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61~p73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53.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다
1944. 10. 24.
나는 예수께서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 야고보, 필립보,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성전 경내로 들어가시는 것을 본다. 성전 담장 안팎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다. 순례자들이 양들을 끌고 시내 곳곳에서 도착하고 있다.
성전이 세워져 있는 언덕 꼭대기에서는 사람들로 혼잡한 시내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내려다보인다. 하얀 집들 사이에 놓인 다채로운 색깔의 리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도시는 마치 두 가닥의 흰 실 사이에서 모두가 주님의 집의 돔들이 반짝이고 있는 지점으로 모이는, 화사한 색깔의 리본으로 만들어진 신기한 장난감처럼 보인다.
성전 안은… 진짜 시장이다. 거룩한 장소의 엄숙함은 파괴되어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들은 사람을 부르고, 몇 사람은 어린양들을 매매하고, 몇 사람은 소리 지르고, 터무니없는 가격들로 인하여 저주하고, 다른 사람들은 울부짖는 불쌍한 짐승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는다. 그 울타리는 말뚝들을 박고 거기 밧줄을 엉성하게 둘러친 것인데, 상인들이나 짐승들의 소유자들이 매수자들을 기다리며 그 입구에 서 있다.
곤봉들로 때리는 소리들, 양 우는 소리들, 짐승들을 재빨리 한 군데로 모으거나 골라오지 못하는 소년들에 대한 저주들, 고함들, 욕설들과 값을 너무 깎거나 사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손님들에 대한 욕설들, 그리고 현명하게도 자기의 어린양들을 가져온 사람들에 대한 더 심한 욕설들이 난무한다.
환전상들의 계산대들 근처는 더 난장판이다. 항상 이러는지, 파스카 때만 이러는지 나는 모르겠는데, 성전이 증권시장이나 암시장처럼…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정된 환율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정 환율이 있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환전상들은 다른 비율을 강요하고, 환전해주는 데 있어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폭리를 취한다.
나는 그들의 폭리거래들에 있어 그들이 장난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손님이 가난할수록, 그들이 더 멀리서 올수록 더 착취당하고, 늙은이들은 젊은이들보다 더, 팔레스티나 너머에서 오는 사람들은 팔레스티나 안에서 온 사람들보다 더 착취당한다.
어떤 가난한 노인들이 1년 내내 고생 고생해 가며 저축하였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수없이 품에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으며 환전상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첫 번째 환전상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환전상은 그들이 잠시 떠나갔던 것에 대하여 환전의 프리미엄을 올림으로써 복수한다.
이렇게 하여 큰 동전들이 한숨을 쉬고 있는 주인들의 손을 떠나 폭리를 탐하는 환전상들의 갈퀴 같은 손아귀로 들어가고, 그 대신 더 적은 동전들로 바뀐다. 그보다 더한 비극이 어린양의 선택과 대금지급에 관하여 상인들과 반쯤 눈이 어두운 가난한 노인들의 사이에 벌어지려고 하는데, 노인들에게 가장 보잘것없는 어린양들이 떠넘겨진다.
나는 가난한 두 노부부가 제관들이 틀림없이 흠이 있다며 받지 않았을 어린양을 끌고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들은 상인에게 하소연하고 간청해보지만, 판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상스러운 말과 무례한 태도로 대답한다.
“갈릴래아 늙은이들, 당신들이 내려는 돈으로는 내가 당신들에게 준 것도 너무 훌륭한 것이오. 저리 가시오! 아니면 만일 당신들이 더 훌륭한 놈을 사려거든 동전 5닢을 더 내시오!”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가난하고 늙었어요! 당신은 우리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파스카를 지내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까? 당신은 당신이 보잘것없는 어린양 하나 값으로 우리에게서 받은 돈에 만족하지 못합니까?”
“원 더러워서. 가시오. 지금 원로 요셉이 이리로 오고 계십니다. 이분은 내 단골손님이에요. 요셉 어른,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와서 고르세요! “
원로 요셉 즉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훌륭한 어린양 한 마리를 고른다.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문 즉 울타리 입구에서 울고 있는 가난한 노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위풍당당하고 거만하게 지나간다. 그는 울고 있는 살진 어린 양을 몰고 나오면서 그들을 떠다밀다시피 한다.
지금 예수께서도 가까이에 와 계신다. 그분께서도 어린양을 사셨고, 그래서 아마 그분을 위하여 흥정을 마친 베드로가 꽤나 괜찮은 어린양 한 마리를 끌고 온다.
베드로는 그들이 제물들을 바치는 곳으로 즉시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군중들에게 치이고, 상인에게 모욕당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노부부에게로 가신다.
키가 훤칠하시어 두 노인들의 머리가 그분의 가슴에 닿을 정도인 예수께서는 노파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신 채 물으신다.
“할머니, 당신은 왜 울고 계십니까?”
작은 노파는 돌아서서 아름답고 흰 새 튜닉과 백설같이 흰 겉옷을 입고 있는 위풍당당하고 키가 큰 젊은 남자를 본다. 그녀는 그분의 옷과 용모로 인하여 그분께서 라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박사들과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상인들의 탐욕에 맞서 그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들이 우는 이유를 예수께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어린양 상인에게 말씀하신다.
“이 신자들에게 이 어린양을 바꿔주시오. 그것은 제단에 바치기에 부적합하고, 이 가엾은 두 노인들이 약하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이분들을 착취하는 것도 옳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한 의인이오.”
“당신과 당신 동행들의 말투를 들으니 나는 당신이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소. 갈릴래아에 의인이 있을 수 있소?”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대로 하여 당신이나 의인이 되시오.”
“들어보시오. 자기의 동류들을 옹호하는 갈릴래아 사람의 말을 좀 들어보시오! 이 사람이 성전의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군요!”
그 사람은 갈릴래아 억양을 흉내 내면서 웃고, 조롱한다. 갈릴래아 억양은 유다 억양보다 더 노래하는 것 같고, 더 부드럽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다른 상인들과 환전상들이 자기들의 동료를 옹호하며 예수에게 맞선다.
구경꾼들 중에는 두세 명의 빈정거리는 라삐들도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욥이라도 화낼 만한 말투로 묻는다.
“당신은 박사요?”
“그렇소.”
“당신은 무엇을 가르치시오?”
“나는 이것을 가르치오. 하느님의 집을 기도의 집으로 만들어야지, 고리대금업소나 시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이오.”
예수께서는 무시무시하시다. 그분께서는 에덴의 입구에 배치되었던 대천사와 같으시다. 그분께서는 불타는 칼을 손에 들고 계시지는 않지만, 그분의 눈들에서 나오는 섬광은 불경한 비웃는 자들을 번개처럼 내려치신다. 예수께서는 양손에 아무것도 들고 계시지 않다. 그분께서 가지신 것이라고는 그분의 진노뿐이다.
그분께서는 진노에 가득 차 계산대들 사이로 빠르고 위엄 있게 걸어가시며, 그 값어치들에 따라 꼼꼼히 분류해놓은 동전들을 흩트리시고, 탁자들을 뒤집어엎으시자 모든 것이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며 튀어 오르는 쇠붙이들과 부딪치는 나무의 소리와 분노한 부르짖음들, 공포의 비명들, 찬성의 외침들과 함께 뒤범벅이 된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외양간지기 소년들에게서 황소들, 양들, 어린양들을 매어놓은 밧줄을 빼앗아 아주 단단한 줄을 만드시는데, 그 매듭들은 진짜 채찍들과 같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들어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내리치신다. 그렇다. 나는 무자비하게 내리치신다고 당신에게 확언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우박과 같은 매들이 상인들의 머리들과 잔등들을 때린다. 신자들은 이 광경에 감탄하면서 한쪽으로 몸을 피하고, 죄인들은 돈을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 길짐승들과 날짐승들을 뒤에 남겨둔 채 다리들이 뒤엉키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성전 외벽까지 쫓겨 도망친다. 남겨진 짐승들은 어떤 것들은 달아나고, 어떤 것들은 날아간다. 소와 양의 울음소리들, 비둘기와 멧비둘기들의 우는 소리들은 모리배들이 달아나는 것을 보며 신자들이 웃고 고함치는 소리에 뒤섞여 틀림없이 다른 마당에서 도살되고 있는 어린양들의 애처로운 합창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한다.
사제들, 라삐들, 바리사이들이 그곳으로 뛰어온다. 예수께서는 쫓아가시다가 되돌아오셔서 성전 마당 한가운데에 서 계시는데, 채찍이 여전히 그분의 양손에 들려 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해서 규정된 의식들을 방해하오? 당신은 어떤 학파 출신이오? 우리는 당신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오.”
“나는 강한 자요(I am He Who is Mighty).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소. 이 진짜 성전을 허시오. 나는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그것을 세우겠소. 나는 하느님의 집의 거룩함도, 의식들도 방해하고 있지 않소. 오히려 당신들이 그분의 집에 고리대금업자들과 상인들의 소굴이 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것을 교란시키고 있소. 내 학파는 하느님의 학파요.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온 이스라엘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학파요. 당신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요? 당신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요? 당신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더 이상 사제들을 쳐다보시지 않고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시어 훤칠한 키에 흰 옷을 입으시고 겉옷은 벌어져 어깨 뒤에서 펄럭이도록 내버려두신 채 가장 중요한 대목을 연설하는 웅변가처럼 양팔을 펴시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여, 들으시오! 신명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모든 문들에 재판관들과 율법학자들을 지명해야 한다… 그들은 백성들을 공평한 재판을 베풀어야 한다. 너희는 공평해야 한다. 너희는 뇌물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현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의인들의 대의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재판을 추구해라. 그러면 너희는 야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땅을 적법하게 차지하고 살 것이다.’(신명 16,18-20)
이스라엘이여, 들으시오! 신명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레위지파의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 사람들과 같이 아무런 몫이나 유산을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야훼께 드려진 음식물들과 그분께 드려지는 제물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이 차지하는 것에서는 아무런 몫도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야훼께서는 그들의 상속재산이시기 때문이다.’(신명 18,1-2)
이스라엘이여, 들으시오! 신명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네 형제에게 돈이나 식량이나 다른 어떤 물건도 이자를 받고 빌려주지 마라. 너희는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빌려주어도 된다. 너희는 네 형제에게 그에게 필요한 것을 이자 없이 빌려주어라.’(신명 23,20-21)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이스라엘에서 재판관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의한 재판이 베풀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고, 부자들의 편을 듭니다. 가난하다는 것, 서민이라는 것은 압제당하는 것을 뜻합니다. 유력자들만 존경받고 재판에서 이기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백성들이 ‘우리의 재판관들은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 그분을 존경하지 않는 것을 백성들이 보면서 어떻게 그들이 그분을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사람이 그분을 존경합니까?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사제들이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바치는 뇌물을 받고, 자신들의 돈궤를 채우기 위하여 선물을 받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사제들의 유산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아버지보다 더한 아버지가 되셔서 정의에 따라 그들에게 양식을 마련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정의로운 몫 이상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소의 그분의 종들에게 돈과 재물들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삶에서 자기들의 정의에 대한 상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야곱과 아브라함이 받게 될 천국을 소유하겠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마포 옷과 불후의 금으로 만들어진 면류관 즉 순결과 사랑 외에는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육체는 참 하느님에게 복종해야 하는 자기들의 영혼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그들의 육체들이 그들의 영혼들의 주인들이 되고 하느님을 거슬려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내가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권위로 하느님의 계명을 위반하여 신성한 담장들 옆에서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하기 위하여 온 그들의 이스라엘의 형제들을 착취하도록 허락합니까? 나는 내가 어떤 학파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고 ‘하느님의 학파 출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그렇습니다. 나는 이 거룩한 불변의 학파에서 왔고, 여러분을 그리로 도로 데려오기 위하여 왔습니다.
빛, 진리, 길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 다시 한 번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나에게로 오시오. 이스라엘이여, 그대들은 모세를 따라 광야를 지나왔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왜냐하면 나는 더 멀고 더 거친 광야를 거쳐 여러분을 참 복된 땅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열린 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여러분을 이끌 것입니다. 나는 내 표(My Sign)를 높이 들어 여러분의 모든 악들을 고쳐줄 것입니다.
은총의 때가 왔습니다. 예언자들은 이 때를 기다렸고, 이 때를 기다리며 죽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것을 예언하였고, 그 희망 안에서 죽었습니다. 의인들은 그것에 대하여 꿈꾸었고, 그 꿈으로 위로받으며 죽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오시오. 주님께서 모세의 입을 통하여 약속하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시고, 그분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풀려 하십니다.’
예수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새 라삐의 말들에 대하여 논평하고, 그분의 동행들에게 질문한다.
예수께서는 이 현관 하나로만 이 마당과 분리되어 있는 다른 마당으로 향하여 가시고, 그분의 친구들은 그분을 뒤따른다.
환상이 끝난다.
54. 가리옷 사람 유다와 토마스를 만나시고, 열성당원 시몬을 고쳐주시다
1944. 10. 26.
예수께서는 그분의 여섯 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 저번 날도 오늘도 나는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오고 싶다고 말했던 유다 타대오를 보지 못한다.
시내에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직 파스카 시기인 모양이다.
저녁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께서도 그분께서 머무시는 집을 향하여 가신다. 그 집은 최후의 만찬의 집이 아닌데, 최후의 만찬의 집은 성벽들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시내에 있는 반면 이 집은 울창한 올리브나무 숲 가운데 있는 진짜 시골집이다. 집 앞의 작은 마당에서 야산 정상 밑 비탈에 서 있는 올리브나무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은 두 야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수량이 매우 적은 작은 개울 바로 밑까지 서 있다. 성전은 그 두 야산 중의 하나의 정상에 있다. 다른 야산에는 올리브나무만이 있다. 예수께서는 평화로운 나무들로 완전히 뒤덮인 완만하게 올라가는 두 번째 야산의 첫 번째 비탈에 계신다.
“요한, 자네의 친구 분을 기다리는 두 사람이 있네.”
농부이거나 올리브나무 동산의 주인임에 틀림없는 나이 많은 남자가 말한다.
나는 그가 요한이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누구예요?”
“나는 모르겠네. 한 사람은 분명 유다인이야. 다른 사람은… 나는 모르겠어. 나는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어.”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네, 그리고… 그리고… 맞아… 헌데로 온통 뒤덮여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어. 나는 그 사람을 저기 멈춰 서게 했네. 그가 나병환자일까 봐. 그는 자기가 성전에서 말씀하셨던 예언자를 보고 싶다고 하네.”
이 순간까지 침묵하셨던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먼저 그에게로 가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한다면 오라고 말해라. 나는 여기 올리브나무 숲에서 그들과 이야기하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기신다.
“그럼 저희는요?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베드로가 묻는다.
“너희가 원한다면, 오너라.”
온몸을 천으로 감싸고 있는 한 남자가 소유지의 경계 가까이의 테라스를 받치고 있는 투박한 담장에 기대 서 있다. 그는 개울 옆의 오솔길을 따라 그리로 올라왔을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자 외친다.
“물러가세요, 물러가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는 자기의 옷을 열어 제치며 웃통을 드러내는데, 그의 얼굴은 딱지들로 뒤덮여 있고, 그의 몸통은 헌데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헌데들 중 어떤 것들은 이미 깊은 상처들이 되어 있고, 어떤 것들은 화상들과 비슷하며, 다른 헌데는 마치 흰 유리가 그것들에 붙어 있는 것처럼 희끄무레하고 윤기가 난다.
“당신은 나병환자요?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합니까?”
“저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저를 돌로 쳐 죽이지 마세요! 요전 날 저녁에 저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목소리와 은혜를 가져오는 분으로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당신의 표를 들어 올려 모든 병들을 고치신다고 단언하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부디 그것을 제 위에 들어 올려주십시오.
저는 저기… 무덤들에서… 왔습니다. 저는 사람의 눈에 띠지 않고 이리로 오기 위하여 개울가의 가시덤불 사이로 뱀처럼 기어 왔습니다. 황혼녘에는 제가 누군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는 저녁이 되기를 기다려 출발했습니다. 저는 감히… 저는 마음씨 착한 이 집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죽이지 않고 ‘저기 작은 담장 곁에서 기다리게’ 하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여섯 제자들과 집주인과 두 명의 손님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눈에 띠게 혐오감을 드러내기 때문에 예수께서 혼자서 그에게 다가가시자 그가 덧붙인다.
“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저는 감염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신다. 그분께서 어찌나 자비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시는지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무릎을 꿇고 얼굴을 거의 땅에 대고 부르짖는다.
“당신의 표를! 당신의 표를!”
“그것은 때가 되면 들어 올려질 것이오. 그러나 지금 나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일어나시오. 치유 받으시오. 나는 그것을 원하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나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표가 되시오. 내가 말하는데 일어나시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감사로 다시는 죄짓지 마시오!”
그 사람이 천천히 일어선다. 그는 마치 수의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꽃이 핀 키 큰 풀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치유 받았다. 그는 마지막 남은 희미한 햇빛에 자기의 몸을 들여다본다. 그는 나았다. 그가 외친다.
“저는 깨끗합니다! 오! 지금 저는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신은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사제에게 가시오. 앞으로 착하게 사시오. 가시오.”
그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려고 하다가 율법에 따라 아직 부정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제한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어 그 입맞춤을 예수께 보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다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예수께서는 병 나은 사람에게서 돌아서서 미소 지으시며 그들을 격려하신다.
“내 벗들아, 저것은 육체의 나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는 나병이 마음들로부터 떨어지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를 보기를 원하는 분들이 당신들입니까?”
예수께서 두 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요전 날 저녁에 저희는 성전에서…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당신의 친척이라고 말하는 분이 당신께서 여기 머무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당신들은 왜 나를 찾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른다고요? 그런데 당신들은 내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선생님. 그러나 당신께서는 분명히 영광을 향하여 가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영광을 향해서는 아닙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영광, 성덕과 희생으로 얻어지는 영광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왜 나를 따르기를 원합니까?”
예수께서 다시 물으신다.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요.”
“하늘에 따라?”
“예, 하늘에 따라서요.”
“모든 사람이 그 영광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맘몬이 하늘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더 많은 덫들을 놓기 때문입니다.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만이 그 덫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원수와 적대적인 세상과 원수와 사탄이라는 원수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왜 나를 따르려고 합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에게 정복된 저희 영혼들의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거룩하시고 유력하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친구들이 되고 싶습니다.”
“친구들!”
예수께서 침묵하고 한숨을 쉬신 다음 줄곧 말하고 있는 사람을 응시하는데, 그의 머리에 쓰고 있던 겉옷의 두건이 벗겨져 그 머리가 드러난다. 그는 가리옷의 유다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서민보다 말을 잘 하는군요.”
“저는 시몬의 아들 유다입니다. 저는 가리옷 출신인데, 성전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유다인들의 왕을 기다리며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왕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당신의 왕다운 몸가짐들을 보았습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을 받아달라고요? 지금? 당장? 안됩니다.”
“왜 안 됩니까, 선생님?”
“왜냐하면 몹시 가파른 길들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는 편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실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말한 대로요. 나는 당신이 충동적이라고 생각하지, 인내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유다,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시오. 나는 지금 여기를 떠났다 오순절을 위하여 돌아옵니다. 만일 당신이 성전에 있는다면, 당신은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살피시오. 그리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을 뵌 다른 한 사람입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두렵습니다.”
“아닙니다. 주제넘음은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두려움은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겸손에 기인하는 두려움은 도움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당신도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시오. 그리고 내가 올 때…”
“선생님, 당신께서는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저는 제가 자격이 없을까봐 두렵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토마스입니다. 디디모라고도 하고요.”
“나는 당신들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평안히 가시오.”
예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저녁식사를 위하여 숙소로 돌아오신다.
그분과 함께 있는 여섯 제자들은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 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그들을 다르게 취급하셨습니까? 왜냐하면 차이가 있었으니까요. 그들 두 사람은 같은 충동을 가졌는데요…”
요한이 묻는다.
“나의 벗이여, 같은 충동이라도 다른 취향을 가질 수 있고,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두 사람은 분명히 같은 충동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같지 않았다. 덜 완전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더 완전한데, 그는 인간적인 영광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저도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도요.”
“저도요.”
“저도요.”
“저도요.”
“나는 안다. 나는 너희가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저희는 완전합니까?”
“오! 아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토마스처럼 사랑하려는 갈망을 꾸준히 가지고 있다면, 너희는 완전하게 될 것이다. 완전하다고? 오! 내 벗들이여! 도대체 하느님 외에 누가 완전하단 말이냐?”
“당신께서는 완전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만일 너희가 내가 예언자라고 생각한다면, 나 혼자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너희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말씀, 하느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완전하다. 나는 말씀이 된 그분의 생각이다. 나는 나 자신 안에 완전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만일 너희가 내가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너희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내 벗들아, 보아라, 나는 내가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사람의 모든 불행들을 내 첫 번째 십자가로 짊어지고, 그 다음에 나 자신이 그것들로 인하여 고통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견뎌낸 다음에 그것들을 무효화하기 때문이다.
내 벗들아, 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냐!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것을 짊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불행들을 짊어지는 것이 내 기쁨인데, 나는 인류를 다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날에 그랬었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께서는 초라한 식탁에 앉아 얼굴을 한쪽으로 약간 기울이시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양손으로 조용히 손짓하시며 아주 조용히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식탁 위의 작은 기름 등잔불이 아래쪽에서 위로 그분의 얼굴을 비춘다. 그분께서는 가볍게 미소 지으시는데, 그분의 몸가짐은 방금 전까지는 선생님으로서 위엄 있으셨으나 지금은 매우 다정한 모습이시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선생님… 당신의 사촌은 왜 당신께서 어디에서 사시는지를 알면서도 오지 않았습니까?”
“내 베드로야!… 너는 내 돌들 중의 하나, 첫 번째 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돌들이 쉽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는 총독관저의 대리석들을 본 적이 있느냐? 그것들은 산중턱에서 힘들게 떼어내져 지금은 총독관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반대로 저기 키드론 개울의 물속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저 조약돌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스스로 이 개울 바닥으로 왔고, 누군가가 그것들을 주워가도 아무런 저항을 보이지 않는다. 내 사촌은 내가 말하고 있는 첫 번째 종류의 돌들과 같다… 산중턱이, 즉 그의 가족이 그를 두고 나와 경쟁한다. “
“그러나 저는 개울 속에 있는 돌들과 똑같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가정, 아내, 고기잡이, 형제들 모든 것을요. 라뽀니, 당신을 위해서요.”
“베드로야, 나는 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유다도 올 것이다.”
“누구요? 가리옷의 유다요? 저는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젊은 멋쟁이입니다만, 저는… 저는 저 자신을 더 좋아합니다…”
베드로의 재치 있는 발언에 그들 모두가 웃는다.
“웃을 일이 아니야. 내 말의 뜻은 나는 진실한 갈릴래아 사람, 아무런 속임수 없는… 투박한 어부를 여기… 도시 사람들보다 더 좋아한다는 말이야. 나는 모르겠어… 선생님께서는 내 말의 뜻을 아셔.”
“그래 나는 안다. 하지만 판단하지 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들의 꽃들처럼 착한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과 섞여 있다. 독미나리는 몸에 좋은 아욱 옆에서 자란다.”
“저는 한 가지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무엇 말이냐, 안드레아야?”
“요한은 당신께서 카나에서 행하신 기적에 대하여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저희는 당신께서 카파르나움에서도 기적을 행하시기를 몹시 바랐었는데… 당신께서는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당신께서는 왜 카나에서는 행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여기서는 행하시고, 당신 자신의 고향에서는 행하지 않으십니까?”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하느님과 결합하는 것이고, 우리의 능력들을 증가시킨다. 기적은 하느님과의 결합의 증거임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애롭고 동의하시는(assenting) 현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련의 기적들을 행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내 의무를 다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율법을 지키실 의무가 없었습니다.”
“왜? 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는 그것을 지킬 의무가 없지만, 율법의 아들로서는 지킬 의무가 있다. 지금 당장에는 이스라엘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밖에는 알지 못하고… 나중에도 거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을 분개하게 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율법을 지킨다.”
“당신께서는 거룩하신데요.”
“거룩함은 순종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순종을 완전하게 한다. 무엇보다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너는 좋은 모범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 형, 선생, 사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
“그런데 당신께서는 카나에서는 왜 기적을 행하셨어요?”
“카나의 기적은 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것이었다. 카나는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에 대한 선급금(先給金)이다. 그분께서는 은총을 기다리신다. 나는 여기 이 성도를 공적으로 메시아로서의 내 능력의 시작점으로 삼음으로써 이 도시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나는 저기 카나에서 은총이 가득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께 경의를 표했다. 세상은 그분을 통하여 나를 받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나의 첫 기적은 그분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그것은 다시 돌아온 토마스이다. 그는 안으로 들어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린다.
“선생님… 저는 당신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있게 해주십시오. 저는 결점들로 가득하지만 사랑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저의 유일한 보물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고,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 저를 받아주십시오…”
예수께서는 토마스의 머리에 그분의 한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디디모야, 남아서 나를 따라라. 성실하고 끈질긴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복되다. 너희 모두는 복되다. 너희는 나에게 친척들 이상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죽게 마련인 피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너희의 영적 소원들에 따라 내 아들들이고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너희는 선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 지금은 오후 네 시인데, 무기력의 그림자들이 벌써 나를 덮치고 있다. 내가 극심할 것이라고 느끼는 무기력증은 어제의 고통스러운 시간의 논리적 결과이다…
그러나 나는 10월 24일에도 몹시 아팠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환상이 끝났을 때 나는 뇌막염과도 같은 지독한 두통을 앓았었기 때문에, 나는 환상이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것이었을 때 예수께서 나에게 나타나실 때와 같은 옷을 입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덧붙일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것은 약간 상아빛을 띤 흰색의 고운 모직으로 만들어진 튜닉이었고, 같은 색상의 겉옷이었다. 그분께서 메시아로서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입으셨던 그 옷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