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서 수면까지의 거리
어느 날 한 귀부인이 슬퍼하면서 성 비안네에게 위로를 받으러 왔다. 그녀의 남편이 강물에 뛰어내려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신부는 자비심이 담긴 눈빛으로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리의 난간에서 수면까지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습니다. 부군은 뛰어내리면서 완전히 통회하여 지금 연옥에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많이 기도하십시오.”
성모님께 바친 꽃
어느 날 성 비안네에게 낯선 부인이 울면서 찾아와 말했다.
“제 남편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게을리하는 편이었어요. 남편이 며칠 전 급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남편의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 걱정이 많습니다."
성 비안네는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부군께서 매년 5월이 되면 주일마다 성모님께 꽃다발을 바치던 일을 잊었습니까?"
부인은 깜짝 놀랐다. 정말 그랬다! 남편은 5월에는 주일마다 교외에 산보를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길가의 꽃을 꺾어 와서 예쁘장한 꽃다발을 만들고 그걸 집에 있는 성모상 앞에 바쳤다. 그러나 부인은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도 없었거니와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다. 부인은 비안네 신부님이 어떻게 아셨을까 하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답도 못하고 있었다.
신부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느님은 당신의 성실한 기도와, 꽃다발을 성모님께 바치고 공경했던 부군의 정성을 보시어 임종 때에 통회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으나 빨리 부군을 연옥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기도와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순명의 보상
아버지와 형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위해 특별히 죄인의 구원을 위해 힘쓰는 수도회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이 여행을 하던 중 배가 난파되어 익사하게 되었다. 신부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며 희생, 선행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동네 병원에 다 죽어가는 병자가 하나 있었다. 신부 몇 사람이 이 병자를 찾아갔으나 병자는 신부의 권면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신부가 가게 되었다. 그런데 병실에 가 보니 죄 사함 받기를 거부하는 그 병자가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형이었다. 그러나 형님은 신부가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부는 형이 놀라지 않도록 남인 것처럼 하고 마지막 준비를 권했다. 병자는 기진한 목소리로 간신히 "부친은 바다에 빠졌지만 나는 이러이러하게 구조되었다."라는 말만 계속 되뇌었다. 그러나 선종 준비를 하려 들지 않았고 성사도 거절했다. 신부는 슬퍼하면서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신부가 수도원 문을 들어서자마자 원장이 그를 보고 말했다.
“지금 어느 동네의 묵상회에 가려던 참인데 모 신부가 병세가 위급하다고 전보가 왔소. 나 대신 강론 좀 해 주시오."
순명 서원을 한 신부는 마음의 번민을 뒤로 하고 머리 숙여 승낙의 뜻을 나타내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십자가 앞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형의 회개를 기도하고 비통한 마음을 희생으로 바치고서 강론을 위해 짐을 챙겨 출발했다.
성당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지금 곧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는 청년이 기다리고 있다고 누군가 알려 왔다. 본당신부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제 막 오셨는데 좀 쉬십시오. 그 청년은 잠깐 기다리게 해도 괜찮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는 초면의 청년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요. 아시겠지만 청년의 고백은 짧습니다. 게다가 남의 죄를 사해 주는 것은 사제 마음에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일입니다."
신부는 고해소로 들어갔다. 고해성사를 하러 온 청년은 근엄한 태도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신부여, 내가 여기 온 것은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네게 큰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셨다. 그대의 형은 병원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원장의 명령에 대해 아무런 원망 없이 이곳 성당에 왔다. 그 희생을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셨다. 그대가 십자가 아래 엎디어 그 발에 쏟은 뜨거운 눈물을 하느님께서 헤아리셨다. 비통한 마음이었지만 그대는 순명을 바쳤다. 그리하여 위독한 상태에 있던 그대의 형은 특별한 은혜를 받아 차분히 준비를 하고서 마지막 성사를 받았고, 그 영혼은 지금 연옥에 있다. 그대의 부친은 파선 때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성난 파도와 싸우는 동안 통회하였다. 이 은혜는 그대가 수도원에 들어가 밤낮으로 헌신적인 생활을 한 결과이다. 부친의 영혼은 천국에서 그대를 위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고 하자 청년은 사라져 버렸다. 이 교회 사람들 중에는 이 청년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이 청년을 만나지 못했다. 신부는 이날 아버지나 형의 수호천사가 다녀간 것이라고 믿었다.
- 연옥실화(정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연옥) 제7장. 연옥 영혼에 대한 믿음
/ 막심 퓌상 지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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