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4권
3
시험의 필요성.
하느님 나라의 자녀들에게 시험이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하느님께 바치는 행위.
하느님 뜻의 오랜 역사. 한 가지 비유.
1928년 4월 1일
1 하느님의 뜻 안에 맡기는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온전히 맡기면서 한편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의 나라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치르게 하실 시험은 무엇일까?
2 그분은 모든 이를 당신께서 부르시는 신분에 굳건하게 하시기 위하여, 또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선물을 믿고 맡기기 위하여, 그럴 만한 충실성이 그들에게 있는지 그 증거를 잡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그분 나라의 자녀들이란 신분은 그 이상의 것이 없을 만큼 숭고한 신분이다. 그러니 그런 신분에 올려놓을 사람들에게서야 그 증거를 얼마나 더 강력히 요구하시겠는가?’
3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내 딸아, 시험이 없고서는 실제로 믿을 만한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영혼이 이 시험을 통과하면 내 계획 내지 내 뜻의 확실한 보증을 받고, 내가 부른 신분의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하고 마땅한 모든 것을 받는다.
4 이런 이유로 내가 아담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이니, 그의 복된 신분과 모든 조물에 대한 왕권을 확립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시험에서 충실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로 그는 자기의 창조주가 자기에게 주시고자 했던 선들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5 사실, 사람은 시험을 통하여 그 충실성을 인정받는다. 이로 인해 그 영혼은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정하신 선들을 받을 권리를 누리며 그분께서 부르신 신분으로 살게 된다. 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또 그 자신 앞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시험을 치르지 않은 사람을 신임하실 수 없고, 사람 자신은 시험을 치르지 않은 자기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만약 아담이 시험에 통과했다면, 만물의 왕인 그의 복된 신분 안에 온 인류 세대가 확립되었을 것이다.마찬가지로, 내 거룩한 뜻의 이 자녀들을 아주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나 자신도 그들 모두에게 내 인성 안에서 시험에 통과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한 가지 시험을 남겨 두었다.
7 그것은 그들의 뜻이 아니라 언제나 오로지 내 뜻만을 실행하라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내 거룩한 피앗의 나라에서 사는 데에 필요한 좋은 것들을 전부 확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나는 모든 출구의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유(聖油)를 붓듯 무적의 힘을 부어 주어, 다른 아무것도 내 나라의 이 높은 방벽을 뚫고 들어올 수 없게 하였다.
8 그런데 내가 어떤 금지령을 내릴 경우에는 그럼에도 문 하나는 남겨 둔다. 사람의 의지가 이 문을 통하여 탈출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나의 뜻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서 사람에게 항상 있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9 그렇지만 내가 ‘여기에서부터는 출구가 없다.’ 하고 말할 경우에는 모든 문이 닫히고 잠긴 상태로, 약함은 강함으로 바뀐 상태로 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다만,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로 결정하는 일뿐이다. 그러므로 내 뜻의 나라 안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그 결정뿐이다. 결정이 그 주체를 완성된 행위로 데려가는 것이다.
10 내가 너에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니냐? 너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뜻 말고는 아무것도 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지 않느냐? 내 뜻은 과연 생명의 중심으로서 그 전능한 힘과 눈부신 빛으로 모든 것을 너의 외부에 있게 한다. 또한 모든 것을 무색하게 하면서 내 뜻 자신의 생명의 첫 행위를 너의 모든 행위들 속에 흘러들게 하고, 여왕으로서 일체를 다스리며 지배한다.”
11 그 뒤 나는 모든 창조물 안에서 하느님 뜻의 행위들을 따라가면서 그들을 내 창조주께 공경의 예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러자 활동 중인 어떤 생명 같은 것이 그 모든 창조물 안으로 들어가 그들 전부를 재결합시키며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워하는 사이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12 “내 딸아, 모든 조물 안에서 활동하는 이 생명은 나의 뜻이다. 나의 뜻이 모든 것을 움직이면서 마치 손안에 잡고 있는 것처럼 만물을 내 뜻의 생명 안에 잡고 있다. 내 뜻은 장기간에 걸쳐 활동하고, 그 수가 불어나도 하나의 활동이다. 고로 내 뜻의 역사는 유구(悠久)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너의 저술도 매우 길어지게 마련이다.
13 네가 아무리 짧게 이야기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은, 만물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내 뜻의 활동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즉, 내 뜻이 그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루어 온 것이 너무나 많은 나머지 그것에 대하여 이미 많은 말을 하고나서도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14 게다가 그 활동들, 모든 생명들, 모든 영역들이 내 뜻 자신의 소유이기에, 내 뜻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기의 오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 너는 그러므로 자신의 역사를 너에게 일러주는 영원한 뜻의 해설자요 전달자다. 영원한 뜻이 자기 행위들의 생명을 주려고 너를 자신의 역사 안에 너를 끌어들여, 이 뜻의 활동과 이 뜻이 내포하는 좋은 것들을 되도록 많이 주려고 하는 것이다.
15 따라서 -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영원하신 임금님께 왕의 품위에 어울리는 행위들을 바친다. 그것은 오직 내 뜻의 신적인 왕궁에서만 볼 수 있는 행위들이다. 사람이 우리 (성삼위)의 뜻이 모든 창조물 안에서 하는 왕다운 행위들을 가지고 우리 앞에 올 때,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사람에게서 진정한 흠숭을 받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우리의 존엄에 합당한 신적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16 그 반면 우리의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든, 신적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인간적인 행위들만 우리에게 바칠 뿐이다. 이 행위들 안에는 우리의 ‘거룩한 피앗’의 왕다운 행위가 흘러들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보다 열등한 것이다.
17 어떤 왕에게 한 시동(侍童)이 있어,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왕의 시중을 든다고 하자. 왕은 비록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것이지만 그래도 영광스럽게 여긴다. 물을 마시고자 하면 밝고 맑은 황금 물병 안에 든 깨끗한 물이 나오고, 식사를 하려고 하면 왕에게 합당한 음식이 은쟁반에 담겨 나오고, 옷을 입고자 하면 왕인 그에게 어울리는 옷이 나오는데, 왕이 아주 기뻐하며 흡족해하는 것은 왕궁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의 것으로 시중을 받기 때문이다.
18 또 다른 시동은 왕이 물을 마시려고 하면, 그 자신의 구차한 집으로 가서 탁한 물을 길러 때에 찌든 도기 물병에 담아 오고, 왕이 식사를 하려고 하면 가서 시동 자신의 천한 음식을 가져오고, 왕이 옷을 입고자 하면 왕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수수한 옷을 가져온다. 왕은 그러니 이 시동의 시중을 받는 것에서 기쁨도 영광스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19 오히려 심히 언짢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럴 수가! 내 왕궁의 훌륭한 것들이 있는데도 이 시동은 구차한 제 집의 하찮은 것으로 감히 나의 시중을 들 엄두를 냈다니!’ 여기에서 첫 번째 시동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요, 두 번째 시동은 인간의 뜻, 곧 자기 자신의 뜻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둘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