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78~p90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59. 게르게사에서의 예수. 요한의 제자들
(참고: 이 지방의 본 이름은 게르게사인데 성경을 필사하면서 게라사로 잘못 옮긴 이름이다. 게르게사는 ‘쫓아낸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구세주이신 주님을 대하는 주민들의 처신에 대한 예언적 암시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께 자기들 고장에서 떠나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다.(참조: 마태 8,34, 마르 5,17, 루카 8,37)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의 묵상에서)
1945. 5. 9.
예수께서는 내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도시에서 설교하고 계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든 도시들이 그 양식에 있어 대동소이하여, 일별하여 한 도시를 다른 도시와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도 길이 호수를 따라 나 있고 모든 배들이 호반에 있다. 크고 작은 집들은 큰 길 맞은편에 줄지어 서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야산들이 훨씬 더 뒤쪽에 있어 이 작은 도시는 호수의 동쪽 기슭을 따라 발달한 아름다운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고, 야산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기후가 온화하여 이 지방의 다른 고장들에서보다 나무들에서 꽃들이 더 빨리 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보아 나는 그분의 설교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버리는 것은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니까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 게르게사의 주민 여러분, 사람의 생각보다 더 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내 말과 기적은 여러분을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게 했고, 지금 이 순간에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진실합니다. 그러나 나는 역사적 사건 하나를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나는 오래 전과 근래의 사건들 모두에서 천 가지라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을 언급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기 전날 각 지파의 원로들과 지도자들과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을 자기 주위에 불러 모아놓고 주님 앞에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그분의 종인 자기를 통하여 베풀어주셨던 모든 은혜들과 행하셨던 모든 놀라운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열거한 다음에 주님이 아닌 모든 신을 물리치라고 그들에게 요청하고, 아니면 최소한 참 하느님을 선택하든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과 아모리 인들의 신들을 선택함에 있어 그들의 신앙을 솔직하게 표명하여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이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명백한 구별이 있게 하라고 권유했습니다.(여호24,1-15)
공개적으로 선언된 오류는, 하느님께는 모욕이 되고 영혼들에게는 죽음인 위선적인 신앙고백이나 믿음들의 혼합보다는 항상 더 낫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혼합보다 유지하기가 더 쉽고 더 보기 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외양은 그럴 듯하지만, 그 이면은 좋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들은 많이 일어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 율법이 금하는 것을 뒤섞는 신자들, 율법에 대한 충실성과 무법자들에게 모종의 이익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그들과 거래하고 타협하는 데에서 오는 이익 사이에서 술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리는 그 비속한 자들, 더 이상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자신들의 생활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그래서 더 정직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활한 정략을 만드는 저 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우리 하느님과 거짓 신들을 뒤섞어놓는 위선자들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종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하여 힘 있고 유용하다는 것을 그들이 아는 권력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거짓 신들을 섬기기 위하여 참 하느님을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여호24,16-18)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거룩한 질투에 관하여, 우리의 전체 자아를 기울인 배타적인 사랑을 받으시려는 그분의 뜻, 진실하지 않은 자들을 벌하시는 데 있어서의 하느님의 정의에 대하여 방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처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상 주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벌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야만 상이나 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 이스라엘 백성이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이집트의 왕들에게서 구해내시고, 광야를 거쳐 적들의 덫을 피해 여러분을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그대로 하여금 영광이 충만한, 위대하고 존경받는 민족이 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시고 나서 여러분의 죄로 인하여 여러분을 한 번, 두 번, 열 번 벌하셨다는 것을 숙고하시오.
지금 여러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시오! 여러분 스스로가 가장 불경스러운 우상숭배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아온 나는 여러분이 항상 같은 잘못들을 고집하는 것으로 인하여 어떤 나락으로 떨어지려 하는지를 봅니다.
나는 여러분의 구세주이고, 나 또한 이 백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오, 이중으로 내 것인 백성이여, 그것 때문에 나는 여러분을 책망합니다. 내 책망은 증오나 원한이나 불관용성이 아니고, 비록 그것이 엄하다 해도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택했다는 말의 증인은 여러분이오.’
그리자 그들 모두가 대답했습니다. ‘예, 우리가 증인입니다.’
용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기도 했던 여호수아는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았기에 율법과 계약의 모든 말씀들을 책에 기록하여 성소에 두었습니다. 그때 그는 장막이 있었던 스켐에 있는 성소에 큰 돌 하나를 증거로 가져다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드렸던 모든 말들을 들은 이 돌이 증거로 여기 남아 있어 여러분이 거짓말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부인할 수 없게 할 것이오.’(여호24,25-28)
돌은 그것이 아무리 크고 단단해도 사람이나 벼락에 의하여, 또는 물과 세월로 인한 마모로 인하여 언제든 먼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모퉁이 돌(the Eternal Corner-Stone)입니다. 그래서 나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이 살아 있는 돌에게 거짓말하지 마시오. 이것이 기적들을 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을 사랑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이 돌을 통하여 하늘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랑하시오. 나는 여러분이 더 영적인 사람들이 되고, 주님께 더 충실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그 이유로만 나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짓밟음으로써 나를 보내신 분께 상처 입힙니다. 나는 중개자(mediator)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 이르기 위하여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거룩한 것을 나에게서 받아 여러분 안에 보존하시오. 나를 사람으로 사랑하지 말고 주님의 메시아로 사랑하되, 그가 행하는 기적들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말고, 그가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성화라는 친밀하고 숭고한 기적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오.”
예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신 다음 한 집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신다. 그분께서 그 집 대문에 거의 도착하실 무렵 한 무리의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걸음을 멈추시게 하고 그분께 공손하게 인사드리며 말한다.
“주님, 저희가 당신께 한 말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항상 당신에 관하여 말하고, 저희도 당신의 기적들의 자자한 명성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당신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방금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여쭙고 싶은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물으시오. 당신들이 요한의 제자라면, 당신들은 이미 정의의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신자들에게 흔히 있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저희 중 율법과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도 그들의 친구십니다. 저희는 당신께서 로마인들을 멸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소. 그러나 당신들은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고 말할 수 있소? 당신들은 내가 그들의 보호를 얻기 위해서만 그들을 가까이한다고 말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는 그 점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저희가 보는 악만을 믿고, 저희가 듣는 악은 믿기를 원치 않는 저희 같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저희의 면전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중상할 경우에 저희 자신의 지침들과 당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말씀해주십시오.”
“인간적인 목적으로만 이방인들을 접촉할 때 그것은 나쁘지만, 그들을 주 우리 하느님께로 데려오기 위하여 그들과 교제하는 것은 나쁘지 않소. 그것이 내가 하는 것이오. 만일 당신들이 이방인들이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오로지 한 분뿐이신 하느님에게서 오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오.
하지만 당신들은 유다인이자 요한의 제자들로서 유다인들 중의 진수이고, 그래서 내가 그것을 당신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소. 따라서 당신들은 만인의 아버지의 자녀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으로서의 내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소.”
“그러나 그들은 이교도들이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은총의 면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아들들이 아니오. 그들의 그릇된 믿음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분의 아들들이 아니오.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내가 당신들을 구속할 때까지 사람은 유다인도 포함하여 은총을 잃은 상태일 것이오. 왜냐하면 원죄의 얼룩이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의 빛을 가려 사람들의 마음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오.
그러나 창조에 관한 한 사람은 항상 아들이오. 유다인도, 로마인도 다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유래하는데, 아담은 그에게 그분의 영적 유사성을 주신 아버지의 아들이오.”
“그건 그렇습니다. 선생님, 질문 하나가 더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아주 엄격하게 단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당신께서 음식을 드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 예언자도 비록 그가 바빌론의 조정의 고관으로 있으면서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성인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은…”
“엄격주의(rigorism)가 얻지 못하는 것을 온정(cordiality)으로 얻는 일이 아주 자주 있소.
선생에게 결코 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선생이 그들에게 가야 하오. 선생에게 오고 싶지만 군중 가운데로 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소. 선생은 그들에게도 가야 하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제가 당신을 알 수 있도록 제 손님이 되어주십시오’ 하고 말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집으로 가오. 나는 호사스러운 식탁의 즐거움이나 때로는 나에게 몹시 고역스럽기도 한 대화를 고려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이익만을 고려하여 간다는 것을 유념하시오. 나에 관한 한 사실이 그렇소.
그런데 내가 접근하는 영혼들 중에서 적어도 한 영혼이 회개할 때마다 모든 회개가 내 영혼에 하나의 혼인잔치,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참여하는 큰 잔치이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도 그 잔치에 강복하시고, 신랑인 나의 친구들인 내 제자들은 자기들의 친구인 신랑과 함께 환호하오.
당신들은 내가 환호할 때 내 친구들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보고 싶소?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나와 함께 있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오. 그때 그들은 단식할 것이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들이 있소. 어제까지 세례자의 날들에는 회개의 재가 있었소. 그러나 오늘 나의 날들에는 구속, 자비, 사랑의 달콤한 만나가 있소. 옛 방법들은 내 방법들에 접붙여질 수 없을 것이오. 내 방법이 그때는,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사용될 수 없었듯이 말이오. 왜냐하면 자비가 아직 땅 위에 없었기 때문이오.
지금 자비가 땅 위에 있소.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넘겨주신 메시아가 땅 위에 있소. 각 날은 그 날에 유용한 것이 있소. 아무도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어 깁지는 않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특히 빨래할 때 새 천이 오그라들어 헌 천이 찢어지고 구멍이 커지기 때문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새 술을 헌 부대에 넣지 않소. 그렇게 하면 새 술이 거품 나는 것을 헌 부대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 새 술이 터진 부대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미 발효작용이 끝난 묵은 술은 헌 부대에 넣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소. 그리하여 한 힘이 그와 등등한 다른 힘과 상쇄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오.
지금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소. 새 교리의 힘은 그것을 전파할 새로운 방법들을 제시하오. 그래서 그것을 아는 나는 그것들을 쓰는 것이오.”
“주님, 고맙습니다. 지금 저희는 기쁩니다. 저희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저희는 헌 부대들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힘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소. 왜냐하면 세례자가 당신들을 형성했기 때문이고, 그의 기도와 내 기도가 당신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오. 내 평화와 함께 가시오. 그리고 요한에게 내가 그를 축복한다고 전해주시오.”
“그러나… 당신께서 생각하시기에 저희가 세례자와 함께 있는 편이 낫습니까, 아니면 당신과 함께 있는 편이 낫습니까?”
“묵은 술이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입에 맞는다면 그것을 드시오. 나중에는… 어디에나 있는 악취 나는 물이 당신들을 역겹게 할 테니 당신들은 새 술을 사랑하게 될 것이오.”
“당신께서는 세례자가 다시 붙잡힐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소, 틀림없소. 나는 이미 그에게 사람을 보내 경계하라고 일렀소. 지금 가시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한 당신들의 요한을 즐기고, 그를 기쁘게 해주시오. 당신들은 그 다음에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오. 그런데 그것은 당신들에게는 힘 드는 일이기도 할 것이오… 묵은 술을 맛보고 나서 곧 새 술을 원하는 사람은 ‘묵은 술이 더 좋았어’ 하고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사실 나는 다른 맛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그것은 당신들에게는 시게 느껴질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나날이 그 생명을 주는 맛을 즐기게 될 것이오. 친구들이여, 잘 가시오. 하느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시기를.”
160. 납탈리에서 지스칼라로. 라삐 가말리엘과의 만남
1945. 5. 10.
“선생님! 선생님! 당신께서는 우리 앞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라삐 가말리엘입니다! 그분은 바람들을 막아주는 나무 그늘 밑에 포장을 둘러쳐놓고, 그 그늘에 그분의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을 굽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벗들아, 우리가 하려고 했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따라 나아간다.”
“하지만 가말리엘은 성전에 속해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악하지 않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계속 나아가겠다.”
“오! 저도 가겠습니다.”
그분의 사촌들, 모든 갈릴래아 출신 제자들, 시몬이 함께 말한다. 가리옷 사람과, 그보다는 덜 하지만 토마스는 앞으로 나아갈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
그들은 나무들이 무성한 산비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몇 미터 더 나아간다. 그러다가 길이 구부러지면서 일종의 고원인 개활지로 들어서 길이 넓어지고 교차했다가 곧바로 나뭇가지들이 서로 얽혀 지붕의 형태를 만들어놓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며 다시 좁아지고 꼬불꼬불해진다.
양지바르면서도 동시에 새로 돋아나는 나무들의 잎으로 그늘이 진 숲속의 공터에 쳐진 화려한 천막 아래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한구석에는 불꽃 위에서 어린양을 돌려가며 굽느라 여념이 없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말리엘은 자신의 건강에 몹시 유의하고 있다. 그는 자기 한 사람의 여행자를 위하여 수많은 하인들을 움직이고 있고, 그들과 함께 엄청난 짐이 운반되고 있다. 지금 그는 자기의 천막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천막이란 금빛 나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친 천으로서 일종의 캐노피인데, 그 아래에는 쿠션이 깔린 낮은 의자들이 있고, 조각한 나무다리들이 달린 식탁이 있다. 식탁 위에 대단히 고운 식탁보가 깔려 있는데, 하인들은 그 위에 값진 식기들을 올려놓는다.
가말리엘은 마치 우상처럼 보인다. 손을 펴서 무릎에 올려놓고 꼿꼿하게 제관처럼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조각상처럼 보인다. 하인들은 그의 주위에서 큰 나비들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그의 엄한 두 눈에 눈꺼풀을 거의 내리덮은 채 사색에 잠겨 있다. 그가 눈꺼풀을 올리면, 길고 날씬한 코 양쪽 위에 움푹 들어가고 생각에 잠긴 검은 그의 두 눈은 그 모든 엄격미를 드러낸다. 그 위에 나이 든 사람의 약간 벗겨진 넓은 이마가 있는데, 세 개의 평행한 주름이 나있고, 오른쪽 관자놀이 한 가운데에는 굵고 푸르스름한 정맥이 V자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오고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에 하인들이 뒤돌아보고, 가말리엘도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일행의 선두에 서서 오시는 예수를 보자 놀라는 몸짓을 한 다음 일어나 천막 가장자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는 거기서 손을 가슴에 십자로 포개 얹고 깊숙이 절한다. 예수께서도 같은 방식으로 답례하신다.
“라삐님, 당신께서 여기를?”
가말리엘이 묻는다.
“라삐님, 내가 여기 왔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당신께서 어디로 가고 계시는지 내가 당신께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신과 대화하는 것이 나에게는 기쁨입니다. 나는 납탈리에서 출발하여 지스칼라로 가고 있습니다.”
“걸어서요? 하지만 이 산길은 험하고 멉니다.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을 너무 혹사하고 계시는데요.”
“내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만일 누군가가 나를 받아들이고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모든 피로는 사라집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 번만이라도 내가 당신의 피로를 없애드리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어린양이 다 익었습니다.
나는 남는 음식을 챙겨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남은 것들을 새들에게 남겨주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내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이 아무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께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환대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가말리엘이 우두머리인 것처럼 보이는 하인에게 명령하자, 그가 그 명령을 하달한다. 그러자 천막이 확장되어 설치되고, 예수의 제자들을 위하여 더 많은 의자들과 식기들이 많은 노새들에서 내려진다.
손가락을 씻을 물이 담긴 대접들이 날라져온다. 예수께서는 최상의 품위로 이 의식을 행하시고, 유다의 세련된 예법에 능숙한 시몬, 가리옷의 유다, 바르톨로메오, 마태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가말리엘이 주의 깊게 곁눈질로 살펴보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여 이 의식을 행한다.
예수께서는 식탁의 한 쪽에 혼자 앉아 있는 가말리엘의 옆에 앉아 계신다. 예수의 정면에는 열성당원이 있다. 가말리엘이 엄숙하게 천천히 봉헌기도를 한 다음 하인들이 어린양 고기를 잘라 손님들에게 나누어주고, 잔들에 포도주를 따라주고, 꿀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꿀물을 따라준다.
“라삐님, 우리는 우연히 만났군요. 나는 지스칼라로 가는 길에서 당신을 만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나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지칠 줄 모르는 예언자십니다. 요한은 정착해 있는 예언자인데, 당신께서는 순회하시는 예언자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들이 나를 만나기가 더 쉽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옮겨 다니시면 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내 원수들을 혼란시킵니다만, 나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나를 찾아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선생에게 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원하는 선생이 모든 사람에게 갑니다. 나는 이렇게 하여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음모들을 피합니다.”
“당신께서는 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까?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지목하여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만, 당신은 의로우시고 솔직하시니 내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예,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우리 늙은이들은 당신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옛 이스라엘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불행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뜻으로 인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내 말이 맞습니다, 라삐님. 그들은 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자기를 제한하는 사람은 악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악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내 말을 고의적으로 오해하고 하느님께 해를 끼치기 위하여 그것을 왜곡합니다.”
“하느님께 해를 끼친다고요?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덫들 위에 계시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거나 남에게 이끌려 길 잃은 모든 영혼은 잃어버린 그 영혼 안에서 하느님께 해를 끼칩니다. 그런데 제 말이나 제 일을 왜곡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모든 영혼은 하느님께 상처입니다.”
가말리엘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묵상한다. 그는 본의 아니게 마음의 고통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가늘고 긴 손가락들로 자기의 이마를 문지른다. 예수께서는 그를 살펴보신다. 그는 머리를 들고 눈을 뜨고 예수를 보며 말한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내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아십니다.”
“나는 압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한 분이십니다.”
“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당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실은 당신의 말씀이 내 정신에 와서 멈추고, 그 이상 뚫고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정신은 그것에 대하여 학자의 말로서는 탄복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가말리엘 선생님, 그것은 너무 많은 것들로 꽉 차 있어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고루한 것들로요. 조금 전에 나는 납탈리에서 오면서 산맥에서 돌출해 있는 한 산 가까이로 지나 왔습니다. 나는 그곳을 지나오며 아름다운 겐네사렛 호수와 메롬 호수를 마치 독수리들과 주님의 천사들이 내려다보듯 내려다보며 다시 한 번 ‘창조주시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하고 말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산 전체가 꽃, 풀밭, 과수원, 밭, 숲으로 덮여 있고, 눈같이 흰 수천, 수만 개의 꽃을 준비하고 있는 올리브나무들 옆에서는 월계수들이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튼튼한 떡갈나무들도 참으아리와 인동덩굴로 덮여 더 멋지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자 인공적으로이든, 자연적으로이든 꽃이 피거나 비옥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은 고대 핫조르 족의 거대한 폐허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노력도, 씨앗을 날라다주는 바람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돌밭에는 쐐기풀과 가시덤불밖에 자라지 못하고 뱀들이나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가말리엘 선생님…”
“나는 알아듣겠습니다. 우리도 폐허라는 말씀이지요… 예수님, 저는 비유를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는 달리는 할 수 없습니다. 돌들이 너무 무겁습니다.”
“당신이 믿으셨던 사람 중 하나가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내 마지막 말들을 듣고 돌들이 떨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메시아의 마지막 말을 기다려야 합니까? 당신은 그 전에 저를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지막 말을!… 죽어 가는 친구의 마지막 말을!…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말처럼 슬픈 말,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 하지만 너무 늦게 들은 말을. 그러나 내 말들은 친구의 말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믿기 위하여 그 표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이 황폐해지면, 한 번의 벼락으로는 그것을 개간하는 데 충분하지 못합니다. 땅이 벼락을 맞지 않고, 땅을 뒤덮고 있는 돌들이 맞습니다. 가말리엘 선생님, 적어도 그 돌들을 치우려고 애쓰십시오. 돌들이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박혀 있다면, 그 표징이 당신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하고 있다. 식사가 끝난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말씀하신다.
“나의 하느님, 저는 식사로 인하여, 그리고 한 현인에게 말할 수 있었던 기회로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떠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께서 나에게 화나지 않으셨는지 걱정됩니다.”
“오! 아닙니다! 당신은 내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럼 가지 마세요. 나는 힐렐의 무덤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나와 함께 가는 것을 마다하시겠습니까? 나는 모든 사람이 탈 만큼의 노새들과 나귀들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 도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새와 나귀의 짐들을 내려 하인들이 지고 가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길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질러가시는 셈이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이나 힐렐의 무덤에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가십시다.”
가말리엘이 필요한 지시사항들을 하달한다. 하인들이 임시식당을 분해하는 동안 예수와 가말리엘은 노새를 타고 나란히 조용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나아간다. 편자를 박은 노새의 굽 소리가 요란하게 적막을 깨뜨린다.
가말리엘은 말이 없다. 그는 그분의 안장이 편하시냐고 그분께 두 번 물었을 뿐이다. 예수께서도 대답하신 다음에 생각에 잠겨 침묵하신다. 그분께서는 어찌나 생각에 골몰해 계시는지, 가말리엘이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위하여 자기의 노새의 고삐를 잡아 예수를 노새의 목 하나의 길이 하나쯤 앞서가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신다.
늙은 라삐의 두 눈이 어찌나 날카로운 눈매로 꿰뚫듯이 응시하는지 그것들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들과도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타고 계시는 노새의 건들거리는 걸음에 적응하시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신다.
그분께서는 생각에 잠겨 계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분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의 모습들을 살펴보신다. 그분께서는 황금빛 양골담초 무더기를 뜯기 위하여 손을 내미시고, 굵은 노간주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새 두 마리를 보고 미소 지으시고, 검은머리꾀꼬리의 노래를 들으시려고 노새의 걸음을 멈추기도 하시고, 멧비둘기가 자기 짝에게 일하라고 재촉하는 극성스러운 부르짖음에 마치 축복하시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당신께서는 식물들과 짐승들을 몹시 사랑하시지요?”
“예, 나는 그것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것들은 저의 살아 있는 책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기의 앞에 믿음의 근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자연 속에 살아 있습니다. 볼 줄 아는 사람은 믿을 줄도 압니다.
향기가 그토록 감미롭고 늘어진 꽃부리의 재질이 저렇게도 부드러운 이 꽃과, 이와 대조되는 이 가시 돋친 노간주나무와 가시금작화 나무가 어떻게 저절로 생겨날 수 있었겠습니까? 보십시오. 부드러운 목덜미에 마른 핏자국을 가진 저 붉은가슴울새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들었겠습니까? 그리고 저 두 마리의 멧비둘기는 그 회색 깃털의 베일에 어디서 어떻게 저 줄마노 빛 깃들을 그릴 수 있었겠습니까?
저기 나비 두 마리를 보십시오. 한 마리는 금빛과 붉은빛 띠를 두른 검은 놈이고, 또 한 마리는 파란 줄무늬가 있는 놈인데, 저놈들이 어디서 그놈들의 날개들을 위하여 보석들과 리본들을 찾아냈겠습니까?
이 개울은? 그것은 물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 물은 어디서 왔습니까? 물 원소의 최초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오! 사람이 볼 줄 안다면, 보는 것은 믿는 것을 뜻합니다.”
“보는 것은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살아 있는 창세기를 너무 적게 바라봅니다.”
“지식은 너무 많습니다. 가말리엘 선생님, 그리고 사랑은 너무 적고, 겸손도 너무 적습니다.”
가말리엘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든다.
“자, 다 왔습니다, 예수님. 힐렐은 저기 묻혀 있습니다. 노새에서 내린 다음 그놈들을 여기 둡시다. 한 하인이 이놈들을 돌볼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줄기에 그 두 마리의 노새를 매고 굳게 닫혀 있는 큰 집 가까이에 있는 산으로부터 돌출해 있는 묘지를 향하여 그들의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이스라엘의 명절들을 앞두고 묵상하고, 나 자신을 준비하려고 이곳으로 옵니다.”
가말리엘은 그집을 가리키며 말한다.
“지혜(Wisdom)가 그 모든 빛을 당신에게 주시기를.”
“그리고 저는 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려고 이곳으로(가말리엘은 그 무덤을 가리킨다) 옵니다.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의인이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유해 곁에서 기도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러나 가말리엘 선생님, 힐렐은 당신께 죽는 법만이 아니라 사는 법도 가르치셔야 합니다.”
“어떻게요, 선생님?”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위대하다’라는 말은 힐렐 선생이 좋아하셨던 경구였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분을 만난 적이 없으실 터인데, 당신께서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저는 그분을 만났습니다… 설혹 제가 힐렐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해도, 저는 그분의 생각을 압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하여 제가 모르는 것은 없으니까요.”
가말리엘은 머리를 숙이고 속삭인다.
“하느님만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the Word: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생각(the Thought 성부 하느님)을 알고, 생각은 말씀을 알고, 그를 사랑하고, 그와 소통(communicate)하며, 자기의 모든 보물들을 그에게 허락하시고, 그를 그분 자신 안에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분들을 유대의 끈으로 조이고, 그분들을 하나의 완전(one Perfection)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자신(Itself)을 사랑하는 삼위일체(the Trinity)인데, 그 삼위일체는 신성하게 형성되고(formed), 낳고(generate), 나오고(proceed), 완성됩니다(completed).
모든 거룩한 생각은 완전한 생각(the Perfect Mind) 안에서 태어나(born), 의인의 마음 안으로 투영됩니다. 그러니 말씀(the Word)이 의인들의 생각들을 모를 수 있습니까? 그 생각들은 생각(the Thought)의 생각들이니 말입니다.”
그들은 닫혀 있는 동굴 무덤(sepulcher) 근처에서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한다. 사도들과 하인들이 도착하는데, 하인들은 말을 타고, 사도들은 짐을 들고 걸어오다가 동굴 무덤과 약간 떨어져 있는 농장의 끝에서 걸음을 멈춘다. 기도가 끝난다.
“가말리엘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힐렐처럼 올라가십시오(ascend).”
“당신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올라가십시오. 그분은 당신보다 더 겸손하게 믿을 줄 알았기 때문에 당신보다 앞서 있습니다. 평화가 당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