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건 부제의 열일곱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7월 23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페레올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
지극히 존엄하신 주교님께 벌써 편지를 올렸어야 했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주하여 편지를 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는 영국 영사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공경하올 주교님의 분부를 받고 조선에 파견된 후 저는 하느님의 은혜로 무사히 입국하여 서울에서 신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병에 걸려 여러 차례 심하게 앓았습니다. 신자들은 지금 박해를 받지 않고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목자가 없어 탄식하고 있습니다. 신자수가 나날이 증가되고 열심도 커지며 배교한 사람들도 다시 회개하여 바른길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외교인들도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류를 버리고 참 하느님께로 회두하는 사람이 많으며, 외교인 사이에 천주교를 가장 좋게 여기는 여론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신자수는 최소한 만 명으로 추산되고 순교자 수는 처음부터 8백 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오늘날 실제로 적극적 박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으나 날마다 죽을 위험에 처하여 있으며 참으로 가난하고 참혹한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주교님의 거처하실 집을 한 채 사서 어느 신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강남으로 오기 위하여 범선 두 척을 샀는데 한 척은 좀 큰 것이고 또 한 척은 작은 것이었습니다. 작은 배는 폭풍우로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조선을 떠나 강남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렀고 두 번이나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제가 조선에서 출발할 때 데리고 온 신자들의 부모나 아내들은 그들의 행방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강남 근처 바다에서 해적을 만났으나 동정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받아 감히 우리를 약탈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오송구와 상해에 도착하였을 때 영국 영사와 영국인들이 우리를 매우 친절하게 후대하고 진심으로 보호해 주었습니다.
중국 관장은 우리에게 육지로 해서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관례에 따라 우리가 도착한 사정을 황제에게 보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반대하여 그리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지금은 그 중국 관장도 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곳에 마음대로 체류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영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합니다. 또제가 중국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저를 중국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국 영사는 자기가 주교님이 보내신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저더러 주교님께 보고 드리라고 하면서 편지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그가 통역 없이 저에게 이 말을 하였으므로 저는 그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정을 명확하고 자세하게 주교님께 상서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나 지금 제 주변에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널려 있고 또 머지않아 주교님을 만나 뵙겠으므로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리부아 신부님께 올린 편지에는 좀더 자세히 적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주교님이 오시기만을 날마다 고대하고 있습니다.
범선에는 물건을 둘 만한 자리가 넉넉하니 주교님께서 오실 때 가져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오시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팔 만한물건은 서양 포목, 천, 비단과 같은 것들입니다. 조선의 은화는 그 모양이 조금 가늘고 기다랗습니다. 은덩이는 모양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통용됩니다.
조선의 대신들은 프랑스 왕에 의하여 조선에 파견되었다고 여기는 프랑스 신부님들을 살해한 후에 혹시 프랑스인들이 보복하러 오지나 않을까 하여 몇 해 동안 무서워했습니다. 프랑스 왕이 파견한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프랑스 왕을 모욕하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 프랑스인들이 보복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다시 대담해져서 또다시 신자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베지 주교님은 길에서 병환이 나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못했습니다. 고틀랑 신부님으로부터 5백80원을 받았습니다.
공경하올 주교님께 이곳 신자들이 인사를 드립니다.
존엄하신 주교님께, 순명하고 무익한 아들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 김대건 신부의 열여덟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11월 20일
발신지 : 서울
수신인 : 리부아 신부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우리는 9월경에 강남을 출발하였습니다. 바다에서 여러 차례 폭풍우로 시달렸고 바람은 더욱 거세어져 키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배가 파손되지 않도록 돛대를 베어버리고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거센 역풍으로 우리는 제주도까지 떠내려갔습니다. 그후 여러 날 걸려 강경이라는 항구에 도착하였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무런 재앙 없이 신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과 공경하올 다블뤼 신부님은 주님 안에 평안하시고 조선말을 공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메스트르 신부님과 토마스 부제를 영입할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박해한 왕과 대신들은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신자들은 현재로서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나 또 다른 박해가 일어난다는 소문이 신자들을 동요시키고 있습니다.
금년 음력 7월경에 영국 함선 한 척이 제주도에 왔습니다. 그때 대신들과 백성들은 살해된 신부님들의 피를 보복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선에 서양 함선이 자주 드나드는 것은 신자들에 대한 외교인의 증오심을 자극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서양 사람들이 접근해 오는 것은 신자들이 그들을 초청하고 그들과 내통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외교인은 우리가 강남에 갔다 온 것을 의심하고 탐사하면서 나쁘게 말하고 있습니다.
표현력이 부족한 저는 감히 많은 것을 적어드리지 못합니다. 존경하올 페레올 주교님과 공경하올 다블뤼 신부님께서 스승님께 편지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계획과 원의로 밖에는 한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으므로 보고드릴 것이 많지도 않습니다.
또한 지극히 좋으신 공경하올 리부아 신부님과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진심으로 모든 행복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공경하올 신부님, 기도와 미사성제 가운데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부당하고 무익한 종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출처: 한국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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