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탄생 800주년에 즈음한 교황 교서
가난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성녀 글라라
LETTER OF HIS HOLINESS JOHN PAUL II
FOR THE EIGHTH CENTENARY
OF THE BIRTH OF SAINT CLARE OF ASSISI
(1993. 8.11)
친애하는 글라라 봉쇄 수녀 여러분,
1. 800년 전 귀족 집안인 파바로네 디 오프레두쵸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분이 바로 아시시의 글라라입니다.
이 "새 여성" - 프란치스칸 가족의 총봉사자들이 최근의 서한에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 은 성 프란치스꼬 그늘에서 "작은 나무"로 살았습니다. 성 프란치스꼬는 그녀를 그리스도 완덕의 절정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처럼 참된 복음적 일생을 경축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관상 즉, 신비가들만이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영적 여정에 초대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녀에 관한 초기 전기와 기록들ㅡ'생활 양식', 그녀의 유언,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네 통의 편지 등ㅡ 을 읽어 보면 성삼이신 하느님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빠져 들게 됩니다. 특히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는 참으로 눈부십니다. 성녀의 글들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열정 가득한 응시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녀의 내면으로부터 용솟음 치는 사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 한 여성이 마음속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2. 글라라 성녀의 관상적 여정은 "영광의 임금님"(시성 조사록 제4 증언, 19)을 바라보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그 시작은 주님의 영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자아포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께서 천사의 아룀을 받던 순간에 보이신 태도와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오로지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단순한 마음에서 나온 가난의 정신(루카 1,48)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글라라 성녀에게 있어서 그녀가 그처럼 사랑하였고 그처럼 자주 그녀의 글에서 언급한 이 가난은 영혼의 부(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서 오로지 "주님의 영과 그 영의 활동에"(성녀의 회칙, 10,10) 온전히 개방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빈 항아리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선물을 한없이 풍요롭게 쏟아부으실 수 있는 항아리 말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글라라에 대한 비교는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저서, 즉 그가 글라라 성녀에게 써 준 '생활 양식'에서도 발견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거룩한 복음의 완덕을 따라 사는 것을 선택하였기에, 지극히 높으신 왕,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딸과 여종들이 되고 성령의 정배들이 되었습니다"(성녀의 회칙, 6,3에 인용된 [생활양식]).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안에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을 이루어 내신다.
성녀 글라라와 그 자매들을 "성령의 정배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드문 표현입니다. 수녀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성모 영보 이야기(루가 1,26-38 참조)에서 루가가 표현한 바를 그대로 다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글라라 성녀의 체험을 표현하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 즉 "지극히 높으신 분", "성령", "주님의 종", 그리고 "마치 동정녀의 신방에서처럼"(글라라 전기, 8) 포르치운쿨라의 성모 마리아의 제단 앞에서 머리채를 자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힘이 감싸 주시듯" 성령을 입은 것들은 성모 영보 이야기에서 듣는 말입니다.
3. "주님의 영과 그 영의 활동"은 세례성사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며, 그리스도인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을 이루어 냅니다. 고독과 침묵은 성녀 글라라가 자신과 그 자매들을 위해 선택한 생활 양식이었으며, 아시시와 포르치운쿨라 중간에 있는 그녀의 수도원 담 안에서 인간의 소리와 지상적인 것들은 사라져 버리고 하느님과의 일치만이 실재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어 육화하는 '사랑'만이 실재할 뿐이었습니다.
성녀 글라라는 베들레헴의 아기를 관상하고 깊이 경배하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영광의 광채요 영원한 빛의 반사이며 티없는 거울이시니,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 보십시오. 말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워계시다니!" (아녜스에게 보낸 네째 편지, 14,19-21).
성녀는 그 관상과 변모를 통해 자신의 태(胎)가 축성되어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한 가난한 동정녀"(아녜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8 참조)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의 요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습니다(시성조사록 제9 증언, 4).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졌을 때 ㅡ 수도원이 황제 프레데릭 2세가 고용한 사라센 군대의 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ㅡ 성체성사로부터 그녀에게 들려온 것은 바로 이 아기 예수의 음성이었습니다. "내 너희를 보호하리라"(글라라 전기, 22).
1252년 성탄 전야에 아기 예수님은 병과와 사랑(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합니다.)에 싸인 그녀을 병상에서 끌어내어 하느님의 한없는 심연 속에 끌어들이는 신비로운 체험으로 휩싸이게 하였습니다.
4.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그리스도의 성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성녀라면, 대(大)데레사 성녀는 영혼의 성 안에서 "방에서 방으로" 위대하신 임금님의 문지방을 넘나들었던 성녀였고,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복음적 단순함으로 작은 길을 걸어간 분이었다면, 성녀 글라라는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열렬한 정배'였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였다.
성녀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를 위하여 천대받으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대도 이승에서 그분을 위해 천대받는 자 되어 그분을 따르십시오. '인간의 아들네보다 짝없이 아름다우시지만'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사람이 되셨고, 멸시를 받았으며, 얻어맞고, 온몸에 수없이 매를 맞아 십자가의 참혹한 고뇌 중에 돌아가신 그대로 정배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십시오. 그대가 그분과 함께 고통당하면 그분과 함께 기뻐할 것이고, 애통의 십자가에서 그분과 함께 죽으면 그대는 성인들의 광채 속에서 천상 거처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의 이름을 사람들이 영원히 칭송할 것입니다."(아녜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9-22).
성녀 글라라는 18세 가량 되었을 때 수도원에 들어갔고 59세에 그곳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과 항구한 기도, 엄격한 규율과 보속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뜨거운 열망만이 그녀를 늘 불태웠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처럼 많은 병고 때문에 받았던 긴 순교"를 지켜보아 온 라이날도 형제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그의 종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한 번 알게 된 다음 부터는 어떠한 고통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고, 어떠한 고행도 격렬하다 할 것이 못되었으며, 아무리 병들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여!" (글라라 전기,44)
5.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신 분은 아버지의 영광을 반사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파스카로써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랑 때문에 당신 수난에 동참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18세의 꿈많은 소녀는 121년 성지주일 한밤중에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찾아 서슴지 않고 모험의 길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대로 복음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았고, 그 몸과 마음의 눈을 온전히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고정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를 변모시킨 이 일치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의 영혼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신적 실체의 형상 가운데 두고, 그대의 전 존재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변화 시키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태초부터 하느님 몸소 마련해 놓으신 숨겨진 감미로움을 맛보면서 그대도 그분의 벗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이 거짓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눈 먼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그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십시오"(아네스에게 보낸 세째 편지, 12-15).
참기 어려운 십자가의 병상은 감미로운 신혼의 침상이 되었고 "일생 동안 계속되는 사랑의 은둔 생활"은 아가(1,3;3,4)에서 노래하듯이 사랑의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천상의 신랑이여, 날 이끌어 님을 뒤따르게 해주소서. 나를 포도주 방으로 데려가실 때까지 싱그럽기 그지없는 당신의 방향(芳香)으로 줄달음쳐 가리이다."(아녜스에게 보낸 네째 편지. 30-31).
가난과 고된 노동, 고생과 병고뿐 아니라 형제적 일치로 점철된 산 다미아노 수도원의 봉쇄 생활은 '생활 양식'의 말마따나 "거룩한 일치"(성녀의 회칙 앞에 실린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칙서, 1)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녀 글라라는 모든 피조물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기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것은 성삼의 완전한 일치이신 그리스도안에 사는 기쁨이며 성삼적 사랑의 형언할 수 없는 심연 속에 온전히 빠져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성녀 글라라는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쳤다.
6. 성녀 글라라의 삶은 프란치스코의 지도 아래 관상과 봉쇄의 삶이었지만 은세(隱世)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그녀 주위에는 공중의 새와 들의 꽃처럼(마태 6,26,28 참조) 살고자 하는 자매들이 모여들었으며, 이들에게는 오직 하느님만으로 족하였습니다. 이 "작은 무리"는 ㅡ이들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1228년 8월에 이르러서는 "가난한 글라라 자매들"의 수도원이 적어도 25개에 달하였습니다.(라이날도 추기경의 편지-프란치스코 역사 문헌 5,1912, 444-446면 참조)ㅡ 두려움이 없었습니다(루카 12,32참조). 어떠한 위험 앞에서도 그들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누린 것은 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글라라 성녀와 그 자매들은 세상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관상하는 사람들로서 전 인류를 위해 간구하였습니다. 매일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혼들이면서도 그들 모두는 자신들에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도의 여성들 마음속에 메아리치지 않는 타인의 관심사와 고통, 근심과 고뇌는 없었습니다.
성녀 글라라는 아시시가 아베르사의 비탈레 군대에게 함락될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랑하는 마을을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으며 탄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시시를 전쟁으로부터 구해냈던 것입니다. 그녀는 매일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자주 십자성호로 그들을 낫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열린 가슴에 머물지 않고서는 사도직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녀는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빌어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나는 그대를 하느님 자신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로마 16,3;1 고린 3,9 참조)으로 여기고 있으며 또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의 넘어지기 쉬운 약한 지체들을 받치는 받침대로 여기고 있습니다."(아녜스에게 보낸 세째 편지, 8).
7. 17세기 이래 초상화가 널리 제작되었는데, 성녀 글라라는 자주 성체 현시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같은 초상화에는 성녀가 매우 장엄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겸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녀는 심하게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자매의 부축을 받아 성체를 모신 은제 성합 앞에 부복하였던 것입니다(글라라 전기, 21 참조). 황제의 군대가 밀어닥치자 성녀는 이를 문 앞에 모셨습니다. 글라라 성녀는 당시의 관습대로 일년에 일곱 번밖에 모시지 못하는 '거룩한 빵'으로 살아갔습니다. 병상에서 그녀는 성체보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이를 스뽈레또 계곡의 가난한 성당에 보냈습니다.
사실 글라라 성녀의 전생애는 일종의 'eucharistia(감사)'였습니다. 프란치스코처럼 그녀도 봉쇄 수도원으로부터 기도와 찬미, 탄원과 전구, 부르짖음과 봉헌 그리고 희생을 통하여 하느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독생 성자, 아드님,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부활하신 분,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 바로 그분의 한없으신 "감사"와 일치하여 그 모든 것을 봉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이 성년 동안 온 교회는 여러분의 사랑하는 어머니의 빛나는 모습에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녀의 모범에서 용기를 얻고 매일의 봉헌 생활과 관상 생활에 대한 투신으로써 주님의 은총에 응답하기 위하여 더욱 큰 열정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오늘의 세계에서 자신의 선교 활동을 위해 여러분의 삶에서 얼마나 큰 힘을 얻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빛이 되시고 마음의 기쁨이 되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원의를 가지고 나는 깊은 애정의 표시로 여러분 모두에게 사도적 축복을 보냅니다.
1993년 8월 11일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축일에
교황 재위 15년,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원문 : Papal letter for Assisi Saint's anniversary, "Claire identified with poor Christ", L'Osservatore Romano, N. 34. 1993년 8월 25일, 1면. 번역 : 정승현 신부)
[출처]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탄생 800주년에 즈음한 교황 교서 (1993. 8. 11) (교황과 교회의 교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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