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497~p506[216. 아스클론으로 가는 길에 평야에서. 217.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Skyblue fiat 2025. 5. 1. 21:42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497~p506

 

 

216. 아스클론으로 가는 길에 평야에서

1945. 7. 12.

평야지대에서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햇볕은 다 여문 낟알을 볶다시피 해서 빵 냄새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해와 빨래와 낟알의 냄새, 즉 여름 냄새가 공기 중에 어렴풋하게 배어 있다.

 

만일 우리가 예민한 감각들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방마다 각기 특유의 냄새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달, 모든 계절, 심지어 하루 중의 모든 시간이 각자 그 냄새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의 냄새는 안개 낀 겨울날의 그윽한 냄새나 눈 오는 날의 냄새와 사뭇 다르다. 소리 없이 다가와 향기 아닌 향기로 자신을 알리는 봄날의 냄새는 또 얼마나 다른가! 그 냄새는 겨울 냄새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공기 냄새가 달라져 있다. 그것은 봄날의 첫 숨결이다. 꽃이 만발한 과수원의 냄새, 정원의 냄새, 낟알의 냄새 등등이 있고, 포도원의 따스한 냄새로 내려오면 간주곡으로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흙냄새…가 있다.

그리고 시간들은 어떤가? 새벽의 냄새가 정오의 냄새와 비슷하다거나 정오의 냄새가 저녁의 냄새나 밤의 냄새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둔한 짓일 것이다. 새벽의 냄새는 상쾌하고 순수하며, 정오의 냄새는 유쾌하고 활기차며, 저녁의 냄새는 나른하고, 낮 동안에 발산한 모든 냄새가 배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냄새, 즉 밤의 냄새는 마치 대지가 그 어린것들을 눕히고 흔들어주는 거대한 요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요하고, 아늑하다.

또한 장소들은 어떤가? 오! 해변의 냄새는 새벽 때와 저녁때가 아주 다르고, 정오 때와 밤 때가 아주 다르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와 고요한 때가 다르고, 그 해변이 바위가 많은지와 모래밭인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간조 후에 보이는 해초의 냄새는 어떤가? 마치 바다가 자기의 내장을 열어 그 심연의 냄새를 우리에게 호흡하게 하는 것 같다. 그 냄새는 내륙 평야의 냄새와 사뭇 다르고, 구릉지의 냄새와도 아주 다르며, 고산지대의 냄새와도 판이하게 다르다.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무한한 것들 각각에 빛과 색깔과 향기와 소리와 형태와 높이를 새겨 넣으신 그분의 무한성이란 그런 것이다.

오, 우주의 무한한 아름다움이여, 지금 나는 환상과 그것을 본 기억,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께 대한 기도, 그분의 작품들과 그것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기쁨을 통해서만 너를 볼 수 있다. 너는 얼마나 광대하고, 힘 있고, 지칠 줄 모르고, 그러면서도 늘 새로우냐!

너는 지치지도 않고, 결코 아무도 지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 내 주님의 우주, 너를 바라보면 사람이 새로워지고, 더 착해지고 더 순수해지며, 고양되고, 잊어버린다… 오! 항상 너를 관조하고(contemplate), 사람들의 열등한 부분은 잊어버리고, 그들의 영혼 안에서 그 영혼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 나는 사도들과 함께 익은 곡식이 가득한 평야를 가로질러 길을 가시는 예수를 따라가며, 내 하느님의 찬란한 작품들을 통하여 그분에 대하여 말하는 기쁨에 휩쓸려 다시 한 번 내 주제에서 벗어났었다.

한 사람 안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찬양하거나 단순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찬양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사람과 창조주 사이도 마찬가지다. 창조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찬양하고, 창조주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창조주 자신과 그분의 작품들을 더욱 더 찬양하게 된다. 나는 지금부터는 내 마음에 침묵을 명하고, 경배자로서가 아니라 충실한 연대기 작가로서 예수를 따라가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밭들 사이로 걸어가신다. 더운 날씨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 밭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여문 밀 이삭과 여기저기에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햇빛, 밀 이삭, 새들, 도마뱀들, 고요한 대기 중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초록색 풀포기들만이 그분의 주위에서 보일 뿐이다. 그분께서 걷고 계시는 기복이 있는 들 사이의 간선도로의 한쪽 편에는 작은 마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농가 한 채가 있다. 다른 것은 전혀 없다.

그들 모두가 땀을 흘리며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겉옷을 벗고 있다. 비록 가볍다 해도 모직 튜닉을 입고 있기 때문에 더위로 인하여 고통스러울 것이 틀림없다. 예수와 그분의 사촌 두 사람과 가리옷의 유다만이 아마포나 삼베 소재의 옷을 입고 있다. 예수와 가리옷 사람의 옷은 흰 아마포로 지어진 것이고, 알패오의 아들들의 옷은 아마포보다 더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그것들은 표백하지 않은 삼베와 색깔이 정확하게 똑같은 어두운 상아빛깔로 염색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늘 입는 겉옷을 입고 있고, 머리에 두르고 있는 아마포 두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걸어간다.
그들은 한 교차로에 있는 잡목 숲에 이른다. 그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멈춰 각자의 수통의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물이 마치 불에 데워진 것처럼 뜨뜻하구먼.”
베드로가 투덜거린다.

“여기 개울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눈 씻고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없네,”
바르톨로메오가 한탄한다.
“머지않아 내 물은 바닥 나.”


“나는 산길을 걷는 편이 더 나은 거 같아.”
더워서 얼굴이 시뻘겋게 된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탄식한다.

“가장 좋은 건 배야. 시원하고 안락하고 깨끗하고, 아!”
베드로의 마음은 호수와 자기의 배로 날아간다.

“너희의 말은 다 옳다. 그러나 죄인들은 산에도 있고, 평야에도 있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맑은 내에서 쫓아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토록 가까이에서 우리를 박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테벳 달과 스밧 달 사이에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머지않아 바닷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거기 가면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운 공기가 시원해진다.”
예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며 말씀하신다.

“어! 그것 참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저희 모두가 죽어가는 갯장어 같습니다. 하지만 물이 없는데도 밀들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습니까?”
베드로가 묻는다.

“땅을 축축하게 유지해주는 땅속의 습기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설명하신다.

“물이 땅 밑에 있는 것보다 땅 위에 있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요. 땅 밑에 있는 물이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에게는 뿌리가 없잖습니까!”
베드로가 충동적으로 말하자, 그들 모두가 웃는다.

유다 타대오가 정색하며 말한다.
“어떤 사람들처럼 땅도 이기적이고 메마른 것은 매한가지야. 그들이 그 마을에 머물러서 안식일을 지내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었다면, 우리는 그늘과 물과 휴식을 즐겼을 텐데. 그들이 우리를 내쫓았잖아.”

“그리고 우리는 음식도 먹었겠지. 지금 우리에겐 먹을 음식도 없어. 나는 배고파. 과일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과일나무들은 죄다 집들 가까이에 있으니 누가 그걸 따 올 수 있겠어? 만일에 이곳 주민들이 우리를 쫓아냈던 저 마을 사람들처럼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이라면 말이야!”
토마스가 동쪽에 있는, 그들이 떠나온 마을을 가리키며 말한다.

“내 음식을 먹게. 나는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아.”
열성당원이 말한다.

“내 것도 먹어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더 배고픈 사람이 먹어라.”

그러나 예수와 열성당원과 나타나엘의 음식을 함께 모아도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토마스와 젊은 사도들의 실망한 시선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말없이 소량의 음식을 조금씩 먹는다.

참을성 있는 열성당원은 타는 듯한 지면에 초록색 식물들 줄지어 있어 물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간다. 과연 개울바닥에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조금 흐르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그마저 사라지게 되어 있는 실낱같은 물줄기이다. 그는 멀리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몸을 식히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거의 마른 그 작은 개울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의 불규칙적인 그늘을 따라 뛰어간다. 그들은 거기서 먼지투성이의 발을 씻고, 땀이 흐르는 얼굴을 씻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빈 수통에 물을 채워 찬 기운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늘진 물속에 넣어둔다. 그들은 한 나무 아래 앉아 피로에 지쳐 꾸벅꾸벅 존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시며 머리를 흔드신다. 한 번 더 물을 마시고 돌아온 열성당원이 예수의 몸짓을 보고 그분께 묻는다.

“선생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일어서신 다음 열성당원에게 가시어 한 팔로 그의 어깨를 두른 채 다른 나무를 향하여 가시며 말씀하신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나는 너희의 피로가 고통스럽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내가 확신하지 못한다면, 너희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하여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힘들다니요? 아닙니다. 선생님! 이것은 저희에게 기쁨입니다. 당신을 따르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저희 모두는 행복합니다, 정말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는…"

“조용히 해라, 시몬아. 인간성은 착한 사람들 안에서도 불평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희가 불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너희의 집과 가족과 사업으로부터 빼앗아왔다. 너희는 나를 따른다는 것이 이런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그러나 어느 날 현재의 너희의 부르짖음, 너희의 내적인 저항은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는 박해당하고, 미움 받고, 중상당하고… 그보다 훨씬 더한 것을 당하는 선생님을 따라 박해받고, 목마르고, 먹지도 못하면서 안개와 진흙, 먼지와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가는 것이 좋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는 너희에게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너희의 생각은 달라질 것이고, 그래서 너희는 모든 것을 다른 빛으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나의 어려운 길을 따라 너희를 인도했었던 것에 대하여 나를 찬미할 것이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슬프시군요. 세상은 당신의 슬픔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것의 일부가 아닙니다. 저희 모두는 행복합니다…”

“모두? 너는 확신하느냐?”

“당신께서는 달리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시몬아, 나는 달리 생각한다. 너는 항상 행복하다. 너는 깨달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저 사람들이 자면서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지 너는 아느냐? 그리고 모든 제자들은 어떻고? 너는 모든 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이 충실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보아라. 너도 어렸을 적에 해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이 오래된 놀이를 해보자(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돌 틈에서 자라고 있는 완전히 여문 민들레꽃 하나를 꺾으신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그분의 입 가까이에 대신 다음 훅 부신다. 민들레꽃은 미세한 우산들로 갈라져 가느다란 대 위에 작은 술을 단 채 공기 중에서 이리저리로 날아간다). 보이느냐? 마치 나를 사랑하듯 내 품안에 떨어진 것이 몇 개나 되느냐? 세어보아라… 스물 세 개다.

전체 개수는 적어도 그보다 세 배는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보아라. 어떤 것들은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고, 몇 개는 무거워서 떨어졌고, 몇 개는 은색 깃털을 뽐내며 우쭐하여 더 높이 올라가고 있고, 몇 개는 우리가 수통을 가져다놓느라 만들어놓은 흙탕물에 떨어지고 있다. 오로지… 보아라, 보아… 내 무릎 위에 떨어졌던 스물 세 개 중에서 일곱 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저 말벌의 날갯짓만으로도 그것들은 날아가버렸다!… 그것들은 무엇을 두려워했느냐? 아니면 그것들은 무엇에 유혹되었느냐? 그것들은 벌의 침을 두려워했느냐? 아니면 까맣고 노란 아름다운 빛깔이나 멋진 외양이나 무지갯빛 날개에 끌렸느냐?… 그것들은 갔다… 기만적인 아름다움을 따라…

시몬아, 내 제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초조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변덕스러움, 교만, 우둔함, 경박함, 진창에 대한 욕망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서,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떠나갈 것이다. 너는 지금 나에게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를 내 사명의 결정적 순간에 내가 내 곁에 데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내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민들레의 꽃받침들은 일흔 개 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품에는 일곱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은 더 가는 줄기들이 훨훨 날아가버리게 만든 이 한 모금의 바람에 불려 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것이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너희가 얼마나 많이 갈등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시몬아, 이리 오너라. 물 위에서 춤추고 있는 저 잠자리들을 살펴보러 가자. 네가 쉬기를 더 원한다면 몰라도.”

“선생님,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저는 슬퍼집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고쳐주셨던 나병환자, 당신께서 갱생시켜주셨던 박해받았던 사람, 당신께서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해주셨던 고독한 사람, 당신께서 하늘과 세상을 열어주셨던, 애정을 갈망했던 향수의 사람(nostalgic man)은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줄 것이며, 그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유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년에 당신께서는 그 사람 때문에 저와 함께 우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그 잠자리 두 마리를 내버려두시고, 저를 보시고,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동료들, 제 친구들에게도요. 그러나 저는 당신께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다를 사랑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는 그를 사랑하려는 제 갈망을 물리칩니다. 그가 저를 업신여겨서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그가 사람들을 아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노련하다고 그가 짐작하는 나이 많은 열성당원에게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행동방식입니다. 당신께서는 그가 진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물 표면에 앉아 무지갯빛 겉날개로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놓고 있는 두 마리의 잠자리에 정신이 팔려 계시는 듯 한참 동안 침묵하신다. 그 귀중한 무지개는 호기심 많은 각다귀 한 마리를 끌어들이는데, 게걸스러운 잠자리 한 마리가 그놈을 집어 삼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숨어 있던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가 그 잠자리를 잽싸게 낚아채 각다귀와 함께 먹어 치운다. 그분께서는 자연의 작은 비극을 보시기 위하여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셨다가 일어나시며 말씀하신다.

“정확하게 이와 같다. 잠자리는 강한 턱이 있어 풀을 먹을 수 있고, 힘센 날개가 있어 각다귀를 낚아챌 수 있다. 그리고 개구리는 큰 입을 가지고 있어 잠자리를 삼킬 수 있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활용한다.

시몬아, 가자.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에게 대답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대답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나이 많은 내 현자야, 묵상해라. 그러면 너는 찾아낼 것이다…”

예수께서는 개울에서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분을 쳐다보고 있는 그분의 제자들을 향하여 가신다.




217.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1945. 7. 13.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 있다. 그러나 때가 석양이어서 견딜 만하다.

“우리는 저 집에 가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출발하여 그 집에 도착한다. 그들은 빵과 음료를 청한다. 그러나 농부는 무례하게 그들을 쫓아낸다.

“필리스티아 종자들! 독사들! 저놈들은 항상 똑같아! 저놈들은 같은 줄기에서 태어나서 독 열매를 맺는다니까.”
피로에 지치고 시장한 제자들이 투덜거린다.

“너희도 너희가 하는 짓과 똑같은 대접을 받아라.”

“너희는 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인과응보의 시대는 지나갔다. 가자. 아직 밤도 되지 않았고, 너희가 배고파죽지도 않을 것이다. 이 영혼들이 나에 대한 배고픔을 느끼게 되도록 이 작은 희생을 봉헌해라.”
예수께서 격려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밀 이삭들을 뜯어 그것들을 손으로 비빈 다음 밀알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이 배고픔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더 그런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이것들은 맛있습니다.”
베드로가 외친다.

“당신께서는 전혀 안 드시겠습니까? 이것들은 두 가지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밭에 있는 것을 통째로 먹고 싶습니다.”

“자네의 말이 옳아! 이렇게 하면 그자들이 우리에게 빵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밀밭 사이로 다니며 신나게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예수께서는 먼지 나는 길을 혼자 걸어가신다.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가 서로 이야기하며 5, 6미터 뒤에서 걸어오고 있다.

더 좁은 길이 간선도로와 만나는 다른 교차로 하나가 나오는데, 공격적인 한 무리의 바리사이들이 거기 멈춰 서 있다. 그들은 덜 중요한 길 끝에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안식일 예배에 참례하고 돌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그 마을은 넓고 평평하여 마치 굴속에 누워 있는 커다란 짐승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부드럽게 인사하신다.
“평화가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그분의 인사에 대하여 답례하기는커녕 그들 중 한 사람이 거만하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나자렛의 예수요.”

“맞잖아, 내가 당신들에게 그 사람이라고 했잖아.”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 동안에 나타나엘과 시몬이 선생님께로 다가왔고, 다른 사도들은 밭고랑을 따라 길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밀알을 씹고 있고, 손에는 밀알들을 쥐고 있다.

아마 맨 처음에 말한 바리사이가 가장 세력 있는 사람인 모양인데, 그는 그들의 다음 말을 들으시려고 걸음을 멈추신 예수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아, 그럼 당신이 그 유명한 나자렛의 예수로군요? 당신은 왜 이토록 멀리 왔소?”

“여기에도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우리로도 충분하오. 우리는 우리의 영혼들과 우리에게 속한 자들의 영혼들을 구할 줄 아오.”

“만일 그렇다면 당신들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구원하도록 보내심 받았소.”

“보내심 받았다! 보내심 받았다! 누가 그것을 우리에게 증명할 수 있소? 당신의 행위들은 확실히 그렇지 않소.”

“당신은 왜 그렇게 말하오? 당신은 당신의 생명에 관심이 없소?”

“물론! 당신은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주지요. 당신은 전체 사제 계급과 바리사이 계급, 그리고 율법학자 계급과 다른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를 바라지요. 그들은 결코 지금도 당신을 숭배하지 않고, 미래에도 당신을 숭배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오. 결코. 당신은 내 말을 알아듣겠소? 이스라엘의 선택된 사람들인 우리는 결코 당신을 숭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을 거요.”

“나는 당신들에게 나를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오. ‘하느님을 흠숭하시오.’ 왜냐하면…”

“바꿔 말하면 당신을 숭배하란 말이지요? 왜냐하면 당신이 하느님이니까요,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오? 그러나 우리는 갈릴래아의 끔찍한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 라삐들을 잊어버리고 당신을 따르는 유다의 얼간이들도 아니오.”

“여보시오, 화내지 마시오.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고 있지 않소. 나는 내 사명을 완수하고 있소. 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십계명을 되새겨주고 있소. 왜냐하면 그것은 잊혀 왔고, 더 나쁜 것은 그것이 잘못 적용되기 때문이오.

나는 생명을 주기를 원하오. 영원한 생명을 말이오. 나는 누군가의 육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고, 영혼의 죽음은 더더욱 바라지 않소.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느냐고 물은 생명은 당신의 영혼의 생명이오. 왜냐하면 당신의 영혼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당신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나는 당신이 주님을 모욕하고, 주님의 메시아를 업신여김으로써 당신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것을 보니 고통스럽소.”

그 바리사이가 어찌나 흥분하는지 그는 마치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는 자기의 옷을 풀어 헤치고, 가장자리 술 장식을 뜯고, 두건을 벗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외친다.

“들으시오! 들어요! 이자가 나에게, 의인 시몬의 직계 후손이고, 우지엘의 아들인 나 요나탄에게 하는 말을 들으시오. 내가 주님을 모욕한다고!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을 저주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소. 그러나…”

“당신을 제어하는 것은 두려움이오. 당신은 저주할 수도 있어요. 그랬다고 당신이 불타서 잿더미가 되지는 않을 거요. 그러나 당신은 적절한 때에(in due course) 불타게 될 거요. 그때 당신은 나를 부를 거요. 그러나 그때 당신과 나 사이에 붉은 시내, 즉 내 피가 있을 거요.”

“좋소. 그런데 성인이라고 자처하는 당신이 왜 어떤 일들을 허용하오? 스스로 선생이라면서 당신은 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당신의 사도들을 가르치지 않소? 당신의 뒤에 있는 저자들을 보시오!… 저자들은 아직 그들의 손에 죄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소! 저자들은 밀 이삭을 뜯었는데, 오늘은 안식일이오. 저자들은 자기들의 것이 아닌 밀 이삭들을 뜯었소. 그들은 안식일을 범했고, 도둑질했소.”

“이 사람들은 시장했소. 우리는 어제 저녁 도착한 마을에서 숙소와 음식을 청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쫓아냈소. 노파 한 사람만이 자기의 빵 몇 조각과 올리브 한 줌을 주었소. 그 노파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었고, 오로지 축복만을 청했으니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백배로 갚아주시기를. 우리는 일 마을을 걸은 다음에 율법에서 명하는 대로 걸음을 멈추었소. 우리는 개울물을 마셨소. 그 다음에 석양에 우리는 저 집으로 갔소… 그들은 우리를 거절했소. 당신도 보다시피 우리는 율법을 지킬 뜻을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당신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소. 안식일에는 육체노동을 할 수 없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소. 내 친구들과 나는 분개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당신들은 놉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느님께 바쳐진 신성한 빵을 집어서 자기도 먹고 일행에게 먹게 했는지 읽어보지 못했소?(1사무21,1-7) 거룩한 빵은 하느님의 집에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것이며, 영원한 명령에 의하여 사제들만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소. ‘그 빵들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거룩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소. 그런데도 다윗은 그것들을 집어 자기도 먹고, 자기의 일행에게도 주었소. 그가 시장했기 때문이었소.안식일에 거룩한 왕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하느님께 봉헌된 빵을 먹어서는 안 되는 그가 먹었는데도 하느님께서 그 사건 후에도 그를 계속 사랑하셨던 것으로 보아 그 일이 죄로 간주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당신은 우리가 하느님의 땅에서 하느님의 뜻으로 자라 여문 밀 이삭을 잘랐다 하여 우리를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소? 새들의 것이기도 한 밀 이삭들을 하느님의 아들들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 부인한단 말이오?”

“그들은 그 빵덩이들을 청했었소. 그들은 그것들을 청하지 않고 먹지는 않았소. 그것이 다른 점이오. 여하튼 하느님께서 그 행위를 다윗에게 죄로 여기지 않으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오. 하느님께서는 그를 엄하게 치셨소!”

“그것 때문이 아니오. 그것은 그의 간음과 인구조사 때문이었소…”(2사무11-12장)

“오! 그만해두시오! 그것은 불법이고, 그것으로 충분하오. 당신들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오. 가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 땅에 있는 것을 원치 않소. 우리는 당신들이 필요 없소. 우리는 당신들과 아무런 볼일이 없소.”

“우리는 가겠소.”

“그리고 영원히, 그것을 기억하시오. 우지엘의 요나탄이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게 하시오. 가시오!”

“그러지요. 우리는 가겠소.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날 거요. 그때 자기의 판단을 되풀이하고, 세상에서 영원히 나를 제거하기 위하여 나를 보기를 원할 사람은 요나탄일 거요. 그러나 그때 당신에게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일 것이고, ‘그것은 불법이다’라는 그 말은 당신의 일생동안 그리고 그 너머에서까지 당신의 마음속에서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질 거요.

안식일에 성전의 사제들이 안식일 휴식의무를 위반하지만 죄짓지 않는 것처럼, 주님의 종들인 우리도 사람이 우리에게 사랑을 거절하기 때문에 죄짓지 않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을 수 있소.

여기 성전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것 중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자가 있소.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말씀(the Word)의 발판으로 만드셨기 때문이오. 그래서 나는 집어서 주오. 이것은 땅의 거대한 식탁에 놓인 아버지의 밀 이삭과 말씀 둘 다에게 적용되오. 나는 집어서 주오. 선인들과 악인들에게 공히. 나는 자비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자비가 무엇인지 모르오. 만일 당신들이 내가 자비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당신들은 내가 자비만을 원한다는 것도 알 거요. 만일 당신들이 자비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당신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단죄하지 않을 거요. 그러나 당신들은 알지 못하오.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을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내가 당신들을 용서할 것이라는 것, 아니 내가 아버지께 당신들을 용서해주시기를 청할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오. 왜냐하면 나는 자비를 원하지 처벌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알지 못하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소. 그러므로 그것은 당신들이 나를 단죄하는 그 죄보다, 이 무죄한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당신들이 말하는 죄보다 더 큰 죄요. 당신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안녕…”

그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오너라. 지금 가까이에 있는 모래밭에 가서 몸을 눕힐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자. 별들이 우리와 함께 해줄 것이고, 이슬이 우리 몸을 식혀줄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보내주셨던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가난하고 충실한 종들에게도 음식을 마련해주실 것이다.”

그렇게 예수께서는 악의에 불타는 무리를 떠나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가신다. 그 동안에 밤은 그 최초의 보랏빛 그늘들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식용 선인장 울타리를 발견한다. 가시 돋친 잎들의 꼭대기에는 익기 시작한 식용 선인장 열매들이 있다. 시장이 반찬이니 뭐든 맛있다. 그들은 손가락을 찔려가며 가장 잘 익은 것들을 따먹으며 밭들이 끝나고 모래언덕이 시작되는 곳까지 나아간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서 쉬자. 모래가 곱고 따뜻하다. 내일 우리는 아스클론으로 갈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 모두가 피곤에 지쳐서 높은 모래언덕 밑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