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4권
6
칼바리아가 새 에덴 동산일 수 있는 까닭.
한 행위만으로 나라를 세울 수는 없다.
예수님의 사랑에 필수적인 죽음과 부활.
1928년 4월 12일
1 ‘하느님의 피앗’ 안을 순례하면서 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함께하였다. 다정하신 그분을 따라 칼바리아 산에 다다르자, 내 마음속 생각이 그분의 십자가 고통 앞에 멎은 채 애통함에 빠져들었는데, 그분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칼바리아 산은 새 에덴동산이다. 인류가 내 뜻을 멀리하여 잃어버렸으나 새로이 돌려받게 된 에덴동산이다. 이 둘을 서로 맞대어 비교해 보면, 에덴동산에서는 인간이 은총을 잃었고, 칼바리아에서는 그것을 획득했다.
3 그리고 에덴동산에서는 하늘이 인간에게 닫혀 있었다. 인간은 따라서 행복을 잃고 지옥 원수의 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 새 에덴동산에는 하늘이 다시 열려 있어서 인간이 잃었던 평화와 행복을 되찾고 악마의 종살이에서 해방 되며, 악마는 사슬에 묶이기로 되어 있었다.
4 또 에덴동산에서는 ‘거룩한 피앗의 태양’이 어두워지며 물러나 인간에게 늘 캄캄한 밤이 되었으니, 이는 내가 십자가 위에서 세 시간의 끔찍한 고통을 겪는 동안 땅의 표면에서 물러간 태양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내 인성을 그토록 처참한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인간의 뜻과 그 악독한 배신행위였으니, 태양이 제 창조주의 그 고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소스라치며 물러갔다가,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자 다시 나타나 그 빛의 행로를 계속했던 것이다.
5 이와 같이 ‘내 피앗의 태양’이, 내 고통이, 내 죽음이 ‘내 뜻의 새 태양’을 불러 되돌아오게 하여 다시 피조물 가운데서 다스리게 한 것이다.
6 그러므로 칼바리아는 ‘내 영원한 뜻의 태양’을 불러 피조물 가운데에서 다스리게 하는 새벽 여명을 이루고 있었다. 여명은 태양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임을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칼바리아에서 이룬 여명은, 무려 2천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내 뜻의 태양’을 불러 다시금 피조물 가운데에서 다스리게 할 것임을 의미한다.
7 에덴동산에서는 내 사랑이 패했지만, 칼바리아에서는 내 사랑이 그들을 이겼다. 즉, 첫 번째 에덴에서 영혼과 육신에 사형 선고를 받았던 인간이 두 번째 에덴에서는 그 선고에서 풀려났을 뿐더러 내 인성의 부활을 통하여 육신의 부활도 재확인을 받은 것이다.
8 그런즉 에덴동산과 칼바리아 산은 여러 가지로 서로 관련을 맺고 있고, 인간은 한 쪽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른 쪽에서 되찾을 수 있다. 내 고통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돌려받게 되기에, 그 가련한 피조물의 영예와 영광도 나의 고통과 죽음으로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9 인간은 나의 뜻을 멀리하고 그 자신의 사악과 나약과 정욕과 비참의 나라를 세웠다. 그러기에 나는 지상에 와서 심하게 고통 받기를 원하였으니, 내 인성이 갈가리 찢기고 온통 상처로 뒤덮이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용납하였다. 또한 죽음마저 불사하였다. 나의 숱한 고난과 죽음으로 인간이 쌓아 올린 숱한 사악에 대립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10 나라는 그러나 하나의 행위만으로는 세울 수 없다. 행위에 행위를 더하고 더 많은 행위들을 겹쳐 올릴수록 더 크고 더 영화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11 이 때문에 나의 죽음이 나의 사랑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내가 내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의 입맞춤을 줄 수 있었고, 내 숱한 상처들로부터 모든 선이 나오게 할 수 있었으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내 상처들은 그러므로 선들을 내뿜는 샘이요, 내 죽음은 만인을 위하여 생명을 내뿜는 샘이다.
12 또 나의 부활 역시 내 죽음과 마찬가지로 내 사랑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인간이 자기의 뜻을 실행하면서 하느님 뜻의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부활함으로써 육신의 부활뿐만 아니라 그 육신 안에 내 뜻 생명의 부활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13 내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내 ‘피앗’ 안에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내 부활 안에서 자기 부활의 보증을 볼 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내 사랑을 완수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미진한 느낌 - 사랑에 있어서는 순교적 고통을 방불케 하는 그 고통 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14 나는 그러나 부활하였고, 따라서 배은망덕한 인간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활용하지 않고 온통 불행 속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내 사랑은 완수(完遂)의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