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제4장/16. 베드로가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26, 72)

Skyblue fiat 2021. 4. 22. 00:05

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4 장 과월절의 어린 양

 

16. 베드로가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26, 72)

 

 

 

소스라쳐 놀랄 만큼 처절한 학대를 당하고 계신 예수를, 울 수도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베드로와 요한은 너무나 괴로워서 그곳에 더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께로 서둘러 달려갔다. 성모께서는 거룩한 여인들과 함께 (그전까지) 마르타의 집에 머물고 계셨다. 베드로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에 빠져 있었으며, 될 수 있는 대로 드러내지 않도록 애쓰면서 몹시도 슬피 울었다. 베드로는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기 어려울 만큼 지극한 슬픔으로 격앙되어 있으면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 마당에 지펴져 있는 불더미의 가장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경비병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그때 문지기 하녀도 불가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에 대해 제멋대로 지껄여대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문지기 하녀는 시건방진 여자들에게서 드러나는 불손한 태도로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는 베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그 나자렛 사람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군요.”

 

그때 베드로는 몹시 당황하였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예수께 대한 애련한 마음을 간직하고 계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께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감지하고 계셨다. 그분은 영적으로 그 모든 사건들을 직관하시면서 고통을 받고 계신 가운데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셨다. 요한은 “그는 죽어야 마땅하오” 하고 무섭게 외쳐대는 군중들의 고함 치는 소리를 들으며 가야파 관저의 앞뜰을 빠져 나왔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라자로의 집으로 가서 (지금은) 그곳에 계신 성모께 상황을 개략적으로 보고드리며, 예수께서 당하고 계신 수난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말씀드렸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예수께 대한 애련한 마음을 간직하고 계신 성모께서는 그때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 성모께서는 다른 거룩한 여인들과, 고통으로 거의 의식을 잃고 있는 막달레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신 예수께로 데려가 달라고 청하셨다. 요한은 성모를 모시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수많은 귀성객들로 붐비는 달 밝은 거리를 통과하여 지나갔다.

 

그들은 가야파 저택에 가까이 와서는 출입문의 반대편 쪽에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길을 택해 걸었다. 출입문 쪽으로 이어진 길은 두 개의 마당과 연결되는 길이었다. 그들이 집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마당들 중에 가장 바깥 쪽에 위치한 뜰에 도착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는 거룩한 여인들에 둘러싸이신 채, 요한과 함께 그 뜰의 바로 다음 마당의 문 아래편 구석으로 가시고자 하셨다. 성모께서는 그 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그분은 그 일이 요한의 중재를 통해 이루어져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셨다. 그 문이 당신과 당신 아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기셨다. 문이 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나왔다. 그때 베드로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격렬하게 흐느껴 울며 나오다가 그들 앞에 넘어졌다. 베드로는 달빛과 햇불들의 불빛을 통해 금방 성모 마리아와 요한을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예수께서 고통 중에 베드로를 바라보시며 격려해 주셨던 터에, 지금 그가 성모 마리아를 뵙게 되자 더욱 양심의 고통을 느꼈다. 마리아께서 베드로에게 말을 건네셨을 때, 아, 가련한 베드로는 그의 영혼 안에서 얼마나 울어야만 했던가!

 

“오, 시몬! 내 아들 예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베드로는 마리아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비비며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성모께서는 베드로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셔서 깊은 고통 중에 말씀하셨다.

 

“오, 요한의 아들, 시몬! 내게 대답해 주지 않으려는가?”

 

그때 베드로는 깊은 비탄 속에서 외쳤다.

 

“오, 어머니! 저에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아들은 인간으로서 받을 수 없는 잔혹한 학대를 받고 계십니다. 저에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은 그분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겁하게도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베드로와 이야기하려고 그의 곁에 다가왔을 때, 베드로는 슬픔으로 넋을 잃은 듯이 마당을 빠져 나왔다. 그는 도시 밖으로 나와 올리브 산의 동굴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성모께서는, 예수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최초로 고백했던 제자인 베드로가 마음이 흔들려 그분을 부인했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받고 계신 이 새로운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시다가 기둥 곁에 있는 돌 위에 푹 쓰러지셨다.

 

예수께서 투옥되신 후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을 떠났다. 마당에 있는 문은 아직 열린 채로 있었다. 성모 마리아께서 의식을 다시 회복하시자 그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더 가까이 있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가야파 관저의 법정 아래에 위치한 감옥에 갇히셨다. 그곳은 작고 둥글게 생긴 지하실이었는데 나는 지금도 이 장소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감옥 안에 서 계신 채 당신께 고통을 가한 자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셨다. 마침내 사람들이 피로에 지쳐 다소 잠잠해졌을 때, 나는 예수께서 완전히 광휘에 둘러싸이신 채 문설주에 기대어 서 계신 것을 보았다. 날이 밝았다.

 

예수께서는 이른 아침을 맞으시면서 묶이신 두 손을 높이 쳐드시고 큰소리로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께 매우 감동적인 기도를 바치셨다. 그분은 이미 선조들이 갈망해 왔고 또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 그토록 탄식하시며 그리던 이 날을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셨다. 그 기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사랑과 진지함과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께서는 감옥의 한 가운데 있는 낮은 기둥 곁에 서신 채, 위대한 희생 제물에게 비춰 주시는 첫번째 빛을 매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셨다. 피곤에 지쳐 졸고 있던 형리들이 그 광휘를 보고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경탄하며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보였는데, 그 분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예수께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그 감옥에 계셨던 것 같다.

 

새벽 동이 터올 무렵에 가야파와 안나스 그리고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넓은 회의실로 다시 모여들었다. 왜냐하면 심야의 재판이 법률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유효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원로회 의원들은 가야파 저택 안에 있는 부속실과 회의실에 비치된 휴식용 침대에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 니고데모와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것은 대집회였는데 그들은 매우 성급하게 서둘러대었다. 그때 그들은 예수께 사형 선고를 내리기 위해, 그분을 반박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니고데모와 아리마태아의 요셉 그리고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예수의 적대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축제가 끝날 때까지 이 사건의 심의를 연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소동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증인들이 서로 모순된 증언을 하고 있는 이때 거론된 죄목들로 판결을 내린다면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사제들과 그들의 파벌 집단들은 그 같은 반대 의견에 대해 격분하였다. 그들은 다른 참석자들로 하여금 이 반대자들이 그 갈릴래아 사람의 가르침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함께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에게는 이 재판이 마음에 들 수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이렇게 되자 예수께 호의를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의회를 탈퇴하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결정된 모든 사항들에 대해 항의하고는 회의실을 나와 성전으로 향했다. 그들은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의회의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야파는 감옥에서 예수를 끌어내어 원로 회의장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가야파는 그의 앞에 매우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는 예수께 증오와 모멸로 가득 찬 태도로 말하였다.

 

“네가 그리스도인가? 네가 메시아이거든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라!”

 

그러자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거룩한 인내와 진지함과 장엄하신 태도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그렇다고 말하더라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묻더라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방면(放免)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란 말이냐?”

 

예수께서는 영원한 진리가 깃든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그렇다. 너희가 말하였듯이 내가 그리스도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말했다.

 

“더 이상 무슨 증언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직접 그의 입으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야파는 주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주기 위해 그분을 무자비하게 끌고 그 도시의 일상적인 주거 지역을 통과해 갔다. 지금 그곳에는 전국으로부터 과월절을 지내러 온 사람들과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는 성전이 있는 산으로부터 북서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꽤나 높은 건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기 위해 대리석으로 된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빌라도는 그곳에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넓은 장터를 내려다 보았다. 그 장터의 주랑(柱廊) 아래에는 상인들의 점포들이 연이어 있었다. 빌라도 관저에 부속된 경비 초소와 네 개의 출입구에서는 저녁과 자정 그리고 아침과 정오경에 집회장으로 불리는 장터의 건물들을 차단시켰다. 경비 초소의 맞은편 집회장에는 교수대처럼 계단으로 높게 쌓아 올린 테라스가 하나 있었는데, 편편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진 그 위에는 돌의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빌라도는 법정을 열고 엄숙한 모습으로 판결을 내렸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받으신 구세주와 함께 빌라도의 관저에 도착하였다. 그때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계로 아침 여섯시경이었다. 광장과 법정의 입구 사이의 길 양쪽으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안나스와 가야파와 그들을 동행한 의회 의원들은 그 지점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정렬하였다. 예수께서는 밧줄에 묶이신 채 형리에 이끌려 빌라도 관저의 계단 아래까지 오셨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빌라도는 앞부분이 불쑥 돌출되도록 지어진 테라스의 안락 의자에 앉아 있었다. 관리들과 군인들이 그의 옆에 서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의 막강한 위용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군중들 틈에 끼어 있던 모든 고발자들이 빌라도 앞으로 나와 고소하는 동안 예수의 어머니와 막달레나와 요한은 집회장의 한 회당 건물의 모퉁이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 속에 군중들의 아우성치는 소리와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셨다. 예수께서 헤로데에게 끌려가시자 요한은 성모 마리아와 막달레나를 예수께서 수난당하시던 그 길로 다시 인도하였다. 그들은 오벨을 지나 올리브 산에 있는 게쎄마니 동산에 이르는 모든 길 – 그 길은 가야파와 안나스의 저택에까지 이르게 된다 – 을 걸었다. 그들은 병사들이 예수를 넘어뜨리고 고통을 가했던 모든 장소에 조용히 머무르며, 그분의 고통을 슬퍼하고 괴로워하였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자주 무릎을 꿇으시고 예수께서 넘어지신 장소에 입을 맞추셨으며, 막달레나는 두 손을 비비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요한은 울면서 성모를 위로해 드렸다.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일으켜 드리고 계속해서 다음 장소를 안내해 드렸다. 이 일은 아직 거룩한 수난이 다 이루어지기 이전에 거룩한 십자가의 길에서 겪으시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고 흠숭하는 첫번째 발단이 되었다.

 

 

출처

16. 베드로가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26, 72) | CatholicOne (wordpress.com)