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시간
오전 9시 - 10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보시오, 이 사람이오.”(Ecce Homo)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
═ 준비기도 ═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 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17)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당신을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겠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드는 모든 시간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이미 실행한 것처럼
저 자신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가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게 하겠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준비기도’를 바친 후)
무한한 사랑이신 예수님, 당신을 바라볼수록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고 계신지를 더 잘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온 몸이 갈가리 찢어져 성한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으시건만, 그 모든 고통에서도 당신을 때리는 자들을 애정 깊은 눈으로 바라보시니, 그들은 이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립니다. 이 애정 어린 눈길은 참으로 부드럽고 매혹적이어서 마치 그만큼 많이 기도하시는 음성과 같고, 새로운 고통을 더 많이 달라고 청하시는 음성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채찍질 하던 자들은 단지 무자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신 사랑에 끌리지 않을 수 없기도 해서 다가와 당신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나 몸을 가눌 힘이 없으신 당신은 다시 당신 피 속에 넘어지십니다. 이 때문에 화가 난 그들은 발로 차고 밀면서 가시관을 씌울 자리로 당신을 데려갑니다.
제 사랑이시여, 당신 사랑의 눈길로 지탱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고난 받으시는 당신을 계속 지켜볼 수 없겠습니다. 벌써 뼛속까지 떨리는 것 같고 마음이 부서져 내리니, 곧 죽을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사랑하올 당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힘내어라. 내가 겪는 고통은 무엇 하나 놓치지 말고, 나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라. 나는 인간을 회복시켜야 한다. 죄가 인간에게서 (영광의) 관을 앗아가고 그 대신 실총과 혼란의 관을 씌워 주었기 때문에, 인간은 나의 엄위 앞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죄가 인간에게 수치를 안겨 주면서 영예와 영광을 누릴 자격을 잃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머리에 관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곧 모든 영예와 영광을 누릴 권리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가시관 씌움을 당하려고 한다. 이 가시들이 생각으로 짓는 많은 죄들, 특히 교만의 죄들에 대해 내 아버지 대전에 바치는 보속이 되고 용서의 음성이 되리니, 창조된 모든 정신에 빛을 주는 음성, 나를 모욕하지 않게 하는 애원의 음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나와 결합하여, 나와 함께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잔인한 원수들은 당신을 앉히고 자색 누더기를 용포처럼 둘러 걸치게 한 후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가져와서 악독하게도 흠숭하올 당신 머리에 얹어 놓습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가시관을 쳐서 이마 속을 뚫고 들어가게 합니다. 가시의 일부는 눈과 귀와 머리 속까지, 심지어 목덜미 속까지 뚫고 들어갑니다.
제 사랑이시여, 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입니까!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아픔입니까! 이런 잔혹한 죽음을 대체 몇 번이나 겪으십니까!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내려서 당신 얼굴에는 이미 피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시들과 그 엄청난 피로 뒤덮인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얼굴을, 온유함과 평화와 사랑으로 빛나시는 얼굴을 뵈올 수 있습니다. 고문자들은 이 참극을 완성하고자 당신의 눈을 가리고 왕의 홀(笏)처럼 손에 갈대를 쥐게 한 다음 희롱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에게 다가와서 “유다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면서 가시관을 내리치고 뺨을 때립니다. 그리고는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나라와 높은 지위와 명예를 탐하는 자들의 야심을 보속하시고, 그런 지위에 오르려고 악행을 저질러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과 영혼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자들과 악한 표양으로 다른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어 영혼을 멸망시키는 자들의 비행(非行)을 보속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손에 쥐고 계신 갈대로써, 내적인 정신이 비어 있거나 심지어 악한 지향으로 행해지기도 하는 선행들을 보속하십니다.
모욕을 당하실 때는 지극히 거룩한 일들을 우습게보면서 믿지 않을 뿐더러 모독하기도 하는 자들의 잘못을 보속하시고, 눈이 가려져 계신 동안에는 진리의 빛을 보지 않으려고 지성의 눈을 가리는 자들의 잘못을 보속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저희에게 은총을 얻어 주셔서, 격정과 부와 쾌락을 가리고 있는 속임수를 제거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 제 임금님, 원수들은 아직도 계속 당신을 능욕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다량의 피가 입으로도 들어가기 때문에 당신께서 들려주시는 부드러운 말씀을 저는 똑똑히 들을 수가 없고, 그래서 당신이 행하고 계신 보속을 따라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당신 팔 안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거기서 가시관이 찌르고 있는 당신의 머리를 받쳐 드리고 가시들 밑에 제 머리를 놓아 그 꿰뚫리는 아픔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고 있을 때에 당신께서 사랑의 눈길로 저를 부르십니다. 저는 달려가서 가슴에 들러붙어 당신의 머리를 받쳐 드리려고 있는 힘을 다합니다. 그러나 오, 이 수없이 많은 고난 중에서도,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입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이 가시들은 내가 모든 마음들의 왕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주권은 당연히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가시들을 가져가서 너의 마음을 찔러라. 그래서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네 마음 밖으로 내보내어라. 그리고 가시 하나만은 네 마음 안에 남겨 두어 내가 너의 왕임을 드러내는 옥새(玉璽)로 삼고, 다른 무엇도 네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라. 그렇게 한 뒤에 모든 사람의 마음으로 두루 다니면서 그 마음들을 찔러 그 속에 들어 있는 교만과 부패의 연기를 몰아내고, 나를 모든 사람의 왕이 되게 하여라.”
제 사랑이시여, 당신을 떠나야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비오니, 당신의 가시들로 제 귀를 멀게 하여 당신 음성만을 듣게 하시고, 제 눈을 덮어 당신만을 뵙게 하소서. 제 입도 당신의 가시들로 채워 당신을 욕되게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담지 않고, 모든 것 속에서 자유로이 당신을 찬미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 제 임금님, 이 가시들이 저를 둘러싸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를 지키고 보호하며 오직 당신께만 집중하게 하소서.
이제 저는 당신의 피가 멎기를 바라면서 입맞춤을 드립니다. 원수들이 당신을 빌라도에게 데려가려고 하고 있고, 빌라도는 당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사랑이시여, 이 수난의 길을 계속 따라갈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그리고 저에게 강복해 주소서.
다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당신 사랑으로 상처 입고 당신 고통으로 꿰뚫린 저의 보잘것없는 마음은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빌라도 앞에 계신 당신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얼마나 처참한 모습이신지! 하늘이 소스라치고 지옥마저 무서움과 격분으로 떨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생명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당신을 뵈올 때마다 숨이 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로 하여금 당신의 고통을 속속들이 깨닫게 하시려는 당신 사랑의 힘에 몰려, 바라보지 않을 수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면서 당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의 예수님, 당신은 맨몸으로 계십니다. 옷 대신 피를 입고 계십니다. 찢어져 떨어져 나간 살 사이로 뼈가 드러나 보이고, 거룩하신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도 없어졌으며, 거룩하신 머리에는 가시들이 단단히 박혀 있고 이것이 눈과 얼굴마저 찌르고 있습니다. 오, 피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피가 땅에 흘러내려 당신의 발 주위에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의 예수님, 이제 저도 당신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오, 얼마나 기가 막힌 상태가 되셨는지! 더할 수 없이 극심한 수모와 고통마저 능가할 지경이 되셨으니, 이 처참한 광경을 저는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죽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빌라도 앞에서 당신을 빼내어 제 품에 안고 쉬시게 하면서, 제 사랑으로 당신의 상처들을 아물게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피를 세상에 쏟아 부어 모든 영혼들을 그 안에 잠그고, 그들을 이 엄청난 고난으로 차지하신 몫으로 당신께 데려오고 싶습니다.
오, 끈기 있게 인내하시는 예수님, 당신께서는 가시들을 통해서 저를 보시려고 애쓰시는 것 같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묶여 있는 이 나의 팔 안으로 오너라.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면 더 크고 쓰라린 고통들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내 인성의 외부에서 보는 고통들은 단지 내부의 고통들이 넘쳐흐른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 심장의 고동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내가 보속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통치자들의 불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탄압, 무죄한 이들에 대한 유죄 판결, 높은 관직과 지위와 재산을 지키려고 진리의 빛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무슨 법이든 주저 없이 위반하고 이웃에게 나쁜 짓을 자행하는 자들의 교만을 보속하는 소리이다.
이 가시들로써 나는 그들을 지배하는 거만한 정신을 산산이 부수려고 한다. 가시들이 내 머리 속을 뚫어 만든 틈새들로써 그들의 정신 속으로 들어갈 내 길을 만들어 그 정신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빛과 진리에 따라 다시 정돈하려고 한다.
나는 또 이 부당한 판관 앞에서 이와 같이 수모를 당함으로써 덕행만이 인간을 그 자신을 지배하는 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든지 깨닫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르치려고 한다. 올바른 지식과 덕행을 겸비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배할 자격이 있는 반면, 유덕하지 못한 모든 고관(高官)은 위험한 자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몰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딸아, 나의 이 보속들을 너도 반복하면서 계속 내 고통을 주목하여라.”
제 사랑이시여, 빌라도를 보니, 이토록 끔찍한 모습이 되신 당신을 보고 진저리칩니다. 그리고 깊은 충격을 느끼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
“인간 마음속에 이다지 지독한 잔인성도 있을 수 있소? 내가 이 사람에게 채찍질을 하라고 한 것이 이렇게 하라는 뜻인 줄 알았소? 당치도 않소!”
당황한 빌라도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볼 수가 없어서 눈길을 돌립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을 원수들의 손에서 풀어 주고 싶어서 이를 위한 확고한 근거를 찾아내려고 또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말해 보시오.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대의 동족이 그대를 내게 넘겨주었소? 말해 보시오. 그대가 왕이오? 그 왕국은 어떤 것이오?”
오 예수님, 빌라도가 퍼붓는 질문에 당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 안에 침잠하신 채 그 숱한 고난의 대가로 제 하찮은 영혼을 구원하실 생각을 하십니다.
빌라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당신을 보자 덧붙여 말합니다 :
“나에게는 그대를 놓아 줄 수도 있고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을 모르는가?”
오 제 사랑이시여, 당신께서는 빌라도의 마음 안에 진리의 빛이 빛나게 하시고자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하늘에서 그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런즉 나를 넘겨 준 자들의 죄가 총독의 죄보다 더 큰 것이오.”
“보시오, 이 사람이오!”(Ecce Homo)
그러자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에 감동을 받은 빌라도는, 워낙 결단력이 없는 사람인지라 마음속으로 몹시 싸우다가, 결국 당신을 유다인들 앞에 내보일 결심을 합니다. 이토록 온 몸이 상처투성인 당신을 보면 유다인들도 마음이 움직여 더 측은히 여기리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고난 받으시는 제 예수님, 당신께서 빌라도를 따라가시는 것을 보는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 끔찍한 가시관을 쓰시고 허리를 구부리신 당신은 간신히 걸음을 떼어 놓으시고, 그럴 때마다 핏자국을 남기십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시는 당신 귀에, 사형 선고를 받게 하려고 열띠게 기다리며 소란을 피우고 있는 군중의 소리가 들립니다.
빌라도는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합니다. 자기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질색을 하면서 당신의 가슴과 등을 덮고 있는 자색 누더기의 두 끝을 집어 들어 올립니다. 당신 몸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모두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
“보시오, 이 사람이오! (Ecce Homo) 이 사람은 이미 사람 같은 모습이 아니오. 이 상처들을 보시오.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아니오? 설사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벌써 충분히, 아니 너무 지나치게 고통을 겪었소. 나로서는 이렇게 될 정도로 괴롭히게 한 데 대해서 후회하고 있소. 그러니 이제는 이 사람을 풀어 주기로 합시다!”
예수님, 제 사랑이시여, 하도 많은 고통의 무게에 짓눌리신 당신은 서 계실 힘도 없어 비틀거리십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을 부축하게 허락하소서. 당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엄숙한 순간, 빌라도의 말이 끝나자 하늘과 땅과 지옥에도 깊은 침묵이 흐릅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일제히 소리를 지릅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시오!”
예수님, 제 생명이시여, 제가 보니 당신은 떨고 계십니다. 죽음을 외치는 소리가 당신의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목소리들 속에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네가 죽기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를 바란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엄마의 음성도 들으십니다. 마음이 꿰뚫리는 비탄에 잠겨 계신 엄마 역시 아버지의 음성을 반향하십니다.
“아들아, 나는 네가 죽기를 바란다!”
천사들과 성인들과 지옥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릅니다 :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그러므로 당신께서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더할 수 없이 수치스럽고 괴롭고 끔찍하게도, 저 또한 지고한 힘에 눌려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제 예수님, 죄 많은 비참한 영혼인 저마저 당신께서 돌아가시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부디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당신과 함께 저도 죽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러는 동안, 오 번민에 잠기신 제 예수님, 당신께서는 제가 괴로워하는 걸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딸아, 내 가슴에 안겨서 나의 고통과 보속들을 나누어 가져라. 과연 엄숙한 순간이다. 나의 죽음이냐 아니면 모든 피조물의 죽음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두 종류의 물줄기가 내 마음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 한쪽에는 내 안에서 생명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에 나의 죽음을 바라는 영혼들이 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서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영원한 선고에서 무죄 방면(放免)을 얻고, 하늘의 문이 열려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반대쪽에는 증오 때문에 나의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결국 그들 자신이 받을 선고를 확정하는 것이다. 나는 미어지는 마음으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바로 지옥의 고통을 느낀다!
내 마음은 이 쓰라린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맥박이 뛸 때마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죽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거듭해서 생각한다 : 이토록 많이 흘린 피가 어찌하여 헛될까? 나의 고통이 어찌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까?
딸아, 나를 도와 다오. 더 이상 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의 고통을 나누어 가져라. 그리고 너의 삶을 끊임없이 봉헌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고 나의 이 격심한 고통을 덜어 다오.”
제 마음이신 예수님, 당신의 고통은 바로 저의 고통이니, 당신의 보속을 반복합니다. 제가 보니, 빌라도는 대경실색하면서 서둘러 말합니다.
“나더러 그대들의 왕을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했소!”
그러나 유다인들은 고래고래 아우성을 질러댑니다 :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뿐이오. 만일 그자를 놓아 준다면 총독님은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빌라도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음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물을 가져오게 해서 손을 씻으며 말합니다.
“나는 이 무죄한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소.”
그리고 당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유다인들은 소리를 지릅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소!”
그들은 당신께서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을 보고 서로 손을 잡고 휘파람을 불거나 함성을 지르면서 좋아들 합니다. 오 예수님, 그러는 동안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그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두려움 때문에 지극히 신성한 법을 어기는 자들을 위해서 보속하십니다. 그런 자들은 온 백성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악인들의 편을 들어 무죄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또한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 정의의 징벌을 자초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보속하십니다.
그러나 이 보속을 하시는 동안, 당신의 마음은 피를 흘리십니다.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하늘의 저주를 끌어내리는 것을 보시는 고통 때문입니다. 그들은 완전한 의지로 이를 원했으니, 자기네가 책임지겠다고 외친 당신의 피로 확인 도장까지 찍은 것입니다.
당신 성심은 피를 너무 흘려 곧 기진하실 것 같습니다! 당신의 보속과 고통들을 저의 것으로 삼고, 제 손으로 당신 성심의 생기를 유지하겠습니다. 이제 당신은 사랑에 휘말려 더 높이 올라가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미 십자가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성찰과 실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웃음거리 왕 취급을 받으며 모욕당하시고,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고난을 겪으신다. 그분은 특별한 모양으로 교만이라는 죄를 보속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만심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가? 우리의 선행을 하느님께로 돌리는가? 나를 남보다 못하게 여기는가?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다른 생각을 비우고 은총에게 자리를 내주는가?
많은 경우, 우리의 정신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서 은총에게 자리를 내주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은 온전히 하느님으로 차 있지 않게 되고, 따라서 악마가 교란시킬 여지를 남기므로 우리 자신이 유혹을 부추기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을 때에는 악마가 다가와도 유혹을 불어넣을 자리를 찾아낼 수 없어서 당황하며 떠나가고 만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악마와 맞서는 데 있어서 거룩한 생각들이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악마가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들 때에 그 생각들이 그만큼 많은 수의 칼이 되어 악마를 찌르며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원수가 우리의 정신을 괴롭히며 유혹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문제는 우리가 깨어 경계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원수로 하여금 공격을 개시하게 한다. 원수는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 속에 좀이라도 빈자리가 없는지를 염탐하는 스파이여서, 그런 곳이 보이면 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거룩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위로하면서 가시들을 뽑아내기는커녕, 배은망덕하게도 가시들을 그분 머리에 박아 넣어 한층 더 큰 고통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은총은 무익한 것이 되므로 우리의 정신 속에 은총의 거룩한 영감을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번번이 이보다 더한 잘못을 저지른다. 즉, 유혹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면 그것을 예수님 사랑의 불로 살라버려야 할 짐꾸러미로 여기고 그분께로 가져가는 대신,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그 유혹들 자체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 나쁜 생각들이 우리의 정신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도 흡수하게 된다. 말하자면, 거의 예수님의 기적과 같은 것이 있어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시들을 통하여 우리를 보시고 부르시며 이 말씀을 주시는 것 같다.
“그렇다, 딸아, 내 곁에 머물러 있고자 하지 않는 것은 너희 자신이다. 너희가 처음부터 올바르게 내게 왔다면, 내가 너희를 도와 원수가 너희 생각 속에 불어넣은 그 어지러운 유혹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을 것이고, 그러면 나로 하여금 너희가 돌아오기를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나를 도와 이처럼 나를 찌르는 가시들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희는 원수가 가져다 준 일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오, 너희가 즉시 내 품안으로 온다면 얼마나 유혹을 덜 타겠느냐! 그러면 원수는 너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가 무섭기 때문에 즉시 너희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
제 예수님, 당신의 가시들로 제 생각들을 당신의 정신 속에 박아 주시어, 원수의 온갖 유혹들을 찔러 없애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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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의 정신과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느끼게 해 주실 때,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는가, 아니면 무시해 버리는가? 예수님은 웃음거리 왕 취급을 받으셨다. 우리는 거룩한 모든 것을 존중하는가? 그런 것에 대해서 마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대하듯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가?
☨☨☨
가시관을 쓰신 제 예수님, 저로 하여금 당신 가시들의 찌름을 느끼게 하셔서, 당신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계시는지를 깨닫고 당신을 제 온 존재의 임금님으로 모시게 하소서.
☨☨☨
밖으로 나오신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도 받은 백성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으신다.
사랑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음을 받아들이신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욕과 고통을 받으시지 않도록 무슨 고통이나 받아들일 태세로 있는가? 우리가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고통을 받으시지 않게 해 드릴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한한 고통을 당하셨으므로, 이 세상에서 그분을 계속 살아가시게 하려면, 그분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과 맞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님은 당신 성심을 찢으며 수많은 영혼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시면서 고통스러워 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고통을 덜어 드리는가? 그분께서 겪으시는 모든 것에서 원기를 회복하시도록, 그분의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있는가?
유다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자 하였다. 악당처럼 죽여 세상에서 그분의 이름을 없애려고 하였다. 우리는 그분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시게 하려고 힘쓰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표양과 발걸음으로, 즉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으로 세상에 신적 자취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알게 되고, 예수님의 생명이 거룩한 반향을 일으키며 세상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두루 울려 퍼지게 된다.
우리는 온갖 모욕으로부터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로 있는가? 아니면 유다인들을 본떠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무척 사랑하셨다. 이와 거의 유사하게 우리의 가련한 영혼도 예수님의 사랑을 무척 많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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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님, 당신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이 선고가 저의 것이 되게 해 주소서. 저는 저 자신을 당신 안으로 쏟아 붓습니다. 끊임없이 당신을 위로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당신을 모셔가며, 누구에게든지 당신을 알리고, 모두에게 당신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감사기도’를 바친다.)
═ 감사기도 ═
사랑하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셨으니,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며 대속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뵌 것 같나이다.
당신께서는 사랑에 찬 감동적인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으니,
저도 당신을 따라 그 모든 것을 하고자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이 마땅한 일로 생각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받으셨으니
천만번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성심의 고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모든 쓰라림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당신께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감사와 찬미의 강물이 되게 하시어,
당신의 풍부한 은총과 축복을
저 자신과 모든 이에게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를 당신 가슴에 껴안아 주시고,
제 존재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소서.
그러면 제게서는 오로지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찬미가만이 흘러나올 수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을 따르려고
저 자신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저의 생각을 당신 안에 두어
원수들에게서 당신을 지키게 하고,
저의 숨을 당신 안에 두어
당신을 동반하는 행렬이 되게 하고,
저의 심장 고동을 당신 안에 두어
줄곧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게 하면서
다른 이들이 드리지 않는 사랑을 보상하겠나이다.
또한 저의 피를 방울방울 보속의 제물로
원수들이 앗아가곤 하는 영예와 존경을 당신께 되돌려드리며,
제 온 존재를 바쳐 당신을 수호하겠나이다.
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일과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저는 당신 성심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성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사오니,
당신께서 저를 당신 안에 간직해 주시리라 믿나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장 고동이 서로 전해지고 합쳐지면서
저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고
떨어질 수 없도록 긴밀한 당신과의 일치를 주겠나이다.
저의 예수님,
제가 당신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기색을 보시면
제 안에서 당신 성심의 고동이 빨라지게 하소서.
당신 손으로 저를 더 세게 껴안아 주시고
당신 눈으로 저를 보시며 불화살을 쏘아 주시면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당신과의 합일 속으로 이끌려갈 수 있겠나이다.
오 제 예수님,
저에게 거룩한 사랑의 입맞춤과 축복을 주소서.
저는 더없이 감미로운 당신 성심에 입맞추며
당신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