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제 5 서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본받고, 완덕에 이른다.
은총의 율법, 신앙, 성사와 십계에 대해 아드님이 가르치고, 성모님이 따른다.
성 요셉의 죽음. 세례자 성 요한의 설교.
우리 구세주의 세례와 단식, 천사들의 종. 성모 마리아가 세례 받음.
제 1 장
마리아의 내적 시련. 예수 성전에 머물다
성 가족이 나자렛에 정착한 뒤 아드님이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또 그 후에 공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아드님에 대해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막대한 내용이고 나는 2~3가지의 일밖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니지렛에 귀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주님은 성모님의 어린 시절과 같은 시련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드님과 성모님이 이 세상의 새로운 율법을 새겨 쓰기 위한 두 돌판(십자가 완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가 열두 살 때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어 미아가 된 적을 기록한 것 외에 성모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에서의 이십 삼년간 성모님은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사람의 사도였습니다.
이 지극히 순결한 동정녀가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을 넘어 높은 곳에 이를 때까지 성성(聖性)을 양육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애덕 외의 모든 덕(德)의 강력함을 시험 당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주님은 거룩하신 동정녀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주님의 빛나는 임재도 은총도 있습니다만 내적인 모습을 지우고 애정의 표시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아드님도 내적이 되어 자주 혼자서 있는 일이 많아지고 말수도 매우 적어졌습니다. 이 예기치 않은 설명도 없는 이 변화는 우리들의 여왕의 사랑에 순금을 더욱 순화(純化)시키기 위한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여왕은 자신이 주님의 환시를 볼 수 있는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서 자애의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잃는 것보다도 주님을 충분히 섬기지 않고 낙담 시킨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비탄하는 성모님의 애정을 보고 아드님도 가슴이 아팠지만 외면적으로는 쌀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역경에도 변함없이 성모님의 마음은 더욱 사랑으로 불탔습니다.
너무나도 겸손하고 아드님을 마음으로 흠숭하고 하느님이신 아드님을 축복하며 주님 대업의 대단함에 감사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봉헌하고 신(信), 망(望), 애(愛)와 불타는 사랑의 기도를 끊임없이 새롭게 드렸습니다. 성모님의 모든 행위로부터 달콤한 향기가 하느님 아버지께로 올라갔습니다. 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의 부탁을 받아 성 요셉은 긴 의자를 만들었고 성모님은 모포 한 장을 씌웠습니다. 이것이 이집트에 머물 때부터 아드님의 침대였습니다. 성모님은 털실로 베개를 만들었으나 침대에서 아드님은 몇 번 자지 않았습니다.
아드님은 자신의 침대는 몸을 사방으로 뻗어서 큰 대자로 잘 수 있는 십자가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들에 의하면 아무도 영원한 휴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괴로움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짜 휴식인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이 취하시는 휴식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성모님의 고난은 삼십 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사랑과 하느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성모님에게는 몇 년간의 고난에 견줄만했습니다. 또 이 기간은 아들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성모님에게 사랑을 보일 수 없는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겸손하신 여왕은 아드님의 발아래 엎드려 울며 호소하였습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지극히 높으시고 선하신 하느님, 저는 쓰레기와 먼지에 불과합니다. 제가 당신을 섬길 때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꾸중하시고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저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얼굴의 기쁨을 보여주십시오. 그것을 볼 때까지는 저는 계속 엎드려 있겠습니다.” 이 열렬한 탄원 이상으로 아드님도 그것을 소망하고 계셨으므로 매우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어머니 일어나십시오.” 아드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이 인사는 순식간에 성모님을 가장 고양(高揚)된 황홀 속에 이끄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환시 중에서 주님은 성모님을 부드럽게 맞으시고 성모님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셨습니다. 주님은 새로운 복음의 위대한 비밀을 성모님에게 맡겼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는 성모님을 사람이 되신 말씀의 최초의 사도로 임명하고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거룩한 사도들, 순교자들, 교회박사들, 사제들, 수녀들 그 외 아드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우는 교회 내 모든 의인들의 모범이 된 것입니다.
성 가족이 나자렛에 정착하고 한동안 지나서 유다인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서 주님께 나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탈출기와 민수기에 써져있는 것처럼 이 의무는 연 3회 있습니다. 남성에게만 의무가 있고 여성에게는 의무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탈출 23,17).
여성은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하늘의 귀부인은 성 요셉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이 되신 말씀에게도 조언을 구했습니다. 연 2회는 성 요셉만이 혼자서 예루살렘에 가고 3번째는 세 사람이 함께 가기로 정했습니다. 이스라엘인이 성전에 가는 것은 초막축제, 성령강림축일과 누룩을 넣지 않는 빵, 즉 과월절의 준비였습니다.
성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은 과월절로 정했습니다. 가족은 전에도 몇 번이나 갔었습니다만 하느님의 아들이 열두 살이 되어 성전에 가는 날은 하느님의 빛이 주변 일대에 널리 빛났습니다. 이 과월절은 7일간 계속되며, 처음과 끝 날이 가장 성대했습니다. 성 가족은 다른 유다인들과 같이 7일간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은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은총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귀향할 때 아드님은 조용히 양친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무리는 남녀가 따로따로 다니다가 어떤 지점에서 합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 요셉과 함께하리라 생각하고 한편 성 요셉은 아드님은 틀림없이 성모님과 함께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합류하여 아드님이 없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망연자실하였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아드님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가책에 사로잡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모님은 성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남편, 나의 주인, 걱정으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거룩하신 아드님을 찾읍시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친척과 친구를 방문했습니다만 누구 한 사람도 아드님의 소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은 눈물과 한탄으로 날이 새고 삼일간 자고 먹는 것을 잊었습니다. 삼 일째 사막으로 가서 거기서 세례자 요한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만 천사들이 막았습니다.
베들레헴의 탄생하신 동굴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천사들이 말렸기 때문에 성모님은 주님께서 천사들의 입막음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때의 성모님은 여왕에 어울리게 진실로 위대했습니다.
성모님의 슬픔은 모든 순교자들의 고통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욱 심각했습니다. 천사들도 얘기하는 외에는 그 어떤 은혜도 주지 않아 성모님은 아드님의 의문의 실종에 계속 괴로웠습니다. 성모님은 성성(聖性)과 굳게 참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완덕(完德)의 평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분노라든가 혼란, 곤혹 등의 보통 사람들이 떨어지는 고통에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은 하늘의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주님께 대한 경외와 찬미를 잊지 않고 열심히 삼 일간 계속 예루살렘을 걸어 돌아다녔습니다. 몇 사람의 부인들이 아드님의 특징을 물어오면 성모님은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은 하얗고 혈색이 좋으며 수천 명 가운데서 발탁되었습니다.” 한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런 아이라면 우리 집에 구걸을 하러 왔었어요. 나는 조금 나누어 줬죠. 기품이 있고 아름다워 계속 바라봤어요. 그 아이가 너무나도 가난해 보였기 때문에 너무 가여웠어요.” 이 소식을 들은 성모님은 조금 힘이 났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같은 소식을 듣고 청빈의 창시자인 주님은 병원에 가셨다고 확신하고 병원에 가보니 생각대로 은혜를 베풀고 위로해 주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드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성모님은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아드님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도 없다면 성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모님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들도 성모님에게 성전에 급히 가도록 권했습니다. 그때 위대한 가장인 성 요셉은 성모님과 떨어져 다른 지역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아드님을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식사도 잊고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천사들이 권하자 바로 성 요셉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여행의 무리에서 떨어져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은 마을문의 바로 옆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종에 의해 일어날 모든 것을 예견하시고 사람들의 은혜를 위해 모든 것을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바쳤습니다. 자신이 그 삼 일간 구걸하면서 사람들의 집집마다 방문한 것은 청빈한 집의 장남으로서 거지생활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병원에 가서 얻은 것들을 주고 위로하고 몰래 병을 고치고 많은 병자의 영혼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드님께 베풀어준 몇 명의 사람에게는 은총과 빛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 같은 일을 끝낸 다음 아드님은 성전에 갔습니다. 그날 학문을 쌓은 선생들이 모여 구세주의 강림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례자 성 요한의 탄생과 동방 왕들의 내방(來訪)이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구세주의 강림 또는 존재가 소문으로 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명한 학자들 앞에 하느님의 아드님은 제왕의 왕으로서 무한한 지혜이신 하느님으로서 나타나셨습니다. 위엄과 은총을 풍부히 전해준 아드님에게 학자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드님의 설명에 학자들 일동은 경탄하고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냐고 말들을 했습니다. 아드님이 설명을 종료하기 전에 성모님과 성 요셉이 도착하고 아드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드님을 찾은 큰 기쁨으로 성모님은 아드님께 가까이 가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들이여,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지와 나는 당신을 찾을 수 없어 매우 슬펐습니다.”(루카 2,48)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어째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대업에 관계하고 있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루카는 양친이 아드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루카 2,50)만 그것은 양친에게 아드님은 행동을 숨기셨고 그 당시는 기쁨이 가득하여 충분히 납득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엄청난 가르침을 듣고 완전히 놀라 돌아갔습니다. 세 사람이 남게 되자 성모님은 아드님을 부드럽게 안고 말했습니다. “아들이여, 나의 마음의 슬픔과 괴로움을 말로 표현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는 행방불명이 되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의 곁에 종으로서 나를 두십시오. 나의 태만함으로 당신이 사라진다면 제발 나를 용서하고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하느님의 아드님은 성모님을 받아들이고 세 사람은 나자렛으로 출발했습니다.
나자렛에서 돌아온 후 아드님 예수는 성모님과 성 요셉에게 순종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양친에게 순종하는 것은 천사들의 경탄의 대상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성 요셉의 도움을 얻어 아드님을 자신의 자식으로서 대했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이 돌아오신 것을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렸습니다.
게다가 성모님은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시고 아드님에게 더욱 애정 깊게 더욱 주의를 기울여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드님을 보살필 때 성모님은 언제나 재빠르게 언제나 보살필 기회를 찾으셨습니다.
아드님의 옆에서는 언제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드님은 마음으로 감동하고 더욱 깊은 애정으로 성모님께 묶였습니다. 아드님의 은총은 성모님의 마음속에 홍수처럼 흘러들었습니다만 성모님의 마음에서 흘러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큰 바다처럼 넓기 때문입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주님이 나에게서 모습을 감추신 것은 내가 비탄의 눈물에 젖어 주님을 찾고 결국 주님을 발견하여 다시 기뻐하고 풍부한 열매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대도 이처럼 주님을 꼭 안고 결코 잃어버리는 일 없이 열심히 주님을 갈구하십시오. 무한한 지혜이신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영원하신 행복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만 거기까지 도착하게 될 것인지 어떤지 우리가 의심하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의심해도 최종의 목적지로 도달하고 싶다는 희망과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는 한 최대의 방해물인 죄를 일생 혐오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 불안과 혐오는 신망애(信望愛)와 자연스런 이해력에 더해져 성화에 필요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님이 계시지 않은 때는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잊으면 이 세상의 많은 보물과 거짓 즐거움을 자기 것으로 하고 그것을 자신의 최종 목적으로 합니다. 이 위험한 어리석은 행동에 주의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미친것이고 이 세상이 웃는 것은 슬픈 것이며 관능적 쾌감은 자기기만이며 마음을 취하게 하고 참 지혜를 파괴하는 어리석음인 것을 분별하십시오. 주님을 완전히 껴안으면 주님 이외의 그 어떠한 것에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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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느님 뜻의 나라 http://cafe.daum.net/DivineVolition/9QX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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