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1-15권

천상의책 (11권-76-80)피조물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만 하면 성삼위의 내적 활동에 참여함에 대한 재확인

Skyblue fiat 2015. 1. 27. 18:35

 

11권-76,  피조물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만 하면

성삼위의 내적 활동에 참여함에 대한 재확인.

1914년 6월 29일

 

1. 몇몇 교회 당국자들이 내가 지난 3월 17일에 쓴 글을 읽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성삼위의 ‘내적’ 활동에 참여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는데, 그들은 그럴 수 없다고 피조물이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2. 나는 생각에 잠겼지만 마음은 평온했으며,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게 해 주시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3. 그 뒤 나의 일상적인 상태로 있노라니, 머릿속에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고 이 바다 안에 여러 가지 사물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것들을 작고 어떤 것들은 보다 큰가 하면, 어떤 것들은 해면에 떠 있어서 단지 물이 묻은 상태이고, 다른 것들은 더 밑으로 내려가서 안팎이 푹 젖어 있고, 또 다른 것들은 너무나 깊이 내려가서 바닷물 속에 녹아 버린 상태였다.

 

4. 내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을 때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사랑하는 딸아, 보았느냐? 바다는 나의 무한성을 상징한다. 한편, 크기가 서로 다른 사물들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을 상징한다.

 

6. 해면에 떠 있거나 더 아래쪽에 있거나 내 안에 녹아들어 있거나 하는 따위 각기 다른 존재 양상은 이 영혼들이 어느 정도로 내 의지 안에서 사는가에 따른 구분이다. 그러니까 불완전하게, 혹은 보다 완전하게 사는 영혼들이 있는가 하면, 내 뜻 안에 완전히 녹아드는 단계에 이른 영혼들도 있는 것이다.

 

7. 그런데, 딸아, 내가 일전에 너에게 말한 ‘내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즉, 어떤 때에는 내가 너를 나와 함께, 곧 내 인성과 함께 있게 한다. 그러면 너는 나의 고통에 참여하고, 내 인성의 활동과 기쁨에도 참여한다.

 

8. 또 다른 때에는 내가 너를 나의 내면으로 끌어당겨 내 신성 안에 녹아들게 한다. 내가 너로 하여금 내 안에 잠겨 있게 한 것이 - 네가 너의 안팎에서 오로지 나만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 안에 깊숙이 잠겨있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느냐?

 

9. 내가 너를 내 안에 있게 했던 그때 너는 기쁨과 사랑과 나머지 모든 것에 참여했는데, 늘 너의 작은 능력에 따라 그렇게 하였다. 우리 성삼위의 ‘내적’ 활동은 영원한 것이지만, 피조물은 그들의 사랑에 따라, 그들의 삶 속에서 이 내적 활동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0. 그런데 영혼의 뜻과 나의 뜻이 하나일 경우 나는 그를 내 안에 자리하게 한다. 그러면 영혼 자신이 내 뜻을 떠나지 않는 한 언제나 나와 분리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영혼이 나의 '내적' 활동에도 참여한다고 내가 말했다고 해서 무엇이 이상하랴?

 

11. 게다가 이것이 설명된 방식을 보건대, 저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내가 말한 '내적' 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정신의 빛인즉 이 빛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 하지만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으면 정신이 어두워져서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혹과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전보다 더 어두워지고 만다.

 

13. 더군다나 나는 항상 활동 중이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오래고 새로운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적' 활동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계속된다. 항상 진행 중이다.

 

14. 그러니 우리의 뜻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영혼은 이 결합을 통하여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사랑과 기쁨과 다른 모든 것에 참여하면서 찬미하고 관상하며 사랑하고 즐긴다. 그런데,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은 우리의 ‘내적’ 활동에 참여한다고 한 내 말이 어째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냐?”

 

15.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내 마음에는 깨달음의 미소가 떠올랐다.

 

16.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아 기르고 있는데, 이 부부는 자기네와 함께 살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행복하게 해 줄 정도로 부유하고 유덕하며 선량하다고 하자.

 

17. 때마침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선량한 성품에 감동되어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이 사람도 그들의 부와 행복에 참여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들과 함께 삶으로써 그들의 덕행이 자기에게도 배어드는 것을 느끼지 않겠는가?

 

18. 사람끼리도 이런 일을 이룰 수 있다면 하물며 우리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더 크게 이루시랴.

 

 

 

11권-77,  상처투성이인 예수님 안에 녹아들어 각 부위마다 위로와 보속을 드리다.

1914년 8월 15일

 

1.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있었으나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근래에 와서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내게 오시곤 하셨다. 오신다고 해도 아주 잠깐 빛이 번쩍 하듯 획 지나가시고, 오시면 내게 나누게 하시던 고통도 거의 완전히 끊어 버리신 것이다.

 

2. 그분의 거룩하신 뜻만이 내 안에서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3.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분께서 오시어 몇 시간 동안 머물러 계셨는데, 돌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가엾은 상태였다. 온통 상처투성이인 그분은 그 지극히 거룩한 인성의 군데군데마다 위로를 받고자 하셨다.

 

4. 이 위로를 받지 못하시면 세상을 들부수어 돌무더기로 만드실 것 같았다.

 

5.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꼭 껴안았고, 위로해 드리고자 그분의 지성 속에 녹아 들어갔다. 피조물의 모든 지성 속에도 있으면서 그들의 악한 생각마다 나의 선한 생각을 주어, 죄로 손상된 예수님의 모든 생각을 위로하며 보속하기 위함이었다.

 

6. 같은 식으로 나는 그분의 갈망 속에도 녹아 들어갔다. 피조물의 모든 악한 갈망 속에도 있으면서 나의 선한 갈망이 자리잡게 함으로써 죄로 손상된 예수님의 갈망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여타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7. 내가 그렇게 그분을 한 부분씩 차례대로 위로하고 나자, 그분은 기운이 나시는 듯한 모습으로 떠나셨다.

 

 

 

11권-78,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뜻으로 바치는 기도의 열매.

1914년 9월 25일

 

1. 복되신 예수님께 나의 보잘것없는 기도를 바치면서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이 기도를 쓰시는 것이 나올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친절하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와 함께, 바로 나 자신의 뜻으로 바치는 기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든 이에게 주어질 수 있다. 마치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바쳐진 기도처럼 모든 이가 자기 몫의 효과 받는 것이다.

 

3. 그렇지만 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작용한다. 영성체나 내 수난의 경우와 같이, 나로서는 그 열매를 모든 사람에게 각각으로 다 주지만 효과를 내는 정도는 그들의 지향에 따라 다른 것이다.

 

4. 그러니 열 사람이 받건 다섯 사람이 받건 열매 자체는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 이러한 것이 나와 함께, 나의 뜻으로 바치는 기도이다.”

 

 

11권-79,  <수난의 시간들>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상급.

1914년 10월 X일

 

1.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 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 내 ‘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번의 입맞춤을,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3.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 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 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4.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5.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6.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7. 또 한 번은 이 ‘수난의 시간들’을 쓰기 위하여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른 뒤에도 정작 이를 실행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께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8. "딸아, 애통해하지 마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너는 기뻐해야 한다. 나는 다만 한 영혼만이 구원될 수 있었다고 해도 내 수난과 전 과정을 겪지 않았겠느냐?

 

9. 너도 마찬가지다.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이 선행에 게을러선 안 된다. 손해를 입게 될 쪽은 다만 이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10. 그리고 나의 수난은 내 인성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얻게 있었다.

 

11.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한 공로를 얻은 것은, 나의 뜻이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은 내가 원한 것에 따라 얻은 공로이지 사람들이 거기에서 끌어낼 이득에 따라 얻은 것이 아니다.

 

12. 너도 이와 꼭 마찬가지다. 의 뜻이 어느 정도로 나의 뜻과 하나되어 모든 이에게 선을 베풀고자 했는가에 따라 상급을 받게 될 터이니 말이다. 손해를 입게 될 쪽은 이를 실행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13. 이  ‘수난의 시간들’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15. 오, 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 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16.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17.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 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곧 ‘제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18. 그러니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온통 사랑에 젖은, 또 내게 간절히 청하시는 듯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19. “딸아, 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 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20.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

 

21. 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22.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 엄마.” 하셨고, 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하였다.

 

23. 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11권-80,  하느님의 뜻과 일치된 행위만이 완전무결하다.

1914년 10월 29일

 

1. 복되신 예수님께, 내게 오시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고 있노라니, 나의 변변찮은 마음이 마구 짓눌리면서 뒤숭숭한 착란 상태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분을 향하여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워섬겼다.

 

2. “제 사랑이시여,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당신 없이는 제가 어찌할 줄 모를 뿐더러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3. 저는 당신과 함께 지상에 있든지, 당신과 함께 천상에 있든지 둘 중 하나일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당신께 일깨워 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4. 당신께서 침묵을 지키고자 하신다면, 혹은 주무시거나 화를 내고자 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단, 저와 함께 계시면서 그렇게 하십시오. 지금 저는 당신 성심에서 추방된 기분입니다... 세상에, 이리도 박정스레 저를 내쫓으실 수 있습니까?”

 

5. 내가 이 외에도 허튼 소리를 더 늘어놓고 있으니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딸아, 마음을 가라앉혀라. 내가 여기 있다. 너는 내가 내 마음에서 너를 내쫓았다는 말로 나를 모욕하는구나.

 

7. 오히려 나는 내 마음 깊숙이 너를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꽉 붙안고 있는지 나의 온 존재가 네 안으로 흘러들고 네 온 존재도 내 안으로 흘러들 정도다.

 

8. 그러니 네 안으로 흘러드는 내 존재의 그 무엇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너의 행위들 하나하나가 나의 뜻과 일치되게 하여라. 나의 뜻은 완전한 행위들을 내포하니 말이다.

 

9. 사실 뜻의 행위는 전부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이기에 그 하나의 행위로도 천 개의 세상을 창조하기에 족하다. 게다가 다른 어떤 행위도 수반시킬 필요가 없다. 하나의 행위가 족히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10. 따라서 네가 나의 뜻과 일치하면 극히 단순한 행위를 할 때에도 나에게 완전한 행위를, 즉, 사랑과 찬미와 감사와 보속의 행위를 주게 된다. 요컨대 나를 위하여 이 행위 안에 모든 것을 포함시킨다. 더군다나 나 자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하여 네가 나 자신을 나에게 주는 셈이 된다.

 

11. 아, 그렇다! 나의 뜻과 일치된 그런 행위들만이 내 앞에 설 수 있다. 왜냐하면 흠 없고 완전한 행위들만이 불완전한 행위를 할 줄 모르는 완전한 존재에게 영예와 만족을 줄 수 있는데, 피조물이 그처럼 완전하고 흠 없는 행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뜻 안에서 일 뿐이기 때문이다.

 

12. 나의 뜻을 벗어나서 행해진 것은 그것이 선한 행위이건 언제나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설사 그럭저럭 처리해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일을 완성하려면 뒤를 잇는 행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피조물이 내 뜻 밖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찮은 것으로 본다.

 

13. 그런즉 나의 뜻이 너의 생명, 너의 규범, 너의 모든 것이 되게 하여라. 이와 같이 나의 뜻을 네 안에 지니고 있으면,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네 안에 있게 된다.

 

14. 앞으로는 십분 조심하여 내가 너를 내 마음에서 내쫓았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