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6권
5장
피조물을 하느님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하는 ‘거룩한 피앗’
이 피앗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안전한 반면,
인간 자신의 뜻을 행하며 사는 이에게는 일체가 위험하다.
1929년 4월 28일
1 ‘거룩하신 피앗’이 피조물 안에 남긴 행적들을 따라가기 위하여 그 안을 돌아다니다가 에덴 동산에 다다랐다. 여기에서 내 빈약한 정신이 걸음을 멈춘 것은, 하느님의 피앗이 인간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현장에서였다.
2 나는 그래서 예수님께 내 가련한 영혼에도 창조의 거룩하신 첫 숨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분들의 (곧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 숨으로, 그분들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온전히 피앗 안에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3 내가 그러고 있을 무렵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그런 숨을 불어넣으시려는 듯이 나의 내면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우리의 뜻은 피조물이 다시 우리의 태 안으로, 우리의 창조적인 팔 안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계속해서 그 숨을 다시 불어넣어 줄 수 있다. 그 숨 안에 온갖 선과 기쁨과 행복을 일으키는 기운이 있어서 그에게 흘러드는 것이다.
5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려면, 사람이 우리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한다. 오직 우리의 뜻 안에서만 그 숨을 받을 수 있고, 우리도 그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6 우리의 ‘피앗’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피조물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게 한다. 그러니 (하느님인) 우리가 본성적으로 행하는 것을 피조물은 은총에 의해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창조할 때 우리에게서 어떤 거리를 두고 창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하려고 바로 우리의 거룩한 뜻을 주었으니, 이 뜻이 그에게 자기 창조주와 함께하는 첫 행위를 줄 것이었다.
7 우리의 사랑, 우리의 빛, 우리의 기쁨, 우리의 권능과 아름다움을 펑펑 쏟아낸 까닭이 이것이니,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거룩한 존재 밖으로 넘쳐흐르면서 사람 앞에 ― 우리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리의 창조적인 손으로 빚어내고 우리 자신의 숨으로 태어나게 한 사람 앞에 ― 풍성한 식탁을 차렸던 것이다.
8 그것은 우리의 작품이, 곧 우리의 작품인 사람이 우리 자신의 행복으로 행복해하고,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아름답게 되고, 우리의 재산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우리가 보며 즐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 가까이에 머물면서 함께 활동하고 함께 놀이도 하는 것이 우리의 뜻이니 더욱 그렇다. 놀이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이 있어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9 그러므로 피조물의 필요에 따라, 또 우리의 이 작품과 이를 창조한 목적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람에게 우리의 거룩한 뜻을 주었다. 이 거룩한 뜻이 사람을 우리의 창조적인 손에서 나왔을 때와 똑같이 보존했으니, 사람은 우리의 모든 재산을 향유하였고, 우리는 사람이 행복해하기에 즐거워할 수 있었다.
10 이와 같이 사람이 자기의 영예로운 위치를 회복하여 다시 한 번 제 창조주와 함께 활동함으로써 창조주도 사람도 같이 즐기려면, 사람이 우리의 ‘피앗’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피앗’이 승리자처럼 당당하게 사람을 우리에게, 우리의 팔 안으로 데려올 수 있고, 간절히 기다린 끝이라 우리의 거룩한 품속에 꼭 끌어안은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1 ‘6천 년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네가 돌아왔구나. 그 동안 너는 이리저리 헤매면서 온갖 불행을 다 겪었으니, 우리의 '피앗' 없이는 어떤 선도 없는 까닭이다.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 자신의 손으로 만져 알 만큼 충분히 겪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와서 쉬어라. 그리고 너의 재산을 향유하여라. 네가 우리의 '의지' 안에 있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너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12 따라서, 내 딸아, 주의를 기울여라. 네가 항상 우리의 ‘피앗’ 안에서 살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언제나 너에게 우리의 숨을 불어넣으며 즐거워할 것이고, 우리의 기쁨, 우리의 빛, 우리의 거룩함을 너에게 흘러넘치게 하면서 우리 업적들의 의미를 알려 주겠다. 이는 우리의 ‘거룩한 뜻’이 다시 태어나게 한 작은 딸(인 네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게 하려는 것이다.”
13 그분께서는 렇게 말씀하신 뒤 나의 내면으로 물러가셨고, 나는 ‘거룩하신 피앗’의 수없이 많은 행적을 계속 따라다녔다.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딸아, 자신의 모든 소유를 안전하게 두는 것이 내 ‘거룩한 의지’의 특권이다. 이 의지가 영혼 안으로 들어가면, 그 영혼의 임자로서 모든 것을, 곧 거룩함과 은총과 아름다움과 제(諸) 덕행을 안전하게 배치한다.
15 또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영혼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내 의지 자신의 신적인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덕행들로 대치한다. 다시 말해서 신적인 방식으로 대치한다. 그리고 변화를 겪는 법이 없는 내 의지의 인장을 그에게 찍어 어떤 위험에도 처하지 않게 한다.
16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도무지 없다. 내 뜻이 자신의 신적인 보장으로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켜 왔기 때문이다.
17 그 반면 인간의 뜻은 모든 것을, 심지어 성덕 자체도 안전하지 못하게 한다. 내 ‘피앗’의 계속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덕행들은 계속적인 위험과 계속적인 변동을 겪는 것이다. (예컨대) 격한 감정이 끓어오르면 모든 것을 뒤엎는 길을 열기 시작하고, 여러 희생으로 쌓은 덕행이나 성덕을 땅바닥에 동댕이치기 십상이다.
18 내 뜻은 어떤 해악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길과 문을 닫아걸고 계속 생기와 양분을 공급하지만, 그런 내 뜻의 힘이 없는 곳에는 인간의 뜻이 원수와 세속과 이기심과 비참과 장애물이 들어올 문과 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덕행이나 성덕들을 해치는 나무좀과도 같은 것이다.
19 그런데 나무좀이 있을 경우, 끈기 있고 굳건하게 선에 남아 있기에 충분한 힘이 없다. 내 거룩한 뜻이 다스리지 않을 때에는 그 무엇도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20 게다가 우리의 거룩한 뜻이 피조물 가운데에서 다스리지 않으면, 그 해악이 너무나 커서 모든 것이 계속 요동치는 상태에 있게 된다. 또 우리의 ‘피앗’이 인류 가족을 다스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의 창조 사업 자체와 구원 사업의 모든 선익도 언제나 한결같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할 뿐이다.
21 더군다나 인간의 뜻이 우리의 뜻과 대적하는 까닭에, 우리가 흔히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어지곤 한다. 그들을 무장시켜 인간과 대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의로 그들을 치는 것이니, 이는 우리의 뜻이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뜻이 우리의 선익을 배척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벌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22 그리고 피조물이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영광도 일정하지 않다. 인간적인 뜻의 행위를 할 때마다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 우리가 너무나 많이 주었기에 ― 피조물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야 하는 작은 관심과 사랑과 영광마저 안정적인 세입(歲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체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것뿐이다.
23 오직 우리의 뜻만이, 또 이 뜻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만이 스스로의 행위를 흔들림 없고 지속적인 것이 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24 그런즉 우리의 ‘거룩한 피앗’이 다스리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과 성사들까지 모조리 위험에 처해 있다. 인간의 뜻이 때로는 (그것을)악용하고, 때로는 그토록 큰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선익들을 짓밟아 버리기 때문이다.
25 요컨대, 우리의 뜻이 다스리면서 피조물 가운데에 신적인 질서와 그 확고부동한 굳건함과 그 조화를 널리 펴고, 그 빛과 평화의 영구적인 날을 밝혀 보일 때까지는, 인간에게 있어서나 우리에게 있어서나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소유마저 악몽과도 같은 위험속에 있으리니 이것이 내포한 풍성한 선익을 피조물에게 줄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