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카를로스신부님-피정

제 6강의 : ‘수난의 시간들’ 기도의 효과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 (사제피정)

Skyblue fiat 2014. 6. 9. 12:37

 

제 6 강의

(2010. 9. 8. 사제 피정)

 

   예수그리스도의_수난의시간들.pdf (다운로드)

 

 

6. ‘수난의 시간들’ 기도의 효과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

 

 † 주 우리 하느님,

 † 십자성호로

 † 저희를 원수들에게서 구하소서. (작은 십자성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큰 성호)

 

○ 항상 거룩하시고 나누임이 없으신 삼위일체 하느님,

    저는 모든 이를 대신하여, 모든 마음들 안에서,

    당신을 깊이 흠숭하고 열렬히 사랑하며 영원토록 감사드리나이다.

    (제4권,1902,1,14)

 

○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알려 주시고,

    아버지의 뜻이 당신 안에서와 같이 저희 안에서도 다스리시게 하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이시여, 오셔서 저의 정신 안에서 생각하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이시여, 오셔서 저의 피 속에서 흐르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이시여, 오셔서 저의 눈 안에서 보소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이시여, 오셔서 저의 귀 안에서 들으소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안녕하세요. 성모님, 우리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늘의 첫 강의는 예수님 수난의 시간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예수님의 수난에 봉헌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벌써 이 수난의 시간들을 알고 읽고 행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루이사가 쓴 글을 보면서 그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과 수난의 시간들의 근원적인 것을 좀더 찾아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루이사가 안니발레 신부님한테 보낸 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루이사의 편지를 읽기 전에 먼저 그 역사에 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루이사는 어린 아이 때부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리고 어제 우리가 본대로 루이사는 수난의 시간을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에 안니발레 신부님이 코라토에 처음 오셨을 때 루이사는 벌써 45살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23년이나 침대에 계속 누워 있는 상태로 살아왔고 35년 동안 매일 수난의 시간을 묵상해 오던 때였습니다.

 

안니발레 신부님과 루이사가 만나면서, 안니발레 신부님은 루이사가 어릴 때부터 묵상을 해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사가 수난의 시간 묵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를 설명할 때, 신부님께서 크게 감동했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것이 루이사만의 독특한 것, 그러면서도 오리지널한 것임을 발견하셨습니다. 루이사가 살던 시대뿐만 아니라 그전에도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은 온 교회 전체에서 늘 해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사가 묵상한 것처럼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정신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교회 안에 수난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수난의 시간을 24시간으로 나누어서 묵상하는, 그리고 루이사의 수난의 시간 안에 있는 특별한 악센트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루이사가 하는 특별한 수난의 시간들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 안에서 하신 우리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생애의 마지막 24시간을 내적으로 어떻게 사셨는지,

당신 생애의 마지막 날을 어떤 보속의 정신으로 지내셨는지 그것이 그렇게 잘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다른 수난 책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 중에 어떻게 고통을 당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난의 책을 읽고 묵상하는 영혼들은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하느님께 바치는, 예수님의 수난을 하느님께 바치는 형식이었습니다.

 

안니발레 신부님은 루이사가 하는 수난의 시간들 묵상을 보고 굉장히 독특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루이사에게 수난 묵상을 전부 다 종이에 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루이사의 편지는 수난의 시간들을 다 쓴 다음에 맨 나중에 쓴 편지입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이제 드디어 제가 수난의 시간들을 신부님께 보내드립니다. 이제 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또 다른 종이 하나를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종이에는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수난의 시간을 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약속도 여기에 적었습니다.

제가 믿는 바로는 이 수난의 시간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수난의 시간 묵상을 하면 회개할 것입니다.”

 

“죄인이니까 그것을 읽고 회개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를 묵상하는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이면 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또 거룩한 사람이면 더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혹을 받는 사람이면 그 유혹으로부터 승리할 것이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면 이 수난의 시간에서 힘과 약과 위로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영혼이 약하고 가난하다면 그는 영적인 양식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난의 시간을 묵상하는 영혼은,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과 비슷해지도록,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을 발견할 것이다.

이 묵상을 하는 사람은 큰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루이사가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주 큰 만족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수난의 묵상은 예수님이 하신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한 것입니다.

만족을 받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동네든지 어떤 도시에서든지

적어도 수난의 시간을 묵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수난의 시간을 묵상할 때는 예수님의 목소리와 예수님 자신의 기도가 재생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그 슬픈 24시간의 수난 동안에 성부께 했던 그 얘기들이 재생되도록 해주십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어떤 도시나 마을에서 수난의 시간을 묵상한다면

정말 예수님의 목소리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이 수난의 시간 묵상으로 위로를 받으신다고 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피 흘리고 고통스러운 슬픈 수난의 묵상 시간 동안에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때리는 것이 일단 중단될 것입니다.

신부님, 제가 공경하올 신부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간청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나의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셨던 이 작은 일을

신부님께서 완성하시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요약해보면,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온 세상의 모든 도시에 적어도 수난의 시간 책 한권은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수난의 시간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할 영혼 하나가 도시마다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이 수난의 시간은 예수님 자신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온 세상에 내릴 것을, 적어도 수난의 시간을 하면서 그 하느님의 정의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편지를 읽겠습니다.

 

“제가 신부님께 말씀드리는데 이 수난 기도의 목적은 수난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을 다루는 많은 신심 서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많은 신심 서적들이 있는데 또 다른 수난의 신심 서적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 목적은 보속, 참회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수난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 많은 다양한 모독들과 함께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그 보속이 효과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수난의 시간은  다른 피조물들이 예수님께 신세진 그 모든 것을 거의 다 갚는 그런 효과가 있습니다.

래서 이런 면에서 이 수난의 시간들 안에는 여러 가지의 보속의 방법들이 있습니다.

떤 부분에서는 축복을 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똑같이 느끼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찬양을 합니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수난하시는 예수님을 위로해드립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보상을 해드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간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기도 부분에 보면 가톨릭 기도의 양식,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가톨릭 기도의 찬양, 경배, 중재 기도, 청원, 감사, 영광, 이 모든 형태들이

이 수난의 시간들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는

예수님 자신의 내적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들, 하느님을 거슬렀던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보속하는 정신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님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수난의 시간을 할 때마다 예수님 자신이 다시,

마치 이 지상에 있는 것처럼, 2000년 전에 하셨던 것을 또 하고 있다고 그렇게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에 말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서 하신 것을 우리에게 또 해주시는 것이 되니까,

말할 수 없이 큰 위로를 받으시고 좋아하십니다.

 

이제 실제로 수난의 시간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7권 1906년 11월 9일자 내용을 읽겠습니다. 이 장은 수난 묵상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63장을 모두 읽고 통역자가 전부 한국말로 읽은 다음에 몇 가지 언급을 하겠습니다.

 

“제63장 1906년 11월 9일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의 효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이 장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루이사 글의 모든 장, 각 장의 시작에는 항상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장에는 더욱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이사가 말하기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시간들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루이사는 언제나 하느님의 신비 속에 잠겨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성모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그것을 묵상하시고 생각하시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습니다.

이 음식은 예수님이 루이사에게 당신 자신을 열어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관한 모든 가르침은 다 루이사의 묵상에서 나온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수난의 시간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한 묵상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열망속에, 또 우리의 가슴속에 모시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혼이 그분을 목말라하고 배고파할 때,

예수님께서는 이런 영혼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자신을 내주십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것을 꼭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해주는 설명이 직접 그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영혼이 주님의 신비를 영원히 목말라하고 배고파하고 주님을 묵상할 때

그때 성령이 영혼에게 주시는 은혜가 영혼의 변화입니다.

 

또 다른 말씀입니다.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여기에 그 세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묵상하고,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며 기억하고, 그 다음에 똑같이 느끼는 것,

이 세 가지는 우리 영혼의 세 가지 능력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묵상은 우리의 지성으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기억으로 슬퍼하며 가슴 아파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똑같이 느끼고 동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수난을 묵상할 때,

우리 영혼의 세 가지 능력인 지성, 기억, 의지가 이 수난 안에서 활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세 가지 영혼의 능력으로 이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수난 묵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성과 기억과 의지가 다 같이 활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모든 내적 능력, 말하자면 우리의 상상력, 우리의 환상력, 우리의 열망, 우리의 느낌, 우리 내면의 모든 보배들, 그리고 우리의 몸까지, 우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 묵상 안에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몸과 온 영혼의 능력을 다해서 예수님과 동일화되는 것, 그래서 영혼이 이런 식으로 수난의 시간을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위로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그러니까 영혼이 주님을 위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지 주님께서 계속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우리가 준비한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중단할 것이 아니고, 이 장의 끝으로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우리가 우리 영혼의 지성과 기억과 의지로 수난을 묵상하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새로운 신적인 삶, 신적인 생명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음식을 드리고, 그 보상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삶이십니다. 그러니까 신적인 삶을 준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기억과 의지의 모든 묵상이 예수님의 음식이 되고,

우리가 인간적인 생명, 인간적인 삶으로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면

그 보상으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 신적인 삶, 신적인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끝을 맺으셨습니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렇게 하면, 사랑으로 이렇게 하면, 희망을 가지고 수난 묵상을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또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신적인 생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신적인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적인 삶, 생명을 나누어 받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삶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에도, 우리의 삶을 그분께 드리는 것에도

수난 묵상이 가장 보배로운 방법입니다.

 

11권 1913년 3월 24일 내용으로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9월 8일 성모님의 탄생 축일입니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뜻으로 성모님에 관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성모님이야 말로 예수님의 수난 묵상에 있어서 제일가는 모범이십니다. 4절입니다.

4 내가 내 자애로우신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도

   여기에 덧붙여 보면 이렇다.

5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수난에 대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다.

   이 거듭된 묵상에 의해서 그분 전체가 완전히 나로 충만하셨다.

6 내 수난을 거듭 생각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묵상에 의해서 나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성모님 모습이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으로 채우고 하느님 뜻의 나라에 들어가서 살려면 이렇게 예수님으로 충만해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완전히 변화하고 예수님으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으면 하느님 뜻의 나라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으로 채워지는 것은 저절로, 기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꼭 이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으로 가득 차는 경지에 이르러야 됩니다.

예수님의 인성도 처음부터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은총으로 지성과 몸이 자라셨습니다. 우리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라야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어느 경지에, 예수님으로 가득 차는 그 경지에 도달해야 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수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고 이 거듭된 묵상으로 그분은 예수님으로 가득 차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하느님 뜻의 나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매일 해야 할 것으로써

이 수난 묵상은 아주 굉장히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모님도 루이사도 이 수난 묵상을 일생 동안 했습니다. ‘수난의 시간들’은 그냥 한번 읽고 책장에 넣어두는 그런 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모임에서 시작 기도를 한 다음에 언제나 10분 동안 수난의 시간들을 읽습니다. 수난 묵상을 10분 동안 하는 것은 그 모임에 오는 사람들의 삶에 반영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모임에 오는 사람들의 삶이 이 모임 안에 반영이 되고, 이 모임에 온 사람들의 삶에 반영이 되기 위해서 10분 동안 수난의 시간들을 읽고 묵상합니다.

그 모임의 요소는 여러 가지, 그 모임에서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모임에서 시작기도, 개회기도는 우리 자신을 성부님께 봉헌하는 것이고, 주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수난 묵상을 하는데 동정 마리아 책에서 한 제목을 묵상하고, 그 다음에 영적 순례를 하고,

그 다음에는 천상의 책의 한 장이나 두 장의 내용을 읽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한 것은 이 모임에 온 사람들이 매일 자기 생활 안에서 그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뜻으로 이 모임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수난 묵상을 적어도 한 시간은 해야 하고, 동정 마리아 책에서 한 제목을 읽고 묵상하며 영적순례도 해야 합니다. 천상의 책도 최소한 한 장(chapter)은 꼭 읽어야 합니다.

 

매일을 사는 동안에 가족 간의 일도 있고, 각자의 본분도 있고, 사도직도 하고, 본당에서 하는 일도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을 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사도직이나 이런 자기 본분을 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해야 합니다. 이 모임에서 여러가지를 하는 것은 루이사가 주님과 함께 일생 동안 했던 그런 모습입니다.

 

어제 강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늘 9월 8일, 성모 탄생 축일에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30년 후에야 주님께서 하느님 뜻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루이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사는 수난의 시간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서 주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렇게 늦게 서야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루이사는 희생 제물로서 그렇게 준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 뜻의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루이사도 그전에는 안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상의 책 36권부터 읽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그러기 전에 먼저 복음으로 우리 자신을 예수님과 합치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아져야 됩니다.

 

11권 1913년 4월 10일 :

 

1 오늘 아침에는 언제나 사랑하올 내 예수님께서 오시어 나를 품에 꼭 껴안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수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샘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샘도 더욱 확장된다.

3 그리고 샘솟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의 샘도 그 사람 자신의 선익과 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쓰인다.”

4 그래서 나는 그분께 “저의 선이시여,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이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급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5 그분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딸아, 네가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치 내가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6 이와 같이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 지향에 따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하겠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해 주리니, 내가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줄 수 없을 것이다.

7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들이 내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한 횟수만큼

사랑과 기쁨의 불화살을 쏘면서 내 앞에 자리하게 하겠고 그들 역시 내게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복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황홀이 될 것이다!”

 

이 장은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의 말씀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우리가 묵상할 때, 그분이 하신 일이 우리 마음에 있고, 샘같이 되어서 우리 마음속에서 샘같이 솟아나게 됩니다. 영원토록 물이 솟아나는 그런 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샘이 솟아난다는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수난의 시간들을 할 때 우리의 영혼 안에 굉장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가 수난의 시간들을 하면 굉장한 일이 일어납니다. 영원히 남아있을 보배가 우리 안에 생겨납니다. 이것은 복음이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남아 있을 것, 영원히 존재할 것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쓰게 하는 것,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작이요 마침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안에서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 영혼 안에 영원한 생명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수난 묵상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또 우리 형제자매들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또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치 내가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이것은 아주 위대한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그 공로를 우리에게 준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큰 공로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온 세상을 구원하신 구원자의 수난입니다. 세상의 구원자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수난하신 것인데, 그것을 마치 내가 수난한 것처럼 나에게 준다고 하시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내가 예수님의 수난 묵상을 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대단한 효과가 미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영혼이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그냥 마술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지향에 따라서 준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희생, 이런 것들은 영원히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 안에 자동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진 피조물들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주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과 예수님의 모든 은총도, 자유 의지를 가진 피조물에게 저절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것은 다 피조물들에게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강제로 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피조물들을 굉장히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묵시록에서 나오는 것처럼 라오디케이아 교회에게 성령께서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 2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수난과 고통을 통해서 얻은 공로, 성모님께서 얻은 공로, 또 모든 성인들이 얻은 공로, 이 모든 것을 합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니까 받고 안 받고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입니다. 우리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어떤 지향을 가졌는지, 얼마만큼 열려 있는지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공로, 성모님의 공로, 성인들의 공로, 이런 모든 것들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 끝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그분의 수난을 묵상하는 영혼들을 당신 앞에 오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그 영혼과 사랑의 경쟁을 하려고 하십니다. 영원한 사랑의 경쟁을 하십니다. 예수님과 영혼이 영원한 경쟁을 할 것입니다. 모든 역사 안에서 예수님과 이 수난 묵상을 했던 영혼이 누가 더 사랑하는지 사랑의 경쟁을 할 것입니다.어떨 것인지 상상을 못하겠습니다만, 오늘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굉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매일 이렇게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할 것이고, 그러면 정말 믿을 수 없는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며칠 후에 루이사를 찾아 오셨습니다.

신부님의 영혼이 오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9 “기막히게 아름답고 놀라운 것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그대는 알고 있습니까?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출판함으로써 좋은 일을 했다고 여겼지만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그것이 이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답니다.

10 그런데 신묘하고 매혹적이고 일찍이 본 적 없는 진귀한 것들을 보게 되었으니,

우리 주님의 수난에 관한 낱말이 모두 빛으로 바뀐 데다

서로 더욱 아름답게 모든 가닥이 한꺼번에 엮여 있는 것입니다. (천상의 책 22-4,9-10 / 1927. 6. 17)

 

 

안니발레 신부님께서는 루이사에게 이것을 자세히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10 그리고 땅에서 사람들이『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함에 따라 이 빛살들이 점점 더 자라나서

처음 것에 더 많은 빛을 보태는 것입니다.

11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관해서 내가 발행한 책에 붙였던 몇 마디의 짧은 글이었습니다.

그 각 구절이 태양으로 바뀌어 있고, 이 태양들이 그 광선으로 온통 빛에 휩싸여 얼마나 놀라운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지 넋이 나가도록 황홀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빛과 태양들 한복판에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큰 놀라움에 잠겼는지, 내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그대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12  나는 그래서 내게 그 일을기회와 은총을 주신, 우리의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대 또한 나를 대신하여 그분께 감사를 드려 주구려.”

(천상의 책 22-4,10-12 / 1927. 6. 17) 라는 말입니다.

 

 영원히 다스리시고 살아계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예수그리스도의_수난의시간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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