로 십자가를 빨리 쉽게 만드는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안드레아는 족히 이틀 동안 밤낮으로 그렇게 매달린 채 쉬지 않고 가르쳤다. 그를 매우 사랑했던 군중들은 결국 감동했으며, 그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였다. 에게아스도 그곳으로 사람을 파견했다. 그 언덕에는 너무나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압사하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십자가에서 그대로 죽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서 풀어 내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이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순교하였다.

 

바르톨로메오는 아시아와 아베시니아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폴리미우스 왕과 그의 가족들을 개종시켰는데, 그때 그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로 가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다. 그동안에 우상을 섬기던 사제는 바르톨로메오를 배반하고는, 폴리미우스 왕의 형인 아스티아게스에게로 가서 바르톨로메오가 마법사라고 고발하였다. 바르톨로메오가 사도들의 모임으로부터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곳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정찰군에게 체포되어 아스티아게스 앞으로 끌려왔다. 아스티아게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 동생을 유혹해서 너의 신에게 경배하게 만들었다. 나는 네가 나의 신을 섬기도록 가르치겠다.”

바르톨로메오가 대답하였다.

“당신의 동생에게 악령을 보게 하시고 그 악령을 지옥으로 추방시켰던 힘을 내게 주신 하느님께서 이제 또한 당신이 섬기는 우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과 당신이 그분을 믿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실 것이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전령관이 와서 왕이 섬기는 우상이 산산조각이 난 채 땅바닥에 흩어져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왕은 그 일이 일어나자 화가 치밀어 올라 그의 옷을 찢으며 바르톨로메오를 채찍질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나무에 묶인 채 고초를 겪었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들이 짧은 검으로 그의 목을 찌를 때까지 계속해서 큰소리로 가르쳤다. 어디엔가 틀림없이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이 여러 나라에 전해지지 않았으며, 그 후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에 내용이 애매하게 되고 신빙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교도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기적의 형태가 유다인들에게서 일어나는 기적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르며, 온갖 종류의 마술과 악마의 마술과 대적하는 가운데 훨씬 난폭하게 처형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그리스도교인이 된 왕이 어떻게 가난하게 외로이 내버려지게 되는가도 보았다. 또한 그가 그의 아버지께 소망했던 그리스도 왕국을 얼마나 열렬히 생각하고 있는지도 보았다. 그는 어떤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느 부유한 여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그녀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녀의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맹세하고는 그곳에 와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그 후 그는 그 지방으로 왔던 마태오를 통해 사제가 되었고, 뒤이어 주교로 임명되었다. 나는 그 후 그가 순교자가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또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매우 절망적이고 무력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특별한 은총의 힘이 그에게 내리는 것을 보았다.

 

타대오는 성모 마리아께서 돌아가실 때 그곳에 함께 있었고, 그 후 마지막으로 페르시아로 떠났다. 그는 제자인 압디아스와 또 한사람을 데리고 있었다. 압디아스는 바빌론의 주교가 되었으며, 저서들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왜곡되고 불확실한 보고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도 많았다. 어떤 전쟁터에서 타대오와 시몬 형제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부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또한 그들이 순교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것은 타대오의 생애를 보여주는 위대한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단지 다음의 내용들만이 지금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나는 그들이 뒤따르는 많은 군중들과 함께 어떤 강을 끼고 큰 도시(바빌론)를 향해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많은 운하들과 대단히 웅장하고 육중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때 그들의 일들은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중에서 내가 단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왕이 참석하고 있는 어떤 집회에서 우상을 섬기는 사제가 사도들을 공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것을 보았다. 왕까지도 스스로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 그들과 동행했던 제자 한 사람(압디아스)은 그 도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또 다른 큰 도시로 갔으며 그곳에서 어떤 그리스도교인의 집에 머물렀다. 그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나는 그들이 그 신자의 안내를 받고 어떤 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에 있는 어떤 수레 위에 금과 은으로 만든 우상들이 실려 있었다.

수레 위에 소위 옥좌같이 생긴 곳에 우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사원의 중간 지점에 그것이 놓여 있었다. 그 사원 안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밖에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때 우상들이 박살이 나고, 사원 안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아무런 방어 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던 두 성인이 엄청난 수의 군중들과 온갖 무기를 갖춘 우상 숭배 사제들에 의해 이리저리 찢겨서 마침내 죽음을 당하는 모습이 떠올려진다. 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을 – 타대오로 여겨진다 – 허리에 차고 있던 손도끼로 머리를 찍어 얼굴 중간을 두 동강 내는 것을 보았다.

 

마르코는 예수의 첫번째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 베드로가 살았던 지방에서 훨씬 북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살았었다. 그러나 그는 베싸이다에서 어업과 다른 업종을 임차하여 생업을 유지하였다. 그는 키가 크고 기민했으며, 정수리는 대머리였으나 머리 뒤쪽에서 중간까지는 아직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그의 길고 곧게 생긴 코 위쪽으로 눈썹들이 무성하였다. 두 눈은 생기가 돌았으며 뺨은 여위었으나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의 턱은 금회색 빛의 수염으로 덮여 있었다. 그의 활동하는 모습은 직선적이고 민활하였다. 그는 재빠르고 재치가 있었으며 베드로처럼 순종하는 성품은 아니었다. 그는 베드로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소명을 받은 후 마르코는 오랫동안 베드로 곁에서 함께 지냈으며, 그와 함께 로마에도 머물렀다. 그는 베드로가 그에게 이야기했던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복음서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많은 체험을 갖고 있었으나 주님께서 수난당하시던 현장에는 있지 않았었다. 나는 로마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특히 마르코의 권유에 의해 성모 마리아께서 에페소에 세우셨던 것과 똑같은 십자가의 길이 교회 공동체에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열두 개의 돌로 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각각 그리스도의 수난 내용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돌에서 저 돌로 옮겨 가며 기도와 응송을 바쳤다. 이 수난처들을 모두 묵상하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페스트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이 사실이 이교도들에게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 성사에 참여했으며, 그들 또한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통해 개종하였다. 나는 또한 이 십자가 수난의 묵상길이 대 그레고리오 교황(그레고리오 1세, 서기 540 – 604 – 역자 주) 때 새롭게 단장되고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또한 마르코가 이집트에 있는 것과,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 모든 길들을 찾아보며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준비하는가를 보았다. 나는 그가 맨처음 알렉산드리아 시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그곳으로 곧바로 가지않고 이곳저곳에서 가르쳤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그는 오른쪽 검지를 잘렸는데, 신비한 현상에 의해 치유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검지를 잃었을 것이다. 그 현상을 보며 그는 바오로처럼 놀랐다. 그 손가락 주위는 평생동안 붉은 표시가 남아 있었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왔을 때, 그의 구두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구두공 아니아누스에게 수선하도록 맡겼다. 그는 그 뒤 주교자 관구에서 마르코의 후계자가 된다.66)

마르코는 헬리오폴리스에도 있었다. 그곳에는 성가정이 있었을 때 생긴 기도원이 있었는데, 그 후에 교회가 되었고 나중에는 작은 수도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마르코에 의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유다인들이었다. 그곳에는 은자처럼 살아가는 경건한 유다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테라피텐(Therapiten)으로 불렸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교도의 나라인 이곳까지 두루 방문하셨을 때 이미 유다와 국경을 이루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후 이집트에서는 그들을 따라 많은 은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마르코알렉산드리아의 어느 감옥에 내던져지는 것과 그곳에서 끈으로 교살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감금되었을 때 나는 예수께서 성반(聖盤)을 가지고 오셔서 그에게 둥근 모양의 작은 빵을 건네 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시신은 그 후 베니스로 옮겨졌다.

 

루가의 부모는 중산 계층 출신이었는데, 안티오키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 그는 매우 생기 발랄했으며 고상하고 쾌활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에서 회화(繪畵)를 배웠다. 나는 그가 성장한 후 이집트의 어느 도시에서 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예수께서 생존하셨을 때 루가가 주님 곁에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으신 직후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요한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의사로서 이곳저곳에서 살았으며 신자들과는 단지 일시적인 접촉만 했을 뿐 지속적인 관계는 갖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많은 것들을 기록해 두는 것을 보았는데, 약초들에 관해서도 적었다. 그는 두루마리로 된 양피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주 무엇인가를 기록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의심을 갖고 있었고, 엠마오에 와서야 비로소 생동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에페소에서 요한 곁에 있는 것을 보았으며, 성모 마리아가 계신 집에 있는 것도 보았다. 그 후 루가는 이집트로부터 요한에게로 왔던 안드레아와 함께 있었다. 그 후 그는 그의 고향에서 바오로와 알게 되었고 그와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바오로도 보았는데, 그는 작은 키에 통통했으며, 강인하고 거무스름하였다. 그는 심성이 확고하고 강했으며 올바르게 생각하는 인물처럼 보였지만 완고하거나 외곬스러운 점은 없었다. 그는 개종한 후 매우 온유하고 사랑이 넘쳤으나 확고 부동하고 열정적이고 진지한 면에서는 여전하였다.

루가는 바오로의 권유를 받고 복음서를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주님의 생애에 관해 잘못 기록된 책자들이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지 이십오 년이 지나서 기술했는데, 그 대부분을 도처에서 목격자들로부터 수집한 보고 자료들에 의해 작성하였다. 나는 라자로가 되살아난 시기에 이미 그가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던 장소들을 방문하고 모든 사실에 대해 상세히 묻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르사바와도 친교를 맺었다. 나는 또한 마르코가 오직 목격자들의 보고만으로 기록했으며 그 일을 할 때 다른 복음서의 기록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다른 복음서들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만일 복음의 기록자들이 모든 것을 기록했더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믿지 않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빈번하게 계속되는 기적들의 기록이 늘어나지 않도록 대부분을 기록에서 제외하였다. 나는 주교가 된 루가가 테베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순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목이 밧줄에 묶여 올리브나무에 매달린 채 창에 찔려 죽는 것을 보았다. 창 하나가 그의 가슴에 꽂히자 그의 상반신은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다시 높이 매달아 놓고 더 많은 창으로 찔렀다. 그는 밤중에 남 몰래 매장되었다.

 

토마는 박트리아로 전교 여행을 하였다. 그는 티베트에도 머물렀다. 그는 중국을 거쳐 러시아의 국경과 인접한 북쪽 끝의 경계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성모께서 돌아가신 곳으로 왔다. 그 후 그는 약속의 땅으로부터 다시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의 일부 지역과 스위스 그리고 프랑스의 일부 지역을 거쳐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유딧이 거주했던 지역 근처까지 왔으며, 그 후 아베시니아와 이디오피아를 통과하여 소코토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그는 인도와 멜리아푸르로 갔으며, 그곳에서 그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난 후 견고한 요새로 된 중국의 일부 지역과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북쪽의 외곽 지대까지 갔다. 그곳으로부터 그는 일본의 최상단에 위치한 섬을 방문하였다. 그 섬의 한가운데는 큰 산들이 있었다.

토마는 인도를 방문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인도에 가기 전에 종종 그가 인도에서 아름답고 거대한 궁전을 세우는 환영(幻影)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즉시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 환영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건축 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인도로 가야 하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야만 한다는 소명의 소리를 마음 안에서 늘 들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을 건축하는 것임을 내면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말했다. 베드로는 그가 인도로 가는데 굳센 신념을 갖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는 홍해를 건너 인도로 갔다. 소코토라섬에서도 가르침을 베풀었으나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토마가 도착한 곳은 인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큰 축제가 준비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가르침을 베풀며 환자들을 치유해 주었다. 왕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그토록 많은 신봉자들을 얻게 되자 우상을 섬기는 젊은 사제는 그를 몹시 증오하였다. 그는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토마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토마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다른쪽 뺨도 그에게 내밀며 감사를 표하였다. 왕과 모든 군중들은 그 광경을 보고 매우 감동했으며, 토마를 성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 우상 숭배자도 회개하였다. 그의 손은 나병에 걸려 온통 상처 투성이였는데 토마는 그것을 치유해 주었다. 회개한 그 사람은 토마를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토마는 또한 왕의 딸과 악령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의 남편도 개종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곳을 떠나 동쪽으로 여행을 계속하였다. 나는 호수가 있는 다른 도시에 토마가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되돌아갈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곳은 나중에 사베리오가 머물고 있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타나시어 그가 인도의 내륙 지방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가야 한다고 분부하셨다. 토마는 그곳에 몹시 사나운 민족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로 가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두번째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요나처럼 당신의 면전에서 달아나려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가 그곳에 가야 하며, 주님께서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를 통해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것이며, 심판 날에 주님께서 인류를 위해 하신 일의 증인으로서 그가 주님 곁에 서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토마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곳으로부터 계속 내륙 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병을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냈으며, 샘물가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토마가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도중에 폭풍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일본 배 한 척이 매우 큰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선원들을 설득하여 그 배를 돕게 했으며 그 배는 마침내 구출되었다. 토마가 베풀은 기적과 가르침과 사랑에 감동된 그 배의 선장은 토마에게 그와 함께 일본에 가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일본 선장이 토마를 다시 데려다 줄 것을 약속하기 전에는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 토마는 교사를 남겨 두고 그 선장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약 반 년간 머물렀다. 그는 도시의 주택가로 들어갔다. 그 도시는 강 또는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건설되었는데 두 개의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물위로 항해해서 후미 쪽으로 선회할 수 있었으며, 뒤쪽으로는 탑들이 보였고, 물가를 따라 세워진 검은색의 담들 또는 요새들이 희뿌옇게 보였다.

 

그 선장은 토마를 다시 데리고 왔다. 그 이후 왕의 가족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였다. 우상 숭배 사제들은 그를 더욱 난폭하게 대하였다.

나는 토마가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도시의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일상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 바위에는 그의 무릎이 닿았던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닷물이 언젠가 이곳 바위까지 밀려들어 올 것이며 그때 먼 곳에서부터 한 사람이 찾아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나는 그 바닷물이 거기까지 밀려 올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사베리오가 도착했을 때 그에 의해 그곳에 돌로 된 십자가가 세워졌다.

 

나는 토마가 이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릴 때 탈혼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를 습격해 온 우상 숭배 사제들이 창으로 그의 등을 찌르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시신은 에데사로 옮겨졌다. 나는 그곳에서 그를 기념하는 교회 축제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토마의 갈비뼈 하나와 창이 있었다. 그가 순교한 바위 부근에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온통 그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또한 토마가 순교한 날이 오면, 언제나 올리브유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만일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해를 재앙의 해로 예견하였다. 나는 우상 숭배자들이 그 나무를 뽑아 버리려고 했으나 그 일이 헛수고로 끝나는 것을 보았으며, 그 나무가 날로 더욱 커지는 것을 보았다. 그 장소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의 축일을 맞아 성미사를 봉헌할 때면 그 나무에서 올리브유가 흘러내렸다. 그 도시는 멜리아푸르라고 불렸다. 지금 그곳은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토마가 순교할 때 아흔세 살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는 여윈 편이었고 진한 갈색 피부와 붉은빛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죽을 때 주님께서 발현하셨으며, 그가 주님과 함께 심판석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요한에 관해서도 많은 영상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질서 있게 정리할 수는 없고 그중에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나는 그가 케다르로 여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강을 건너 이방인의 도시들을 통과하여 그곳으로 가지 않고 강 위쪽으로 갔다. 내 생각에 그는 그 당시 광야로 들어갔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곳에서 나는 그가 어떤 나무 밑에 엎드린 채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제자들은 두루마리와 필기구 통을 갖고 있었다. 12월 28일에 안나 카타리나는 다음과같이 이야기했다. 요한은 세례를 받고 믿음의 자녀가 된 두 명의 형제를 데리고 케다르 곁의 강줄기를 따라 아시아 지역을 향해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죽기 전 삼년 동안 고독하게 머무르면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그때 그의 제자들은 그의 곁에 있지 않았고 얼마간 뒤편으로 떨어진 장소에 머물렀으며 이따금 그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고 그는 기술하였다. 나는 그가 어떤 나무 밑에서 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비가 오고 있는데도 그의 위에는 여전히 맑고 습기가 없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가르쳤다. 그를 통해 그 지역 부근의 여러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회두하였다. 나는 그 도시들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나는 그 지역이 예수께서 삼왕을 방문하셨던 곳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곳에서 다시 요한은 에페소로 갔다.

 

아라비아에서 토마는 세 동방 박사의 나라의 국민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다시 옛날의 우상 숭배자로 되돌아섰기 때문에 이들 주교들은 더 이상 혼자서 일을 완수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 요한에게 편지를 썼다. 요한은 그들에게 믿음의 두 형제, 곧 이미 세례를 받고 그의 제자가 된 마카리우스와 카유스를 보냈다. 그러나 그곳 주교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그에게 간청했기 때문에 마침내 그는 자신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다시 로마로 갔으며 그 후 에페소로 갔다.

 

나는 또한 성 요한의 죽음에 관한 아름다운 영상을 보았다. 그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으나 얼굴은 언제나 수려하고 부드러웠으며 젊은이와도 같았다.

나는 그가 에페소의 교회에서 사흘간 계속하여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는 것을 보았다. 내 생각에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 주신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매우 어렴풋한 기억을 갖고 있지만 예수께서 자주 그에게 발현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후 그가 그 도시의 앞쪽에 위치한 어떤 나무 아래서 그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나서 그는 두 사람과 함께 관목 숲속의 작은 구릉 뒤쪽에 있는 어떤 아름다운 장소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잔디가 있었고, 너무나도 푸르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땅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켰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의 무덤을 팠거나 또는 무덤을 마무리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자일 것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일이 매우 빨리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전에 대부분을 준비해 놓았던 것으로 확신되기 때문이다. 삽들도 이미 그곳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넘치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르쳤으며 기도를 드렸다. 그는 그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두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으며, 그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신부님, 당신은 우리를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그들은 모두 그의 주위로 가까이 몰려와서 엎드린 채 울었다. 그는 그들을 타이르고 함께 기도했으며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을 명하고는 다섯 명과 함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무덤은 그다지 깊지 않았고 이미 잔디로 덮여 있었다. 그곳은 덩굴로 된 덮개가 덮여 있었는데, 나중에 그 위에 잔디와 돌이 놓였다.

요한은 무덤 앞에 서서 팔을 넓게 펼쳐 들고 기도를 드렸다. 그는 겉옷을 그 속에 놓고 내려와 엎드린 후 계속 기도를 드렸다. 제자들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울며 기도하였다. 나는 그때 놀라운 일을 보았다. 요한이 마련된 그곳으로 조용히 내려가서 임종하는 그 순간에 나는 한 빛의 형상이 그의 위에서 광채를 발하는 것과 똑같은 빛의 형상이 그의 육신으로부터 빠져 나와 그 빛의 형상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다른 사람들이 그곳으로 와서 그의 시신을 향해 무덤 주위에 엎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의 시신은 덮혀졌다.

 

이 영상이 내게서 사라졌을 때, 나는 곧바로 예언자의 산에 관한 영상을 보았으며, 그 빛의 형상이 어떻게 천상의 장막에 자리잡는가를 보았다. 나는 자주 그곳에서 그 형상을 본다.

 


66) 성 아니아누스(Anianus)는 4월 25일 이래 성 마르코의 후계자로서 로마의 순교자 교회(Martyrologium:교회의 월력대로 작성된 순교자 명부가 있으며, 대부분 순교자들의 무덤인 예식 장소들에 대한 언명과 함께 그곳의 특징들이 묘사되어 있음 – 역자 주)에 있게 된다(편집자 주).

 

-END-

 

 

 

출처: CatholicOne | 미국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wordpress.com)

5. “너희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 CatholicOne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