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시간
오전 10시 - 11시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를 오르시어
거기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 예수님
═ 준비기도 ═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 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18)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당신을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겠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드는 모든 시간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이미 실행한 것처럼
저 자신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가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게 하겠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준비기도’를 바친 후)
꺼질 줄 모르는 사랑이신 예수님, 당신은 잠시도 쉬실 겨를이 없으십니다. 저는 큰소리로 울부짖는 듯한 당신의 사랑과 고통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은 세차게 뛰고, 그럴 때마다 폭발하며 격통을 느끼는 맹렬한 사랑의 포효 소리가 들립니다. 삼킬 듯 타오르는 이 사랑의 불을 견딜 수 없어서 당신은 불안해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십니다. 그리고 신음 소리를 내실 때마다 그것이 제 귀에는 “십자가!”로 들립니다. 당신의 피가 방울방울 “십자가!”를 외칩니다. 온갖 고통들이 한꺼번에 자꾸 “십자가!”를 외치는 끝없는 바다 - 당신은 이 바다에 잠겨 계십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오 사랑하는, 내 열망의 십자가야, 너만이 내 자녀들을 구원하리니, 내 모든 사랑이 네 안에 모여 있도다.”
예수님께 다시 가시관이 씌워지다.
한편, 원수들은 당신을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옷을 도로 입히려고 홍포를 벗깁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라니! 당신께서 그토록 고통당하시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 자색 옷이 가시관에 걸려 빠져나오지를 않자, 그들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옷과 가시관을 한꺼번에 잡아챕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부러진 가시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머리 속에 깊이 박힙니다. 피가 냇물처럼 흘러내리고, 그 격심한 아픔 때문에 당신은 신음 소리를 내십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그런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 옷으로 바꾸어 입힌 다음, 다시 가시관을 씌웁니다. 머리 속 깊이까지 찌르도록 눌러 씌우니, 가시들이 눈과 귀에도 들어갑니다. 그렇게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 전체가 가시투성이니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아픔인지 당신은 그 잔혹한 자들의 손아귀 아래에서 휘청거리시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경련 중에 돌아가실 것만 같습니다. 희미해진 눈에는 피가 가득 고여 저를 보실 수도 없으니, 그 큰 고통 가운데서 도움을 청하실 수도 없습니다.
통고의 왕이신 제 예수님, 저는 당신을 추슬러 제 가슴에 품어 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신을 삼키고 있는 불길로 원수들을 태워 재로 만들고 당신을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열망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다, 바로 이 원수들을 위해서도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산 제물로 바치고자 하시니 말입니다! 제 가슴에 당신을 안고 있는 동안 당신께서도 저를 안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나는 내 사랑을 펼쳐야 한다. 나와 함께, 선행을 한답시고 내게 치욕을 안겨 주는 자들을 위하여 보속하여라. 이 유다인들이 내게 홍포를 입힌 것은 백성들 앞에서 나를 더 불명예스럽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정말 죄인으로 여기게 하려는 것이다. 옷을 입힌 행위는 외관상 선행이었지만, 실제로는 악행이었던 것이다. 그런 선행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사들을 집전하고 받아 모시기도 하지만 인간적이고도 악하기까지 한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은 것이다. 그런데, 악한 의지로 선행을 하는 것은 그 인간 자신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시관이 다시 씌워지기를 원했다. 먼젓번보다 더 격렬한 통증으로 그 딱딱함을 부수려는 것이고, 그리하여 내 가시들로써 그들을 내게로 끌어당기려는 것이다.
“그렇다, 딸아, 이 두 번째 가시관은 내게 월등 더한 고통을 안겨 준다. 말하자면, 내 머리가 가시들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즉 그들이 나를 밀어젖힐 때마다 혹독한 죽음을 겪곤 한다. 이 고통으로 나는 악의에 찬 죄들을 보속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해 있는 영혼 상태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고, 따라서 자기 성화에 열중하는 대신, 내 은총을 허비하고 거부함으로써 한층 더 심한 통증을 주는 가시들로 다시금 나를 찔러대는 사람들을 위하여 보속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신음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구원을 열망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모욕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한다! 적어도 너만은 고난 받는 나를 홀로 버려두지 말고 내 곁에서 보속을 바쳐 다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다.
괴로움에 싸이신 제 예수님, 저는 보속하면서 당신과 함께 고통을 받습니다. 원수들이 층계 아래로 당신을 떼밀며 내려가는 동안, 격노한 군중은 한시 바삐 십자가를 진 당신을 보려고 기다리는 것이 보입니다. 원수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십자가를 찾아내게 합니다. 뜨거운 열망으로 찾으시던 당신은 마침내 애정 어린 눈길로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곧장 그 쪽으로 가서 부등켜 안으십니다. 그러나 먼저 십자가에 입맞추십니다. 그리고, 기쁨의 전율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인성을 관통하며 소용돌이침에 따라, 더할 수 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그 길이와 너비의 치수를 한눈에 알아보십니다. 이제, 각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의 몫을 정하시고, 그들을 혼인의 유대로 신성에 묶을 수 있을 만큼, 그리하여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십자가를 그들 각자에게 주십니다. 그런 후 그들에 대한 사랑을 억누를 길 없어서 한 번 더 십자가에 입맞추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스러운 십자가야, 드디어 너를 안게 되었구나! 너는 정녕 내 마음의 열망, 내 사랑의 순교였다! 오 너 십자가야, 지체되어 지금에야 왔지만, 내 발걸음은 언제나 너를 향한 걸음이었다. 거룩한 십자가야, 너는 내 열망의 목표, 내 지상 삶의 목적이었다. 네 안에 내 온 존재가 집중되어 있으니, 네 안에 내 자녀들도 다 모아 두련다. 네가 그들의 생명과 빛이 되고, 그들의 보호자이며 인도자, 그들의 힘이 되어라. 그들이 무슨 일을 할 때나 도와주고, 그들을 하늘로 데려옴으로써 내게 영광이 되게 하여라.
오 지혜의 근원인 십자가야, 너만이 참된 거룩함을 가르칠 수 있으니, 너만이 영웅과 힘찬 경주자와 순교자와 성인들을 기를 수 있다. 아름다운 십자가야, 네가 나의 옥좌이니, 내가 지상을 떠나야 할 때라도 너는 나 대신 남아 있어라. 모든 영혼들을 네 전리품으로 주리니, 나를 위해서 그들을 보존하여라. 나를 위해서 그들을 구원하여라. 내가 너에게 맡기는 그들을!”
이 말씀과 더불어 당신은 지극히 거룩하신 어깨로 이 열망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제 예수님, 당신 사랑에 비하면 십자가가 너무 가볍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무게에 하늘만큼 거대하고 엄청난 우리 죄의 무게가 보태집니다. 짓눌리시는 예수님, 당신은 너무도 많은 죄의 무게에 눌려 으스러지는 느낌이십니다. 당신의 영혼은 그 모든 죄를 보시며 진저리치고, 각각의 죄로 인한 고통을 하나하나 다 느끼십니다. 그 엄청난 추악함 앞에서 당신의 거룩함이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깨로 십자가를 지자마자 비틀거리시며 숨을 헐떡이십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몸에서 죽음과도 같은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제 사랑이시여, 저는 당신을 홀로 계시게 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십자가의 무게를 나누어지겠습니다. 죄의 무게를 덜어 드리려고 당신의 발을 감싸 안겠습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사랑을 드리고, 당신을 업신여기는 이들을 위하여 찬미를 드리며, 모든 이를 위하여 찬양과 감사와 순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께서 모욕을 받으실 때마다 저의 온 존재를 바쳐 보속하고, 사람들이 당신을 거슬러 저지르는 모욕과는 반대로 행동하며, 입맞춤과 끊임없는 사랑의 행위로 당신을 위로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비참한 인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 참된 보속을 드리려면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인성과 하나가 됩니다. 당신과 함께, 저의 악한 생각들과 모든 사람의 악한 생각들을 보속하기 위하여 제 생각을 당신 생각에 결합시킵니다. 악한 눈길들을 보속하기 위하여 제 눈을 당신 눈에 결합시킵니다. 신성 모독과 악한 담화들을 보속하기 위하여 제 입을 당신 입에 결합시킵니다. 악한 경향과 욕망과 애정들을 보속하기 위하여 제 마음을 당신 마음에 결합시킵니다. 요컨대, 저는 모든 사람에 대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시는 당신의 무한한 선과 하나 됨으로써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인성이 행하시는 모든 보속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것으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아, 당신의 신성과도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 신성 안에 무가치한 저는 사라지고, 전부이신 당신을 그대로 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바리아를 오르시다.
인내심이 지극하신 예수님, 당신께서 거대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첫걸음을 떼어 놓으시는 것이 보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제 걸음도 합치겠습니다. 그래서 힘이 빠지실 때, 피를 흘리고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하실 때, 제가 곁에서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제 어깨로도 십자가를 지고 당신과 함께 십자가의 무게를 나누겠습니다. 저를 외면하지 마시고 당신의 충실한 동반자로 받아 주소서.
오 예수님, 당신께서 저를 보십니다. 제가 보니 당신께서는, 인내하며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대신, 악담을 퍼붓고 화를 내며 남을 죽이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의 죄를 보속하고 계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의 십자가에 대하여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도록 기도하십니다.
첫 번째 넘어지심
당신은 고통이 하도 심해서 십자가에 눌려 으스러질 듯한 느낌이 드십니다. 미처 몇 걸음 옮기지 않아 넘어지시는데, 그만 바위에 부딪치십니다. 그 바람에 가시들이 더 깊이 머리 속에 박혀 심한 아픔을 느끼시고, 모든 상처에서 피가 더 많이 쏟아집니다. 다시 일어서실 기력이 없기 때문에 원수들은 화를 내며 당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발길질을 하고, 떼밀어 댑니다.
넘어져 계신 제 사랑이시여, 당신께서 일어서시도록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입맞춤을 드리며 피를 닦아내고, 무지와 나약함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과 함께 보속하겠습니다. 비오니 이 영혼들을 도와주소서.
예수님께서 복되신 어머니를 만나시다.
제 생명이신 예수님, 원수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끼치면서 가까스로 당신을 일으켜 세웁니다. 계속 비틀거리는 당신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당신의 심장이 더 세게 뛰면서 새롭고 날카로운 아픔에 꿰뚫리십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어 눈에 가득 고인 피를 흩으시며 애타게 무언가를 보려고 하십니다.
아, 예수님, 이제 저도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당신 엄마 - 슬픔에 잠긴 비둘기처럼 당신을 찾고 계시는 엄마를 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당신에게 마지막 말씀이라도 하고 당신의 마지막 눈길이라도 보고 싶어서 찾아다니시는 엄마를! 당신은 엄마의 고통을, 그리고 측은하고 애처로워 갈기갈기 미어진 그 마음을, 그분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으로 상처 입은 그 마음을 당신 마음으로 느끼십니다.
이제 당신은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오시려는 엄마를 보십니다. 그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을 보시려고, 껴안고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극도로 핼쑥한 엄마의 얼굴과 아울러, 사랑의 힘으로 그분 안에 재현된 당신의 모든 고통을 보시고 더 더욱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십니다. 어머니께서 그 모든 고통을 생생하게 겪으면서도 살아 계시는 것은 오직 당신 전능의 힘에 의한 기적 덕분입니다. 당신은 어머니를 향해 걸음을 옮기십니다. 그렇지만 군중에 가려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도 못하시니, 당신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병사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당신을 치고 밀치고 하여, 결국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인사마저 가로막고 맙니다.
두 번째 넘어지심
두 분의 고통이 어찌나 극심한지, 어머니는 비탄으로 돌처럼 굳어 막 실신하실 것 같습니다. 충실한 요한과 경건한 여인들이 어머니를 부축하고 있는데, 십자가를 지신 당신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십니다. 그러자 통고의 어머니는 몸으로 하실 수 없는 일을 영적으로 하십니다. 즉, ‘영원하신 분의 뜻’을 어머니의 뜻으로 삼고 당신 안으로 들어오셔서 모든 고통과 결합하면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십니다. 입맞춤을 드리고 보속하며 당신을 위로하시고,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사랑의 향유를 당신의 모든 상처에 부어 드립니다.
수난 중이신 제 예수님, 저도 사무치는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와 결합하여, 당신의 모든 고통을 제 것으로 삼고, 당신의 모든 피와 모든 상처를 어머니처럼 돌보겠습니다. 또 당신과 어머니와 함께, 위험한 모든 만남들을 보속하고, 죄지을 기회를 피하지 않거나 필요에 의해서 부득이 그러고 있다가 죄에 휩쓸리고 마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속하겠습니다.
한편, 십자가에 눌려 넘어지신 당신은 신음하고 계십니다. 병사들은 당신이 그토록 피를 많이 흘리며 수많은 고통의 무게에 짓늘려 있으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채찍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차곤 하여 간신히 일으켜 세웁니다. 이로서 당신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거듭 떨어지는 죄들과 중죄들을 보속하십니다. 그리고 완고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피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의 어깨에 난 깊은 상처
기진맥진하신 제 사랑이시여, 당신께서 바치시는 보속을 따라가면서 보니, 십자가의 그 엄청난 무게를 더 이상 견디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당신은 머리에서 발까지 경련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계속 타격을 받고 계시니,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 속을 가시들이 더 깊이 찔러댑니다. 무거운 십자가는 어깨를 내리눌러 뼈가 드러나도록 깊은 상처를 냅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아가시는 듯 하니, 계속 나아가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당신 사랑에서 기력을 얻어 내십니다. 그리하여 십자가가 어깨 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끼면서 사람들의 숨은 죄들을 보속하십니다. 이는 숨어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신의 쓰라린 고통을 가중하는 죄들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고통을 덜어 드리려고 저도 어깨로 십자가를 지고 당신과 함께 모든 숨은 죄들을 보속하겠습니다.
키레네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눌려 숨이 끊어질까 봐 겁이 난 병사들은 어느 키레네 사람을 시켜 그것을 함께 지고 가게 합니다. 그는 투덜대면서 마지못해 당신을 도와 드립니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강요에 못 이겨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당신의 마음속에는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불평과 인내심 부족, 반항, 분노 및 고통에 대한 멸시들이 메아리칩니다. 하지만, 자기를 봉헌한 영혼들이, 고난 중인 당신을 동반하는 협력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 영혼들이, 당신을 피해 달아나는 것을 보시는 것이 당신에게 월등 더한 고통입니다. 당신은 고통을 통하여 그들을 당신께로 끌어당기시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고난 중인 당신을 홀로 버려둔 채, 쾌락을 찾으려고 당신 품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가 당신과 함께 보속하는 동안 저를 당신 품에 꽉 껴안아 주시어, 당신께서 겪으시는 고통은 무엇이든지 함께 나누게 해 주시고, 고통으로 저를 변화시키시며, 모든 사람의 저버림을 보상하게 해 주소서.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리다.
극도로 지치신 예수님, 당신은 거의 걸으실 수가 없어서 허리를 깊이 구부리십니다. 그리고 멈추어, 무언가를 보려고 하십니다. 제 마음이시여,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 알겠습니다, 베로니카입니다! 베로니카가 아무 두려움도 없이 용감하게 온통 피로 뒤덮인 당신 얼굴을 수건으로 닦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감사의 표시로 그 수건에 당신 얼굴을 박아 주십니다.
어지신 예수님, 저도 당신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수건이 아니라 제 온 존재를 바쳐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오 예수님, 당신 안으로 들어가서 심장 고동에는 심장 고동을, 숨에는 숨을, 애정에는 애정을, 열망에는 열망을 드리고, 저 자신을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의 지성 안으로 던져 넣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심장 고동과 숨과 애정과 열망들을 당신의 무한한 ‘뜻’ 안으로 흘러들게 하여 수없이 많아지게 하겠습니다. 오 제 예수님, 저는 이 심장 고동들로 물결을 이루어 악한 고동 소리는 아무 것도 당신 안에 울려 오지 않게 하고, 이 애정과 열망들의 물결로는 당신 마음을 조금이라도 슬프시게 하는 악한 애정과 열망들을 모조리 몰아내며, 더욱이, 이 숨과 생각들의 물결로는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숨이나 생각을 모조리 몰아내겠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다른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거나 내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없도록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습니다. 예수님, 저의 내면 전체가 당신 내면의 무한성에 잠기게 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의지를 발견하여 악한 사랑과 악의가 당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겠습니다. 한편, 원수들은 베로니카의 행동을 업신여기면서 당신을 때리고 밀쳐 계속 나아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건한 여인들을 위로하시다.
당신은 몇 걸음 더 나아가시다가 다시 멈추십니다. 그토록 많은 고통을 짊어지고도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이신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보고 우는 경건한 여인들을 보시자, 당신 자신을 잊고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나 때문에 울지 말고 여러분의 죄와 여러분의 자녀들을 두고 우시오.”(2백주년성서 루카 23,28 참조 - 역주)
얼마나 숭고한 교훈입니까! 당신의 말씀은 과연 아름답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과 함께 부족한 사랑의 보상하며 청하오니, 부디 저 자신을 잊고 오로지 당신만을 기억하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
세 번째 넘어지심
원수들은 당신 말씀을 듣고 벌컥 분통을 터뜨립니다. 밧줄을 갑자기 홱 잡아당기면서 당신을 세게 떠밀어 넘어지게 합니다. 그렇게 넘어지면서 당신은 또다시 돌에 부딪히십니다.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제가 당신을 일으키고 지극히 거룩하신 얼굴을 제 손으로 보호하게 하소서. 제가 보니 당신은 당신 피로 얼룩진 땅바닥에 쓰러지신 채 헉헉 숨을 헐떡이십니다. 원수들은 밧줄을 끌어당기거나 당신의 머리채를 잡거나 발길질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돌아가시고 계십니다. 얼마나 기막힌 슬픔입니까! 저는 비통해서 가슴이 뻐개집니다!
그들은 사실상 당신을 질지 끌고 갈바리아산으로 데려갑니다. 그렇게 끌려가시는 동안, 당신은 당신께 자기를 봉헌한 영혼들의 죄를 보속하고 계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사람들이 너무 무겁게 당신을 짓누르기 때문에, 온 힘을 다 쏟아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실 수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끌리고 짓밟히고 하면서 갈바리아에 이르시지만, 당신이 지나가신 길에는 지극히 고귀한 피로 물든 붉은 자취가 길게 남아 있습니다.
옷 벗김과 세 번째로 가시관 씌움을 당하신 예수님
여기서는 새로운 고난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들은 당신의 옷과 가시관을 벗겨서 다시금 알몸이 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시관이 머리에서 뜯겨져 나올 때 당신은 신음 소리를 내십니다. 옷을 벗길 때는 해어진 살점들도 함께 뜯어내니, 상처들이 터지면서 피가 냇물처럼 땅으로 흘러내리고, 고통이 얼마나 큰지 당신은 초주검이 되어 쓰러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 아무도 당신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들짐승들처럼 사납게 가시관을 다시 머리에 씌우고 깊숙이 박히도록 두드려댑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온통 엉겨붙은 머리털이 뜯기는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는 천사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들마저 그 끔찍함에 충격을 받고 그들의 거룩한 눈길을 돌린 채 울고 있습니다.
알몸이 되신 제 예수님, 당신을 품에 안고 따뜻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몸이 오한(惡寒)으로 온통 부들부들 떨고 계시니 말입니다. 저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이처럼 많은 피를 잃으셨으니, 제 생명과 피를 당신께 넣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흐릿하게 꺼져가는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딸아, 영혼들은 내게 참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 여기는 내가 모든 이를 구원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장소이다. 또한, 짐승보다 못하게 타락하여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 수도 없을 정도로 끈질기게 나를 모욕하는 사람들의 죄를 보속하고자 하는 장소이다. 그들은 이성의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에 미친 듯이 죄를 짓는다. 그래서 내게 세 번째로 가시관을 씌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몸이 된 것으로써 사치롭거나 정숙하지 못한 옷을 입는 사람들과 음란의 죄들을 보속하고, 재산이나 명예나 쾌락의 노예가 되어 그런 것을 신으로 삼는 사람들의 죄를 보속한다. 그렇다. 그런 죄들 하나하나가 내게 죽음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영원하신 내 아버지의 뜻으로 정하신 죽음의 순간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몸이 되신 제 예수님, 저도 함께 보속하며 기도하오니, 당신의 거룩하신 손으로 제게서 모든 것을 벗기시어 어떤 악한 애정도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게 해 주소서. 제 마음을 늘 지켜보시며, 당신 고통으로 에워싸고 당신 사랑으로 채워 주소서. 저의 삶이 오직 당신 삶을 다시 사는 것이 되게 하시고, 당신 강복으로 모든 것을 제게서 확실히 벗겨 주소서. 제 마음에 강복하시고 힘을 주셔서, 십자가에 무참히 못박히시는 당신을 보면서 저도 같이 못박히게 하소서.
성찰과 실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다. 십자가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의 고통을 사랑하는가? 우리의 심장 고동이 그분의 신적 고동 안에 메아리친다는 것,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청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 십자가의 무게를 가볍게 해 드겠다는 지향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동반하는가? 그분께서 모욕을 받으실 때마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고통이나마 바쳐 그분의 고통을 덜어 드리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하는가?
우리가 기도하거나 일할 때에, 또는 혹독한 괴로움을 느끼면서 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의 비탄을 우리 것으로 삼고 우리의 고통을 그분께 보내 드리는가? 그리하여 마치 부드러운 수건처럼 그것으로 그분의 땀을, 오한 중에 흘리시는 땀을 닦으면서 기력을 회복하시게 하는가?
☨☨☨
오 예수님, 언제나 당신 곁으로 저를 불러 주소서. 당신께서도 언제나 제 곁에 계시어, 저의 고통으로 당신을 위로할 수 있게 하소서.
═ 감사기도 ═
사랑하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셨으니,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며 대속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뵌 것 같나이다.
당신께서는 사랑에 찬 감동적인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으니,
저도 당신을 따라 그 모든 것을 하고자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이 마땅한 일로 생각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받으셨으니
천만번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성심의 고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모든 쓰라림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당신께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감사와 찬미의 강물이 되게 하시어,
당신의 풍부한 은총과 축복을
저 자신과 모든 이에게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를 당신 가슴에 껴안아 주시고,
제 존재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소서.
그러면 제게서는 오로지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찬미가만이 흘러나올 수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을 따르려고
저 자신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저의 생각을 당신 안에 두어
원수들에게서 당신을 지키게 하고,
저의 숨을 당신 안에 두어
당신을 동반하는 행렬이 되게 하고,
저의 심장 고동을 당신 안에 두어
줄곧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게 하면서
다른 이들이 드리지 않는 사랑을 보상하겠나이다.
또한 저의 피를 방울방울 보속의 제물로
원수들이 앗아가곤 하는 영예와 존경을 당신께 되돌려드리며,
제 온 존재를 바쳐 당신을 수호하겠나이다.
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일과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저는 당신 성심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성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사오니,
당신께서 저를 당신 안에 간직해 주시리라 믿나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장 고동이 서로 전해지고 합쳐지면서
저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고
떨어질 수 없도록 긴밀한 당신과의 일치를 주겠나이다.
저의 예수님,
제가 당신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기색을 보시면
제 안에서 당신 성심의 고동이 빨라지게 하소서.
당신 손으로 저를 더 세게 껴안아 주시고
당신 눈으로 저를 보시며 불화살을 쏘아 주시면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당신과의 합일 속으로 이끌려갈 수 있겠나이다.
오 제 예수님,
저에게 거룩한 사랑의 입맞춤과 축복을 주소서.
저는 더없이 감미로운 당신 성심에 입맞추며
당신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