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큰 위안-오자남의 편지
19세기 이름 높은 문학가이자 자선가였던 오자남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느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슬픔에 잠겨 나는 위로도 받을 수 없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 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가 언제나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깨달으니 옛날 어머니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또 좋은 일이 생기면 어머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눈물을 흘려도 그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낍니다. 내가 선을 행할 때나 가난한 이를 도울 때, 어머님이 사랑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머님의 미소를 봅니다. 기도할 때에도 어머님과 함께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었던 옛날 일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들을 만나러 가다
병자성사를 드리기 위해 한 부부와 임종을 맞이하는 그 부부의 아들에게 찾아간 길이었다. 아들은 임종이 다가오자 이때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불쌍한 어머니는 침대 곁에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슬퍼하면서 방안을 왔다갔다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하느님께서는 왜 어머니 마음이 큰 상처를 입도록 그냥 두시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다 죽어가는 애처로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로하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곤 곧 숨을 거두었다.
“신부님, 저는 아들을 만나러 갑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2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현세에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지 않는다. 현세에서는 갖가지 공로를 쌓게 하여 우리가 그 공로를 영원한 천국에서 즐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 딸이 하느님을 보고 있습니다
19세기 중엽, '투르의 성인'으로 불리던 뒤퐁은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 브리에트와 함께 투르시에서 선행을 베풀면서 살고 있었다. 브리에트가 열다섯 살 되던 해였다. 그녀는 우아한 덕을 타고났고 신앙심도 두터웠으나 쾌활한 성격이 아버지에게는 걱정거리였다.
"아아, 딸아이가 수녀가 되고 싶어 했으면..."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은 이것이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수녀를 찾아가 딸의 장래에 대해 의논했다.
"딸아이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도원을 하나 지어야 한다면 등에 돌을 몇 년을 지고 나르는 한이 있어도 수도원을 지어서 브리에트의 영혼이 꼭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브리에트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친의 걱정은 더해 갔다. "주님, 만일 제 아이가 장차 바른길에서 멀어질 것이라면 세상의 덧없는 손에서 아이를 빼앗아 당신 곁으로 불러 주소서." 뒤퐁은 자주 이렇게 기도했다.
어느 날 브리에트는 감기에 걸렸다. 그 뒤로 몸이 회복되지 않아 이 약 저 약 모두 써 보았지만 병은 점점 중태에 빠졌다. 아버지는 딸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여러 수도원에 기도를 청했으나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았다.
노자성체를 영한 후 딸은 뜨거운 믿음으로 곁에 있는수녀에게 말했다.
"수녀님, 언젠가 피정 때에 이 세상의 그 어떤 보배와 보석도 하느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저 돌과 같다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 는데, 기억나세요? 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만물의 조물주이신 하느님만이 보배시지요."
침대 곁에 꿇어앉아 있던 뒤퐁은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얘야, 크나큰 위로를 받았으니 기쁘겠구나. 너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니?"
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와 헤어져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에요."
"너는 내게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너는 천국에서 하느님 곁에 있고 나는 이승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거야. 그러니 둘이 한데 있는 것과 같다. 두 개의 장막이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어서 하느님의 모습을 가리고 있다. 네 장막은 조금 있으면 찢어질 것이고 내 것은 좀 더 나중에 찢어지겠지. 그때는 너와 내가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단다."
임종이 점점 다가왔다. 뒤퐁은 딸의 손을 잡고 감격에 벅찬 믿음으로 말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여, 이 세상을 떠나라. 하느님을 거스르는 현세에 머물지 말고 천국에 가라. 죽음은 생명이요, 세속은 죽음이다. 하느님 곁에 가서 '저희는 오로지 당신 뜻을 따르겠나이다.' 라고 말씀드려라. 내 마음은 지금 슬픔으로 으스러질 듯하다. 나는 지금 산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천국을 위하여 너를 낳는다. 하느님 대전에 먼저 가서 나와 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다오. 그리고 친척들과 너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들, 또 너를 돌봐주신 분들과 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리고 잠시 묵묵히 있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릴 적부터 너를 헌신적으로 돌봐 주시고 너를 백방으로 치료해 주신 존경하올 의사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하여라.”
브리에트는 말없이 듣고 있었으나 마음 깊은 곳이 움직인 듯 끄덕였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의사도 감동받았다. 그는 브리에트를 살려 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 속상했지만 뒤퐁을 위로하려고 곁을 지켰다.
브리에트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뒤퐁은 여전히 안온한 얼굴로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그리고 딸의 숨이 끊어지자 부친은 천사 같은 얼굴로 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제 딸이 하느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자연적 기쁨으로 충만하여 마니피캇(Magnificat, 성모 마리아의 감사 노래)을 외웠다. 어떤 이는 이 모습을 보고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벗어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는 신심이 두터웠기에 뒤퐁의 믿음을 확인하고 몹시 감동했다. 그는 후일 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뒤퐁은 신자 그 이상이신 분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내 딸은 하느님을 보고 있다며 두터운 신앙으로 절규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 게 아름다운 슬픔을 전했다.
"우리는 희망 없는 사람처럼 슬픔에 잠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을 따르고, 마침내 천국에서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내 딸은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어찌 슬퍼하겠습니까?"
입관하기 전 부친은 팔짱을 끼고 그 옆에 서 있었다. 살아 있던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딸의 얼굴을 보자 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이 북받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곧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한 뒤 눈물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브리에트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나와 가까이에 있다. 내 쪽으로 드리워진 하느님을 가리는 장막이 찢어지면 내 딸을 볼 수 있겠지."
이때부터 뒤퐁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의 딸을 완전히 맡겼다. 2층에서 관을 내릴 때에 이 훌륭한 신자는 관에 입을 맞추고 거듭 말했다.
"귀여운 내 딸아, 잘가거라. 조금 있다가 만나자."
기도하러 망자 곁에 온 사제에게 뒤퐁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 귀여운 아이는 세속을 떠남으로써 세속을 이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정원사처럼 당신 정원에 내려오셔서 이 아름답고 결백한 꽃을 보시고 그가 폭풍에 꺾이기 전에 꺾어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매우 슬픕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 모든 쾌락보다 더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딸은 천국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 가 있습니다. 저는 아비로서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관을 무덤에 내려놓을 때 부친은 관 위에 십자 성호를 긋고 벅찬 감격과 함께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말했다.
"귀여운 아가, 잘 가거라. 천당에서 다시 만나자."
아아, 죽음은 낮잠에 지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던 시체가 태양처럼 빛나는 날이 온다. 죽은 이들과 우리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잊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연옥실화(정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연옥) 제7장. 연옥 영혼에 대한 믿음
/ 막심 퓌상 지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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