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4서/ 제 9 장 예수와 마리아의 감미로운 나눔, 이집트에서 돌아오시다(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Skyblue fiat 2017. 2. 28. 23:14

 

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9

예수와 마리아의 감미로운 나눔, 이집트에서 돌아오시다

 

 

 

  예수는 한 살이 되었을 때 침묵을 깨고 양부로서 충실히 임무를 다하는 성 요셉에게 말하였습니다. 성모님과의 대화가 탄생 때부터 시작된 것은 내가 말한 대로입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에게 독생자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내고 사람이 되고 사람과 얘기하고 추락한 인성(人性)의 벌을 대속하도록 배려하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선()과 차고 넘치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때입니다. 그때 예수는 성모님의 품에 안겨 성 요셉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내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온 것은 이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을 죄의 암흑에서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목자로서 내 양을 찾고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천국으로의 길을 가르치고 양들의 죄에 의해 닫힌 천국의 문을 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빛의 자녀가 되어주세요.

 

  이 말씀은 가장인 성 요셉의 마음을 새로운 사랑, 존경과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성 요셉은 무릎을 꿇고 아버지라고 불러주심에 감사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하신 아드님께서 은혜에 감사하도록 가르쳐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성 요셉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양부입니다만 아들에 대한 애정은 보통의 양친 두 사람의 애정보다도 더욱 깊었습니다.

 

  예수가 한 살 때 성모님은 보통의 아기가 입는 옷을 입혔습니다. 예수는 다른 아기들과 다름없이 진짜 인성(人性)을 가지도록 인간에게 사랑을 나타내도록 인간의 불편함을 이겨내도록 소망했습니다. 예수의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성모님을 주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 차게 하고 영웅적으로 모든 덕을 행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드님이 신발은 필요 없으며 한 벌만 걸치면 충분하다고 하자 성모님은 강력히 말했습니다.

  “신을 신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천이 거친 옷을 입으면 피부를 상할 수도 있는데 당신은 아마사(리넨)도 불필요하다고 말씀하시네요.” 아드님은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신발은 신을게요. 공생활을 시작하면 맨발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리넨은 불필요합니다. 그것은 육욕을 조장하고 사람들의 모든 악덕(惡德)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의 모범에 의해 나를 사랑하고 모방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성모님은 바로 아드님의 요청에 응했습니다. 자연 그대로 착색하지 않은 양모를 구해 가는 실을 뽑아 한 장의 이음새 없는 천을 짰습니다.

  작은 직기를 사용하여 노란 실을 통과시켜 자수를 하듯이 짰기 때문에 조금 울퉁불퉁한 감이 있긴 하지만 완성했습니다. 그것은 주름도 없이 평평하고 균등하다는 것과 성모님의 요청에 의해 갈색과 은회색이 섞인 색이 입혀졌다는 것이 두 개의 남다른 점입니다. 성모님은 마()같은 강한 실로 신을 짜고 아기인 하느님께 신겼습니다. 성모님은 속옷도 짰습니다.

 

 아드님 예수는 걸을 수 있게 되고부터는 낮 동안 몇 시간인지 성모님의 기도실에서 보냈습니다. 성모님의 무언의 질문에 아드님은 대답했습니다.나의 어머니, 나와 언제나 함께 있어 나의 일을 따라 해주세요. 어머니가 모두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의 영혼도 어머니의 완덕(完德)을 쌓을 수 있도록. 만약 사람들이 나의 의지에 반항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나의 가장 풍부한 선물을 얻을 것입니다. 인류가 나를 배척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모든 완덕(完德)과 나의 보물의 그릇으로서 선택했습니다. 나를 본받기 위해 나의 모든 행동을 잘 보세요.”

  이렇게 해서 하늘의 귀부인은 아드님의 새로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드님이 영원하신 아버지를 향해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할 때 땅에 엎드려서도 십자가의 형상을 취하고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니는 따라 했습니다. 아드님의 외적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움직임까지도 성모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지극히 거룩한 인성(人性)영혼의 움직임을 보고 언제나 기뻐했습니다. 아드님인성(人性)이 신성(神性)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찬양하는 마음속의 행위를 감지한 것은 성모님만의 특권입니다. 예를 들면 성모님의 눈앞에서 아드님 예수는 울고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 같은 고통을 당하기 전에 몇 번이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성모님은 그 고통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멸망한 것은 창조주와 구세주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주님의 무한하신 힘과 선()의 대업을 그 사람들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 성모님은 아드님이 하늘의 빛으로 빛나고 찬미가를 부르는 천사들에게 쌓여있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것은 성모님만이 목격한 것입니다.

 

 헤리오포리스의 많은 아이들이 어린 예수님 곁에 모였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은 어린 예수님이 인간 이상인지 어떤지 묻지 않고 하늘의 빛을 자유롭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진리의 선생인 예수님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어린 예수님은 아이들에게 하느님과 덕에 대해서 가르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어른들보다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와 놀 수 있는 행운을 얻은 모든 아이들은 커서 위대한 성인(聖人)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어린 예수님은 7~8세경 나자렛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언대로입니다. 아드님과 성모님이 함께 기도하던 어느 날 두 분은 주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같은 날 밤 주님의 천사가 잠자는 성 요셉에게 말을 하였고(마태 2,20) 아드님과 성모님을 이스라엘 땅에 데리고 돌아갈 것과 헤로데왕과 아드님의 생명을 노린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가장인 성 요셉에게 여행의 준비를 맡겼습니다.

  성 가족은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아드님과 성모님을 따를 천사들과 함께 팔레스티나를 행해 출발했습니다. 위대한 여왕은 당나귀에 타고 무릎위에 하느님의 아들을 안고 성 요셉은 바로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이집트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위대한 은혜로운 자들이 떠나는 것을 슬퍼했습니다. 통곡하며 탄식하고 은혜로운 자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둠을 쫓아버리던 태양이 지고(요한 1,9) 비참한 밤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성 가족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별의 슬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성 가족은 은총과 축복을 뿌렸습니다. 일행에게 다가오는 것을 미리알고 병과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길에 모아 육체와 영혼의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병자는 낫고 악령들을 병자로부터 내쫓겼습니다.

 

  나자렛에 돌아와서 보니 성 가족의 집은 성 요셉의 사촌이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드님을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여기서 아드님은 나이를 먹고 은총과 덕을 쌓아 성장했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과 성 요셉과 함께 집안에 들어가 바로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고 헤로데의 박해로부터 아드님을 구해주시고 힘들었던 긴 여행 중에도 세 사람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며 기도생활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아드님의 구원사업에 자신을 언제나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한편 성 요셉은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를 부양하는 큰일을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노동하는 것은 아담의 다른 자손들에 있어서는 원죄에 대한 벌의 결과였습니다만 성 요셉에게 있어서는 행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성 요셉의 식사는 물론 그를 섬기는 것에 있어서 마음에서 애정으로 하며 성 요셉의 말을 잘 따르고 성 요셉의 종과 같이 하셨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따돌리는 사람들, 자신을 싫어하면서 참아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했습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번영과 궁핍은 이 세상에서 반복됩니다. 하나는 싫어하고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뜻만을 생각하십시오. 인간의 마음은 인성의 한계 안에 있어 좁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향해갑니다.

 한 사람의 인간에 의지하고 실망하면 다른 사람의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내보여주는 꼴이 됩니다. 그러면 혼란과 정열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주님의 뜻만이 당신의 기쁨이 되도록 당신의 소망과 두려움이 성무(聖務)를 태만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주님을 볼 수 있도록 나를 본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