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6-20권

천상의책 (17권-46-48)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생명으로 삼지 않으면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이 풍성한 효과를 낼 수 없다.

Skyblue fiat 2015. 10. 25. 20:35

 

17권-46,  하느님 신성의 모든 엄위와 능력과 지혜 및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현현한 창조 사업.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생명으로 삼지 않으면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이 풍성한 효과를 낼 수 없다.

 1925년 6월 3일

 

1. 늘 하는 대로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면서, ‘우리 주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위해 하신 사업들 중 어느 것에 가장 힘을 쏟으셨을까? 창조 사업일까, 구원 사업일까, 아니면 성화 사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러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동하시며 창조된 세계 전체를 보여 주셨다. 얼마나 숭고한지! 얼마나 장엄한지! 얼마나 조화로운지! 얼마나 질서정연한지! 하늘이건 땅이건 하느님께서 특별하고 진귀한 것을 창조하시지 않은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그 솜씨는 지극히 능하신 것이어서, 빼어난 과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생명과 활동이 가득한 하느님의 창조물에 비하면 - 그 가장 미소한 것 앞에서도 - 그들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전혀 아무것도 아님을 통감할 정도였다.

 

3. 오! 우주 만물을 보면서 하느님을 인정하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진실인가! 모든 조물은 하느님을 가리는 수많은 베일과도 같다. 하느님께서 하나하나의 조물 안에 가려져 계신 것처럼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기 마련인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맨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 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토록 크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강렬한 빛으로 우리를 눈부시게 하시지 않으려고,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놀라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시지 않으려고, 그분의 무한성 앞에서 무(無)로 돌아가게 하시지 않으려고, 조물들 안에 당신 자신을 숨기신 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실 뿐더러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분의 생명 안에 잠기게 하시는 것이다.

 

5.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참으로 넘치는 사랑으로 저희를 사랑해 오셨으며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나이다.

 

6.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내게 온 우주를 보여 주신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모든 것이 창조 사업 안에 이루어졌다. 이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신성이 모든 엄위와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셨고.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눈에 띄게 나타내 보이셨다. 하늘이건 땅이건 또는 어느 피조물 속이건 우리 업적의 완전성이 보이지 않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단 하나도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7.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 안에서 피조물에 대한 활동을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이셨으니,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고, 완전한 작품들을 만드셨다. 보태거나 뺄 것이 전연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모든 일을 한 것이다. 우리 성삼위는 일을 어중간하게 할 줄을 모른다. 창조 사업을 통해 개개의 피조물에 대한 독특하고도 완전한 사랑이 그들 각자 안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8. 구원 사업은 다름 아니라 피조물이 저지른 악행의 보속이었다. 구원 사업이 창조 사업에 무언가를 보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화 사업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창조 당초의 원상(原狀)으로, 인간의 기원으로, 창조된 목적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도움이요 은총이며 빛이다.

 

9. 사실 창조 사업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완전한 행위에서 나왔으므로, 내 뜻의 힘에 의해 완전한 성덕을 지니고 있었다. 내 뜻이 인간에게 창조주의 거룩함의 반영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거룩하고 행복했으며, 그의 몸 역시 거룩하고 행복했던 것이다.

 

10. 아! 그런데 딸아,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덕은 불완전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쓸모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간이 정화되고 고상해지며 신화되기 위해 돌아와서 내 뜻을 생명과 규칙과 음식으로 삼고 창조의 첫 행위 안에 자리하면서 내 뜻을 하느님께서 주신 상속재산으로 삼지 않으면,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이 풍성한 효과를 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1. 그러니 모든 것이 내 뜻 안에 있다. 사람이 내 뜻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내 뜻만이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의 재산을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더욱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창조의 첫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재산이 그에게 치료약이 아니라 - 치료약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쓰일 뿐이다. - 영광과 특별한 상속재산이 된다. 이 영광과 특별한 유산은 천상 아버지의 뜻이 지상에, 곧 ‘말씀’의 인성 안에 가져다주신 것이다.

 

12. 그리고 내가 세상에 와서 행한 첫 행위는 바로 내 아버지의 뜻을 알리는 것이었고, 이는 피조물을 아버지의 뜻에 다시금 묶어 두기 위함이었다. 고통, 수모, 나의 숨은 생활, 내 수난 고통의 끝없는 바다가 온통 내 뜻을 알리기 위한 치료제요 약이며 지주요 빛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나는 인간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성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고통으로 인간을 안전하게 위치시키고, 나의 뜻으로 인간이 지상낙원에서 잃어버린 거룩함을 돌려주었던 것이다.

 

13. 내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의 사랑, 나의 업적이 창조 사업에서처럼 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홀로 나의 뜻만이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활동과 우리에 대한 피조물의 활동을 완전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14. 나의 뜻은 사실 인간으로 하여금 색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고, 창조된 만물 안에서 나의 뜻을 보게 하며, 내 뜻을 되울리는 소리로 말하게 하고, 내 뜻의 베일을 통해 활동하게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덕행들과 함께라면 조금씩 서서히 활동하는 반면, 내 지고한 뜻에 따라 활동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이다.

 

15. 나의 구원 사업 자체도 내 뜻의 원초적 행위가 없었다면 더없이 깊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일만 했을 것이고, 인간에게는 죽지 않게 하는 약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해독제로만 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오직 나의 뜻만을 염두에 둘 일이다.”

 

 

 

17권-47,  하느님 뜻의 불이행으로 잃은 선은 돌이킬 수 없다.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 속성들의 균형점이며, 인간 활동의 균형점으로도 정해져 있었다.

1925년 6월 11일

 

1. 나의 하찮은 정신이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 단 한 번의 숨이나 심장 박동이나 동작도 이 지극히 높으신 의지 밖에서 이루어지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지!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채 행해지는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아름다움과 은총과 빛을 잃게 하여, 우리 창조주와 판이한 모습이 되게 하는 것 같아서였고,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과 상반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모든 일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를 닮기를 바라시니 말이다.

 

2. 그런데 하느님을 닮는 데에 있어서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의 지속적인 생명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 곧 그 반영을 가져오고, 창조의 목적을 우리 안에 온전히 유지하며, 우리를 에워싸서 하느님께서 만들어 내신 때처럼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존하고, 언제나 새로우며 결코 중단되지 않는 아름다움과 빛과 사랑을 -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3. 나의 정신이 그렇게 영원하신 의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꼭 껴안으시고 귓전에 울리는 생생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내 뜻을 행하지 않는 것만큼 큰 악은 없다. 내 뜻과 같은 선이 없으니, 어떤 덕행도 내 뜻 앞에 설 수 없다. 그런고로 사람이 내 뜻을 행하지 않아 잃어버린 선은 돌이킬 수 없다. 다만 내 뜻 안으로 돌아와야 치료약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 성삼위의 뜻이 피조물에게 주기로 정했던 선들을 돌려받을 수 있다.

 

5. 피조물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덕행을 쌓으며 더 잘 희생할 수 있다고 우쭐대 보았자 헛일이다. 그런 것이 내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행한 것도 아니라면 내 인정을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더욱이, 은총과 도움과 빛과 재산과 합당한 상급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만이 받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다.

 

6. 게다가 내 뜻은 영원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뜻 안에서 수행된 한 행위(의 가치)를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느냐? 이 행위는 끝없이 좋은 것들로 가득 차고 그 선들에 둘러싸인다. 그러한 것이 내 뜻이니, 그 행위도 자신과 같이 만드는 것이다.

 

7. 반면에 내 뜻이 없는 다른 덕행들과 일과 희생은 시작과 끝이 있다. 언제라도 사라져 버릴 그런 것들이 어떻게 큰 상급을 받을 수 있겠느냐?

 

8. 더군다나 내 뜻은 내 속성들의 균형점이다. 만약 내 권능이 이 거룩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수없이 나를 모욕하는 이들에게 폭정(暴政)을 펼칠 것이다. 내 뜻은 그러나 내 권능의 균형을 잡으면서 나로 하여금 진노와 파멸을 쏟아 부어야 할 지점에 은총을 쏟아 붓게 한다.

 

9. 나의 지혜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주는 내 뜻이 없다면, 우리의 작품들 속에 그토록 능숙하고 정교한 솜씨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이 영원한 뜻의 뒷받침을 받지 않으면, 시들어 가며 매력을 잃을 것이다. 자비 역시 내 뜻에 의해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나약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의 다른 모든 속성들도 그와 같다.

 

10. 그런데 우리의 자애로운 부성은 피조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리의 뜻 안에 사람의 균형점을 정해 두었다. 사람이 우리의 지고한 뜻에서 나온 이상 이 뜻이 생명이 되어 그의 모든 활동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기 창조주와 닮은 모습이 되게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다. 창조주에게서 태어난 피조물로 인정할 만한 품위와 위엄과 질서의 작용이 사람 안에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11. 그런즉 사람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내 뜻의 균형이 있는지 아니면 인간적인 뜻의 불균형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 인간적인 뜻으로 말미암아, 비록 선행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많은 활동 속에 균형과 체제와 질서가 보이지 않는다. 내 뜻의 실행이 없기 때문에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는 행위가 되고, 빛을 내뿜는 대신 어둠을 던지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12. 선한 것은 모두 내 뜻에서 온다. 내 뜻이 없으면 겉으로 선해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생명이 없고, 거기에 관여하는 이들에게 중독을 일으킬 만큼 유해한 것일 수도 있다.

 

 

 

 

17권-48,  만물은 새로운 생산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 안에 다시 태어나는 길.

 1925년 6월 18일

 

1. 나의 일상적인 방식대로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고 있었는데, 그 지극히 거룩하고 높으신 뜻의 무한한 공간이 내 정신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2. ‘이 공간이 어떻게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는 인간 행위의 보답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고하신 뜻의 이 영원하고 천상적인 영역 속으로 들어가려는 걸음에 지장을 주는 인간의 뜻이 죄다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간이 창조 질서 속의 그의 기원으로, 그의 출발점이 되었던 첫 걸음들과 그 길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하느님께서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신 행위들이다.

 

3. 하지만 이 세상에는 선으로 여길 새로운 것이 전연 없다. 죄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부 가톨릭 단체들의 쇄신 활동 소식이 들리지만, 그런 사업들 중에도 외관상 선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 내부는 실제로 과거보다 더 통탄할 악덕이 우글거리는 것들이 있다.

 

4. 그러니 인간이 어떻게 일격(一擊)에 모든 악덕을 죽이고 모든 미덕에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지고하신 뜻의 영역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뜻 안에서 살려면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미덕과 악덕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5. 오히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뜻과 인간적인 것은 더 이상 생기를 띠지 않고 그들 안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당신 생명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6. 내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생각의 흐름을 끊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즉, 내 뜻의 이 무한한 공간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인간 활동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7. 내 뜻은 인간의 선익을 위하여 지고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태(胎) 안에서 나왔다. 우리의 이 뜻은 단 하나의 행위로 우리에게서 나와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그 위를 덮쳤지만, 그런 다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행위들로 불어나서 인간을 둘러싸고 이렇게 말하였다. 보아라, 나의 이 뜻은 너를 휩쌀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즉각적인 행위도 할 태세로 있다. 그것은 내 뜻을 알리기 위함이요, 이에 보답하는 행위들을 내 뜻 안에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8. 만물은 그들의 보상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활동이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흙 속에 묻혀 보상을 바란다. 더 많은 씨를,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씨를 낳는 것이다. 농부가 심은 나무는 열매를 맺고 또 많이 맺는 보상을 바란다. 사람이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은 사람의 갈증을 풀어 준다든가 목욕이나 세탁을 하게 하는 보상을 준다. 사람이 지핀 불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보상을 준다.

 

9. 하느님께서 만드신 다른 모든 것들도 이와 같다. 생산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의 조물들이기에 생식력이 잠재되어 있고, 따라서 스스로의 개체 수를 불리며 보상을 준다.

 

10. 그런데 그토록 큰 사랑과 그토록 많은 계시와 지속적인 활동으로 우리에게서 나온 우리의 이 뜻만은, 다른 뜻을 곧 인간의 뜻을 이 거룩한 뜻 안에 다시 낳는 보상 없이 남아 있어야 하겠느냐? 씨는 더 많은 씨를 내고, 열매는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낳고, 스승은 또 다른 스승을 양성한다. 유독 우리의 뜻만은, 그 큰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뜻 안에 우리의 뜻을 낳는 보상 없이 있어야 하겠느냐 말이다?

 

11. 아니다. 아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뜻도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뜻 안에 스스로의 거룩한 뜻을 낳을 것이다. 우리의 뜻이 인간의 뜻을 변화시키며 거룩한 뜻 안에 다시 낳는 것 - 이것이 우리의 첫 행위였고 이 때문에 만물을 만들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뜻은 우리에게서 나왔으니, 우리가 (인간의) 뜻을 원하는 것이다.

 

12. 이는 창조의 일차적 질서 안에서 수행되고 정해졌던 일인 반면, 여타 모든 것은 부차적인 질서 안에서 수행되었다. 그러니 기껏해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문제만 있을 뿐, 모든 세기가 끝나기 전에 내 뜻은 반드시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부차적인 것들 안에서 이 다시 낳음의 목적을 달성해 왔다면, 하물며 일차적인 목적 안에서야 얼마나 더 잘 달성하겠느냐!

 

13.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 안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우리 뜻의 완전한 효과이거니와, 만약 우리의 뜻이 그 완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할 줄로 알고 있었다면 결코 우리의 태 안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4. 너는 세대가 늘 현재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오, 아니다! 내 뜻이 모든 것을 덮쳐누를 것이다. 도처에 혼란을 일으킬 터이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될 것이고, 새로운 현상들이 숱하게 나타나 인간의 교만을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전쟁이며 혁명이며 온갖 종류의 재앙이 들이닥쳐 인간을 때려눕히면서 인간의 뜻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킬 것이다.

 

15. 그런즉 내가 너에게 내 뜻에 대해 드러내는 모든 것과 네가 이 뜻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바로, 내 뜻이 인간의 뜻 안에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일이요 그 방법이며 가르침이고 빛이며 은총이다.

 

16. 이것이 만일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면 내가 그리도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고, 너로 하여금 이리도 긴 세월 동안 침대에 붙박여 사는 희생을 치르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너의 뜻 안에 나의 뜻이 새로 태어나는 일의 기초를 네게 세우기 위함이고, 그리하여 네가 나의 뜻 안에서 계속 활동하게 하기 위함이다.

 

17. 너는 내가 네 안에 계속 있으면서 내 기도를 먹여 주고 내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고통을 나와 함께 받음으로써 다양한 가치와 효과와 능력을 얻는 것이,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최초의 기념비적인 상(像)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안에 내 뜻의 신생(新生)을 받아들인 최초의 영혼 말이다. 그런 다음의 복사판 제조는 더 쉬운 작업이 될 것이다.

 

18. 이런 이유로 내가 너에게 항상 '주의를 기울여라.' 하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너무나 위대한 일 -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것이고, 우리 뜻의 권리를 안전하게 세우며 우리에게 창조의 목적을 만물 창조의 모든 영광을 돌려주는 일에 대한 것이며, 인간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의 뜻을 이루면 우리의 뜻이 그들에게 주기로 정했던 모든 은총을 주게 되는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