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1-15권

천상의책 (12권-1-5) 내적으로 예수님 삶의 판박이가 되는 방법/예수님 안에 온전히 녹아드는 행위의 효과

Skyblue fiat 2015. 3. 5. 16:48

 

12권-1,  하느님과 영혼의 해소될 수 없는 결합 관계.

내적으로 예수님 삶의 판박이가 되는 방법.

1917년 3월 16일

 

1. 나의 일상적인 상태는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거의 빛이 번쩍 하듯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시곤 한다. 그래서 내가 우는소리를 하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2. “딸아, 내 딸아, 가엾은 딸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안다면 못 견디게 괴로울 거다. 네가 그토록 괴로워하지 않게 하려고 내가 애써 너를 피해 달아나는 거다.”

 

3. 그래도 나는 다시 탄식하면서, “제 생명이시여, 저는 당신에게서 이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저 없이 지내실 수 없어 보이시더니,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 때로는 온 하루가 다 지나도 당신께서는 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 제발 저에게 이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너무 변하셨습니다.” 하였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뜻밖의 순간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진정해라, 진정해야. 나는 변하지 않았고, 본디 변할 수 없는 존재다.

게다가 내가 너에게 말하지만, 내가 영혼과 소통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그 영혼을 껴안고 그에게 말하며 내 사랑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기에 나와 그 사이의 이 관계는 깨어질 수 없는 것이다.

 

6. 기껏해야 방식을 바꿀 뿐이다. 어떤 때에는 이런 식으로, 다른 때에는 저런 식으로... 아무튼 그에게 어떻게 말할지 그 방법을 줄곧 생각해 내면서 사랑으로 나 자신을 부어 주는 이다. 너도 알지 않느냐? 내가 오전 중에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저녁에 말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라는 것을?

 

7. 그리고 그때 수난 중인 나에 대한 글을 읽으며 (묵상하고) 있으면, 내가 네 안에 있기 때문에 네 영혼에 넘쳐흐르도록 나 자신을 쏟아 부어 주고, 이제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나의 가장 내밀한 점들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또한 수난 동안 내가 한 일을 영혼이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8. 내 수난을 적은 글은 나의 내적 삶을 비추는 거울이니, 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사람은 내적으로 바로 내 삶의 판박이가 된다.

오, 그 책이 나의 사랑과 영혼에 대한 목마름을 - 내 심장 근육의 각 신경마다, 내 모든 숨과 생각 등등마다 - 얼마나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지!

 

9. 따라서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고 이 말이 끝나면 즉시 숨는 것인데, 너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나더러 변했다고 하는 것이다.

 

10.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한다. 너의 내면에 들려주는 내 말을 네가 네 목소리로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네가 내 사랑의 분출을 방해하는 것이 된다.”

 

 

 

 

12권-2,  예수님 안에 온전히 녹아드는 행위의 효과.

1917년 3월 18일

 

1. 기도 중에 온 존재로 예수님 안에 녹아들면서 예수님의 생각을 하나하나 다 내 수중에 가지고자 했다. 피조물의 각 생각 속에서 생명을 지니기 위해서, 바로 예수님의 생각으로 보속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2.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고 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내 인성이 지상에서 한 일이 바로 피조물의 생각과 나 자신의 생각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 하나하나가 내 정신 속에 반사되고 있었고, 말 하나하나가 내 음성 속에,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내 심장 속에, 행동 하나하나가 내 손안에, 걸음 하나하나가 내 발 안에 되울리고 있었다.

 

4.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으로 나는 아버지께 신적인 보속을 바쳤다.

 

5. 지금은 내가 지상에서 했던 그 모든 일을 천상에서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에 잠기면 그 생각들이 내 정신 안에 쏟아져 들어오고, 그들이 뭔가를 바라보면 나는 그 눈길을 내 눈길 속에서 느낀다. 나와 그들 사이에 전류가 끊임없이 흐르는 것 같다. 지체들과 머리는 계속적인 소통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6.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께 기도하고 배상하고 보속을 바치며 아버지의 의노를 풀어 드리려고 하는 이가 오직 저만은 아닙니다. 제 안에서 제가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더구나, 자기네 고통으로, 이제는 영광을 입은 몸이 되어 고통을 받을 수 없는 제 인성을 대신하여 채우기도 합니다.’ 하고 말씀드린다.

 

7. 영혼은 내 안에 온전히 녹아드는 행위에 의하여 내가 행했고 또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한다.

나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싸안고 모든 보속을 바치며 내 안에서 일생을 산 이들이 나와 함께 천국에 있게 되면, 그때 그들이 느낄 기쁨은 어떤 것이겠느냐?

 

8. 그들은 내 안에서 그들의 삶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는 중 지상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즉 생각으로 나를 모욕하고 있으면, 그 생각들이 그들의 정신 속에 반영되므로 지상에서 행했던 보속을 계속할 것이고, 나하고 같이 하느님의 어좌 앞에서 영예로운 파수꾼이 될 것이다.

 

9. 또 지상 사람들이 죄로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으면 그들은 정반대의 행동을 할 것이고, 내 어좌를 수호하며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즉, 그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될 것이다.

 

10. 그들의 영광이 내 영광 안에 완전히 녹아 있고 내 영광이 그들의 영광 안에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그러니 너도 너의 생명이 온전히 나의 생명 안에 녹아 있게 해야 한다.

하나의 행위라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2. 네가 내 안에 녹아들 때마다 나는 새로운 은총과 빛을 네 안에 쏟아 부을 것이고,

죄의 그림자도 얼씬 못하도록 내가 친히 네 마음을 지키는, 깨어있는 파수꾼이 되어 주겠다.

 

13. 너를 나 자신의 인성처럼 보살피리니, 만물과 만인에게 보호되도록 천사들에게 화관을 이루어 너를 둘러싸고 있으라고 명하겠다.

 

 

 

12권-3,  예수님의 “나는 너를 사랑한다.”의 위력.

 1917년 3월 28일

 

1. 보통 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가까스로 잠시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불쌍한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로워하시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예수님?” 하고 내가 여쭙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뜻밖의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갑자기!

또한 도처에 혁명이 터질 터이니, 오, 사태가 얼마나 악화될지 모른다!”

 

3. 그리고 그분은 몹시 괴로워하시며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그래서,  “제 생명의 생명이시여, 한 말씀 더 해 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4. 그러자 예수님은 내게 숨을 불어넣으시는 듯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사랑한다.는 말씀을 통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5. “예수님, 또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내가 거듭 청하자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말은 내가 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이 사랑한다.’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성인들 가운데를 순환하기에 그들은 새로운 영광을 받는다.

 

6. 이 말은 지상 나그네들의 마음속에도 내려간다.

그러기에 어떤 이들은 회개의 은총을 받고, 어떤 이들은 성화의 은총을 받는다.

 

7. 그것은 또 연옥 속으로 들어가서 은혜로운 이슬처럼 영혼들 위에 부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낀다.

 

8. 대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것도 열매를 많이 맺으며 자라는 데에 필요한 새 생명에 휩싸이고 있음을 느낀다. 일체 만물이 네 예수의 ‘너를 사랑한다.’를 감지하는 것이다.

 

9. 그렇다면 너는 언제 영혼이 나의 ‘사랑한다’를 자기 위에 끌어당길 수 있는지 알겠느냐?

 

10. 그건 말이지, 영혼이 내 안에 녹아들어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신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 때,

내 안에 녹아들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행할 때이다.”

 

11. 그래서 나는, “제 사랑이시여, 그런 신적 태도를 늘 견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12. “딸아, 영혼이 내 안에서 늘 할 수는 없는 즉각적인 행위는 그렇게 하려는 선의를 가지는 것으로 벌충할 수 있다.

 

13. 나는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들기 때문에 나 자신이 깨어 있는 파수꾼이 되어 각각의 생각과 말과 심장 박동과 기타 등등을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피조물의 선의가 맺는 열매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나를 보필하는 시종이 되도록 나의 안팎에 둘 것이다.

 

14. 그리고 영혼이 내 안에 녹아들어 나와 함께 즉각적인 행위를 할 때에는 내가 그 영혼에게 세차게 끌림을 느끼기에 그가 하는 일을 그와 함께하면서 피조물의 활동을 신적인 활동으로 변화시킨다.

 

15. 나는 모든 것을 고려한다. 극히 사소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에 대해 상급을 준다.

피조물의 의지가 행하는 단 하나의 선행도 결코 사취(詐取)당한 상태로 있게 하지 않는 것이다.

 

 

 

12권-4  예수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겪는 영혼의 고통은

영혼을 잃을 때의 그분 고통과 맞먹는 고통이다.

1917년 4월 2일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 그분의 일상적인 부재에 대하여 탄식하며 말씀드렸다.

“제 사랑이시여, 정말이지 계속적인 죽음입니다! 당신께서 오시지 않을 때마다 느끼는 이 죽음은 너무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어서, 저로 하여금 죽음의 영향을 절감하게 하면서도 정작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2. 당신의 선하신 마음이 이토록 끊임없는 죽음을 수도 없이 겪고 있는 저를 어떻게 참고 보실 수 있으신지, 어떻게 아직도 저를 계속 살아있게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셔서 나를 가슴에 꼭 껴안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내 가슴에 안겨 생명을 끌어당겨라. 하지만 너는,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쾌하고 가장 힘있는 고통 - 나의 고통과 맞먹기에 내 앞에 설 수 있는 고통이 곧 내 부재의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5. 네가 또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영혼들은 내 인성과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를 이루며 나와 함께 묶여 있다는 점이다. 영혼들이 길을 잃게 되면 그들이 이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격이 되기에, 나는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

 

6. 그러면 누가 나를 위해서 이 끊긴 고리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겠느냐?

그것을 용접하여 끊긴 자국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겠느냐?

즉, 누가 그들을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여 생명을 받을 수 있게 하겠느냐?

 

7.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 부재의 고통이니, 그것이 신적인 고통인 까닭이다.

영혼을 잃음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 신적인 것이듯이 나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겪는 영혼의 고통 역시 신적인이다.

 

8. 이 두 고통이 다 신적인 것이기에 둘이 서로 입맞추며 하나로 합칠 수 있고 서로 앞에 설 수 있으며, 단절된 고리인 영혼들을 데려와서 나의 인성에 다시 연결시킬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9. 딸아, 나의 부재가 너에게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느냐?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는 고통을 무익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10. 내가 그것을 너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니 너만 독차지하지 말고, 전투를 하고 있는 영혼들 속으로 날아들게 하여라. 포탄이 터지는 가운데서 영혼들을 낚아 올려 내 안에 집어넣고, 네 고통을 녹여 용접하고 인장을 찍어라.

 

11. 그런 다음 그 고통이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하여라. 영혼들을 붙잡아 내 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12. 그런즉 내 부재의 고통이 느껴질 때에 너는 단절된 고리들을 다시 연결하여 인장을 찍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12권-5,  사람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고

스스로의 사랑에 뭔가 빠진 점이 있기 때문이다.

1917년 4월 12일

 

1. 여느 때와 같이 머물러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내가 좀 고통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분께서 나를 팔에 안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안에서 쉬어라. 그리고 너의 고통을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내 십자가 위로 올려 보내라.

 

3. 그러면 그것이 내 고통의 시종이 되어 나를 위로할 수 있고,  나의 고통은 네 고통의 시종이 되어 너를 떠받쳐 주면서 같은 불로 태워 함께 완성되게 할 수 있다.

 

4. 나는 또한 너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으로 간주하기에, 같은 효력과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그 고통이 내가 십자가 위에서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아버지와 영혼들 앞에서 할 것이다.

 

5. 그리고, 오너라. 너 자신도 십자가 위로 올라오너라. 그러면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기뻐하며 함께 있겠느냐!

 

6. 사실 피조물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며 부유하고 아름답게 한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그의 사랑에 뭔가가 빠져 있을 때이다.

 

7. 너는 나와 하나 되어 십자가에 달려 있는 이상,

사랑에 빠진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만족을 느낄 것이다.

너의 고통이 곧 사랑이요, 너의 삶이 곧 사랑이요, 일체가 온통 사랑이기에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