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6-10권

천상의책 (8권-61-64)감실 수난의 루이사/산 제물이 되도록 택함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왜?”의 역사

Skyblue fiat 2014. 11. 4. 23:50

 

 

 

8권-61,  하느님이 영혼의 채무자가 되실 때

1909년 1월 22일

 

1. 우리 주님의 숱한 부재에 대하여 생각하노라니 (지난 일도 기억에 떠올랐다). 수년 전만 해도 내가 몇 시간 기다린 뒤에 그분께서 오시면 그토록 고심하며 기다리게 하셨다고 볼멘 소리를 하곤 했고, 그러면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2. “딸아, 네가 나를 열망하기도 전에 내가 불쑥 나타나면, 내가 너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내게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한동안 기다리게 한 뒤에 내가 오면, 그때에는 내가 너에게 빚을 지게 된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너의 채무자가 되실 기회를 너에게 주시는 셈이다. 그런데도 너는 이를 사소한 일로 여길 수 있겠느냐?”

 

3. 그래서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당시에는 몇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몇 날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그분께서 내게 지신 빚이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 같다. 내게 오실 마음을 내지 않으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4. 하지만 그 순간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느님을 채무자로 삼는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된담? 생각건대 그분을 채무자로 삼거나 그분의 채무가가 되거나 예수님께는 다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한 순간에, 당신의 빚과 같거나 그것을 능가할 만한 은혜를 영혼에게 주실 수 있으니까. 하기야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빚이 깨끗이 탕감되는 방식이리라.”

 

5. 한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딸아,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 내가 영혼들에게 주는 은총은 ‘자연 은총’ 외에도 ‘계약 은총’이 있다. 자연 은총의 영혼들에게는 나의 선택에 따라 은총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아무런 계약에도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의 경우처럼 계약 은총의 영혼들에게는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고 또 내 선물들도 주어야 하는 계약에 매여 있다.

 

7. 어떤 기품 있는 신사와 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아라. 이들 중 한 사람은 자기의 돈을 그 신사의 손에 (안전하게) 맡긴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사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줄 수 있지만, 그러나 궁한 상황이 되었을 때, 돈을 맡긴 사람과 맡기지 않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확실히 돈을 손에 넣을 수 있겠느냐? 물론 돈을 맡긴 사람이 그만큼 더 적극적인 의향과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신사에게 가서 맡긴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신사가 내놓기를 주저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솔직하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에게 그걸 주시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것도 신속하게 말입니다. 사실, 제 것을 달라는 것이지 어른 것을 달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신사의 손에 아무것도 맡기지 않았으므로 쭈빗쭈빗 망설이며 확신도 없이 갈 것이고, 도움을 얻건 얻지 못하건 결국 신사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8. 이것이 내가 채무자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이다.

네가 나를 믿고 맡김으로써 얼마나 어마어마한 이익을 내게 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9. 여기에 덧붙일 것은, 또 터무니없는 소리이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 속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께서 제게 이처럼 많은 빚을 지고 계시니, 제가 천국에 가 있게 될 때 저를 보시면 아무래도 마음이 좀 거북하시겠지요? 하기야 지금 바로 오신다면 제가 채무자가 되므로, 너무나 선하신 당신께서는 저와 만나는 첫 순간에 제 빚을 탕감해 주시겠지만, 저는 악한 인간인지라 탕감해 드리기는 고사하고 당신을 기다리는 (고통 속에서) 들이마시고 내쉰 숨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지불을 요구할 것이니 말입니다.”

 

10.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내면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11. “딸아, (그때가 되면) 내 마음이 거북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쁨을 느낄 것이다.

내 빚은 사랑의 빚이고, 내 빚을 지고 있는 너를 가지기보다는 내가 채무자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너에게 진 이 빚은 내게 빚인 한편 내 마음속에 영원토록 간직할 보증과 보물이 되기도 하므로 다른 사람들보다도 너에게 내 사랑을 더 많이 받을 권리를 줄 것이다. 이것이 내게 더 큰 기쁨과 영광이 되기에 너는 한 번의 숨, 하나의 순간, 하나의 갈망, 한 번의 심장 박동에 대해서도 보상을 받을 것이고, 또 네가 지불을 요구하며 악착스레 졸라댈수록 내게 더한 기쁨을 줄 것이며 내가 그만큼 더 많이 너에게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네 마음이 기쁘냐?"

 

12. (이 말씀을 듣고) 그만 벙벙해진 나는 달리 무슨 말씀을 드릴지 알 수 없었다.

 

 

 

8권-62,  “감실 수난의 루이사”

1909년 1월 27일

 

1.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 내 삶은! 내가 무슨 선을 행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는 가시도 십자가도 못도 없다. 몸을 꼼짝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는 보통의 류머티즘 때문이다. 순전히 자연적인 병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다만 예수님의 수난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분의 뜻에 나의 뜻을 일치시키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또 원하시는 사람을 위하여 그분께서 겪으신 것과 나의 전부를 봉헌하면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외에는 (나의) 궁상스러운 비참만이 있다. 그러니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2.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빛이 번쩍 하듯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네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냐? 너는 감실 수난의 루이사다. 내가 내 고통을 너와 나눌 때에는 네가 아직 '해골산 수난의 루이사'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감실 수난의 루이사' 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 보아라. 감실 안에 있는 나는 외관상 아무것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십자가도 가시도 없다.

 

4. 그러나 나의 희생은 해골산에서와 같고, 기도도 똑같고, 내 생명의 봉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내 뜻도 모든 점에서 변함이 없고,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불타는 목마름도 마찬가지다.....

나의 성사적인 삶의 사건들은 내 지상 삶의 사건들과 결합되어 언제나 하나의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어느 면에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화(內化)되었다.

 

5. 그런즉 너의 뜻이 내가 너와 고통을 나눌 때와 같고 봉헌도 같으며 너의 내면이 나와 나의 뜻과 일치되어 있다면, 내가 너를 '감실 수난의 루이사'라고 말하는 것이 어째서 옳지 않겠느냐?

 

6.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즉, 내가 너와 함께 고통을 나눌 때에는 네가 나의 지상 삶에 동참한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이 최악의 징벌만은 받지 않게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내가 세상을 벌하고 너는 나의 성사적인 삶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 두 삶은 언제나 하나이다.”

 

 

 

 

8권-63,  산 제물이 되도록 택함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

 1909년 1월 28일

 

1. 내적 활동의 다양한 방식에 대하여 또 예수님께서 이러한 영혼들에게 얼마나 으뜸가는 큰 은총과 넘치도록 풍부한 사랑으로 보상해 주시는가에 대하여 기록한 책을 읽은 뒤, 방금 읽은 모든 것과 예수님께서 내게 내적으로 가르쳐주신 수많은 방식과 다양한 행위들을 비교해 보았다. 이는 책 속의 저 방식들에 비하면 너무나 방대한 것이기에 마치 큰 바다를 조그만 강 하나와 비교하는 것 같아서 절로 이런 말이 솟아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은총을 쏟아 부어 주시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2. 그 뒤 평상시와 다름없이 있었는데 어지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너는 산 제물이 되도록 택함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나는 산 제물이 됨으로써 인간의 모든 행위들 - 보속 내지 보상 행위, 흠숭 감사 행위들을, 곧 그들이 하기로 되어 있는 모든 행위들을, 그들 각자와 모두를 위하여 대신 행하면서 내 안에 포함시켰다. 이와 같이 너도 산 제물이 된 이상 너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각 사람의 다양한 방식을 모두 네 안에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4. 말하자면 내가 너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각각으로 보상하게 해야 하므로 결국 너에게 오직 한 사람에게 주는 은총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과 맞먹는 은총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내가 너에게 주는) 사랑 역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내 사랑을 능가해야 한다. 은총과 사랑은 오직 하나의 보조(步調), 하나의 판단 기준, 하나의 의지를 공유하면서 언제나 병행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은총을 끌어당기고 은총은 사랑을 끌어당기기에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네 안에 펼쳐 둔 광대한 바다와 다른 이들 안의 조그만 강이 너에게 보인 것이다.”

 

5.  나는 그토록 많이 받은 은총을 나 자신의 배은망덕 및 악함과 대조하면서 (정신이 아뜩하도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권-64,  “왜?”의 역사

1909년 1월 30일

 

1. 평소대로 있다가 나 자신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았는데, 내가 아는 한 연옥 영혼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에게 "제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한 번 봐 주시겠어요? 특히 현재 제가 처해 있는 상태 때문에 무척 걱정이 되거든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영혼은 "그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단지, 그대가 고통을 높이 평가한다면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이겠지요. 고통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높이 받드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받드는 사람은 절대로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이 중히 여기는 것은 그 자신보다 더 존중하며 사랑하기 마련이고 애지중지하며 안전하게 돌보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되기를 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그분의 가슴을 아프게 해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2. 나중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왜? 왜? 왜?..... 왜 이런 병이? 왜 이런 내적 상태가?..... 왜 이런 징벌이?.....' 하는 말을 거의 언제나 되풀이하고, 또 다른 왜를 수없이 반복하곤 한다.

왜에 대한 설명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적혀 있어서, 하늘에서는 모두가 그것을 읽게 될 것이다.

 

4. 그런데 이 왜의 정체 무엇인지 너는 알겠느냐? 그것은 자애심에 끊임없이 양식을 대는 이기주의이다. 너는 이 왜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알겠느냐? 지옥이다. 누가 맨 먼저 그 말을 썼겠느냐? 악마.

그 첫 왜가 발설된 결과는 에덴 동산의 순결의 상실이요, 걷잡을 수 없는 격정과의 싸움이요,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과 치명적인 죄악들이었다. 그러니 왜의 역사는 아주 길다. 이 세상에 왜라는 표를 달고 있지 않은 악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넉넉할 것이다. 왜는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파괴한다. 이것이 어디에 파묻히게 될지 너는 알겠느냐? 지옥이다. 그리하여 멸망한 모든 영혼에게 평화를 주지 않고 영원히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안식을 주지 않고 영혼들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이 왜의 간교함이 있는 것이다.

Fiat !   Voluntas   Tua.​     천상의 책    제8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