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ces of Lent
사순절의 은총 - 마리노 레스트레포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전례를 따라 해마다 맞게 되는 사순절이나 대림절, 세례 성사, 혼배성사, 장례미사 등이, 먹고 자는 것과 같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행위와 같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틀 안에서의 단순한 행위처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는 일상에서 되풀이 되는 행위를 너머서는 어떤 것에 촛점을 맞추도록 사순절을 통해 특별하게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주 중요하고 치명적인 영원한 삶에 촛점을 맞추라고 청하시기 때문입니다. 지상 생활중에 행하는 모든 일들, 아침에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걱정하고, 기뻐하는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사라질 것이지만, 영원한 어두움 아니면 구원, 영원한 삶으로 향할 영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은총으로서 우리를 안내하는 빛이며, 구원에로 인도하는 교사이자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교회로부터 음식을 받아 먹으며 영양을 공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교회를 통한 놀라운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사순절의 신비를 우리 마음 안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맞는 다른 모든 것과 다를 것이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사순절은 단순한 가톨릭 전례 시기가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진리의 순간을 확실하게 포착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종교로 인해 자신이 속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하고, 고백성사, 미사참례를 하고, 묵주기도나 순례여행을 하면서 피상적인 종교행위만으로 무언가 좋은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시는 기회입니다. 우리에게는 양심, 인식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신비체험을 통해 했었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저와 같은 것을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미 여러분에게 양심을 비추고 계시므로 실제로 교회를 통해 가장 큰 양심 조명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빛의 어머니이며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거나 영혼의 여정에서 맞는 놀랄 만한 초자연적인, 특별한 사건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곳에 있습니다. 감실 안에 있는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성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지혜가 필요하다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십시오. 믿음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면 하느님께 그것을 청하십시오. 마음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면 오직 하느님 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화되도록 자신을 열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자신의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 용기를 가지고 자신에게 잘못된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계속 종교적으로 살아갑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말 그대로 여러가지 면에 있어서 아주 독실하지만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이 영적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방법은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말하지요. 자신이 어떤지 보려면 살아온 길을 돌아 보십시오. 지난 해의 사순절에 어땠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보다 지금 더 나은 사람입니까? 더 성장하고,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더 동정심을 가지고, 더 참고, 더 인내심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순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죽음을 맞는다면, 자신이 걸어가 본 적도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 자리에 멈추어져 빠져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에 붙들려,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 뿐인 것이죠. 그러므로 자신이 참된 순례를 하고 있는지, 마음이 변화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그 참된 변화를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알아 볼 수 있는것 뿐입니다.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그 성질을 숭배하는 것처럼 ‘우리 식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 거야’ 라고 자랑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끔찍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은총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하느님을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그 성질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십시오. 그것이 좋은 예입니다. 자신이 인색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그것이 변화되었는지 보십시오. 지난 사순절보다 얼마나 나눌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런식으로 자신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보십시오.
사순시기는 광야에서의 사십일입니다. 삶의 고요함, 영혼의 고요함, 정신의 고요함, 존재의 고요함 중에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가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 우리와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치명적인 것이기 떄문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부정하고 가장하여,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선하지 않은데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그것이 바리사이인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에는, 아니 언제나 그랬을 것입니다만, 두 부류가 있습니다. 가장 오른편에 아주 거룩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거룩해서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거룩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철저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함을 위해 철저한 것이지요. 그 반대로 가장 왼쪽편에는 완전히 자유주의적인 부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풀어져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가톨릭 교리를 디자인합니다. 그 두 부류다 좋은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좌파, 우파가 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파 좌파는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거룩해 보이는 사람, 땀도 성수를 흘릴 것 같은 그 사람들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아주 경건하고, 거룩하게 걷고, 무릎 꿇지만, 바리사이파 같습니다. 제 말을 잘못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저는 전례 안에서 전통을 세심하게 따르고 경건한 태도의 가톨릭 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지요. 제가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최극단으로 되어져 자기 방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스캔들로 만드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한 반대로 너무 자유주의적인 신학자, 사제나 신자로 인해 모든 것들이 풀어져 버리고 새로운 가톨릭을 만들어 내는,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중심,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시기입니다. 항해중인 우리는 방향키의 방향을 똑바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줄을 잘 맞추어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등대를 향해 서야 해야 합니다. 평화의 왕, 목적지이고 항구인 그분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으면서, 너무 오른쪽에 있거나 왼쪽에 있을 때는 중앙으로 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방향키를 점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고 바른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새에 많은 것을 우상숭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숭배하고,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을 숭배하고, 미래를 숭배하고, 과거를 숭배하고,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철학과 이상론을 숭배합니다. 가톨릭 신자임에도 가짜 신을 숭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의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마귀는 아주 미묘한 방법으로 그 안에서 우리의 마음 안으로 기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자신을 넘어뜨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죄를 없애 버리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이 귀양살이를 끝낼 때까지,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마귀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신이 마귀의 손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순간에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결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훌륭한 군사가 되어야 하고, 훌륭한 군사는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또한 훌륭한 군사는 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나 극보수적인 사람들이 사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극보수적인 사람들은 사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사탄을 숭배하는 것인 듯이 이야기 하며 너무 중요하게 다룬다고 말합니다. 또 그 반대쪽 극단에서는 마귀는 에너지라고 말하면서, 사탄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워서 지옥도, 죄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사탄은 존재합니다.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을 미워하고 무너뜨리려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잊지 마십시오. 그는 평생, 하루 종일 여러분을 쫓아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서를 통해 몇 번이나 사탄이라는 단어를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영원한 심판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왜입니까? 우리의 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의식적으로 광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회개의 광야입니다. 이 광야로 들어가 우리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모든 바램과 욕구를 벗어 버리고 단식과 극기를 통해 영적으로 되어져서 하느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악으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순절을 지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드리지요. 첫째,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에 대한 말씀을 읽으십시오. 제가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근거로, 그 세가지 유혹이 사탄에 대한 가톨릭 교리의 사탄론의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단언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거슬러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예수님이 받으신 세가지 유혹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놀랍도록 완벽한 것입니다. 우리를 거슬러 일하는 사탄의 모든 행동은 그 세가지 유혹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읽고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사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시길, 또한 여러분의 특정한 삶 안에서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주시길 주님께 청한다면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놀랄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성서에 남겨 주신 이유는 우리가 그로부터 영양을 취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길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여러분이 가톨릭 신자로서 예수님과의 가장 큰 만남이 성체임을 이해한다면 성체조배의 광야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체조배의 광야로 자신이 들어가게 하십시오. 즉, 여러분과 예수님이 삶이라는 광야 안으로 들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비우고, 그 빈 곳을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채워주시도록 청하십시오. 그것이 사순절의 가장 큰 광야를 삶 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사십일 동안 가능한 자주 성체조배를 하십시오.
또 다른 조언을 드리자면 유다서를 읽어보십시오. 유다서는 아주 짧습니다. 신약성서 중 가장 짧은 서간 중에 하나로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지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읽는다면, 왜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유다서에 큰 의미가 있는 귀절이 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가 모세의 육체를 가지고 사탄과 싸우는 장면입니다. 왜일까요? 첫째, 여러분은 성 유다 역시 신비가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묵시록에 쓰여진 것을 본 성 요한과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 유다에게 모세의 육체를 가지고 성 미카엘 대천사와 사탄이 치루는 전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은 모세의 육체를 하느님으로 만들려 고 했습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들로 하여금 모세를 숭배하게 하려는 사탄의 아주 완벽한 구상이었지요. 그러나 성 미카엘 대천사가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미카엘 대천사가 사탄으로부터 모세의 육체를 가져갔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전쟁은 우리에게 사순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우리 마음에서 가짜 신을 없애는 것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우리 안의 무엇이든, 누구이든, 사탄이 가짜 신으로 바꾸어 버릴 가능성을 없애버립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은 결국 파라오와 가깝게 되어 결국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살게 되지요. 그러나 파라오가 질투로 인해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시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겪은 그 모든 광야 체험은 하느님께서 우상을 버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음 안에서 이집트 문화를 없애버리고 믿음 깊은 유대민족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예수님의 육화를 준비하신 겁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겪은 모든 시련과 고난, 그리고 모든 하느님의 가르침이 바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이브를 창조하는 것을 가능케 했습니다. 하느님 백성들의 희생과 보속을 통해 완벽한 이브, 동정 마리아, 성모님이 창조되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백성의 희생과 보속, 모든 시련을 거친 유대인의 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이브를 주셨고 그분을 통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를 회복시키고 구원할 수 있도록 당신의 백성들을 준비시켜 티없으신 유대인 동정녀를 통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모든 노력의 결과였지요.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그 선택되어졌던 나무에 접목된 우리들, 즉 새롭게 선택된 사람들인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이루기 위해 불리어졌습니다. 교회의 신비체이지요. 그 몸이 모두 이루어질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회계의 두번째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들어가려고 하는 광야, 즉 사순절은 모세가 이집트로부터 하느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들어간 광야와 똑같은 광야임을 아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벗어 버릴 준비를 하기 위해 사십일 동안의 사순기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40년 동안 하느님께 믿음을 갖지 못하고 사탄에게 끌려 다녔던 하느님의 백성들을 고치려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십일동안 우리를 고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광야에서 죄를 지어 하느님의 벌을 받아 수만명이 죽었던 날이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제는 우리가 사십일 동안 자신을 씻고, 이러한 큰 방법으로 자신을 준비하며, 자신이 숭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단순하게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때로 우리는 자신이 우상숭배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한가지 방법을 보여드리지요. 만일 오늘 이 성당에서 나가면서 저 앞에서 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지상의 삶에 얼마나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이 무엇 입니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까? 친지? 사랑하는 사람? 돈? 꿈? 자신이 버리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성당 문 앞에서 육체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자신이 계속 집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오직 하나의 신, 하느님 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육체가 쓰러지는 순간에 하느님을 향해 날아갈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신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 이상의 신이 있다면 이곳에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신들을 내려 놓을 수 있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제 말은 살면서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소유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지나가는 존재이며, 이곳에 있는 그 무엇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먼저 속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가끔 어떤 사람이 큰 돈을 벌었다는 뉴스를 볼 때가 있지요. 몇 십억을 벌었다고 하면서 그의 사진을 봅니다. 그래서요? 뭐가 대수입니까? 그 사람은 단 한 푼도 무덤에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게 뭐가 대단합니까?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이 변화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오~ 그것은 말이 됩니다. 그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지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이세상은 많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1975년부터 거의 일평생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문화는 현대의 온 세상을 오염시킨 몹시 파괴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기 때문입니다. 만화 영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부터 시작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서 경찰, 로보트 등 모든 TV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이 슈퍼 히어로가 됐지요. 그리고 나서, 운동선수, 스타, 백만장자 등등,.. 항상 슈퍼히어로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세상의 힘을 숭배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무의식 중에 모든 것을 취하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사람을 숭배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집트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떠나 예수님의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구원을 향한 광야로 들어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실제로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변화에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큰 선물입니다. 아주 힘있는 은총이지요.
이번 사순절을 이전과 다른 것이 되도록 합시다. 어쩌면 이번 사순절이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신 신비와 연결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에는 지난 많은 사순절을 하느님께서 무엇을 주시려고 해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전례상 한 시기로 흘려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재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을 하고, 평상시보다 조금 더 기도를 하고, 성주간에 참여하면서 조금 감동하고, 약간의 신비를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삶과 마음은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무언가 조금 변화되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요. 하느님께서는 진심으로 그 신앙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신앙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회개에 대해 걱정합니다. 아주 거룩한 일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낚는 어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말하는 진부한 내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특히 사순절 묵상에서 다시 한번,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교회와 인류를 위한 가장 큰 공헌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친지들과 친구들, 이 세상의 죄인들에 대해 염려한다면 자신이 변화되도록 하십시오. 죄인들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삶으로 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엄청난 구원 사업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예를 보십시오.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소화 데레사 성상이 있지요. 이 수녀는 봉쇄 수녀원에서 겨우 24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고 난 후에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마을에 있는 작은 수녀원에서 살던 작은 수녀의 작은 삶을 주님께서는 거대한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거의 수녀원 내에 있었던 그 수녀가 살았던 작은 삶에 대해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꽃으로 부르게 되었지요.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청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작아짐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큰 공헌인 것입니다. 아주 작아지십시오. 많은 큰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큰 것을 잡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가톨릭 신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란 믿음이 깊은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이란 삶이 변화되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을 다해 오롯이 거룩함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좋은 가톨릭 신자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거룩해지느냐고 묻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어린 아이처럼 되라고 하셨지요. 유치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작아져서 순종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여러분은 순진함, 순수함을 되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작아짐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느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살면서 여러분은 아주 작고, 겸손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평화를 주고 마음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자만심과 죄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저는 과거에 대죄 상태에 살면서, 몹시 세상적이고 돈과 명예와 향락만을 쫓았을 때, 그런 겸손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그들을 참을 수 없었고 걸리적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 그랬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없애버리고 싶다면 겸손해지십시오. 고백성사는 사탄을 날려 버리는 가장 큰 방법입니다. 사탄을 날려 없애 버리고 싶다면 무릎 꿇고 죄를 고백하십시오. 오~ 그것은 사탄에게 가장 큰 악몽입니다. 사탄은 겸손함을 참지 못합니다. 자만심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큰 구마행위 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구마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이 구마행위입니다.
교회가 사순시기로 우리를 부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놀라운 은총을 받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은총 안에서 주님께서 ‘네가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마음 안을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달으십시오. 지금 이순간 삶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고 그것을 버리십시오. 자신 안에서 많은 우상을 발견한다고 하느님이 벌 주지 않으시지요.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반기십니다. 자신이 좋은 가톨릭 신자일 줄 알았는데 많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발견한다고 해서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아는 것은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이 먼 채로 가톨릭 교회를 다닙니다. 자신이 좋은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삶이 끝나면 자신이 생각한 것 만큼 좋은 신자가 아닌 것을 알고 아주 크게 놀랄 것입니다. 하느님에게로 날아갈 날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곳에 멈추어진 채, 연옥의 상태에서 아주 느리게 그 날개가 자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순절이라는 기회를 받아들이고 모든 우상을 버리도록 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변화되어야 할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 중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것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큰 죄를 지은 이후, 어떤 큰 일이 있은 이후, 기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일어난 그것으로 인해 슬픔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처음으로 대죄를 짓고 완전히 슬퍼하는 사람이 된 것을 보여주셨었습니다. 제가 6, 7 세 정도 였을 때였지만, 저는 그 때 이미 그 행위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결코 기쁨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성공을 하고 많은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제 삶에서 많은 기회를 가지고 수 년 동안 모든 향락을 즐겼어도, 저의 내면은 슬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저의 내면은 전혀 기쁨이 없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해주시고 믿음으로 돌아온 후에 저는 조금씩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5년에 걸려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필요한 만큼의 완전한 기쁨은 갖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기쁨이 있고, 잃어버린 완전한 기쁨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속 그 기쁨을 위해 노력한다면, 앞으로 누리게 될 기쁨의 맛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의 순진무구함, 순수함, 작아짐을 되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오랜 과정이지만 상관없습니다. 그것만을 위해 싸워야 할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이 세상의 삶의 좌절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슬픔을 갖게 되었는지 깨달으십시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된 것들을 지나 왔습니까. 많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아주 힘들게 하고 좌절감을 줍니다. 자비심과 동정심을 잃고 믿음을 잃고 평화를 잃고 기쁨을 잃게 했습니다. 그것이 기쁨이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감금으로부터, 그 어두움에서, 그 감방에서 빠져나와 행복으로 갈 수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계속 슬프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전문가입니다. 자신의 가짜 이미지를 꾸며내게 하는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내면은 아주 슬퍼합니다. 우리는 참되고 진실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열어 주님께 순진무구함, 기쁨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작아짐과 아무것도 아님을 되찾아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이 되는, 하느님의 기뻐하는 자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느님과의 참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놀다가 가끔 넘어져서 세게 부딪히면 소리치며 울고불고 합니다. 거의 숨이 넘어갈 듯 하지요. 그러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계속 놉니다. 다쳐서 멍이 들었어도, 눈물도 마르지 않은 채, 잊어버리고 다시 놀며 웃습니다. 순진무구함과 기쁨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한번 넘어지면 그대로 주저 앉아서 오랫동안 울고불고 불평합니다. 때로 넘어진 채로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순진함,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어린아이 같은 자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되찾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사순절은 치유이고 해방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거저 주는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선물을 받아들입시다. 사순 시기는 해방의 시기, 회개의 시기, 통회의 시기입니다. 세례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 들일 때 사순시기에는 많은 큰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으십시오. 현재 자신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가끔 삶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커서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고, 죄인인 자신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요.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할 수 있겠어, 내가 뭘 달라지게 하겠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부끄러운 존재야’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느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영혼 구원에, 구원의 회계에, 그리스도의 몸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성전의 반석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반석을 닦아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좋은 세포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것을 위해 우리가 창조 되었고, 그것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주느냐입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드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하실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성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일을 하여라. 내가 너의 일을 할 것이다.’ 하느님 일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일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거룩해지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고 있는 순간까지도 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체 안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구하기 위해 육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육체를 취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육체를 구하기 위해 당신의 육체를 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체들을 구하기 위해 이 육체를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모든 인류의 육체의 구원을 위해, 구원의 도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육체를 정화하고 성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요점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침묵과 작음으로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특히 여러분이 참되게 성사생활을 하여 성체의 참된 도구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영혼 구원의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입니다.
(역: wisdom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 출처: http://blog.daum.net/sophiay/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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