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101~p115[163. 카파르나움의 바리사이 엘리의 집에서 식사하시다. 164. 사도들을 선택하시기 전 호젓한 곳을 찾아가시다 165. 열두 사도의 선택]

Skyblue fiat 2025. 3. 7. 08:34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101~p115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63. 카파르나움의 바리사이 엘리의 집에서 식사하시다

1945. 5. 14.

오늘 엘리의 집은 몹시 분주하다. 남녀 하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들 중에는 신바람 난 소년 엘리사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점잔을 빼는 두 사람과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나는 처음 두 사람은 알아본다. 그들은 엘리와 함께 마태오의 집에 갔던 사람들이다. 나는 다른 두 사람은 모르지만, 그들이 사무엘과 요아킴이라고 불리는 것을 듣는다.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과 함께 맨 마지막에 오신다.
서로 정중한 인사들을 나눈 다음에 이런 질문이 들린다.

“당신께서는 이 사람만을 데리고 오셨습니까? 다른 제자들은요?”

“다른 제자들은 시골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저녁에 돌아올 것입니다.”

“오! 유감이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어제 저녁에 저는 당신만을 초대했습니다만, 마음속으로는 당신의 모든 제자들도 그 초대에 포함시켰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저는 그들이 속상해 하지 않을까 염려되는군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과거의 가벼운 의견차이들 때문에 제 집에 오기를 꺼려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허! 허!”
늙은이가 웃는다…

“아! 아닙니다! 내 제자들은 교만한 까다로움이나 구제 불능의 원한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입니다, 물론이에요! 아주 좋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시다.”

그들은 관례적인 정결의식을 행한 다음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 방은 넓은 안뜰 쪽으로 열려 있는데, 안뜰에는 최초의 장미꽃들로 화사하다.

예수께서는 안뜰에서 놀고 있는 어린 엘리사를 쓰다듬어주신다. 그에게 남아 있는 지나간 위험의 흔적이라고는 작은 손에 나 있는 네 개의 붉은 자국들뿐이다. 그는 지나간 공포조차 기억할 수 없지만 예수는 기억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자발성으로 입 맞추고 입맞춤을 받기를 원한다. 그는 예수의 목을 두 팔로 껴안고 머리카락 사이로 예수께 말하는데, 자기는 커서 예수를 따라다니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다음 묻는다.

“당신은 나를 받아줄 거야?”


“나는 누구나 다 받아준다. 착하게 살아라. 그렇다면 너는 나와 함께 다닐 수 있다.”
어린이는 깡충깡충 뛰며 나간다.

그들은 식탁에 앉는다. 그런데 엘리는 예의바르게 처신하려고 예수를 자기의 곁에 앉으시게 하고 유다도 자기의 곁에 앉힌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엘리와 우리야 사이에 앉으시고, 유다는 엘리와 시몬 사이에 앉게 되었다.

식사가 시작된다. 그들의 최초의 대화는 의례적인 것들이지만,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상처들은 쓰라리고 사슬들은 무겁기 때문에, 화제는 로마에 대한 팔레스티나의 예속이라는 영원한 주제로 돌아간다.
나는 그 화제의 선택이 의도적인지 아무런 악한 목적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다섯 명의 바리사이들이 로마의 새 억압들을 독성(瀆聖)이라고 몰아붙이며 예수를 자기들의 토론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우리의 수입을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꼬치꼬치 캐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회당에 모여서 그 점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는 불경스럽게도 회당에 들어오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머지않아 사제들의 집에도 들어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요아킴이 외친다.

“당신께서는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께서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엘리가 묻는다.

예수께서는 그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답하신다.
“이스라엘 사람으로는 그렇고, 한 인간으로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 구별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중인격자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살과 피, 다시 말해 동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 영혼도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사람의 영혼은 그런 침해들로 인하여 고통당합니다만, 살과 피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을 찌르는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가시 말입니까?”

“이해관계입니다. 당신들은 감시하는 귀들을 염려하지 않고 사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위하여 회당에서 만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까봐, 다시 말하면 세리들에게 동전 한 닢도 숨기지 못하게 되어 당신들의 재산에 따른 정확한 액수의 세금을 징수당할까 봐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 이웃들의 자선과 그들에 대한 내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너무 작고 초라하여 세무당국자들이 무시해버리는 나자렛에 있는 내 어머니의 집을 제외하고는, 금도, 밭도, 포도원도, 집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신고한 소득이 허위로 드러나 벌금을 물게 되거나 처벌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셨고, 나도 사람들에게 주는 말씀(the Word)뿐인데, 그것은 참으로 숭고한 것이어서 사람은 그것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당신께서 저희의 입장이라면, 당신께서는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

“글쎄요. 설령 내가 당신들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 해도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어떻게요?”

“나는 거룩한 진실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금들처럼 그토록 인간적인 것들에 적용될 때에도 항상 숭고한 성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우리를 착취할까요? 그런데 당신께서는 저희의 소유재산이 많아서 저희가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거라는 것을 고려하고 계시지 않는군요!”

“당신이 방금 말한 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당신들은 그 비율에 따라 많이 내야 합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만,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비율보다 많은 액수의 세금이 부과되도록 그토록 부정하게 행동합니까? 우리는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세금들이 있습니까? 불공평한 우리의 세금들 말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반면, 그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굶주려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절망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짐을 우리가 짊어지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가난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야,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로마가 우리를 이렇게 압제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죄지었고, 증오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미워합니다. 그 이유는 정의가 없기 때문인데, 적은 그 상황을 이용하여 우리를 예속시켜 왔습니다.”

“당신께서는 다양한 이유들을 언급하셨는데… 다른 이유들이 더 있습니까?”

“나는 종교에 봉헌된 장소의 성격을 변질시키고 인간적인 것들을 위한 확실한 피난처로 만듦으로써 진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를 비난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자신들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당신들은 라삐들이십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이야말로 봉기하고, 반란을 일으켜 침략자를 벌하고, 우리의 왕국을 회복시킬 때라고 생각합니다.”

“옳거니, 옳거니! 시몬, 자네 말이 옳으이. 그러나 메시아께서 여기 계시니 이분께서 그것을 하셔야 하네.”
엘리가 대답한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예수. 메시아 예수는 지금 당장은 오로지 선(the Goodness)이실 뿐입니다. 이분께서는 반란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권고하십니다. 저희는…”

“시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열왕기(1사무15,10 이하)를 기억하세요. 사울은 길갈에 있었고 필리스티아 사람들은 믹마스에 있었는데, 백성들은 무서워 흩어졌고, 예언자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종에 앞서 자기 자신이 번제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사무엘이 도착하여 경솔한 사울에게 했던 대답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바보처럼 행동했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영원히 세워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주권은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시의적절하지 않고 교만한 행동은 왕에게도, 백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를 아시지만,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방법을 아시지만,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일들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거룩한 행동을 통하여 그분의 도움을 얻기에 합당하게 되시오.

내 왕국은 반란과 흉포함의 왕국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왕국은 세워질 것입니다. 그 나라는 소수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영에 따라 보잘것없는 내 외양으로 인하여 오류에 빠지지 않고, 내 안에서 구세주를 보고 그리로 올 사람들은 복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왕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로부터 와서 자기의 왕국을 전 인류로 확장할 왕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생들인 당신들은 내 말과 나를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인간의 왕국이라도 그것이 제아무리 강성하다 해도 보편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내 왕국이 보편적이고, 영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내 왕국의 진실과 영적 성격(spirituality)에 대하여 당신들을 비추어주기를.

나는 당신들을 떠나겠습니다만, 엘리 선생에게 하나의 청을 드리고자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돈주머니입니다. 요나의 시몬의 장막에는 사방에서 온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가서 그들에게 사랑의 기부금을 줍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잠시만 더 머무르십시오!”
바리사이들이 간청한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육체와 마음으로 고통당하며 위로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 나는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고 내가 떠나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저는… 저는 늙어서 피곤합니다. 부디 제 이름으로 가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시몬의 유다와 함께 계시는데, 저희는 그를 잘 압니다. 당신께서 직접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유다와 함께 나오신다. 그들이 광장에 나오자마자 유다가 말한다.

“늙은 독사! 그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잊어버려라! 아니 차라리 그가 너를 칭찬하려고 했다고 생각해라.”

“선생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사람들의 입은 선을 행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법이 없습니다. 제 말씀은 진실로 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혐오하고, 그들의 저주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수없이 괴롭혔습니다. 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착해라, 유다야. 착해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시게 해라.”
 


 

164. 사도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 속의 호젓한 곳을 찾아가시다

1945. 5. 15.

베드로와 요한의 배들은 고요한 호수 위를 항행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좇아오거나 따라잡으려는 크고 작은 배가 어찌나 많은지 티베리아스 연안의 모든 배가 따라오는 것 같은데, 그것들은 두 척의 배 뒤로 긴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부탁들, 간청들, 외침들, 청원들이 푸른 파도들 너머로 들려온다.

예수께서는 약속하시고, 대답하시고, 축복하신다. 그분의 배에는 야고보와 유다의 어머니가 타고 계신다. 다른 배에는 마리아 살로메가 자기의 아들 요한, 수산나와 함께 타고 있다.

“예, 나는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착하시오. 내 말들을 기억하고, 내가 나중에 여러분에게 들려줄 말과 연결시키시오. 나는 오래 떠나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이 되지 마시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왔습니다. 착하시오! 여러분 스스로를 해치지 마시오. 예,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물론 나는 여러분의 눈물을 기억할 것이고, 여러분은 위로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강복하고 약속하시는 동안에 배가 전진하여 호숫가에 도착한다. 여기는 티베리아스가 아니라 아주 작은 마을이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초라한 집들 몇 채가 있을 뿐이다. 예수와 제자들은 하선하고, 배들은 조수들과 제베대오가 조종하여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다른 배들도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 배들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하선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이사악과 그가 보호하는 두 사람, 요셉과 티모네오가 있다. 나는 청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초라한 행색의 몇몇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마을을 떠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돈을 나누어주시고, 계속 나아가 간선도로에 이르신다. 그분께서는 거기서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신다.

“자, 이제 헤어지자. 어머니, 당신께서는 마리아 아주머니, 살로메와 함께 나자렛으로 가십시오. 수산나는 카나로 돌아가도 된다. 나는 곧 돌아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분의 어머니께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시며 따로 특별한 인사를 하신다. 그리고 마리아께서 강복받기 위하여 무릎을 꿇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시자, 예수께서는 지극히 다정하게 미소 지으신다. 여자들은 사라의 알패오, 시몬과 함께 자기들의 마을로 돌아간다.

예수께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여러분을 떠나는데, 여러분을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잠시 여러분을 떠나 내 제자들과 함께 저기 보이는 계곡으로 가서 피정하려고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은 이 평야에 남아 있고,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시오.
나는 큰일들을 목전에 두고 있어 기도하기 위하여 피정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대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혼으로 나와 결합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내 자녀들이여,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이사악아, 너는 네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내 어린 목자야, 나는 너에게 강복한다.”

예수께서는 비쩍 마른 이사악에게 미소 지으신다. 지금 그는 그의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목자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호수로부터 등을 돌리시고, 호수의 서쪽으로 거의 평행하게 뻗어 있는 두 야산 사이의 골짜기를 향하여 결연하게 발길을 돌리신다. 작지만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급류가 울퉁불퉁한 바위산과 피요르드를 닮은 깎아지른 산 사이로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 내려온다.

그 급류 위에는 바위들 틈에서 사방으로 제멋대로 자란 볼품없는 나무들이 있는 황량한 산이 있다. 아주 좁고 가파른 오솔길이 더 울퉁불퉁한 산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예수께서는 그 길을 택하신다.

제자들은 힘겹게 한 줄로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분을 뒤따른다. 예수께서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산등성이에 흠집처럼 생긴, 오솔길이 약간 넓어진 곳에서 숨을 돌리게 하시려고 걸음을 멈추실 때에야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의 시선은 말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가고 계실까?’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시 험한 계곡으로 올라가시기 시작하자 더 낙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골짜기에는 동굴과 암벽이 갈라져 있는 틈새와 바위들이 많아서 걷기가 힘든데다가 검은딸기나무와 가시 돋친 관목들이 사방에서 옷을 잡아당기고 할퀴고 비틀거리게 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힌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젊은 제자들도 속상해 한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여기서 기도하며 머물 것이다. 큰일에 대하여 너희를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길들과 마을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적 없는 곳에 있기를 원했다.

여기 있는 동굴들은 과거에도 이미 사람들에게 유용했었는데, 너희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이곳은 땅은 건조하지만, 물은 시원하고 풍부하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머무를 동안 먹을 수 있는 충분한 빵과 음식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나와 함께 광야에 갔었던 사람들은 내가 거기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안다.

이곳은 거기에 비해 대궐이다. 그리고 지금은 온화한 계절이라 살을 에는 추위나 작열하는 태양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기 머무르는 동안에 기쁜 마음으로 지내라.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모두 함께, 그리고 우리끼리만 있게 되는 일은 결코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 피정이 너희를 결합시켜 이제는 너희가 열두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조직체가 되게 해야 한다.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 너희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느냐? 너희가 짊어지고 있는 짐은 저 바위에 내려놓고, 너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다른 짐인 너희의 인간성은 저 골짜기 밑으로 던져버려라.

나는 너희 영혼들에게 말하고, 너희의 영혼들을 기르고, 너희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너희를 이리로 데려왔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약 일 년 동안 아주 많이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일 내가 말들로 너희를 바꿔놓아야 한다면, 십 년…, 백 년 너희를 데리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래도 너희는 여전히 불완전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쓸 때는 지금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사용하기 위하여 너희를 형성(form)해야만 한다. 나는 강한 약이고 큰 무기인 기도를 사용할 것이다. 나는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해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너희가 스스로 기도하기를 원한다. 나는 아직 너희에게 내 기도를 가르쳐주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겠다. 그것은 아들들의 아버지와의, 영혼들의 그 영(the Spirit)과의 열려 있고, 따뜻하고, 믿음직하고, 조용하고, 솔직한 대화이다. 기도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고백이고,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고, 회개이며, 우리 자신과 하느님께 대한 약속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간청이며, 아버지의 발 앞에 모든 것을 가져다놓는 것이다.

기도의 거인이 아닌 한 소란하고 산만해지기 쉬운 환경에서는 기도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그런 거인들이라 해도 그들의 기도시간에 세상의 소음과의 충돌로 고통당한다. 그런데 너희는 거인들이 아니라 난쟁이들이다. 너희는 영혼에 있어 젖먹이들에 불과하다. 너희는 너희 영혼들 안에서 결핍되어 있다. 너희는 여기서 영적으로 철드는 나이에 이를 것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올 것이다.

우리는 아침, 정오, 저녁에 함께 모여 이스라엘의 옛 말씀들로 함께 기도드리고, 식사한다. 그 다음에 너희 각자는 자기의 동굴로 돌아가 하느님과 자기의 영혼 앞에, 내가 너희의 사명과 너희의 능력에 대하여 말해준 것 앞에 있어라. 스스로를 저울질해보고, 자기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결심해라.

나는 마지막에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너희는 권태나 인간적인 연약함 없이 가능한 한 완전해야 한다. 그때 너희는 이미 요나의 시몬, 시몬의 유다가 아니고, 안드레아나 요한, 마태오나 토마스도 아닐 것이다. 너희는 내 성직자들일 것이다.

가거라. 각기 혼자서. 나는 저 동굴에 있을 터인데, 항상 거기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없으면 오지 마라. 너희는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일 년 전에 우리는 서로를 막 알아가려 할 때였고, 이년 후에 우리는 이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희에게도 불행이고, 나에게도 불행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
유다와 요한은 식료품들을 저기 내 동굴에 가져다두어라. 그것들이 떨어지지 않아야 하니, 내가 그것들을 나누어주겠다.”

“그것들은 충분치 않은데요!…”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죽지 않을 만큼은 있다. 가득 차 있는 위장은 영혼을 둔하게 한다. 나는 너희를 고양시키기를 원하지, 둔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165. 열두 사도의 선택

1945. 5. 16.

동이 터오고 있다. 부드러운 빛이 산들을 흰 빛으로 물들이고 거친 산등성이를 부드럽게 보이게 한다. 밑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급류의 소리만이 들릴 뿐인데, 그 소리는 동굴이 많은 산들에 메아리쳐서 이상한 소음을 낸다. 제자들이 잠시 쉬었던 곳에는 나뭇잎들과 초목 사이에서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찍 잠을 깬 첫 번째 새들과 자기들의 둥지를 찾아가는 마지막 밤새들의 소리다.

키가 작은 블랙베리 덤불을 갉아먹고 있던 한 떼의 산토끼들이 돌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쳤다가 귀를 쫑긋 세운 채 사방에서 들리는 가장 작은 소리라도 들어보다가,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것을 알고는 조심스럽게 돌아와 다시 블랙베리 덤불로 간다. 모든 잎과 모든 돌이 이슬에 젖어 있고, 숲 속에서는 이끼와 박하와 꽃 박하의 강한 향기가 풍겨온다.

울새 한 마리가 커다란 돌이 돌출하여 지붕처럼 된 한 동굴의 가장자리에 내려와 가늘디가는 다리로 꼿꼿이 서서 여차하면 날아갈 태세를 취한 채 작은 머리를 둘려 동굴 안을 들여다보고 땅을 내려다보고,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땅에 있는 빵부스러기를 보고 탐욕스럽게 짹짹거린다.

그러나 그놈이 날아 내려올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커다란 티티새 한 마리가 울새보다 먼저 내려가서 갈지자로 깡충깡충 뛰는데, 그놈은 안경만 쓰면 영락없이 늙은 공증인의 옆모습을 닮은 장난꾸러기처럼 보여 포복절도할 노릇이다. 그러자 울새도 내려가서 그 대담한 아저씨의 뒤를 따라다닌다.

티티새는 마치 고고학자가 조사하듯 먹이를 찾아서 노란 부리로 이따금씩 축축한 땅바닥을 쿡쿡 쪼아보다가 진짜 개구쟁이 소년 같은 휘파람 소리를 내고는 날아간다. 울새는 빵부스러기를 잔뜩 주워 먹은 다음, 티티새가 조용한 굴속으로 자신만만하게 들어가서 치즈껍질을 하나 물고 나와 돌에 대고 치고 또 쳐서 성찬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워한다. 티티새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서 둘러보고는 그 이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비웃는 듯한 휘파람을 한 번 불고 날아가, 아침의 파란 하늘 아래 떡갈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노래를 끝낸다.

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울새도 날아가서… 흔들거리며 매달려 있는 작은 나뭇가지에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동굴 입구로 나와 많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아주 비슷한 소리가 나는 휘파람으로 부드럽게 새들을 부르시며 빵조각을 부스러뜨려 뿌리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몸을 움직여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셔서 그분의 작은 친구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시려고 바위에 기대어 서계신다.

새들이 재빨리 내려오는데, 가장 먼저 울새가 내려오고, 그 다음에는 다양한 종류의 다른 새들이 내려온다. 예수의 부동자세에 안심한데다 그분의 모습에 이끌려 잠시 후에는 새들이 그분에게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까지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나는 아무리 의심 많은 동물들도 적이 아니라 친구라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온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데, 내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도 그렇기 때문이다.
배부른 울새가 예수께서 기대어 계시는 바위 위로 날아가 참으아리의 작은 가지에 매달려서 그분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는데, 그놈은 그분의 금발머리나 어깨에 내려앉고 싶은 갈망으로 그러는 것 같다.

새들의 식사가 끝난다. 떠오르는 해가 산봉우리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그 다음에는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데, 골짜기는 아직 새벽의 희미한 빛 속에 잠겨 있다. 새들은 배불리 먹고 만족해서 해를 향하여 날아가며 목청껏 노래 부른다.

“그럼 지금은 이 다른 아들들을 깨우러 가자.”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다음 걸어 내려오시는데, 그분의 동굴이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동굴마다 들어가셔서 자고 있는 열두 제자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신다.

시몬, 바르톨로메오, 필립보, 야고보, 안드레아는 즉시 대답한다. 마태오, 베드로, 토마스는 대답하는 데 시간이 약간 더 걸린다. 그리고 유다 타대오는 이미 준비를 갖추고 완전히 깨어 있다가 예수께서 굴 입구에 나타나시는 것을 보자마자 그분께 나아간다.

그분의 다른 사촌과 가리옷 사람과 요한은 아주 깊이 잠들어 있다. 나뭇가지와 잎을 깔고 자고 있는 그들은 예수께서 흔들어 깨우시자 겨우 잠이 깬다.
맨 마지막으로 불린 요한은 깊이 잠들어 누가 그를 부르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는 잠이 덜 깬 몽롱함 속에서 중얼거린다.

“예, 어머니, 저는 즉시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숲 속에서 주워 온 잎으로 만들어진 침대에 앉으셔서 상체를 숙여 요한의 뺨에 입 맞추신다. 그는 눈을 떠 예수께서 와 계시는 것을 보자 어안이 벙벙하여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제가 여기 있습니다.”

“아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 모두를 깨웠던 것처럼 너도 깨웠다. 그런데 너는 그것이 네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들이 하는 것처럼 너에게 입 맞추었다.”

요한은 자기의 튜닉과 겉옷을 이불 대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속옷 바람이다. 그는 예수의 목에 매달려 자기의 머리를 예수의 어깨와 뺨 사이에 파묻으며 말한다.

“오, 당신께서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당신을 위하여 제 어머니를 떠났지만, 제 어머니를 위하여 당신을 떠나지는 않겠습니다! 그분은 저를 땅 위에 낳아주셨지만, 당신께서는 저를 하늘에게 낳아주고 계십니다. 오! 저는 압니다!”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을 더 아느냐?”

“주님께서 이 동굴에서 저에게 말씀해주신 것을요. 보세요, 저는 결코 당신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동료들은 그것이 무관심과 교만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진실을 아신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사람이 되신(incarnate)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지 않고, 가장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 그 본성, 그 정수, 그 참다운 정수인 불(the Fire)의 품안에 계시는 당신께로 갔습니다.

오! 그러나 저는 저를 빛으로 가득 채웠던 이 어둡고 음침한 굴속, 제 존재 깊은 곳으로 내려와 저를 감미로운 순교로 불태운 무형의 불로 제가 태워진 이 차가운 굴속, 고요하지만 천상의 진리를 저에게 노래해준 이 굴속에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하느님이신 형언할 수 없는 신비의 제2위이신 당신께로 갔는데, 하느님께서 저를 그분께로 끌어당기셨고 제가 항상 그분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분을 관통했습니다. 그리고 제 모든 갈망, 제 모든 눈물, 제 모든 청원을 하느님의 말씀이신 당신의 숭고한 품에 쏟아 부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서 들었던 많은 말씀들 가운데 아들 하느님이신 당신, 아버지처럼 하느님이신 당신, 성령처럼 하느님이신 당신, 삼위일체의 중심이신 당신…께서 여기서 말씀해주셨던 것만큼 포괄적인 말씀은 결코 없었습니다. 오! 아마 제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아니시라면 사랑, 하느님의 사랑이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천주성은 더 이상 삼위(Trine)가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께 가장 어울리는 속성 즉 하느님의 사랑이 결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저는 이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수문에 막혀 소용돌이치면서도 흐르지 못하는 물과도 같습니다… 제가 당신을 이해한 순간부터 제 마음 속의 동요가 얼마나 격렬하고 숭고한지 저는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만 같습니다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저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다정하신 저의 하느님, 저를 이 사랑으로 죽게 해주십시오!”

요한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자기의 사랑에 불타올라 숨을 헐떡이며, 자기의 열정으로 소진된 것처럼 예수의 가슴에 쓰러진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그분의 사랑으로 불타올라 그를 쓰다듬으신다.

요한이 평온을 되찾아 깊은 겸손함으로 간청한다.

“제가 당신께 말씀드렸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이 며칠 동안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분명히 그들도 하느님과 함께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저의 비밀 위에 돌 같은 침묵을 덮어두십시오.”

“염려하지 마라, 요한아. 아무도 사랑(the Love)과의 네 결혼식을 모를 것이다. 옷을 입어라. 가자. 우리는 떠나야 한다.”

예수께서 오솔길로 나오시자 다른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모여 있다. 그들의 얼굴은 더 존경스럽고 더 침착하다. 연장자들은 성조들처럼 보이고, 젊은이들은 전보다 더 성숙하고 더 의젓한데, 전에는 그것들이 젊음에 가려졌던 것들이다. 가리옷 사람은 눈물자국이 있는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띠고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그를 쓰다듬어주신다.

베드로는… 침묵한다. 그런데 이 침묵은 참으로 유별나서 다른 어떤 변화보다 놀랍다. 그는 예수를 주의 깊게 쳐다보는데, 벗겨진 그의 이마는 더 넓어 보이고, 전에는 온유한 총명함만으로 가득했던 그의 눈이 더 엄해진 것 같은 새로운 품위를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분 곁으로 부르셔서 가까이 있게 하신 채로 요한을 기다리시는데, 마침내 요한이 나온다. 나는 그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는지, 더 상기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서 불꽃이 빛나고 있는데, 그것이 얼굴색을 변하게 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것을 알아볼 수는 있다. 그들 모두가 그를 바라본다.

“요한아, 여기 내 곁으로 오너라. 안드레아 너도. 제베대오의 야고보 너도. 그리고 시몬 너, 바르톨로메오, 필립보와 내 사촌들인 너희, 그리고 마태오, 시몬의 유다는 여기 내 앞으로 오너라. 앉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할 것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내면세계에 몰두한 채 착한 어린이들처럼 조용히 앉아 일찍이 없었던 주의를 예수께 기울이고 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느냐? 너희 모두가 알고 있다. 너희의 영혼이 너희의 정신(mind)에게 말해주었다. 이 며칠 동안 여왕이었던 너희의 영혼이 너희의 생각에게 두 가지 큰 성덕인 겸손과 침묵을 가르쳐주었다. 침묵은 사랑의 딸들인 겸손과 조심성(prudence)의 아들이다.

불과 여드레 전이었다면, 너희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고, 경쟁자를 능가하기를 원하는 어린이들처럼 너희의 영특함과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자랑하러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너희는 침묵한다. 너희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자라 너희의 그런 선언이 어쩌면 하느님의 도우심을 덜 받았을지도 모르는 너희의 동료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또한 사춘기의 소녀들과도 같다. 영혼과 하느님의 신비한 혼인을 알려준 변화에 관한 거룩한 유보(holy reserve)가 너희 안에 태어난 것이다. 이 동굴들이 첫날에는 춥고 적대적이고 혐오스럽게 여겨졌지만… 지금 너희는 그것들을 밝고 향기로운 신방처럼 본다.

너희는 이 동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전에도 너희는 하느님을 알았지만, 둘을 하나로 합일시키는 친밀함 안에서 그분을 알지는 못했었다. 너희 중에는 여러 해 동안 결혼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있고, 여자들과 실망스러운 관계만을 맺었던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순결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순결한 사람들도 이제는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결혼한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안다.

아니다. 나는 육욕을 모르는 사람만큼 완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순결한 사람들에게 완전히 드러내시는데, 그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깨끗한 분이신 그분은 음란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서 그분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시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께서는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 대하여 그 사람을 보상해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만일 내가 아버지의 일을 완수해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너희를 나와 함께 외따로 떨어져 있게 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과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로 인하여 너희를 혼동, 결함, 실패, 느슨함, 재발이 없는 위대한 성인들로 빨리 만들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가야 한다. 그리고 너희도 가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선생들과 구속자들을 필요로 하는, 더럽혀지고 더럽히는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애정들은 하느님의 단 한 번의 미소보다 무가치하기 때문에, 나는 너희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너희가 그분을 알기를 바랐다. 나는 너희에게 세상이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했는데, 그 이유는 너희가 더 좋은 것을 갈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너희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갈망하고 있다. 오! 나는 너희를 현재의 이 순간의 갈망에 고정시켜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가야 한다. 거룩한 사랑이 나를 세상에 보낸 것처럼 나도 너희를 거룩한 사랑을 위하여 내 이름으로 세상에 보낸다.

나는 너희에게 간청한다! 진주를 보석함에 보관하는 것처럼 너희는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치료하고, 고양시키고, 보수하고, 하느님과 결합시킨 이 며칠간의 보물들을 너희 마음속에 잘 간직해라. 그리고 성조들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기념하여 세운 증거의 돌들처럼 그 귀중한 추억들을 너희 마음속에 간직하고 보존해라.

오늘부터 너희는 내 소중한 제자들이 아니라 사도들이고, 내 교회의 우두머리들이다. 세기들을 통하여 교회의 모든 계급들(hierachies)이 너희로부터 내려갈 것이고, 그들은 너희를 삼중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 안에서 너희의 하느님을 선생님으로 모시는 선생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내가 너희를 택한 이유는 너희가 가장 자격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지금은 알 필요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 제자들인 목자들 대신 너희를 택했다. 내가 왜 그렇게 했느냐고?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는 갈릴래아인들과 유다인들, 유식한 사람들과 무식한 사람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때문인데, 내가 어떤 한 부류만을 선택했다는 말을 세상이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해야 할 모든 일에 너희만으로는 충분치 못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다.

너희 모두가 역대기의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의를 환기시켜주겠다. 역대기 하권 29장에 의하면, 유다의 왕 히즈키야는 성전을 정화했고, 성전이 정화된 다음에 자기 왕국과 성전과 유다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물을 바치게 했다. 그 다음부터 개인적인 제물이 바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물을 잡는 데 있어 사제들의 수가 모자랐기 때문에 사제들보다 더 짧은 의식으로 축성되는 레위지파 사람들이 소환되었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너희는 영원한 대사제인 내가 오랫동안 부지런히 준비한 사제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 하느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봉헌의 희생제사보다 훨씬 광범위한 일에 있어 너희만으로는 충분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제자인 채로 남아 있을 제자들을 결합시켜주겠다. 산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 이미 더 향상된 제자들,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 그리고 나중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게 될 제자들 말이다.

사명이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같은 임무가 주어질 것이나, 세상의 눈에는 그들의 직책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눈에는 그것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도들과 동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며 거룩하게 사는 무명의 제자가 사도라는 이름만을 가지고 인간적인 목적들을 위하여 사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알려진 사도보다 더 위대할 것이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임무는 여전히 히즈키야 왕 시대의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임무와 같을 것이다. 즉 예배의식들을 거행하고, 우상숭배들을 타파하고, 마음들과 장소들을 정화시키고,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너희의 직무보다 더 거룩한 직무는 없고, 너희의 품위보다 더 높은 품위는 없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너희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너희 자신을 살펴보라’고 말한 것이다.

타락하는 사도는 불행하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끌고 가고,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신자들을 끌고 간다. 그것은 마치 눈사태처럼, 또는 같은 지점에 돌들을 던짐으로 인하여 호수에 생기는 동심원처럼 점점 더 커지는 파멸이다.

너희 모두가 완전할 것이냐?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영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다. 세상은 너희 영혼을 질식시키려고 그 촉수들을 던질 것이다. 그것은 성인들의 마음에서 빛을 꺼버리는 세상의 승리일 것이다.

세상은 열에 다섯은 사탄의 자녀들이고, 열에 셋은 사탄의 종들이고, 나머지 열에 둘은 하느님께 무관심하다. 너희는 너희 자신으로부터, 너희 자신들에 맞서, 세상, 육체, 사탄에게 맞서 너희 자신들을 지켜라.

무엇보다 너희 자신들로부터 너희 자신들을 지켜라. 내 자녀들아, 교만, 육욕, 이중성(duplicity), 미온적인 태도, 영적 졸음, 탐욕을 감시해라. 너희 열등한 자아(inferior ego)가 자기에게 가혹하다고 주장하면서 신음할 때는 이렇게 말해서 그 입을 다물게 해라. ‘지금 내가 너에게 주는 한 순간의 역경 대신 나는 네가 스밧 달 그믐께에 동굴 속에서 즐긴 황홀한 향연을 너에게 마련해줄 터인데,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

가자.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만나자. 그 다음에 나는 티베리아스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있겠다. 그 동안에 너희는 군중에게 나에 대하여 말하며 티베리아스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에 있는 산 밑에서 나를 기다려라. 나는 그리로 가서 산에 올라가 설교하겠다. 너희의 배낭들과 겉옷들을 집어라. 피정은 끝났고, 선택은 행해졌다.”
 

1945. 5. 17.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건강이 좋지 않으니 나는 너를 평화 안에 남겨두겠다. 나는 다만 빠뜨려진 한 문장이나 잘못 받아 적힌 한 단어가 어떻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지를 너에게 지적하기만을 원한다. 내 기록자인 네가 생존해 있으니 너는 즉시 정정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20세기들이라는 기간이 복음, 사도적 복음(the apostolic Gospel)에서 교리에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부분들을 제거했는지를 숙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이것은 ―만일 우리가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는 그것이 여전히 혼란의 영(Disorder)의 작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고, 더 많은 것들이 혼란의 영의 자녀들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고 너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쉽게 오류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작은 요한아, 오늘 침착해라. 너는 상한 꽃이다. 내가 나중에 와서 네 줄기를 고쳐주마. 나는 오늘 네 상처의 눈물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너와 함께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