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노래-십자가의 성요한

제 24 노래

Skyblue fiat 2014. 5. 24. 13:17

 

 

 

 

 

                다음 노래의 설명

 

     1. 신부와 신랑이 기쁨 중에 자신을 서로 주고받았기에 당장 두 사람은 신방이 문제가 된다. 신부는 이 신방에서 앞서 말한 신랑의 즐거움을 전보다도 더욱 침착하게 맛본다. 그러므로 다음 노래에서 신스럽고, 청순하고, 정결한 두 사람의 신방에 관해 말하는데 영혼은 거기서 신스럽고 청순하고 정결하다. 왜냐하면 이 신방은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하느님의 성자, 말씀이신 하늘의 신랑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혼은 그분과의 사랑의 일치 가운데 그곳에서 쉬게된다. 영혼은 이 신방을 꽃 꾸몄다고 한다. 말하자면 신랑은 꽃으로 꾸며졌을 뿐 아니라 아가에서처럼 그분 자신이 ‘들꽃’이시고 ‘산골의 나리꽃’(2, 1)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부는 꽃으로 꾸며진 신방에서 쉴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신 꽃 자체 안에서 쉰다. 이 꽃은 신적 향기와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분 친히 다윗의 입을 빌어 “들의 아름다움은 우리와 함께 있다.”(시편 49,11)고 말함과 같다. 그러므로 영혼은 이 신방의 특성과 매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제 24 노래

 

                                  신 부

                         꽃다워라 우리들 신방

                         사자들 굴들이 에워싸 있고

                         자줏빛 빛깔 속에 펼쳐져 있고

                         평화로움 말미암아 꾸며져 있고

                         즈믄의 방패로 왕관을 썼나니

 

 

 

            해 설

 

     2. 앞의 두 노래에서 신부인 영혼은 자기의 애인, 하느님의 아들의 은혜와 위대함을 노래했다. 여기서 이 찬미의 노래를 계속할 뿐 아니라 자신이 들어 올려진 행복스런 숭고한 상태와 거기서 맛보는 안전을 노래한다.

     셋째는 신랑과의 이 혼인의 신방에서 신부의 몫이 된 은혜와 덕의 부를 찬양한다. 왜냐하면 신부가 즐기는 신적 일치에서 이 덕들은 새로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신이 사랑의 완전함에 다다른 것이고 다섯째는 자기가 완전한 영적 평화를 지니고 이 지상에서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한의 은혜나 덕으로 풍요로워지고 아름답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이상의 것을 다음 노래에 이어지는 시구에서 말한다. 신부는 우선 사랑하는 이와의 일치 가운데서 즐기는 기쁨을 노래한다.

 

 

 

            꽃다워라 우리들 신방

 

     3. 지금 말한 대로 이 영혼의 신방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신랑을 말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영혼에게는 꽃으로 꾸며진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신부로서 이미 그분과 일치하여 그분 안에서 쉬고, 사랑하는 분은 그 마음과 사랑을 신부에게 주시기에 신부는 더없이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져서 기쁨으로 채워진다. 그 때문에 신부는 자기가 향기 짙은 온갖 신적 꽃다운 신방에 쉬고 있듯이 생각되어 그 접촉은 상쾌하고 그 향기는 취하게 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영혼이 하느님과의 이 사랑의 일치를 일컬어 ‘꽃다워라 신방’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하다.

     아가의 신부는 신랑에게 말을 건네는데 같은 말을 한다. “정말로 우리 침상은 푸르옵니다.” (1,16)라고 그는 ‘우리’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분의 덕과 사랑은 이제 두 사람의 공동 소유이기 때문이다. 또 잠언에서 성령께서는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겁다.”(8,31)고 하셨음 같이 즐거움도 또한 두 사람의 공동 소유이다. 이 신방이 꽃으로 꾸며졌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영혼의 덕은 이 상태에서 이미 완전하고 영웅적이지만 그것은 이 신방이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로 꽃 필 때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곧 이어 이 덕의 완성에 관해 다음 시구에서 노래한다.

 

 

 

            사자들 굴들이 에워싸 있고

 

     4. 사자의 굴이란 하느님과의 이리의 이 단계에서 영혼이 소유하는 덕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사자 굴은 다른 모든 동물에 대해서 매우 안전하고 무척 잘 보호되어 있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은 그 속에 있는 사자의 힘이나 용맹스러움이 무서워서 그곳에는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그 가까이에 머물지도 않는다. 이처럼 덕 하나 하나는 영혼이 그것들을 완성한 상태에서 소유했을 때 이 영혼은 사자의 굴과 같다. 그러므로 강한 사자와 같이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머무시고 이 굳셈의 덕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덕으로써 이 영혼과 일치하신다. 그리고 이 덕으로써 그리스도께 일치한 영혼도 또한 강한 사자와 같다. 말하자면 이 영혼은 하느님의 특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꽃다운 신방에서 쉬는 영혼은 그 덕 하나 하나와 모든 덕을 모음으로 매우 잘 보호되어 강하게 되었으므로 마귀들은 이런 영혼을 습격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앞에 나타나기도 꺼린다.

     이들은 이 영혼이 애인의 신방에서 완전한 덕으로 이토록 위대하고 용감하고 용맹한 자 되어졌음을 보고 매우 두려워한다.

     사실 영혼이 변화적 일치로 하느님께 합일되었을 때 마귀는 이 영혼을 하느님처럼 무서워하고 이 영혼을 감히 보려고도 않는다. 사실 마귀는 완덕에 다다른 영혼을 무척 무서워한다.

 

    

     5. 신방이 사자의 굴에 에워싸 있다는 이유는 이 단계에서 온갖 덕은 서로 연결되어 일치하고 견고해져 영혼에게 다만 하나의 완성된 완덕이 될 수 있도록 합쳐지고 서로 부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들어 올 틈이나 약한 부분이 없을 뿐더러 세속의 어떠한 것도 - 그것이 고상하든지 저열하든지 간에 - 이 영혼을 불안케 하지도 괴롭히지도 감동시킬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이 영혼은 자연적 욕정의 성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 세상 온갖 근심 걱정에서 해탈하고 적나하게 되어 안전히 고요히 신성에 참여함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아가의 신부가 갈망한 것이어서 말하기를 ‘차라리 당신이 내 오빠였던들 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빨았던들 밖에서 당신을 만나도 키스할 수 있었을 것을 아무도 나를 보고 멸시하지 않을 것을 “(8,1) 이 키스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일치를 뜻하고 이 일치로 영혼은 사랑으로 하느님과 동등하게 된다.

     이 거룩한 키스를 얻으려고 원한 영혼은 그 애인이 형제라는 것, 곧 자기와 동등한 자가 되게 해 주는 자가 없는가고 한다. 그리고 “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빨았던들” 이라 함은 자기가 어머니 하와에게서 받은 자연적 불완전함이나 욕구 전부를 없애 달라는 뜻이다. “밖에서 당신을 만나도”라 함은 의지와 욕구에서 모든 피조물을 벗어버리고 온갖 것에서 떠나 오직 그분께만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그를 멸시하지 않고 곧 세상도 육신도 마귀도 감히 덤비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혼은 이것들에게 자유로워지고 순결하게 되어 하느님께 일치하였으므로 이것들은 아무도 그를 괴롭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영혼은 언제나 감미와 고요를 즐기고 그것은 영영 잃는다든지 부족되는 일은 없다.

 

     6. 이 상태적 즐거움과 평화와는 별개로 때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영혼의 동산 안에 있는 덕의 꽃이 느닷없이 피어 훈훈히 향기를 풍기므로 이 영혼은 하느님의 기쁨에 온통 채워졌듯이 생각되고 또한 사실 그렇다. 나는 영혼 안의 덕의 꽃이 피는 일이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영혼이 아무리 완전한 덕으로 가득 채워졌드라도 그것을 항상 즐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덕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고요는 영속적이다. 그러므로 현세에서는 영혼의 덕은 동산 안에서 말하자면 아직은 단단한 봉오리 상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성령의 입김으로 다 피어 각양 각색의 향기로운 향기를 풍김은 참으로 멋있는 광경이다. 달리 말해서 영혼은 앞서 말한 산들의 꽃 곧 하느님의 부, 위대함, 아름다움을 자신 안에서 보게 되는 때문이어서 이 산들에는 “외딸고 숲 우거진 골짜구니”의 방울꽃이 깔려 있다. 방울꽃, 그것은 싱그럽고 평화로움이다. 다음은 “묘하디 묘한 섬들과 섬”의 향기 짙은 장미가 그 사이에 아로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께 관한 놀라운 인식이다. 때로는 장미의 향기가 영혼을 부른다. 그것은 “소리내어 흐르는 시냇물”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영과의 인상이며 영혼 전체를 채운다.

     또 다른 때는 앞서 말했듯이 이 단계에서 영혼이 즐기는 자스민 예민한 향기 또는 “사랑을 싣고 오는 휘파람 소리”가 그 사이에 섞여진다. 그리고 전에 말한 다른 온갖 덕이나 은혜도 마찬가지여서 그것들은 고요한 인식, 소리 없는 음악, 울러 퍼지는 고독(최민순 역 :소리 있는 밝은 고요) 즐겁고 황홀스런 저녁잔치라고 한다. 때로 영혼은 이 꽃들을 한꺼번에 뭐라 말 할 수 없을 만큼 느끼고 즐기므로 진정으로 “꽃다워라 우리들 신방 사자들 굴들이 에워싸 있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신적 꽃들을 이 세상에서 가끔 즐길 수 있는 영혼은 복되다. 영혼은 또 말한다.

 

 

 

            자줏빛 빛깔 속에 펼쳐져 있고

 

     7. 자줏빛 천은 성서에서 사랑을 나타낸다. 그리고 국왕들은 이 자줏빛 옷을 입는다. 영혼은 꽃으로 꾸며진 이 침상이 자줏빛 천으로 덮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영혼의 온갖 덕과 부와 선은 하늘 임금님의 사랑과 자비 안에서만 지탱되어 꽃피고 즐길 수 있기에 사랑이 없으면 영혼은 이 신적 침상도 침상을 꾸미는 꽃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온갖 덕은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려지고 그 가운데 잘 보존되어 있는 듯 하고 그리고 사랑 안에 적셔져 있음과 같다. 왜냐하면 이 덕 모두는 또한 각각 언제나 영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부추기고 온갖 것과 온갖 행위에 당면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키우도록 사랑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줏빛 빛깔 속에 펼쳐졌다는 것이다. 아가는 이 진리를 뚜렷이 드러내어 솔로몬 왕이 자신을 위해 만든 연이나 침상은 리반의 나무로 그 기둥은 백금, 등받이는 황금, 자리는 자줏빛의 빌로도로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또한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수놓았다고 한다.(아가 3, 9)

     하느님이 영혼의 침상을 꾸미시는 덕이나 은혜는 리반의 나무와 백금 기둥으로 상징되고 그 기둥은 황금으로 상징되는 사랑의 등받이로 부축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사랑 안에서야말로 덕은 자리 잡고 보존되는 것이어서 하느님과 영혼의 상호 사랑으로 서로 질서 지어 주고 또한 수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신방은 또한

 

 

 

            평화로움 말미암아 꾸며져 있고

 

     8. 지금 여기서 이 신방의 넷째 우수성이 대두되는데 그것은 앞서 기록한 셋째 우수성에 존속한다. 말하자면 셋째 우수성은 완전한 사랑이고 완전한 사랑의 특징은 성 요한의 말과 같이 공포를 추방하는 것이고 그 결과 영혼의 완전한 평화가 확립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말한 이 신방의 넷째 우수성이다. 이것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명심할 것은 각 덕은 그 지체 평화하고 온화하고 굳셈을 생기게 한다. 그리고 이 신방은 덕의 꽃으로 꾸며지고 이루어져 앞서 말 한 대로 이 덕의 꽃은 모두 평화하고 온수하고 굳세다. 따라서 영혼은 평화로 싸여져 평화롭고 온순하고 굳세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특성은 세상 것이든 마귀에서 온 것이든 육신의 것이든 어떠한 싸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의 덕분으로 영혼은 절대적 평화와 안전을 향유하고 있으므로 자기는 전부 다 평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긴다. 다음에 이 꽃으로 꾸며진 신방의 다섯째 특성을 말하겠는데 그것은 이미 말한 특성 외에 또한

 

 

 

            즈믄의 방패로 왕관을 썼나니

 

     9. 이 방패들이란 영혼이 갖고 있는 덕이나 은혜를 말한다. 이 덕이 신부의 신방의 꽃이라는 것은 이미 말했는데 덕을 얻기 위해서 그가 한 노력의 관, 곧 수비를 뜻하는 신부의 꽃다운 신방은 신부의 상급으로 모든 덕의 관을 받고 방패로 지켜지듯 모든 덕에 지켜지고 있다.

     이 방패가 황금 방패라 함은 모든 덕의 커다란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지리를 아가의 신부는 다른 말로 말한다. “보라 다름 아닌 솔로몬의 연, 이스라엘의 빼어난 장사, 육십 명 호걸들이 연을 에워싸니 모두가 하나 같이 칼을 잘 쓰고 무슨 일 밤에 날까 해서라네”(3, 7.8) 그리고 영혼은 이 방패가 즈믄(千개)이라고 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 하느님이 영혼에게 주시는 덕이나 은혜나 은사가 수많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아가의 신랑은 그 신부의 숱한 덕을 나타내기 위해 같은 말을 쓴다. “그대 목은 승리를 기념하는 전리품 위에 세운 다윗의 망루, 거기에는 둥근 방패 천 개나 걸려 있고 영웅들의 긴 방패 골고루 나란하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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