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6-20권

천상의책 (19권-16-17)하느님 뜻의 숨으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하느님 뜻은 멈출 줄 모르는 계속적인 움직임이다.

Skyblue fiat 2015. 12. 15. 20:26

 

19권-16, 하느님 뜻의 숨으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하느님 뜻은 멈출 줄 모르는 계속적인 움직임이다.

 

1926년 5월 1일

 

1. 지극히 높으신 의지 안에 온통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셨다. 나를 꼭 껴안으시더니 입술을 내 입술에 붙이시고 그분의 전능하신 숨을 불어넣으셨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으로 느낀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2.  그 숨은 나의 가장 깊은 신경 조직에 이르기까지 파고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의 작음이나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온 내면으로 느낄 정도로 나를 완전히 채우고 있었다. 그분은 숨을 불어넣으시는 그 동작을 몇 번 더 하신 다음, 내가 그 거룩하신 숨으로 완전히 차지 않으면 만족하실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너는 내 뜻 안에 태어났으니 내 뜻 안에서 살고 자라며 영양을 섭취하고, ‘내 의지의 참된 딸’ 로서의 특권을 얻는 것이 필요하고도 마땅하고 품위 있는 일이다. 내 뜻에 속하지 않는 이질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네게 나타나면 안 된다. 그러니 너는 너의 외모와 태도와 말투, 심지어 사랑과 기도의 방식에서도 '내 뜻의 딸'로 인정을 받게 되어야 한다.

 

4.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큰 열정으로 너를 지키며 양육하고 있는지 이제 알겠느냐?

나는 바로 나의 숨으로 너를 지키며 양육하고 있다. 오직 나의 숨만이 내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 속에 있는 ‘내 뜻의 생명’을 전적이고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므로 크나큰 사랑으로 사람을 빚어내면서 내 가슴에서 나오는 숨으로 사람에게 내 모습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 안에도 그 숨을 계속 불어넣는다. 나의 참모습을 기르며 놀라운 일을 이루려는 것이니, 이는 내가 천지창조 때에 이루려고 정했으며, 이를 위해 만물을 만들기도 했던 놀라운 일이다.

 

6.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내가 창조 목적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있게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만든 것들을 정당하게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7. 나의 뜻이 그의 뜻과 하나인 이상 나의 것이 또한 그의 것이기도 하기에 그는,

 ‘하늘과 해와 땅과 다른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니, 나는 그들을 향유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하셨으며 나를 다스리고 계신 ‘지고하신 뜻’에게도 영예를 드리기를 원한다.’ 하고 옳게  말할 수도 있다.

 

8. 이와 반대로 내 뜻의 다스림을 받고 있지 않은 영혼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런 영혼이 그들을 향유한다면, 그는 자기 것이 아닌 것들을 향유하는 강탈자이고, 나의 재산들 속에 뛰어든 침입자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그들을 누리도록 자선을 베푸는 것은 그것이 정당해서가 아니라 나의 넘치는 자애 때문이다.

 

9. 이것이 한편은 자연의 여러 요소가 자주 인간을 덮치며 해를 끼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그들을 향유할 권리가 없기 때문인데, 그래도 그에게 지상 사물이 남아 있는 것은 창조주께서 베푸신 자선이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에 군림해 있는 여왕과 같다. 나는 그가 내 재산들 가운데에서 다스리는 것을 보며 크게 기뻐한다.

 

11. 그 뒤 기도를 계속하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 지극히 거룩하신 두 손에서 두 줄기로 쏟아져 나오는 빛의 샘들이 보였는데, 그 중 하나는 나의 비천한 영혼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있는 어떤 장치를 통하여 내려왔다가 또 다시 올라가기도 하였다. 내려오는 한편 올라가기도 하는 계속적인 하나의 흐름인 것 같았다.

 

12. 예수님께서는 이 빛의 샘들 한가운데에서 아주 기뻐하셨고, 그 중 하나의 샘이 내 안에 온전히 집중되게 하시려고 주의를 기울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손에서 내려오는 이 빛의 샘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영혼 안에 길을 내는 내 뜻이다. 내 뜻이 영혼 안에서 하기를 원하는 일을 다하려는 것이다.

 

13. 내 뜻의 이 활동이 다른 하나의 빛의 샘을 만들고, 이 샘은 내 손들을 통하여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 피조물에게서 영원하신 창조주께로 내 뜻의 성취를 가져가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올라가면서 동시에 거듭 다시 내려온다. 피조물 안에서 자신의 신적 활동을 계속하려는 것이다.

 

14. 나의 뜻은 계속 움직인다.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내 뜻의 활동이 멎으면, 모든 피조물에게도 생명이 멎을 것이다. 태양도 별이 총총한 하늘도 식물도 물도 불도 인간도 -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것이다.

 

15. 그러므로 나의 뜻은 계속적인 활동으로 각 조물의 생명이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한데 묶는다. 그 자신의 숨으로 우리 손에서 나온 만물을 숨 쉬게 하고 발육시키며 번성하게 하는, 공기보다 더 필수적인 공기인 것이다.

 

16. 그런 나의 뜻이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큰 모욕을 받고 있는지 보아라.

내 뜻은 만물의 생명이며 모든 것의 중심이니 이 뜻이 없고서는 아무것도 아무 선도 존재할 수 없건만, 그들은 내 뜻의 통치권도 그들 안을 흐르는 내 뜻의 생명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17. 자기와 만물 안에 내 뜻의 생명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따라서 우리 뜻의 개가(凱歌)요, 우리 승리의 전리품이며, 우리의 계속적인 활동에 대한 우리 사랑의 보답이다.

우리의 뜻은 이 사람을 모든 피조물에게 묶어, 바로 내 뜻이 행하는 것처럼 모든 선을 행하게 한다.

 

18. 그러니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 나로서는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 왜냐하면 내 뜻의 능력으로 우리는 같은 생명, 같은 사랑, 오직 하나의 심장 박동, 하나의 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 그분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 내 팔 안에 몸을 던지셨는데, 너무나 큰 사랑 때문에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셨다.

 

 

 

 

 

19권-17, 하느님 뜻 안에서만 바칠 수 있는 참된 보편 기도.

하느님 뜻은 하느님 자신과 그 속성들을 지배하고 두 처소에 동시에 공존하며 활동하는 특성이 있다.

 

1926년 5월 3일

 

1. 늘 하는 방식대로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려고 하다가 문득,

‘지고하신 임금님, ​첫 사람에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할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제가 왔습니다. 각 사람이 당신께 마땅히 드려야 할 모든 영예와 흠숭과 찬미와 사랑을 드리고, 하나하나의 모든 죄에 대한 모든 보속을 바치려는 것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2.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이는 오직 내 뜻만이 할 수 있는 기도 방식이다. 내 뜻만이 ‘제가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과연 내 뜻은 그 자신의 전지(全知)와 무한성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을 싸안는다. 그러므로 '저는 사람들이 임금님께 마땅히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아 빚져 있는 모든 것을 다 갚으려고,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한갓 말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실제로 어떤 인간의 뜻도 '저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나의 뜻이 네 안에서 다스리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인 것이다.”

 

4.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뒤 계속해서 큰 소리로 기도하셨다. 나도 그분을 따라 하다 보니, 그분과 함께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있었다.

 

5. 오!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과 행위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뜻은 모든 장소와 각 조물 안에 있기에, 그분의 창조 말씀과 흠숭과 그분께서 행하고 계신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었고, 그 소리를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었다.

 

6.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나 자신이 한층 더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란 내게 그분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놀라지 마라. 나의 뜻은 하느님 안에 군림해 있으면서 동시에 영혼 안에도 군림해 있다. 동시에 두 처소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적인 방식으로 그 영혼 안에서 기도하고 사랑하며 활동한다.

 

7. 그러니 우리 (성삼위)가 피조물 안에 있는 우리 뜻을 즐기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우리의 뜻만이 우리의 ‘외적 활동, 곧 창조사업을 통하여 우리의 배 속에서 밖으로 넘쳐흐른 우리의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무릎 위에 올려놓듯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8. 우리의 뜻은 우리를 위한 축제를 되풀이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토록 많이 창조하면서 느꼈던 기쁨을 우리 안에 새로이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거룩한 사랑과 흠숭과 영광을 주려고 우리의 뜻이 자기 안에 군림하게 하는 사람을 - 그리하여 우리의 뜻이 두 처소에 (동시에) 있을 기회를 우리에게 주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9. 그런고로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하느님에게 있어서나 사람에게 있어서나 모든 것이 이 뜻 안에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할 능력이 있는 우리(성삼위)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을 하기를 원하면, 그때에는 우리가 완전히 사랑이 되고, 힘이, 눈이, 손이, 발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뜻이 하고자 하는 그 활동에 우리의 온 존재가 집중되는 것이다.

 

10. 이와 반대로 우리의 뜻이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우리의 속성들도 전연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뜻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무엇에 대해서나 전연 생명이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최상권을 지닌다. 우리의 뜻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지배하고 우리의 모든 속성도 통치하는 것이다.

 

11. 이런 연유로 우리의 뜻은 우리가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고, 이 뜻안에 우리의 온 존재도 집중되어 있었다. 이보다 더 강렬한 사랑이, 더 놀라운 기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더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준다고 해도 피조물 안에 군림하여 다스리는 우리의 뜻을 그에게 주는 것에 비하면 그것이 우리 눈에 무엇이겠느냐?

 

12. 사실 우리가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다른 것들은 우리의 활동과 통치의 열매인 반면, 우리의 뜻을 주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명과 통치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열매와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값지겠느냐?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이 더 값지다. 우리 뜻의 생명을 주면서 그것과 함께 지닌 모든 좋은 것들의 샘을 주는 것이니, 이 샘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열매를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3. (마찬가지로) 피조물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거나 더없이 큰 희생을 바친다고 해도, 우리의 다스림을 받기 위하여 자기의 작은 뜻을 내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셈이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뜻에 의해 생겨나지 않은 것들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건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14. 나는 예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거처, 곧 자신의 거룩하신 배 속에서와 같이 피조물 속에도 동시에 계시면 다스리시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고 자문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15. “딸아,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르겠느냐? 작고 초라한 오두막집 한 채를 상상해 보아라. 임금이 오두막집을 사랑하여 이 안에서 살기를 원했으므로, 임금의 음성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16. 임금은 거기에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니 임금이 들기에 합당한 음식이 그 안에 있으며, 앉기에 합당한 어좌도 있다. 따라서 임금으로서 품격에 있어서는 바뀐 것이 없고, 오직 그 거처만 바뀌었을 뿐이다. 임금 자신의 의지로, 더없이 큰 기쁨으로, 왕궁에서 그 오두막집을 택했으니 말이다.

 

17. 그 작은 오두막은 영혼이고, 임금은 나의 뜻이다. 그러니 네 영혼의 그 작은 오두막 안에서 기도하고 말하며 가르치는 내 뜻의 음성을 내가 너무나 자주 듣고 있지 않느냐?  또 내 활동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면서 내가 네 작은 오두막 안에서 모든 조물을 다스리고 생기를 주며 보존하고 있지 않느냐?

 

18. 내 뜻은 너의 작음을 곱씹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내 뜻이 찾는 것은 절대적인 통치권이다. 그런 통치권을 통해서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