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주해/교부들의 가르침

교부들의 가르침 (9) 로마의 클레멘스 / 이연학 신부

Skyblue fiat 2024. 1. 13. 02:16

교부들의 가르침 (9) 로마의 클레멘스 / 이연학 신부

 

베드로의 세번째 후계자며 로마 주교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최초의 교부 문헌… 베드로. 바오로 사도 순교 증언

 

레네우스와 에우세비우스 등 많은 고대 저술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도 교부」인 클레멘스는 베드로의 세번째 후계자로서 로마의 주교(90/92~101)였다고 한다. 오랜 교회 전승과 수사본들을 토대로, 비록 본문에 그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저자는 클레멘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신약 성서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저술로서 최초의 교부 문헌이라 불린다. 서기 170년 경까지도 고린토 교회의 전례 집회에서 읽혀지는 등 고대 교회에 매우 널리 알려졌으며 때로 정경에 근접하는 권위를 누리기도 했던 이 편지글은 교회사와 교의사(敎義史), 그리고 고대 교회의 전례 등의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연이어 우리에게 찾아온 급작스런 재앙과 역경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사이에 말다툼이 되고 있는 문제들, 곧 몇몇 분별없고 건방진 사람들이 하느님의 간택을 받은 이들에게 맞갖지 않은 고약하고 몹쓸 항거 사건을 일으킨 일에 대해 우리가 너무 늦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1, 1). 이렇게 시작되는 문헌의 첫 장은 저작 시기와 동기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암시하고 있다. 『연이어 생긴 재앙과 역경』이란 서기 94/95년부터 96년까지 이어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말하며, 따라서 저작 시기는 96년에서 98년 사이일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편, 저술의 동기는 고린토 교회에서 생긴 불미스런 어떤 사건이라는 점도 이미 서두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예나 오늘이나 갖은 이유로(때로는 「거룩한」 이유로!) 자행되는 「패 가르기」와 「파워 게임」의 허깨비 놀음에 처음부터 안전한 교회 공동체는 거의 없다고 보면 솔직하고 객관적인 관찰일 것이다. 고린토 교회는 이 점에 있어서 이미 「우범」이거니와(1고린 1, 10~17 참조), 이번에는 아마도 공동체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 몇이 공모하여 자기 교회 목자들의 권위에 도전하여 멋대로 그들을 해임시킨 일이 발생하였던 모양이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바로 이 소동에 대해 클레멘스가 자기가 수장(首長)으로 있는 로마 교회의 이름으로 개입한 것이다. 주동자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이 편지는 소동의 원인인 시기와 질투에 대한 긴 훈계, 겸손, 평화, 애호, 일치와 조화를 위한 권고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65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전체를 개괄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이 글이 교회사와 교의사에서 지닌 중요성 몇 가지만 짚어 보기로 한다. 먼저 교회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편지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 제국의 서쪽 끝 스페인까지 선교하였다는 것과 함께,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하였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고 있다(5장). 이 사실(史實)은 로마 교회의 수위권과 관련된 교의적 문제와 직결된다. 왜냐하면 고대 교회에서 로마 교회가 누리던 특별한 위치는 『가장 중요한 기둥들』인(5장)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바로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뭐니뭐니 해도 이 문헌의 중요성은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둘러싼 민감한 문제로 말미암아 가장 두드러진다. 사도 시대부터 각 지역 교회는 책임자인 주교가 관리해 온 것이 관례였는데, 로마의 주교가 무슨 권리로 멀리 발칸 반도에 있는 고린토 교회의 문제에까지 개입하게 되었는가? 이 개입의 성격은 단지 이웃 교회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동등한 지위의 교회가 「형제」 자격으로 행한 하나의 「형제적 교정」(correctio fraterna)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특별한 구속력과 책임을 지닌 어떤 권위의 행사라 할 것인가? 『단일 주교직이나 이를 위해 반드시 따르는 관할권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 편지를 로마 공동체의 수위권 요구에 관한 첫 증언이라는 견해는 옳지않다』(드롭너)는 지적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이 편지에 단순한 「형제적 개입」 차원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사도 바오로의 순교

 

 

예컨대 『우리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죄와 위험에 빠진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입니다』(59, 1)는 표현이나 『우리가 성령의 감도로 적어 보내는 훈계에 순종하여 여러분이 시기의 불의한 분노를 근절한다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63, 2)는 표현 말이다. 한 마디로, 이 편지가 엄격하고 법적인 의미에서 로마 수위권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바티폴)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헌이 지닌 단호하고도 권위있는 말투는 로마 교회가 「아가페」의 차원에서 다른 모든 교회들에 대해 지닌 우위성과 책임을 의식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 두고 나면, 편지 곳곳에 드러나는 수평적이고도 비 권위적인, 한 마디로 복음적인 형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우선 서두의 인사말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로마에 거주하는(paroikousa) 하느님의 교회가 고린토에 거주하는 하느님의 교회에게(…)씁니다』 여기서 「거주하다」(proiko)라는 그리스어 동사는 「본당(parochia)」이라는 말의 출처로서, 정착하여 뿌리내리는 상태가 아니라 길손처럼 잠시 체류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고린토에 있는 교회나 로마에 있는 교회나 둘 다가 이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 없는 나그네로서, 유일한 하느님의 교회가 두 장소에 잠시 거주한다는 뉘앙스를 감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이 편지의 주어가 늘 「우리」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무슨 대단한 신분의 과시라기 보다는 연대감과 동질감의 표현으로 자주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적지 않게 중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피에 우리 시선을 모읍시다…』, 『그분 뜻에 순종합시다…그분의 수난으로 돌아갑시다』(9, 1) 등 수도 없이 발견되는 표현은 클레멘스가 의인이나 심판관이라기 보다는 고린토 교회의 고통과 죄에 함께 책임을 느끼는 형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성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가톨릭신문 (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