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115~p125[166. 열성당원 시몬과 요한의 첫 번째 설교]

Skyblue fiat 2025. 3. 8. 16:08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115~p125


166. 열성당원 시몬과 요한의 첫 번째 설교

1945. 5. 18.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산길을 반쯤 내려오셨을 때 많은 제자들과, 점차 제자들과 합류한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신다. 그들은 기적의 필요에 따라, 또는 예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여,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라서나 자기들의 영혼의 본능에 따라 이리로 온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수호천사들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에게로 인도해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한낱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마귀의 영이 그리스도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순간에 원수들을 재빠르고 간교한 집요함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게 데려오는 것이 받아들여질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천사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영혼들을 어느 모로도 마귀들보다 열등하지 않게 그리스도께로 데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여질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을 기다린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과 그분의 말씀의 도움을 아낌없이 주신다.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는지! 산자락들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의 수만큼이나 기적들이 많이 일어난다.

불붙은 짚으로 만들어진 헛간에서 끔찍하게 화상 입은 채 구조된 소년의 기적처럼 대단한 기적들도 있다. 그 아이는 고통스럽게 울며 린넨 천으로 덮여 들것에 실려 왔었는데, 심한 화상을 입은 그 아이의 몸은 보기에도 처참했었다. 그 아이는 절명하기 직전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아이 위에 입김을 불어 고쳐주시고, 그의 화상의 흔적도 말끔히 없어지게 해주셨다.

소년이 완전히 발가벗은 채 벌떡 일어나 기뻐하며 자기의 어머니에게 뛰어가자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화상 자국이 전혀 없이 말끔해진 아이의 몸을 쓰다듬고, 화상을 입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밝고 기쁨으로 반짝이는 두 눈에 입 맞춘다.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마치 불꽃이 그것을 완전히 태워버리지는 않고 면도날로 싹둑 자르기라도 한 것처럼 짧다. 발작적인 천식으로 고생하던 작은 노인에게 일어난 기적은 작은 기적이다. 그 노인이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이 어린 고아 손자들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데 내 목구멍 속에서 숨 막히게 하는 이 병 때문에 들에서 일할 수가 없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의 말씀들이 일으키는 분명한 기적이 있다.

“여러분 중에는 그의 영혼이 울고 있지만, 감히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오. 내가 자비라는 것을 당신이 알 수 있도록 내 모든 연민을 당신에게 베풀어주오.’ 다만 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관대해지시오’라는 것이오. 하느님께 너그러우시오. 과거와의 모든 유대들을 끊어버리시오. 당신은 하느님을 느끼고 있으니 자유로운 마음과 온전한 사랑을 가지고 당신이 느끼는 하느님께로 오시오.”

나는 예수께서 군중 가운데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은 내 사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수만큼의 그리스도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을 그렇게 되도록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요청하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에 필요한 것을 나에게서 배웠습니다…”

사도들은 완전히 겁에 질려 예수를 쳐다보지만, 그분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신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에 별빛과 이슬의 상쾌함을 주어 여러분이 어둠 속에서 번민하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와서 여러분에게 초자연적인 힘과 기쁨으로 강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완전한 빛과 위로와 모든 지혜를 주겠습니다.
내 자녀들이여,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여러분보다 더 불행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내 사도들을 여러분에게 남겨둡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가장 다정하고 믿음직한 유모들에게 맡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한 손을 흔드시고, 그들을 축복하시고, 군중을 헤치면서 떠나시는데, 군중은 그분께서 떠나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때 그분께서는 마지막 기적을 일으키신다. 그것은 손자가 모시고 온 반신불수의 작은 할머니의 기적이다. 그 노파는 방금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던 자기의 오른팔을 기쁘게 휘저으면서 외친다.

“그분께서 지나가시며 그분의 겉옷으로 나를 스치기만 하셨는데도, 나는 나았어요! 나는 늙었기 때문에… 그분께 그것을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분께서는 내 은밀한 소원에도 연민을 느끼셨어요. 그분의 겉옷의 술이 아무 쓸모없는 내 팔을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그분께서는 나를 고쳐주셨어요!
오! 우리 다윗 성왕은 얼마나 훌륭한 후손을 두셨는지요! 그분의 메시아께 영광입니다! 자! 보세요! 보시라고요! 내 다리도 팔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오! 나는 마치 내가 스무 살 난 사람처럼 느껴요!”

자신의 행복을 목청껏 외치고 있는 작은 노파를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예수께서는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빠져나가실 수 있다. 사도들은 그분을 뒤따른다.
그들이 거의 평야 직전까지 내려가 호수 쪽으로 뻗쳐 있는 히스 덤불 가운데 호젓한 곳에 왔을 때 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강복한다! 너희의 일로 돌아가서 내가 말한 대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일해라.”

그때까지 조용하던 베드로가 폭발한다.
“그런데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당신께서는 왜 저희가 영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당신께서 저희에게 많은 것들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희는, 아니 적어도 저는 돌대가리여서… 당신께서 저에게 주셨던 모든 것 중에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정말로 거의 없습니다.
저는 마치 식사한 다음에 여전히 그 음식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자기의 위에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도 같습니다. 나머지는 더 이상 거기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솔직하게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럼 그 나머지 음식은 어디 있느냐?”

“글쎄요… 저는 모릅니다. 저는 제가 부드러운 요리를 먹으면 한 시간 후에 제 위가 비어 있는 것을 느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소화가 잘 안 되는 양고추 냉이나 기름에 튀긴 렌틸 콩을 먹으면, 에! 그것들을 소화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건 그렇다. 그러나 너는 너를 더 배부르게 해주는 것 같은 양고추 냉이와 렌틸 콩 따위가 너에게 자양분을 가장 적게 남긴다고 확신해도 좋다. 그것은 몸에 별로 유익하지 않은 음식물이다. 반면 네가 한 시간 후에는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는 연한 음식들은 더 이상 네 위 속에 있지 않고, 네 핏속에 있다. 음식이 소화되면 그것은 위에 남아 있지 않고 그 즙이 핏속에 있게 되는데, 그것이 더 유익한 것이다.

지금 너와 네 동료들은 내가 너희에게 말해준 것들 중에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거나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너희는 너희 자신의 기질에 가장 잘 맞는 대목들을 기억할 것이다. 과격한 사람들은 격렬한 대목들을, 명상적인 사람들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정한 대목들을 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믿어라. 모든 것은 너희 안에 있다. 비록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해도 말이다. 너희는 그것을 흡수했다. 너희의 생각들이 너희의 필요에 따라 연한 색이나 짙은 색을 띤 실을 풀어주는 오색실처럼 풀어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알고 있으며, 만일 내가 너희가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결코 너희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라.
잘 있어라, 베드로야. 기운을 내라! 웃어라! 믿음을 가져라! 무소부재하시는 지혜(Omnipresent Wisdom)에 대한 좋은 믿음의 행위를 실천해라. 모두들 잘 있어라. 주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빨리 그들을 떠나가는데, 사도들은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들은 것으로 인하여 여전히 놀라워하며 근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순종해야 해.”
토마스가 말한다.

“그래… 물론이야… 오! 불쌍한 나여! 난 뛰어가서 그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야.”
베드로가 불평한다.

“안 돼. 그러지 마. 순종하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그분께서 아직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만일 우리가 실수하면 그분께서 조언해주실 수 있을 때에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이고, 거룩한 조심성에 따르는 것이기도 해. 우린 그분을 도와드려야 해.”
열성당원이 제안한다.

“맞아. 예수께서는 상당히 피곤하셔.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그분의 피로를 약간이라도 덜어드려야 해. 배낭들을 짊어지고, 침대들과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대로 그분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데 있어 그분을 도와드려야 해.”
바르톨로메오가 확인한다.

“자네는 유식하니까 말을 잘하네만, 나는… 나는 거의 일자무식이니 원…”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신음한다.

“오! 주님! 저 위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리로 오고 있어! 우린 이제 어떻게 하지?”
안드레아가 부르짖는다.

그러자 마태오가 말한다.
“가장 비참한 내가 자네들에게 충고하는 것을 용서해주게. 하지만 불평한다고 해결될 리 없는 것들에 대하여 여기 서서 불평만을 늘어놓느니 차라리 주님께 기도드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자, 유다, 자네는 성경을 아주 잘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하여 지혜를 얻기 위한 솔로몬의 기도를 드리게. 빨리! 저 사람들이 여기 도착하기 전에.”

그러자 타대오가 아름다운 바리톤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 자비의 주님, 당신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여… 운운”에서부터 “오, 주님, 처음부터 당신을 기쁘시게 했던 모든 사람들이 지혜에 의하여 구원받았습니다.” 까지.

그가 기도를 마치자마자 사람들이 도착하여 사도들을 둘러싸고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그분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지 등등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그 중 대답하기가 좀 더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다리가 아니라 영혼으로 그분께서 알려주시는 길을 따라 그분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들은 이 질문에 당황한다.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데, 가리옷 사람이 대답한다.
“완전을 따르면 됩니다.”
그는 마치 자기의 대답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양 대답한다.


더 겸손하고 더 조용한 알패오의 야고보는 숙고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내 동료가 말하는 완전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얻어집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정의이고, 정의는 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고, 지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을 통하여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는 데 있어 어린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이들은 선과 악의 의미를 아직 알지 못하고 두 가지를 구별하지도 못합니다. 그분께서 저희에게 가르쳐주시는 이 길에 대하여 저희는 전혀 경험이 없어 이것과 저것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옛길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 멀고, 무서운 길입니다!


지금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여기서 보는 고가수로(aqueduct)와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래에는 짐승들과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위에는 가벼운 아치들 위 바람에 흔들리는 가장 높은 나뭇가지들 가까이에 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물소리가 울려 퍼지는 다른 길 하나가 있습니다.
밑의 길이 울퉁불퉁하고, 더럽고, 어두운 반면, 그 길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하느님의 것들인 햇빛, 별빛, 새 잎들, 꽃들, 제비의 날개들이 애무해주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복된 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길인 그 더 높은 길로 올라가고 싶지만, 무거운 낡은 건물 아래 짓눌린 채 묶여 있기에, 어떻게 그 길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한 사람은 가무잡잡하고, 건장하고, 총명한 표정의 스물다섯 살쯤 된 젊은이이다. 그는 거기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는 더 나이 든 사람에게 기댄 채로 서 있다.

키가 크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가리옷 사람이 자기의 동료들에게 속삭인다.


“서두르게, 제대로 설명해. 저 사람은 헤르마이고,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스테파노야, 가말리엘에게 사랑받는 스테파노!”

 

그것은 사도들을 완전히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침내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만일 어두운 길에 기초가 없다면, 아치는 없을 것입니다. 그 기초는 아치의 모체인데, 아치는 그 기초부터 시작하여 당신이 갈망하는 창공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땅속에 고정되어 무게를 지탱하고 있어 햇빛과 날아다니는 새들을 즐기지 못하는 돌들도 자기들이 거기 박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따금씩 제비가 지저귀며 흙바닥까지 내려와 아치의 기초를 애무해주고, 햇빛과 별빛이 비추며 창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세기들에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 지혜의 천상의 광선이 가끔씩 내려와 하느님의 진노에 억눌리고 있는 돌들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돌들은 필요했으니까요. 그것들은 무익하지 않고, 전에도 무익하지 않았으며, 미래에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과 인간지식의 완전이 그것들 위로 천천히 떠올라 오늘날의 자유와 초자연적인 지식의 지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당신의 얼굴에 쓰여 있는 당신의 반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억제과정으로 인하여 지식의 돌들의 상승을 통하여 어른이 되지 못하고 컴컴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담벼락처럼 점점 어두워져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새 가르침(the New Doctrine), 기쁜 소식(the Gospel)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 전에 우리 모두가 가졌던 그런 반대입니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어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 주춧돌 위에 놓여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용감하게 치워 기초석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영원한 샘의 맑은 생명수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높은 담을 허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기초로 돌아가시오. 그것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돌들이 모두 나쁘고 무익한 것은 아니니, 그것들을 치우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의 소리로 하나하나 시험하시오.
만일 그것들이 좋은 소리를 낸다면, 그것들을 간직했다가 재건하는 데 그것들을 재활용하시오. 그러나 만일 그것들이 인간의 목소리의 불협화음을 내거나 사탄의 목소리의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면, 그 나쁜 돌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버리시오. 여러분은 선택하는 데 있어 틀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느님의 목소리라면 사랑의 목소리일 것이고, 사람의 목소리라면 관능성의 목소리일 것이고, 사탄의 목소리라면 증오의 목소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숴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길손을 유혹하여 그것을 사용하게 만들어 그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나쁜 균들이나 나쁜 물건을 뒤에 남겨놓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당신들의 모든 일, 글, 가르침, 행동을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리시오.


좋은 돌들로 어렵게 1큐빗을 쌓는 것이 나쁜 돌들로 여러 야드를 쌓는 것보다 낫습니다. 햇빛과 제비들은 겨우 지면 위로 올라온 담들에도 내려오고, 길가의 보잘것없는 작은 꽃들이 낮은 돌들도 쉽게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교만하고, 무익하고, 거친 돌들은 가시덤불이나 독초만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여러분의 낡은 돌들의 선악을 시험하면서 재건하고 상승하기 위하여 무너뜨리시오.”

“여보시오, 당신은 훌륭한 연설가입니다. 우리는 상승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올라갑니까? 우리는 우리가 아기들보다 못하다고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가파른 기둥을 기어 올라가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돌들을 하느님의 목소리의 소리로 시험하겠습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돌들을 부숴버리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올라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현기증을 느낍니다.”
스테파노가 말한다.

고개를 숙인 채 미소 지으며 듣고 있던 요한이 빛나는 얼굴을 들고 말을 한다.

“형제들이여! 상승한다는 생각은 여러분에게 현기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누가 직접 상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까? 아기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천사들만이 창공에서 활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무게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는 성덕의 영웅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마치 성조들이 하느님의 벗이었고, 영원한 법전(the eternal code)의 말씀이 유일한 말씀이었지만, 모든 의인들이 그 법을 지켰을 때 이스라엘을 빛내주었던 옛사람들처럼 여전히 거룩한 영웅인 살아 계시는 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구자 요한은 우리에게 어떻게 직접 상승에 도전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요한은 사람이지만 하느님의 불인 은총이 치품천사들이 예언자의 입술을 깨끗하게 해준 것처럼 그의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그를 깨끗하게 해주고 그와 소통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도(王道)에 원죄의 역한 냄새를 풍기지 않고 메시아를 앞장설 수 있게 해주었고, 은총이 요한에게 천사의 날개를 주었으며, 고행이 그 날개를 자라게 함과 동시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그의 본성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의 무게가 고행으로 인하여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자기가 회개를 설교하는 자기의 동굴에서, 자기 몸 안에서 불타고 있는 은총과 결혼한 자기의 영혼과 함께 하느님, 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 하느님께서 그 너머에 계시는 아치의 꼭대기까지 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굽어보며 영원한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독수리의 눈처럼 자기의 눈과 예언자의 목소리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알리고, 이 숭고한 노래를 부른 다음에 죽을 수 있습니다.
그 숭고한 노래는 한정된 우리 시대에만 불리지 않고, 끝없는 세월에 영원하고 복된 예루살렘에서 제2위(the Second Person)를 찬미하고, 그분께 인간의 비참함을 상기시키며, 영원한 광채 속에서 호산나를 부를 때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린양, 불의 포옹 안에서 그분께서 하느님의 불이신 하늘의 빛나는 그분의 옥좌를 떠나셨던 지극히 다정하신 어린양께서는―오! 그분의 무한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생각으로 그분의 말씀을 잉태하시고(conceive), 사랑의 분출을 일으키시면서 그 말씀을 흡수하시어 거기서부터 능력과 지혜의 중심인 사랑의 영(the spirit of Love)을 생기게 하시는 아버지의 영원한 낳으심(the eternal generation)이여!―그분의 지극히 순수한 무형의 형태를 떠나 그분의 무한한 순수성, 그분의 거룩하심, 그분의 천주성을 죽어야 할 육체 안에 담으신 하느님의 어린양께서는 우리가 아직 은총으로 깨끗하게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요한이라는 독수리처럼 하나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계시는 정상을 향하여 상승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지붕과 길에 있는 작은 참새들이고, 창공까지 올라가기는 하지만 벌레를 먹고 사는 제비들이며, 천사들을 흉내 내어 노래하기를 원하지만, 천사들의 노래에 비하면 우리의 노래는 여름에 우는 매미의 시끄러운 떨리는 소리나 내는 종달새들입니다. 세상 죄를 없애려고 오신 다정하신 어린양께서는 그것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죽어야 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무한한 하늘의 영이 아니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무한성이 줄어들지도 않았고, 그분의 지혜는 항상 무한하기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길을 가르치시는데, 그것은 사랑의 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한 자비로 인하여 육체가 되신 사랑이십니다. 그 자비로운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어린이들이라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의 필요로 인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가장 먼저 그것을 올라가십니다. 그분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데는 그분의 날개들을 펴실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맹세코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씀드리는데, 그분의 영은 이 비참한 땅 위에 갇혀 계시지만, 항상 아버지와 함께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데,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분의 성덕의 향기와 그분의 사랑의 황금과 불을 그분의 뒤에 남기며 우리보다 앞서가십니다.

그분의 길을 바라보시오. 오! 그것은 아치의 꼭대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평화롭고 안전한지요! 그것은 직선이 아니고, 나선입니다. 그것은 더 먼 길인데,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의 희생이 그분께서 약한 자들인 우리를 위하여 지체하시는 그 거리에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더 멀지만, 우리의 비참함에는 더 잘 어울립니다. 사랑을 향하여, 하느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은 사랑(Love)처럼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광대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느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영혼들이 그분께 이르게 하시고 그들로부터 입맞춤을 받으시려고 몸을 숙이지 않으셨다면, 그분께서는 도저히 측량할 길 없는 심연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황홀경에 빠져 입술로는 미소 지으면서도 울면서 말한다) 사랑의 단순한 길은 멉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신 심연은 끝이 없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탄할 만한 심연(the Admirable Abyss)은 우리의 비참한 심연(miserable abyss)을 부릅니다. 그 심연은 그 빛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며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말합니다. 오, 하느님의 초대! 아버지의 초대!

들으세요! 들으세요! 가장 다정한 말씀들이 활짝 열려 있는 하늘들로부터 우리를 향하여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문들을 활짝 열어놓으셨고, 자비와 용서의 천사들을 배치하여 그 문들이 열린 채로 있게 하셨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은총(Grace)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거룩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도록 적어도 빛, 향기들, 노래들이 흘러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너희가 어리다고? 그러나 그것은 너희의 가장 소중한 돈이다! 나는 너희가 참으로 어린이들이 되어 어린이들의 겸손, 진실성, 사랑,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어린이들의 신뢰하는 사랑을 가지기를 바란다. 너희가 무능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 영광이다! 오! 오너라. 나는 심지어 너희 스스로 좋은 돌인지, 나쁜 돌인지 돌의 소리를 시험하라고 너희에게 요구하지도 않겠다. 그것들을 나에게 다오! 내가 그것들을 골라줄 터이니 너희는 재건축(rebuilding)을 행해라. 완전을 향하여 올라간다고? 오! 아니다. 내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너희의 형제인 내 아들과 손잡고, 그와 함께 올라오너라…’
올라가겠습니다! 영원하신 사랑이여, 당신께로 가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과의 유사성을 성취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것! 이것이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것! 그것은 자기를 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자기를 억누르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녹아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육체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통이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간이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 하느님, 죄 자체도 만일 제가 그것을 당신의 불에 녹인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존재합니다(Only Love exists). 사랑. 육화하신 하느님(the Incarnate God)을 우리에게 주신 사랑(the Love)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용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보다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보다 더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 선(Good)이 무엇인지를 알고, 선을 악과 구별하고, 창공과 천상의 태양(the celestial Sun)과 초자연적인 모든 기쁨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내가 알지는 못하는 당신은 사랑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시오. 당신은 이 세상의 생명에는 죽겠지만, 당신의 영혼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새 영혼을 가지고 부싯돌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될 것입니다.

불꽃은 올라갑니다. 그것은 올라가는 데 계단들도, 날개들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아를 모든 구조물에서 행방시키고, 당신 자신 안에 사랑을 채워 넣으시오. 그러면 당신은 타오를 것입니다. 아무 제한 없이 그것이 일어나게 하시오. 아니 불붙여서 당신의 과거의 정열들과 지식을 그 불속에 던져 넣으시오. 좋지 않은 것은 불꽃들 속에서 타버릴 것이고, 이미 고귀한 금속이 된 것은 순수해질 것입니다.

형제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적극적이고 즐거운 사랑 속으로 뛰어드시오. 지금은 당신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신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소멸하는 불에 아무런 제한 없이 자기를 남김없이 바치는 사람들에게만 이해되실 수 있는 하느님을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국 다정한 포옹 안에서 하느님 안에 고정될 것입니다. 감히 사랑에 대하여 당신에게 말한 그리스도의 아이인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시오.”

사도들, 제자들, 신자들… 그들 모두가 망연자실한 채로 있다. 요한이 지목하여 말한 상대의 얼굴은 창백한 반면 요한은 상기되어 있는데,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된 것이다.

마침내 스테파노가 외친다.
“당신은 축복받으시오! 그런데 나에게 말해주시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요한은―그의 태도는 나에게 성모영보 시의 동정녀를 많이 상기시킨다―마치 자기가 언급하는 이름을 가지신 분의 흠숭하듯 몸을 숙이며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나는 요한입니다. 당신은 나를 볼 때 주님의 종들 중 가장 비천한 종을 봅니다.”

“하지만 과거에 당신의 선생은 누구였습니까?”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께서 미리 거룩하게 해주신 요한으로부터 영적인 젖을 먹었고,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빵을 먹고,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오는 하느님의 불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영광이 있기를!”

“아!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고, 이분에게서도 떠나지 않고, 이제 여러분 중 누구에게서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나를 받아들여주세요!”

“그건… 오! 그런데 여기 베드로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우두머리입니다.”

요한은 어리둥절해 있는 베드로를 가리키며 그를 ‘수석(the first)’이라고 선언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 말한다.

“젊은이, 중대한 사명을 위해서는 신중한 심사숙고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의 천사이고, 우리를 불타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불꽃이 우리 안에서 지속될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헤아려본 다음에 주님께로 오시오. 우리는 지극히 소중한 형제에게 하듯이 당신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 동안에 우리의 생활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싶다면,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좋소. 그리스도의 양떼들은 엄청나게 자라나 완전한 사람들과 불완전한 사람들 중에서 골라 진짜 어린양들과 가짜 숫양들이 분리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 사도적 계시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